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2. 19. 07:54

 

<얼음>

 

일시 : 2016.02.13. ~ 2016.03.20.

장소 : 수현재씨어터

대본, 연출 : 장진

출연 : 이철민, 박호산 (형사1) / 김대령, 김무열 (형사 2)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주)수현재컴퍼니

  

나는 장진의 영화보다 장진의 연극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장진 특유의 유머도 좋지만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발한 모호함을 아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장진 희곡집까지 찾아 읽었을까!)

특히 신작 <얼음>은.

지금까지 장진의 영화와 연극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랫만에 번특이는 장진스러움이 빛을 발하더라.

게다가 박호산과 김무열의 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혁"이라는 인물을 마치 내 눈 앞에 실제하고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지만

1인극 같기도, 2인극 같기도, 때로는 3인극 같기도 한,

아주 기묘하고(?) 특이한 작품.

특히 초반부에 혼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박호산의 힘은 엄청나더라.

객석을 바라보고 앉아서 대사를 하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혁"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실제 마주앉아 대화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타이밍과 시선처리를 보면서

귀신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무열 역시도 제대 후 정말 오랫만에 인생 케릭터를 만난것 같다.

(제대 후 첫복귀작이었던 <킹키부츠>는 여러모로 좀...)

박호산, 김무열 두 배우의 환상적인 케미에 여러 번 감탄했다.

김무열의 혀짧은 김순경과,

박호산의 입 튀어나온 윤계장의 변신도 아주 재미있고 기발했다.

그야말로 장진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 연결과 배우 활용(?)이라 하겠다.

 

"얼음"이라는게 그렇다.

액체 상태의 물이 영하의 온도에서 고체의 상태로 변하는 게 얼음이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 이 "얼음"이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조형사(박호산)에 취조에서도 잠깐 언급되긴 했지만

"혁"이라는 인물은 mental disorder의 하나인 "다중인격" 처럼도 보인다..

"나"이기도 하고 "나"가 이니가도 한.

그래서 작품을 보고 난 후 진짜 범인이 누군지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물인지, 얼음인자 아니면 또 제 3의 무엇인지...

장진의 의도적인 연출이 제대로 관객들에게 적중했다.

성공적인 트릭에 오감이 짜릿하더라.

(생각해보니 이 작품과 유사한 자릿함을 장진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도 느꼈었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50억짜리 대작 영화보다 긴장이 된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본의 아니게 요즘 대학로에 예전 내가 쓴 공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는, 지금 쓸 수 있는 작품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장진감독의 말에 절대, 절대, 절대 찬성하는 바이다!

장진의 똘기는 연극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당분간 그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귀글 쫑긋 세우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꽃의 비밀>도 꼭 챙겨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