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3. 13. 06:14
이미 네 번을 본 <오페라의 유령>을 다시 보기로 한 건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었다.
라울 정.상.윤.
배우 홍광호가 2월 27일 마지막으로 라울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3월 14일 홍광호가 세계 최연소 팬텀으로 데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다른 이유로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팬텀이 윤영석이든 양준모든,
크리스틴이 최현주든 김소현이든 상관이 없었다.
드디어 인연이 닿게 된 정상윤 라울이 궁금하고 반가웠을 뿐.
그게 다섯번째 <오페라의 유령>을 본 이유의 전부였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졸음과 싸웠다.
꼭 정상윤 라울의 부족함만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다.
극의 시작인 경매 장면부터 이상하게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
그건 처음이 주는 낯섬 때문이 아니라 (만약 그런거였다면 나는 기꺼이 참았을 것이다)
지금껏 잘하고 있던 익숙한 것들의 틀어짐같은 묘한 어긋남이었다.
급기야 보는 내내 스스로를 책망했다.
"너무 많이 봤어! 너무 많이 봤어!"라고...
어쩌다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며 쏟아지는 잠과 싸워야 했을까?
그래도 그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었는데...



<쓰릴미>의 "나"였던 정상윤을 생각한다.
그때 그가 얼마나 빛나고 철저하게 아름다웠는지를...
그의 표정의 변화를 보는 건 즐거움이었고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걸 보는 건 짜릿함이었다.
그랬었는데...
그랬던 그가 보여준 라울은,
찌질이는 아니었지만 존재감이 흐릿하다 못해 사라지기까지 한다.
멀쩡한 허우대에 멀쩡한 기럭지에 멀쩡한 톤을 가지고 있는 그는
왜 라울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실종되는 팬텀으로 스스로 변해버렸을까!
팬텀의 사라짐에 익숙해있던 나는
무대위에 뻔히 서있는데 보이지 않는 라울을 보며 진심으로 당황하고 어리둥절했다.
"라울"이 "팬텀"을 꿈꿨던가?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색다른 경험이라고 자위하기엔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8년을 기다려온 뮤지컬이라는 말이 이날만큼은 무색하게 느껴졌다..
무대 위에 있는 그들도 느꼈을까?
익숙함에 길들여진 그들도 제발 느꼈기를...
장기공연의 절반을 지나온 <오페라의 유령>
유종의 미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은 변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진심으로 유령으로 남겨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유령이 된 <오페라의 유령>이라...
생각만으로도 참 씁쓸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