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9. 19. 08:31

<삼국유사 프로젝트 첫번째 - 꿈>

시 : 2012.09.01 ~ 2012.09.16.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 남명렬, 강신일, 장세라, 장재호, 강학수, 최지훈 외11 인

극작 : 김명화 

연출 : 최용훈

제작 : (재)국립극단

 

이 가을에 기대되는 연극 프로젝트가 시작돼 살짝 흥분모드다.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전부 5편이 올려진다는데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이 작품 <꿈>이었다.

게다가 강신일과 남명렬이 충연한단다.

처음에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순간 누군가 내 속을 읽은 게 아닌가 싶어 놀랐었다.

무슨 작품이 됐든 간에 이 두 배우가 무대에 함께 오른 모습을 보게 되길 내가 얼마나 꿈꿨던가.

이건 흥분 모드가 아니라 황홀 모드라고 해줘야 옳다!

(정말 꿈은 이루어지긴 하는구나... 사실 감동도 했다)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은 처음 가봤는데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역 광장 1번 2번 출구 주변을 얼마나 왔다갔다 했는지...

결국은 공연장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웃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걸 보니...) 

빨간색 외관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가까이서보니 오래전에 미군기지로 사용했던 곳이 아닌가 싶다.

공연장 입구에 인공잔디와 피크닉 의자를 설치한 모습도 인상적이다.

가을 햇살 아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참 보기 좋더라.

앞으로 4번은 더 오게 될텐데 일단 공연장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관객석 내부 바닥이 우드라서 발을 조금만 움직여서 소리가 난다.

집중력있게 공연을 관람하려면 이 부분도 해결되야 할 것 같은데...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했던가!

(All history is cmtemporary) 

그리나 모든 역사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History has no meaning)

연극을 보면서 난 이 명제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인간의 역사는 욕망(慾)의 역사이고,

인간은 그 끝없는 욕망을 탐(貪)하여 결국 소유하기 위해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고(苦)의 역사다.

pain이 없으면 gain도 없다는 논리는 또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pain의 통감 정도에 따라 진보되고 진화된다.

때론 어이없게도 끈질긴 뒷걸음으로 퇴보하기도 하고...

"조신지몽"처럼 지금의 정권도 일장춘몽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나를 참 우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작품도 지금의 문제를 입에 담는 것이 너무 싫어 애써 삼국유사를 빌어 말한건지도 모르겠다.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 그리고 이광수와 최남선.

세 가지 욕망을 탐하면서

나는 때로는 허덕였고, 때로는 모호했고, 그리고 때로는 절망했다.

그건 방관의 입장이기도 했고, 관조의 입장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대부분은 무능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섞이고 인물이 서로 섞인다.

기을 쓰고 쫒아가면 길을 잃기가 다반사였다.

무능을 탓할 여력도 없이 종내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보기만 했다.

완전히 해독은 아니었대도 몰이해 역시 아니었으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니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동굴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다.

곤하게 자다가 잠결에 달게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걸 알고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신라로 돌아온다.

원효의 깨달음은 몽(蒙)에서 시작된다.

꿈의 맥락에서 작품을 보면 춘원 이광수의 욕망 역시 몽의 욕망이다.

그의 비루한 인생은 그의 탓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인생해서 조국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의 변절은 과연 변절일까?

결코 깰 수 없는 몽(夢)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 꿈은 너무나 구체적이라 오히려 유일한 현실이 된다.

 

작품 자체가 여러모로 방대하고 심오(?)했지만

배우들의 열연은 이 모든 모호함을 상쇄시킬만큼 엄청나고 대단했다.

특히나 춘원 이광수로 분한 강신일이 또 다른 자아(춘원의 양심)와 만나 논쟁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섬득하고 잔인했다.

그래서 좌절하듯 슬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시간들이 황홀했던 건,

배우들의 열연뿐만 아니라 무대와 음악, 조명이 주는 신묘함도 한 몫을 했다.

관음보살의 춤과 그림 밖으로 튀어나온 탱화.

의상과 원효, 조신과 평묵의 과장된 행동과 코믹한 모습들.

처음엔 분명 당황스러웠지만 곧 인정했다.

어차피 설화의, 야사의 세계는 과장과 웃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호쾌하고 대단히 심각한 작품을 본 셈이다.

이 작품을 보는 때에 우연치 않게 내 손엔 도올 김용옥의 책이 들려 있었다.

<사랑하지 말자>

그 책 속의 한 대목을 남겨보련다.

 

"인생은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 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은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