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9. 26. 08:11

<아버지> 

일시 : 2012.09.07. ~ 2012.09.30.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원작 : 아서 밀러 <세일즈멘의 죽음>

연출 : 김명곤

제작 : (주)아리인터웍스

출연 : 이순재, 전무송 (아버지) / 장은풍, 판유걸 (아들)

        차유경, 전선아, 문영수, 고동업, 계미경,

        우지순, 권재진, 설현석

 

2005년 남산예술극장에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공연됐었다.

그 당시 영화감독으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장진이 연출로 나섰었고, 배우진도 화려했다.

전무송, 전양자, 박상원, 민성현이 아버지, 어머니, 두 아들로 출연했었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겨져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전무송, 전양자의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 <아버지>

지난 4월에 대학로에서 공연됐던 작품이 이번에 재공연됐다.

얼마전 드라마 "각시탈"에도 모습을 비췄던 배우 김명곤이 재공연에서도 연출을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

연극은 지난하고 피로한 이 땅의 아버지라는 삶을 짙은 비극으로 그려낸다.

 

“너희 아버진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지만 훌륭한 가장이다.

 평생토록 방방곡곡 다니면서 회사 물건을 팔아줬는데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폐물 취급을 한단다.

 너희 아버진 폭풍 속에서 항구를 찾고 있는 조각배 같은 분이셔.”

 

극 중 어머니의 대사가 가슴을 친다.

이 땅은...

청년도, 아비도, 그리고 여자도(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들조차도) 모두 살기 힘든 땅이 돼버렸다.

뼈아프게 슬프다.

해체되고 부서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대배우 이순재의 연기는...

감히 뭐라고 운을 때지 못할만큼 엄청난 존개감이었다.

1935년생, 77세라는 연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했다.

열정적이었고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가 꼼꼼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 연극무대에 자신의 소리를 끝자리 관객에게까지 전달시켜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만 생각해서 모든 대사를 버럭버럭 큰소리 치며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간혹 묻혀버리는 대사들도 있긴 했지만

연세와 공연장 환경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단지 보면서 좀 이물감이 느꼈던건,

다른 배우들과의 발란스면에서 연세가 너무 많지 않았나싶다.

(아들이 아니라 마치 손주 같아서...)

출연한 배우들 전부 다 연기를 잘했지만 특히 아들 동욱역의 장은풍의 연기는 돋보였다.

너에겐 배짱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던 다 잘할거라며 비행기를 태우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들은 자신의 인생이 시간당 4천 5백원짜리 싸구려 불량품이라며

자신이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때문이라고 소리친다.

우연히 목격한 아버지의 불륜 현장.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에게서 남아있지 않다.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끝장나버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들의 오열은...

비참했다.

그런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버지.

2억 3천의 보상금이 아들에게, 

남겨진 가족들에게 과연 새 삶을 선사할 수 있을까?

 

연극 속에서 아버지가 죽은 형에게 읽어주는 마종기의 시는...

이 작품 전체를, 이 사회 전체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씁쓸하고 참담한 시다.

이 시대의 모든 며루치떼들의 비명이 귓속에서 펄떡댄다.

생으로 잡혀 온몸을 비틀며 꾸덕꾸덕 말려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눈물겹다.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 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불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채때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채떼를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