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6. 21. 08:00

<I Am My Own Wife>

일시 : 2013.05.28. ~ 2013.06.29.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대본 : 더그 라이트

번역 : 김기란  /  무대 : 여신동

조명 : 최보윤  /  음향 : 임서진

연출 : 강량원

출연 : 남명렬, 지현준 (샤롯데)

제작 : 두산아트센터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한줄한줄 정성껏 읽어나갔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온 여장남자.

 그녀의 삶 전체에 대한 모든 이야기,

그러나 그 인생 전부를 읽어내고도 결코 다 알아낼 수 없는 그런 여자.

샬롯 데 폰 말스도르프.

처음에 대면한 건 프레임 액자 속에 담긴 정물화 한 점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빛,

스르륵 비밀처럼 열리는 문.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객석을 휘 둘러보고 거침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녀, 샤롯데!

끝나고 나서 알았다.

그 미소가 나를 베를린 그륀더자이트(Gruenderzeit) 박물관에 깊숙히 들어가게 했다는 걸...

 

작품을 보기 전,

조금 두려웠었다.

남명렬 배우의 게이스런 모습을 목격하게 될까봐.

그렇게된다면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우 남명렬을 개인적으로 조금 알기에...) 

다행이 게이스런 몸짓과 목소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만이 있었을 뿐.

 

남명렬의 샤롯데은,

질투가 날만큼 아름답고 포근하고 따뜻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여자처럼 꾸미지도 않았고 자세는 오히려 남자의 움직임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의 샤롯데는 너무나 섬세하고 세밀해서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질투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말의 끝에 여성만이 감지할 수 있는 섬세함이 담겨있다.

소리와 빛,

마치 그녀처럼 중복되며 겹쳐지는 그림자들.

이 작품은 지독한 탐독을 부른다.

남명렬이 읽어준 이 작품은,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였고, 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1인 35역의 모노드라마... 운운은 일종의 미사여구라고 생각하련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35명을 만난 게 아니라,

대단한 단 한 명의 여자를 만났고, 봤고, 읽었을 뿐이다.

그녀, 샤롯데!

배우 남명렬의 특유한 발성과 딕션은 내겐 마술이고 최면이다.

뭉개지는듯하면서 명확한 그의 "ㅅ발음"을 들으면서

나는 또 다시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서성였다.

그 목소리가 신비와 현실, 거짓과 진실, 그와 그녀 사이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간다.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샤롯데에게 누군가 물었다.

가구가 망가지거나 오래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수리하거나 버리느냐고.

그녀가 대답한다.

 "나는 절대로 가구를 수리하거나 버리지 않아요.

  그 모든게 존재했다는 증거죠.

  모든 것은 보존해야 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이건 기록이예요. 삶의 기록!" 

순간 나는 그녀의 오래된 컬렉센 중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었다.

그녀의 거짓들이 그녀에게 그랬듯

(어디까지 타인의 관점에 불과할뿐이지만)

그게 내게도 자가처방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아! 그렇구나!

이 작품은 절박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었구나.

문득 시계추가 움직이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나치와 공산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낸 그녀가 남긴 소리.

그 소리가 마치 급작스럽게 들린 총소리처럼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내 오른쪽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꼭 그녀처럼... 

 

나는 그녀를 읽었다.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