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7. 11:28

여행을 계획하면서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 이동하는 문제로 꽤 오래 고민했었다.

처음엔 당연히 항공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외국에서 페리를 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도 같고,

페리를 탈 거면 기왕 야간 페리에서 하룻밤을 자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산토리니로의 in은 쾌속페리로, out은 야간 페리로!

결론은!

현명한 선택이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서둘러서 예약한 덕분에 야간페리는 4명이 잘 수 있는 독립된 룸이여서

조용하고 오붓하게 갈 수 있었다.

이층 침대를 보자마자 조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엄청 좋아하더라.

소음이나 흔들림이 걱정되긴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어서 다행이었다.

뭔가 전체적으로 몸이 붕 떠 있는 정도!

확실히 비행기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 

침대칸을 예약하지 못한 여행객은 그냥 배의 바닥이나 카페테리아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던데

그게 또 히피스러워보이는게 살짝 부럽더라.

아무 거리낌없이 바닥에 그야말로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묘한 일탈과 자유가 느껴졌다.

 

조카와 동생이 자고 있는 새벽에 또 혼자 일어나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을 산 뒤 갑판으로 나갔다.

바람이 쎈 편이라 사람들이 없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설마 이곳에서, 이 바람 속에서 밤을 보낸 건 아닐테고 참 부지런들 하다.

선상 위에서 보는 아침해는 깨끗하고 정갈했다.

그야말로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느낌.

예뼜고 수줍었다.

사실 좀 더 오래 그곳에 머물고 싶었는데

피레우스항에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방송 때문에 내려왔다.

조카들과 동생을 깨우러!

(이 가족들! 참 곤하게, 제대로 숙면을 취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의 길라잡이는 해와 빛, 이 둘이었던 같다.

의외의 곳에서 나는 그들을 만나 눈부셨고,

그들 덕분에 뽀송하게 건조됐다.

어쩌면 나는 그 속에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하얗게 햐얗게 날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눈부시게 하얀 옥양목처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