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4. 21. 07:57

호기로움도 자신감도 아니었다.

이 거대한 알함브라 궁전을 가이드없이 돌아다니겠다고 결정했던건!

사실 현지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원하는 곳이 그날만 투어 일정이 없었다.

유럽은 현지 한국어 로컬 가이드 투어가 워낙 많아서

다른 곳을 쉽게 찾을 수도 있었지만 고민하다 그냥 우리까지 다니는 걸로 결정했다.

우루루 몰려가서 가이드 설명에 따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우루루 이동해야 한다는게 싫었다.

다 둘러보지 못하더라도,

중요한 곳을 놓치게 되고,

지도를 제대로 못읽고, 

입구와 출구를 못찾아 헤매게 되더라도

알함브라 궁전만큼은 나만의 시선과, 나만의 시간 간격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옳았다.

 

 

알카사바를 둘러본 후 발걸음을 옮긴 곳은 카를로스 5세 궁전.

이곳은 "알함브라 궁전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랍 건축물에 홀로 서있는 르네상스 양식이라니..,

주위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용감무쌍한 궁전을 지은 인물은

궁전 이름에 나와 있듯 카를로스 5세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복은 타고 났는지

친가쪽에선 신성로마 제국을, 외가쪽에선 스페인을 물려받아 거대한 영토의 주인공이 됐다.

공식명칭은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카를로스 5세로,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

이 궁전은 1526년 결혼한 카를로스 5세사 이곳으로 신혼여행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왕 짓는거 주변과의 관계를 좀 고려하면 좋았을테데

바쁘신 왕께서는 당시 유행한 스타일과 스케일에만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코르도바에 있는 이슬람사원(메스카타)에 대성당을 지은 인물도 바로 카를로스 5세였다.

아무래도 이 왕께서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개념도 "종교" 앞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많이 흘러 건축 당시만큼의 이질감은 느껴지진 않는다.

(그걸 온전히 이해하기엔 나의 지적, 미적 감각이 기준이하겠지만...)

 

 

이 궁전은 특징은 겉에서 보면 분명 사각형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눈 앞에 커다란 둥근 홀(hall)이 열린다는 거다.

내부는 2층 구조로 되어 있고

예전에는 1층 원형홀에서 투우 경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바닥이 돌로 덮여져 있어 투우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대신 매년 여름마다 그라나다 국제음악제가 개최되고

회랑 1층은 알함브라 박물관이, 2층은 순수 예술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이 가능한데

미술보다 건축에 혼이 뺏겨 있는 상태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광장 한가운데는 중심점에 해당하는 동그라미가 있는데 그곳에 조카녀석을 데리고 갔다.

"아~~~"하고 소리를 내보라고 했더니 미심적은 얼굴로 따라한다..

조카가 낸 소리는 이내 커다란 홀을 지나면서 점점 크게 공명된다.

그렇게 한동안을 조카와 소리를 내면서 놀다가 다른 여행객이 오길래 자리를 양보히고 돌아섰다.

손을 잡고 걸는데 조카녀석이 갑자기 물어온다.

"정말 신기하다! 근데 고모는 이런걸 어떻게 다 알아?"

책에서 봤다고 말하려는데 조카가 또 한마디를 한다.

"하긴 고모는 모르는게 하나도 없더라!"

 

...................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카에게 정체가 들통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휴~~~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