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7. 11. 9. 08:50

이탈리아에 국민 스포츠가 있단다.

바로 디에트롤로지아.

운동종목의 하나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디에트롤로지아는 모든 일의 배후를 찾아내려는 성향을 뜻하는 이태리어다.

그러니까...어떤 일이 발생했다면 그 전에 빌미가 될 만한 일이 먼저 있었을테니 그걸 찾아내겠다는 건데...

일종의 면피(免被)의 변(變)이다.

내 탓이 아니라는 책임회피의 비겁함도 담겨져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러더러.

이탈리아 특히 베네치아에서는 맛집이라는게 없다고.

어차피 대부분이 여행객인데 맛 따윈 상관없다고.

건물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맛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내가 비싸게 산 만큼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가게를 팔고 다른 곳에 다시 열면 된다고.

철저한 "관광"의 도시인 베네치아.

여행객에게 맛이 유일한 목적이 아닌건 참 다행인 일이지만

맛을 이기는 풍경을 가졌다는건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베네치아가 요즘 심심찮게 시위를 벌인다.

관광객들에 의해 삶터가 망가지는걸 반대한다는 피켓팅.

심지어 올 여름엔 리알토다리에 커다란 현수막까지 붙었었다.

VENEXODUS

아마도 베니스와 엑소더스를 합친 말인것 같은데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참 너무하네 싶다가도

매일을 이렇게 엄청난 관광객의 폭풍 속에 살면 사는게 사는게 아닐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결방법은 어쩌면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현지인과 관광객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

오직 그것 뿐.

 

 

빠듯한 시간,

하지만 그 속에도 설렁설렁 걸어다닐 짬은 분명히 있다.

산마르코 광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골목골목을 기웃거리고,

성당을 들여다보고,

종탑을 올려다보고,

콜로나를 살펴보고,

건물의 외벽 장식에 감탄하고...

조용조용 사부작 사부작,

물처럼 흘러다녔다.

 

 

 

베네치아에 가면 곤돌라는 꼭 타라고 했던가!

하지만 곤돌라 앞에 서면 타고 싶다는 마음은 쏙 사라진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지긋지긋함에 쩔어 있는 곤돌리에의 표정을 보는게 너무 당혹스럽다.

탈래? 말래?

관심없어? 우리도 없어. 너 아니어도 탈 사람은 많아!

탄식의 다리 밑을 지나는 곤돌라들을 오래오래 지켜봤다.

곤돌리에의 무표정과 관광객의 무표정이 한 배 위에서 섞인다.

낭만도... 로망도... 사라진 무료함의 동승.

 

베네치아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필요한건 "거리감"이다..

물리적인 거리감, 심리적인 거리감, 그리고 정서적인 거리감.

너무 깊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감.

그걸 유지한다면 기대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나머지를

혹은 전부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