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8. 27. 08:28

<Hedwig>

 

일시 : 2012.08.11 ~ 2012.10.21.

장소 : KT&G 상상아트홀

출연 : 오만석, 박건형 (헤드윅) / 이영미, 안유진 (이츠학)

연출 : 김민정

음악감독 : 이준

제작 : CJE & M, 쇼노트

 

내가 다시 <헤드윅>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순전히 오만석 때문이다.

아무리 <헤드윅>이 내가 열렬히 좋아라하고 미친듯이 사랑하는 넘버로 가득하다지만 마지막 커튼콜 광란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느 때부터인지 점점 예매가 망설여지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내가 커튼콜에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단지 두 발로 서있을 뿐인데도 힘겹다.

(이렇게 쓰려니 참 민망하면서 살짝 나이듬의 비애까지 느껴지려고 한다.)

 

7년 전 오만석, 송용진, 김다현, 조승우 캐스팅으로 초연됐을 때

전캐스팅을 한 번씩 다 봤었다.

(그때는 나도 참 팔팔했었는데... 쩝!)

네 명의 헤드윅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오만석 헤드윅.

정확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뭐랄까.

오만석 헤드윅은 테스트를 오래 분석하고 고민한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배우로서의 오만석!

개인적으로 이 배우는 연출가들이 좋아하면서도 꺼려하는 1호 배우가 아닐까 싶다.

연출가적인 분석과 시선을 가진 오만석,

게다가 텍스트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실천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참 요리하고 어려운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혼자서도 스스로 요리할 줄 아는 배우이기도 하고...)

 

 

7년 만에 돌아온 오만석 헤드윅!

그로테스크하고 그리고 참 절절하다.

본인은 커튼콜때 아직까지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이라서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더 노력하겠다는 말과 함께...

<헤드윅>이란 작품에 대해, "헤드윅"이란 인물에 대해 오만석이 갖는 깊이와 고민이 느껴졌다.

좀 쓸쓸했고 그리고 간절했다.

그렇다면 배우 오만석이 원하는 건 "헤드윅"의 완성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헤드윅>은 만 37세의 한 남자에게 다시 성장소설을 쓰게 한다.

<헤드윅>이란 작품의 힘이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 멋지고 당당하다!

<헤드윅>이란 작품도,

오만석이란 배우도.

그가 부르는 "origin of love"는 듣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커튼콜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기꺼이 공연장에 앉아있을 수 있겠노라고.

일종의 신화이자 철학인 "origin of love"

그로테스크한 화장과 몸짓의 헤드윅과 함께

애니메이션 내용이 주는 섬득함의 중첩이 나는 언제나 황홀하게 좋다.

일부러 표정과 행동을 과장되게 움직이는 것도

일종의 메세지임을 오만석의 헤드윅은 잘 표현해준다.

참 묘하다.

혐오스러울만큼 외면하고 싶은 거부감과 함께

몰래 숨겨놓고 혼자서만 독점하고 싶은 깊은 연정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이 여자도 아닌고 남자도 아닌 한 사람이

나를 참 처연하게 한다.

 

오만석 헤드윅은 무디면서도 참 굵직하다.

굵직함으로 섬세함을 표현한다는 말이 모순처럼 느껴지겠지만

그의 헤드윅을 보고 있으면 잔기교로 사람의 혼을 빼놓는 게 아니라

연기력과 감정, 집중력으로 승부를 보려 한다는 걸 절감한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꽃미남과도 아닌 오만석 헤드윅.

때론 참 투박하고 멋대가리 없어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그게 참 오래 간다.

오만석이란 배우는 내게 <헤드윅>을 수묵화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표현이 도대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내가 써놓고도 참 어이없는 비유다.)

오만석이 표현하는 "tommy"는 또 어떻고...

토마토 장면은 본인이 의도만큼 충분히 표현하진 못했지만

그런 부족함이 개인적으론 참 좋게 보였다.

정말 속죄의 투어 같았다고나 할까?

아, 이 사람은 이걸 이겨내기 위해 또 고민하겠구나...

어쩌면 한 편의 성장소설이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오만석!

이 사람은 <Hedwig>을 통해

만개(萬開)함으로 만석(萬奭)하려나보다.

이번 시즌을 통해 오만석만의 "Wicked Little town"이 서서히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참 영리하고 wicked한 배우다.

 

이영미 이츠학!

<헤드윅>의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무방할 배우.

항상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이츠학은 가능하면 이영미로 보려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이츠학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녀도 이제 나이가 드나보다.

예전만큼 성량이 풍부하고 생동감 있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이영미는 이영미다.

그녀가 <헤드윅>에 뿌린 땀방울은 그녀만의 이츠학을 노련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이영미 이츠학에게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헤드윅의 진짜 주인공은 이츠학일지도 모르겠다.

 

헤드윅!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9월 7일 오만석 헤드윅을 처음 만나는 거였다.

그런데 계획보다 좀 일찍 만났다.

그래서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늘 그랬든 고민의 내용은 이렇다.

go냐! stop이냐!

 

* 솔직히 말하면 "헤드윅"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오만석을 보고 싶긴하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