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법 큰 수술을 하신 아빠는
몸이 회복되시고 두 가지 일을 시작하셨다.
대금 강습과 시작법(詩作法) 강습.
시작법을 배우면서부터는 시집을 한 권 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별로 살갑지 못한 딸은
그러시라며 말만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제 늦게 집에 들어가니 거실 탁자에 책이 몇 권 놓여있더라.
책표지에 있는 아빠 이름을 보는 순간.
죄스런 마음이...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빠는 꿈을 이루기위해 이렇게 애쓰셨구나.
고백하자면,
이 시집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심하게 혹은 평상시처럼 책장을 넘길 자신이...
지금은 솔직히 없다.
아무래도 잠시 내 맘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
얼마큼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 무게를 감당할 용기가 생기면
아주 찬찬히, 그림을 읽듯 한 줄 한 줄을 읽어내리라.
책장을 넘기지도 않았는데
가슴 끝이...
너무 많이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