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3. 12. 08:09

세고비아를 다녀온후 숙소로 가는게 좀 아쉬워 숙소가 있는 그랑 비아와 가까운 광장을 찾아갔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에스파냐 광장.

그래도 마드리드까지 왔는데 세르반테스에게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에스파냐 광장 한 가운데 돈키호테와 산초를 거느리고 앉아있는 세르반테스 기념비는

세르반테스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드리드시에서 1616년 세웠다.

17세기 당시 길에서 책을 읽으면서 웃는 사람을 마주친 필리페 3세가 그랬단다.

"저 놈은 미쳤거나 아니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거나겠군!"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나 역시도 끔찍하게 사랑하는 책이다.

참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의외로 완역본을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

완역본을 보는 순간 일반적으로 그 두께에 놀라서 시작하지도 않는 완독을 포기하더라.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너무나 매력적인 책.

기념비 주변의 올리브 나무는 <돈키호테>의 배경인 라만차에서 가져왔다고...

라만차에 가지 못하는 마음을 기념비와 올리브 나무를 쓰다듬는 걸로 위로했다.

고마워요, 세르반테스!

당신 소설이 한때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힘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감사 인사를 하며 광장 주변을 걷고 또 걸었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솔광장으로 걸어오는 동안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드리드까지 왔는데 솔광장의 곰은 봐야할 것 같은데

카를로스 3세의 기마상은 찾았는데 이놈의 곰이 보이지 않는거다.

한참을 주변을 돌아다니다 겨우 찾았을때의 허무함이라니...

카를로스 기마상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천하의 길바보는 바로 옆에 있는걸 못찾고 또 주변만 뱅뱅 맴돌았던거다.

포기하려는 순간,

헤매던 반대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마드로뇨 나무 곰 동상.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더라.

괜히 애궂은 곰에게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해가 진 그랑비아 거리를 천천히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간.

하늘이 짙은 푸른색을 띄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면

거리의 명암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저 푸른 빛에 이끌리면

아무리 피곤한 다리라도 멈추는게 불가능해진다. 

낯선 거리의 밤이 비밀을 풀어낼 준비를 한다.

그걸... 읽고 싶고, 듣고 싶고, 느끼고 싶은데...

그럴순 도저히 없다.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낯선 사람일 뿐.

언제나 낯선 사람일 뿐. 

그리고 영원히 낯선 사람일 뿐.


열린 광장은,

그래서 늘 닫혀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