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0. 5. 16:07

<광부화가들>

일시 : 2013.09.13. ~ 2013.10.13.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리 홀 (Lee Hall)

번역, 연출 : 이상우

출연 : 강신일(올리버), 김승욱(조지), 김중기(라이언), 민복기(해리),    

        채국희(헬렌), 송재룡 (지미), 이원호, 권진란, 김용현

제작 : 명동예술극장

 

2010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졌을때 꼭 봐야지 하면서 놓쳐버린 작품이다.

다시 올려지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더 매력적인 캐스팅으로 돌아왔다.

강신일 한 명 만으로도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는 그런 작품.

연극 <레드>에 이어 두번째 화가 역할.

개인적으로 강신일의 대사톤을 너무나 좋아한다.

조근조근하면서 사람을 단번에 사로잡아 극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목소리.

그래서 강신일이 출연하는 연극은 꼭 놓치지 않고 보는 편이다.

그가 연말에 다시 <레드>의 마크 로스코로 돌아온단다.

강필석과 한지상과 함께...

덕분에 올 연말은 좋은 작품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다.

<광부화가들>은 강신일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극단 차이무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래서인지 연극 <거기>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상우 연출이 초연보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끌고 가고 싶었다는데 의도만큼 된 것 같다.

아주 무겁지도, 아주 가볍지도 않으면서 때때로 묵직한 뭔가를 던져준다.

보면서 계속 뮤지컬 <빌리엘리어트>가 떠올랐는데 역시나 리 홀의 극작이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갔더니만...)

실제 광산촌 출신인 리 홀(Lee Hall)에게 광부와 광산의 이야기는 절대적인 트라우마이자 창작의 근원인 모양이다.

올리버 킬번을 연기한 배우 강신일의 인터뷰 내용도 아주 인상적이다.

 

“제가 2,30대였을 때 연기하면서는 배우 개인적으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내 안에 어떤 이가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많았어요. 연극 속 ‘올리버’가 겪게 되는 비슷한 경험이죠. 이제 나이 50이 지나서 배우로서 그런 것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지만, 더 크게 발전을 시키지 못한 건 아닌가. 그 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러 역을 맡으면서 너무 타성에 젖어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나 역시도 유사한 질문들과 여러번 대면했다.

꼭 예술이 아니더라도...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무대 위 3개의 대형 스크린으로 직접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도 아주 흥미로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고흐, 세잔느의 명화들도 있지만

우드홀 탄광박물관이 영구 소장하고 있다는 실제 애싱턴 그룹의 그림 10점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색감의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광부들이 그렸다는 그림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적어도 내 눈에 이들은 광부가 아닌 천재로 보인다.

"애싱턴 그룹(The Ashington Group)"은 1934년부터 1987년까지 꽤 오래동안 활동했던 실제 광부화가들의 그룹이다.

당시 이들이 영국 화단에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 역시도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예술과 노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했다.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이들은 유명세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전업화가가 아닌 끝까지 광부라는 직업을 고수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한 어둡고 좁은 갱도를 파내는 일을 그들은 왜 그만두지 못했을까?

작품 속에서 지미(송재룡)가 10살에 처음 광부를 하면서 느낀 공포를 눈물로 회상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는 올리버 킬번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 역시도 결혼도 못한채 갱도에서 사망한 형의 처자식을 부양하는 입장이었다.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 이유가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 싶어서?

모르겠다.

나라면 헬렌(채국희)의 제안에 고민없이 당장 OK를 했을텐데... 

 

대사들이 가진 힘이 정말 어머어마하다.

어떻게든 이 작품의 대본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라이언 : 혹시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나요?

광부 : 우리, 이 동네를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광부예요!

라이언 : 그럼, 그림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까? 평생?

광부 : 없는데요!

 

헨리 : 아름다움이라고요? 농담해요? 이 동네에 살아 봤어요? 이 동네 삶에 아름다움이라는 거 없어요!

라이언 : 예술은 나 자신이예요, 예술은 나 자신을 아는 거예요.

 

데이트 미술관 견학 장면에서 고흐의 그림앞에서 광부화가들이 나눈 대화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정점을 찍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조지 : 반 고희의 "방"을 보고 있으면 그냥 구경하는 느낌이 아니야!

지미 : 그래, 고흐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어!

올리버 : 반 고흐가 말하는 거 같았어. "예술은 생활이다"

헨리 : 진정한 예술은 나누는 거야. 예술은 주인이 없어!

올리버 :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거야. 바로 그게 예술이야!

 

이 작품은 자연스럽게 일련의 과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작품 자체의 진행(과정)도,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과정)도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했다.

고의의 "별이 빛나는 밤"같은 작품이었다.

오랫동안 내 속에 밝게 빛날 그런 작품.

다행이다.

긴 여행 후 첫관람한 작품이 이 작품이어서...

노곤한 여독의 피로를 이 작품이 제대로 풀어줬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