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3. 5. 08:13

<은밀한 기쁨>

일시 : 2014.02.07. ~ 2014.03.02.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극본 : 데이빗 해어 (David Hare)

연출 : 김광보

출연 : 추상미 (이사벨), 이명행 (어윈), 우현주 (마리온)

        유연수 (톰), 서정연 (캐서린), 조한나 (론다)

제작 : 맨씨어터

 

추상미의 출산 후 첫복귀작이라는 홍보성 문구는 사실 관람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추상미보다는 이명행과 우현주, 유연수가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이 내내 관람일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명행은 전작에서는 이석준과 연기하더니만 이번엔 추상미다.)

데이빗 해어의 탄탄한 원작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게다가 김광보 연출까지!

이조합은 어찌됐든 무조건 봐줄 필요가 있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그대로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제대로 황홀했다.

안타깝게도 추상미가 제일 약하고 부자연스럽더라.

다른 배우들은 배우라는 생각이 잊게 만들만큼 자연스럽고 치열했는데

이사벨 추상미는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대사톤도 신파조 비슷하면서 좀 작위적이었고 딕션도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떨지는 편이다.

장밀 너무나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어서 오히려 좀 민망했다.

그리고 이명행 배우!

후반부로 갈수록 <푸르른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보여준 어윈은 아주 섬득했고 소름끼쳤고 그리고 아주 정직했다.

감정표현과 딕션, 연기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척.척.척.

<은밀한 기쁨>은 "~~척"에 대한 삼엄하고 경고이자 심판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주위 모든 사람이 착한 이사벨에게 착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것도 매번 일방적으로.

"넌 착하니까..."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사건과 결말은 순전히 이사벨의 무한 이기심과 환상이 만들어낸 참혹함이다.

아주 무책임하고, 아주 잔인하고, 아주 교묘하게....

모든 분란의 중심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젊은 미방인 캐서린이 아니라 착한 둘째딸 이사벨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사벨의 모습에서 나는 결코 구원될 수 없는 "악마"를 봤다.

나쁜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착한 사람은 주변 사람을 욕먹게 한다.

 

극의 후반부 이사벨을 던진 통곡같던 어윈의 외침.

"당신은 지금 악마를 상대하고 있어!"

그런데 어윈은 알고 있었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이사벨 그녀가 사실은 더 큰 악마, 악의 근원이었다는 걸.

강요된 살인자가 되버린 어윈의 절규.

그게 나는 내내 살려달라는 마지막 조난신호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분노와 욕망 그리고 더 깊은 본능적인 추잡함까지도 다 끄집어 발가벗겨버렸던 이사벨.

아무렇지 않은듯, 등을 떠밀려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든 표정들이

나는 참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은밀한 기쁨"이란 단어는

수녀가 죽을 때 신을 만나는 희열을 뜻한단다.

그렇다면 타살처럼 보이는 자살을 실현한 이사벨도

은밀한 기쁨을 지나왔을까?

그리고 마침내 신을 만났을까?

악마를 상대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천사인척하는 악마를 상대하는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쉽다.

 

그녀는 모든 걸 망쳐놨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