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3. 17. 07:39

내가 코르도바를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유대인지구를 천천히 걷고 싶어서였다.

마치 그리스의 피라섬을 떠오르게 하는 미로같은 좁은 골목길,

그리고 새하얀 벽을 장식하고 있는 색색의 귀여운 화분들.

5월 파티오축제에 오면 집집마다 활짝 개방된 안뜰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쉽다.

지금은 닫힌 문 사이로 살짝살짝 훔쳐보는게 전부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정성을 기울인 흔적은 역력하다.

조그만 안뜰(파티오)를 집 안에 있다는건 "작은 평화"를 품고 사는 느낌이겠다.

이 작은 꽃길과 골목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일부러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작정하고 꾸민게 아니라

그냥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가꾸는 일상의 향기가 짙어서다.

낯선 이국이 아니라 평범한 진짜 사람이 살고 있는 곳.

그래서 코르도바의 길은 "황홀"이다.



그리고 오렌지나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동네 가로수로 가장 많이 본 나무.

오렌지 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생각은 도대체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

초록색 잎사귀에 주황색으로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를 보는건 그대로 상큼함이더라.

여행자의 지친 걸음을 위로해주는 선명함.

사실 따먹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된다.

과감하게 한 번 따 먹어볼 걸.

그게 비록 신포도일지라도...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가 거주했다는 알카사르와 

로마교를 지키기 우ㅐ해 세웠다는 칼라오라 탑은

입장료를 내고 둘러볼까 고민하다 그냥 포기했다.

그냥 계속 길 위에 머물고 싶어서...

이날 바람이 너무 강해서 로마교 위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모자와 머풀러는 순식간에 저만치 날아가버리고

옷은 바람따라 너풀거리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로마교가 물물교환하는 시장도 아닌데

여기저기 바람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 주인울 찾아주느라 분주했다.

덕분에 유쾌한 헤프닝으로 가득찼던 곳.



마드리드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코르도바 포트로 광장.

이곳은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포트로 여관"이 실제로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기념관 같은 곳으로 변했지만 세르반테스가 이곳에 머물면서 소설을 썼었다고...

("포트로"는 "망아지"라는 뜻으로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동물이란다.)

포트로 여관 맞은편에는 코르도바 미술관과 홀리오 로메로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두 곳 역시도 눈으로 훝어보는 걸로 만족했다.

왜냐하면 코르도바에서는 그저 행복한 walker가 되기로 다짐했으니까...


그리고 다짐처럼 정말 많이 걸었다.

다리가 퉁퉁 부어 절뚝거리는데도 미련하게 걷고 또 걸었다.

걷는게 유일한 목표고 이유인 사람처럼.

마드리드 호텔로 돌아왔을때는 그대로 침대에 쓰려져버렸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생각해보니 그날 먹은거라곤 아침에 호텔에서 먹은 조식이 전부더라.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긴 했는데 그마저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비상식량으로 가져간 비스켓은 뜯지도 않은채 그대로 가방속에 있었다.

또 다시 길에 빠져서 모든걸 멈춰버렸구나.

그날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 매혹적인 길을 난 오래 그리워하겠구나.

.........

병(病)이 하나 늘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