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5. 18. 05:46

  

<빈터(更地) - sarachi>

 

일시 : 2012.05.09. ~ 2012.05.12.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남명렬, 이정미

극본 : 오타 쇼고(太田省吾)

연출 : 이지영

제작 : 극단 소금창고

주최 : 서울연극협회

 

2012년 서울연극제 초청작 <빈터>

이 연극은 <물의 정거장>, <모래의 정거장>의 작가 오타 쇼고(太田省吾)  작이다.

오타 소고는 극단적으로 느린 등장인물의 움직임을 부각시킨 "침묵극"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겸 연출가란다.

 

집이나 건물이 허물어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터"를 뜻하는 일본어 "사라치(shrachi)"

고배 대지진 이후에 일본에서 유행처럼 던진 화두의 단어가 바로 사라치란다.

1992년 일본에서 초연됐고 2000년 서울 연극제에서 초연될 때 오타 쇼고가 직접 내한하기도 했었다.

초연의 배우 남명렬이 또 다시 남편으로 무대에 올랐다.

<바다와 양산>에서 아내 역을 했던 이정미와 함께. 

 

연극은...

극도의 침묵과 느림이 주는 낯섬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가.

"sarachi"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터라는데

실제 무대 위에는 싱크대, 변기, 콘크리트 벽돌 같은 것들이 집의 흔적들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다.

삶의 흔적, 혹은 이야기의 편린들인가 싶었는데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무대는 결국 커다란 천으로 그야말로 황량한 빈터가 된다.

현실이었을까?

어쩌면 이 부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떤 곳.

두 부부의 기억이 머무는 그곳에서 부부는 일생을 반추한다.

갓난아기때부터 사춘기 시절 연애이야기,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솔직히 작품은 난해하고 많이 어려웠다.

극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난감해서 어쩔 줄 몰랐다.

때때로 너무나 몽환적이고 고요해서 까무룩 잠이 들 것만 같았다.

(실제로 눈이 감겼던 것도 같다)

sarachi.

결국 모든 게 사라지고 남는 건 빈터다.

그러나 그 비어있는 공간, 텅 빈 폐허 속에는 인간의 모든 이력이 남아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그 이력위에서 또 다른 이력을 시작한다.

그래서 모든 빈터(폐허)는 신생(新生)의 터전이 된다.

혹 그런 의미였을까?

자신의 빈터에서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고...

그러니 반추하라고!

 

남명렬, 이정미 두 배우의 역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내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성실한 두 배우에게 존경심을 담은 감사를 보낸다.

 

나는 아직 멀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