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3. 15. 08:11

<광해, 왕이 된 남자>

일시 : 2013.02.23 ~ 2013.04.21.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출연 : 배수빈, 김도현 (광해/하선) / 박호산, 김대종 (허균)

        손종학, 김왕근 (조내관), 황만익, 임화영, 김진아 외

제작 : (주)비에이치엔터테인먼트

 

영화 <광해>가 이백만 관객이 들었다던가!

그래선지 엄창닌 흥행기록을 세운 이 영화 가 연극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이 됐다.

영화의 성공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연극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영화에서 1인 2역을 했던 배우 이병헌의 임펙트가 워낙에 강해서 어떤 배우가 됐든 생각보다 쉽게 도전하기 힘든 배역이 되겠구나 싶었다. 

어찌됐든 영화와의 비교는 피할 수도 없는 일일테고...

영화적 기법을 연극 속에서 활용하는 것도 당연히 한계가 있을텐데

하선과 광해의 대면을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건지 막막하기도 했다.

(실루엣 처리? 마술같은 분장의 효과? ... 모두 정답은 아니올시다!)

암튼 여러가지로 좀 궁금했었다.

솔직히 나는 배우 이병헌이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내 취향이 아닐지도... 돌 날아오는 소리 들린다...)

이 영화에서도 오히려 눈을 띄었던 건 킹메이커 조승룡과

장비같은 오버스런 털분장의 우수꽝스러웠던 도부장 김인권의 연기였다.

그래도 이병헌 때문에 넋을 놓았던 장면이 있긴 했다.

영화 초반에 빨간 옷(?)을 입고 아주 시니컬하고 날선 표정으로 앉아있던 바로 그 모습!

포스... 엄청 대단났다!

사실 이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엔 나도 기가 완전히 죽었었다.

 

이 어마무지한 포스의 주인공을 과연 누가 감당하게 될까 궁금했는데 배수빈, 김도현이란다.

킹메이커 허균은 박호산과 김대종.

어! 얼핏 그려봤는데 그리 나쁘지 않다.

한번쯤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캐스팅이 배수빈과 박호산!

사실 김도현과 배수빈을 두고 살짝 고민하긴 했지만 좀 섬세한 표현을 보는 쪽으로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했던 것만큼 좋았던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좋았다.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처음 만났다면 아마도 훨씬 더 좋았으리라.)

상황의 전개와 표현에 대한 고민들이 역력히 보인다.

일부러 그랬는지 무대 자체도 오로지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영화와는 다른 인물의 설정과 사건의 전개도 좋았다.

가령 도부장도 가짜 왕을 만드는 공모자에 포함된다는 것과

도부장, 어의, 허균이 결국 폭군 광해군의 칼날에 도륙이 되고 만다는 설정은 의외다.

아마도 환상이었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중전의 품에서 하선이 죽는 설정도 꽤 드라마틱하다.

영화에선 하선은 안 죽는다.

(왜? 이병헌이니까! ㅋㅋ)

영화의 미개봉 결말에서도 중전이 등장한다.

하선이 시골마을에서 입담을 자랑하는 장면에서 환한 웃음과 함께 꿈결처럼.

그 장면에서 이병헌의 눈빛!

첫 장면 광해의 그 눈빛만큼이나 좋았다.

그런데 도대체 이 장면을 왜 삭제했을까?

시작부분 광해의 날선 눈빛과 끝부분 하선의 꿈결같은 눈빛을 그대로 대비시키면

훨씬 더 임펙트가 강했을텐데... 

 

 

배수빈은 무대 위에서 성량 조절에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생소리를 지르다간 조만간 목이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은데 걱정이다.

광해와 하선의 구분도 좀 모호헸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라는 대사와 함께 극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의도만큼 이 장면을 효과적으로 살려내지 못했다.

더 위엄있고 근엄한 톤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웠던 건,

광대들이 나와서 18번째 후궁 운운 하면서 퇴장할때까지 배수빈을 못 알아챘다는 거다.

물론 탈을 쓰고 나오니 얼굴을 확인할 수야 없었지만 목소리가 너무 달랐었는데...

광해와 하선 때문에 놀랐던 게 아니라

탈을 쓴 하선과 탈을 쓰지 않은 하선 때문에 놀란 셈이다.

때때로 배수빈의 열정과 열심이라는 in put은 과한 표현이라는 out put 을 남겼지만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무대와 배역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날 공연에서 왕의 의상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연기하면서 계속 의상에 신경쓰는 배수빈의 모습은 좀 그랬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배수빈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표정 연기는 정말 좋았다!)

 

허균 박호산.

이 날 나는 배우 박호산의 다른 면을 목격했다.

뭐랄까?

좀 다른 공간의 인물같았다고나 할까?

이쪽에 있으면서 저쪽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표현한다면 이해가 될까!

결말을 몰랐을때는 이런 해석이 좀 혼란스러웠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배우 박호산의 계산된 인물 설정이었는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톤도 꽤 인상적이었다.

결코 큰소리 치지 않으면서 좌중을 주목하게 만드는 그런 톤이랄까!

박호산이라는 배우가 과연 사극 작품에도 어울릴까 싶었는데 꽤 괜찮았다.

뻔히 보이는 빅그적인 결말을 아주 담담하고 단백하게 표현했다.

이게 또 의외의 여운을 남았다.

대사 타이밍은 또 얼마나 기막히던지!

아무래도 허균이라는 작품 속 인물이

박호산이라는 배우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는 배역이 될 모양이다.

(그에게도, 그리고 또 나에게도)

 

조내관 김왕근, 박충서 황만익의 연기와 목소리톤은 참 좋았고

대사할 때 타이밍도 정확했다.

출연한 배우들 모두 대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좋았지만

다만 중전은 대사와 연기, 발음도 많이 어설펐고

사월이는 영화에 나오는 인물 그대로 복사하듯 표현돼 많이 아쉬웠다.

몇몇 장면들은 연출의 묘미가 돋보였다.

가령 대신들의 윤대 예행 연습(?) 장면과

"경의 뜻대로 하시오!"와 함께 연결되는 장면의 전환,

하선이 꿈속에서 진짜 광혜와 대면하는 장면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배수빈의 열연도 아주 좋았고....

이 장면을 감내하면서 배우 배수빈은 고독하지 않았을까?

"너는 나의 과거고, 나는 너의 미래다! 결국 너는 네 안에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엄청난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대사라 듣는 것만으로도 섬득했었다.

극의 완급을 이끌고 해석해주던 고수의 북장단은 섬세했고

무대를 감싸던 오묘한 색감과 핀조명을 이용한 명암의 구획도 효과적이었다.

영화에서 느껴진 강한 임펙트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요한 중심이 간곡하게 담겨있다.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보다 연극의 은근함과 고요함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어쩌면 내겐 영화가 "광해'였고

연극이 "하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아마도 나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그럴듯한 세상에 사느라 많이 힘들었나보다.

  일순간 단번에 깨부수는 광폭함보다

  작은 정으로 오래 깨서 부서뜨리는 인고의 희망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오래 견디는 건 결코 무능때문이 아니다.

  그건 "어쩌면..."과 "혹시...." 로 연결되는 희망 때문이다.

  간곡함이란 놈은,

  힘이 쎄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