보고 끄적 끄적...2013. 6. 12. 07:52

<Gloomy Day>

부제 : 19260804

일시 : 2013.06.05. ~ 2013.06.23.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작곡, 음악감독 : 김은영

극본, 연출 : 성종완

출연 : 윤희석, 김경수 (김우진) / 안유진, 곽선영 (윤심덕)

        이규형, 정민 (한명운)

 

창작 뮤지컬 <글루미데이>

프리뷰 두번째날 저녁 공연을 봤다.

요즘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을 보면 매번 놀라게 된다.

소재 자체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뮤지컬 넘버도, 배우들의 연기도.

무대와 조명도 참 좋다.

특히 편곡은 늘 감탄하게 된다.

솔직히 김우진과 윤심덕의 뻔한 신파를 보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런 작품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보고 난 느낌은...

사람을 묘하게 gloomy하게 만든다.

뒷골을 잡아채는 묘한 우울함때문에 처음엔 이 작품의 호불호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우직한 소처럼 다시 되새김질을 해보니

그 gloomy의 정도가 꽤나 매혹적이다 .

이 작품,

과거의 사건을 지금의 시대로 멋지게,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되살려냈다.

실제 사건과 픽션의 절묘한 조화!

게다가 작품 속에서 여러가지 편곡으로 7~8번 나오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가히 백미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편곡, 정말 예술이다,)

처절한 울리는 피아노와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 연주는 이 작품을 설명해주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다.

멋지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특히 윤심덕이 김우진에게 총을 겨눈 뒤 부르는 "사의 찬미"는

자기파괴적이면서도 교활하고 집요하다.

모든 걸 포기한 듯 하면서도 어딘지 뒤에 진실을 감겨놓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 곳을 곽선영은 정말 잘 표현했다.

(브라보!)

 

윤희석의 김우진은,

초반엔 대사도 잘 안 들리고 노래도 많이 약했지만, 나약하고 무력한 식민지 지식인의 느낌을 잘 살려줬다.

연기나 대사 타이밍은 아주 좋았다.

김우진이란 인물,

자칫 잘못하면 참 무미무취한 인물로 전락할 수 있었을텐데...

윤희석의 김우진을 보면서 조금 아쉬운 건, 

조금만 더 그로테스크하고 예민하게 표현했다면 후반부 느낌이 훨씬 강렬했을 것 같다는 거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 ^^)

마치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빠져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사람처럼 보여지는 건 영 못마땅하다.

한명운이 김우진에게 느꼈다는 "life force"라는 걸

나는 작품 앞, 뒤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끝가지 우울한 식민지 지식인의 느낌, 딱 그랬다.

혹시 life force 운운했던 건 그저 한명운이 던진 미끼였을까?

그래야 한명운의 의도(대본)대로 모든 일이 벌어질테니까!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미지의 인물 한명운을 표현한 배우 이규형.

실제로 무대에서 본 건 이 작품이 처음인데 정말 놀랐다.

그저 까불까불하고 코믹한 연기를 주로 하는 배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겐 일종의 반전이었다. 

본인보다 훨씬 키가 큰 윤희석을 완전히 압도하더라.

딕션과 연기, 노래도 너무나 명확하고 정확하다.

일본식 영어표현도 어색하지 않았고 표정과 손끝 표현도 정말 좋았다.

양복과 페도라도 썩 잘 어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한명운을

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김우진과 윤심덕이 탄 배에 같이 탑승했던 실제 인물이긴 하더라.

(어쩌면 두 사람과 전혀 일면식이 없는 인물이었는지도...)

 

"그렇게까지 힘들게 살아 남아서 대체 얻고 싶은 게 뭐야?"

한명운이 질문에 김우진은 답한다.

"우리의 진짜 세상!"

진짜 세상?

그런데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한건가?

이곳(배)을 벗어나면(바다로 몸을 던지면)

정말 신세계라는 게 있기는 할까?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선구자가 되는 걸까?

그 어떤 편견도 없고,

그 어떤 경계도 없는 그런 곳을 찾아 떠난 선구자!

하지만 그런 곳은 노래가사 그대로  "이 세상에 없는 곳"이 아닐까?

그래선가?

내가 내내 gloomy 했던 게!

 

고민된다.

다른 캐스팅으로 한 번 더 보고싶은데

보고난 뒤에 더 gloomy 해질까봐서.

그러면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는 gloomy한 예감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