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2. 6. 06:15

<The Vagina Monologues>

일시 : 2011.12.02. ~ 2012.02.10.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출연 : 김여진,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원작 : 이브 엔슬러 (Eve Enster)
연출 : 이유리
프로듀서 : 이지나


1998년 뉴옥 초연 이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는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어느새 한국 초연 11주년이 됐다.
2001년 초연 당시엔 파격적인 소재와 대사로 특정 단어를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보도하고 일부 관객은 음란물과 다를 바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단다.
지금 이런 이력을 들으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초연될 당시엔 공연계에 꽤나 큰 이슈가 됐었다.
지금같이 음난물의 홍수 속에서야 이런 내용쯤은 그저 코웃음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어 제목을 아무렇지 않게 발음하기엔 솔직히 난감함이 있다.

연극이 유명해지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었다.
솔직히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연극으로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11년이 지나서야 겨우 보게 됐다.
처음 공연했을 때는 출연하는 배우가 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세 명의 배우가 나온다.
(마치 공개방송 토크쇼같은 느낌이다.)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배우 정애연이 다른 두 명의 출연자에 비하면 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당히 좋았다.
딕션과 감정표현, 말의 톤과 속도도 잘 조정하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뮤지컬만 했다는 정영주가 선택한 첫번째 연극 작품!
역시나 작품의 액센트 역할을 여기서도 여지없이 해낸다.
(정영주가 없었다면 다분히 밋밋하고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극단적인 감정 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배테랑 연극배우 이지하가 꼼꼼히 채워준다.



신비한 우주, 보지 - 산부인과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음모 - 30~40대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
그가 그것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에 - 20대 커리어우먼과 그녀를 사랑한 남자친구 이야기
작은 짬지 - 동성애자 이야기
홍수 -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70대 할머니 이야기
보지 워크샾 - 처음으로 경이로운 오르가즘을 경험한 40대 여성 이야기
긴 머리 남자 -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아내 이야기
말하라 -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My angry Vagina

9개의 모놀로그 중 개인적으론 이지하 부분이 제일 맘에 들었다.
이 사람 참 연기 잘하는구나 다시 한 번 절감하면서...
핀 조명 하나를 받으면서 
덤덤하게 책을 읽어가다가
점점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솔직히 나는 조금 더 적나라하고 솔직한 작품이길 기대했다.
11년의 내공이 쌓인 작품이니 조금 더 그랬어도 돼지 않았을까?
의도적으로 연출된 몇몇 장면들은 기름과 물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 분명한데 절대 안 짰다고 우기는 그런 구성들.
그리고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말하라"는 
너무 교육적(?)이라 오히려 불편했다.
너는 왜 이런 진실을 다 잊고 사니!
너 참 나쁜 사람이구나! 
꼭 손가락질하면서 책망하는 것 같아서...
(당신들도 그렇게 살았쟎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대가 너무 컸었나?
어쩌면 이날 느닷없이 펑펑 내린 흰 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창가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순간 땅으로 떨어지는 하얀 눈이 글처럼 읽혔다.
또박또박, 그 행간의 여백들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기형도가 떠올랐다.
그걸로 어쩌면 모든 건 이미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눈 속에서 나는 나만의 모놀로그를 읊고 있었다.
총.총.총.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