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1. 12. 08:40

<양철지붕>

일시 : 2012.11.01. ~ 2012.11.18.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대본 : 고재귀

연출 : 류주연

예술감독 : 고선웅

제작 : (주)연극열전, 경기도립극단

출연 : 이서림, 이애린, 이찬우, 정현호, 조영선, 강성해,

        강상규, 한범희

 

연극열전 네 번째 작품 <양철지붕>

사실 관람이 좀 망설여졌던 작품이긴 한데 고재귀 대본과 류주연 연출의 힘을 믿고 프리뷰를 관람했다.

2011년 경기창작희곡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대상을 수상한 <양철지붕>은 제목 그대로 허름하게 내몰린 우리시대 밑바닥 인생의 깊고 추악한 욕망의 적나라한 고발장이다.

이런 내용의 작품...

보기 참 힘겹고 부담스럽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성-폭력-살인, 성-폭력-살인의 순환고리를

나는 내내 신물나게 그리고 증오와 혐오의 눈으로 바라봤다.

개 잡는 인간들의 핏발서린 눈처럼 나 또한 그들을 핏발 선 눈으로 지켜봤다.

함바집 그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함께 헐떡이는 숱한 눈과 눈은 일제히 아귀의 형상으로 사납게 던져진다.


“폭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본을 쓴 고재귀 작가는 이 질문에서 <양철지붕>을 시작했단다. 

폭력은...

눈과 귀에서 온다!

눈으로 본 폭력의 세상, 귀로 듣은 폭력의 세상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묘하게 대물림되는 더럽고 추한 유산이 되버린 폭력!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자매,

그 아비를 화재로 죽이고 숨어사는 두 자매의 함바집에

하나 둘 모이는 사내들, 사내들, 사내들...

아무렇지 않은 음담패설을 내뱄는 공사판 사내들의 끈적한 눈과 걸판진 입,

두 자매를 도와 의붓아버지를 죽었던 사내의 끈질긴 추격.

그리고 화재현장에서 창문으로 빠져나와 살아난 의붓아비의 아들이 공사판의 새일꾼으로 함바집에 섞여든다.

뜨내기들의 장점은,

모든 걸 숨기면서도 다 아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것.

과거나 미래 따위는 그야말로 개나 물어갈 일이다.  

 

이 이야기를 피비릿내 진동하는 참혹한 복수극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다, 지독히 현실적인 사실주의 작품이라고 해야 옳겠다.

친아비조차도 친딸을 유린하는 세상에 이런 류의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한 이슈가 될 수 있을까?

더 폭력적이고, 더 패륜적인 사건이 지금 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도 아주 버젓이! 게다가 당당하게!

류주연 연출은 이 작품이 최대한 이상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이상한 모습이 현재 모습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들면 작품의 의도는 성공"이라고.

그렇다면 류주연 연출의 눈은 아직 순진하다.

(참 다행이라고 해두자!)

또다른 살인으로 마무리된 평화로운(?) 자매에게,

과연 평범한 일상의 행복은 찾아올까?

그 자매를 기다리고 있는 반복되는 성-폭력-살인의 뫼비우스띠가 내 목까지 바짝 조여온다.

이런 젠장!

정말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뜨거운 태양에 이글이글 달궈진 뜨거운 양철지붕이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다.

아~~~ 참 징글징글하다.

 

* 작품 속 배우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무자비한 작품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연기한 배우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작품 하는 동안은 뱃속은 참 든든하겠다.

  성욕과 식욕.

  폭력과 살인으로 귀결되는 욕망의 묘한 중첩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