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5. 8. 07:58

<푸르른 날에>

일시 : 2014.04.26.~ 2014.06.0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작 : 정경진

각색, 연출 : 고선웅

출연 :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호산, 이명행, 조윤미 외

제작 :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5월이다.

푸르러서 더 서러운 1980년 핏빛 광주의 5월.

그리고 마치 그 5월을 내내 기다리고 있엇다는듯 다시 찾아온 <푸르른 날에>

이상무의 유난스런 동작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초반부터 어쩌자고 객석의 박장대소를 끌어낸다.

계속되는 배우들의 과장된 대사와 액션들.

아마도 사전 정보없이 극장을 찾은 사람은 이 작품을 코믹물로 이해하면서 중반까지 볼 수도 있겠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땐 몰랐었다.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무방비상태로 마음을 풀어버리며 웃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쳐 온몸을 후려치던 김남주의 시 "학살 2"

이후로 이 작품은

뼈아픈 고통이 되어 무심히 앉아있던 관객의 살갗을 저며낸다.

고개를 돌리고 싶을만큼 처참하다.

그러나 감히 티를 낼 수조차 없다.

작품으로 느끼는 고통과 현실로 겪은 사람들이 느꼈을 고통 사이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숨소리를 듣는게 미안해 숨조차 죽였다.

핑크플로이드, 비틀즈, 송창식까지...

음악은 또 왜 이렇게 지랄맞게 아름다운지!

 

너무나 아름다운 배우 이명행.

그는 어쩌자고 오민호라는 역을 네번이나 허락했을까?

왠만한 배우래도 한번이면 나가 떨어져버릴 역을 도대체 왜?

이 작품을 하는 동안은  아무리 강건하고 내공이 쌓인 배우라도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 순 없을텐데...

이쯤되면 오민호를 하겠다며 선듯 나서는 젊은 배우가 과연 있을까도 의심스럽다.

젊은 날의 오민호가 물고문을 당하는 장면은,

극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너무 끔직하고 처절해서 차마 못보겠더라.

그런데 이 장면을 이명행 배우는 어떻게 매공연마다....

(이건 자기학대다! 도대체 왜!)

파괴된 육체와 정신으로 김남주의 시 "진혼가"를 읊는 오민호.

단지 앉아서 보는 것뿐인데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명행 배우를 이 작품때문에 처음 알게 됏지만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오민호 이제 그만 하라고!

이렇게 계속 하다가는 당신이 결국 남아나질 않을 거라고! 

 

사실은... 사실은...

내내 외면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히 괴롭고 아파서

그 처음이 마지막이며 다짐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또 다시 봤다.

보는 내내 왜 그랬을까 스스로 자학할만큼 이번에도 여지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알았다.

외면하면 안 된다는 걸.

아마도 나는 이 작품이 내년 5월에 올라오면

또 다시 자학과 고통 속에서 관람하고 있을거다.

어쩌면... 어쩌면...

이명행 배우에게 왜 또 오민호냐며 무례한 삿대질과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라도,

이 작품은 꼭 봐야겠다.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푸르른 날"이 그렇게 잊혀졌고

우리의 "푸르른 날"이 그렇게 되살아났다고!

다 잊고 살다가도

1년에 한 번 떠올리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기꺼이 그 자학 속에 아프게 빠지겠다.

비록 잠깐뿐일지라도

잊지 않고 그렇게라도 아프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