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09. 6. 30. 06:08


연극 <이(爾)>
작.연출 : 김태웅
2009. 06.09 ~ 07.08.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구 아르코시티극장)
평일 : 8시      토요일 : 3시, 7시            일요일 : 4시
출연 : 김내하/박정환 (연산) , 정원영 (공길), 진경/이화정 (녹수), 이승훈 (장생), 정석용 (홍내관)




<爾> 볼 때면 왜 항상 맘이 아플까?
난폭함을 가장한 갓난쟁이 연산의 슬픔도
연산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녹수도
끝끝내 자신을 버리지 않는 왕을 둔 공길도
그리고 그런 공길을 품는 장생의 마음도
모두 다 서글픔이고 안타깝다.



2006년 극장 "용"에서 봤던 <이>를
다시 만나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영화와 연극이 비슷할 거란 생각은 그러나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정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근복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아르코시티 극장을 들어서면
내벽이 온통 공연장이다.
약간 올려다보는 눈높이가 오히려 시야를 가리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도...



<이>의 첫 장면은
웅장하기도 하고 왠지 흉물스럽기꺼자도 하다.
문 뒤로 서 있는 커다란 탈과
7명의 무희들이 나와 마치 처용무를 생각케 하는 춤을 춘다.
음산하며 비밀스런 기운까지 감도는 곳



연산은 화로 앞에서 어머니 신주인 듯한 종이를 태우며
그 절절한 마음을 통곡한다.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광기의 한 표현이었을까?
아직 선택이 어렵다.
(역시 이 장면은 2006년 이남희 연산을 생각나게 한다. 충격적이었었는데.....)



희락원 광대들의 한판 굿!
살짝 현실을 꼬집는 위트까지.
같은 풍자가 항상 먹힐 수 있는 현실이 참 싫다.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현실이 이런 놀이판이라면
적어도 열심히 박수는 칠 수 있을텐데.....
얼~~~쑤 하면서.



김내하와 더블로 연산을 연기하는 "박정환"
2006년 "공길"이 "연산"으로 돌아오다.
"공길"을 건너 온 박정환의 "연산"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바램.
4대 공길의 행운을 잡은 "정원형"
오만석, 박정환, 김호영에 이은 공길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이 날 배역.
남자이면서 여자인 爾,
슬프게 매력적인, 그리고 모호한 이 사람.



장녹수의 옆을 지키던 또 한 남자(?)
홍내관 정석용,
베토벤 바이러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였던 분.
이 분의 감초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계획된 애드립과 액션인 것 같은데 왜 매번
같은 대사와 몸짓을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거지?
신기해....
(이런 게 내공일까?)



폭군 연산이 궁중광대를 사랑했다는 파격적인 설정!
뭐 요즘 세상엔 이딴 건 파격도 아니긴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 요즘 시대의 인물을 올리면 파격이 될라나?
뭐 워낙에 그 분 자체가 파격이고 별종이라
이딴 것 정도는 파격도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참 다양한 종류의 폭군들이 있구나 싶다.



장생의 "이승훈"
이 분의 장생 연기가 나는 너무나 좋다.
(이 분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다. 광대 3인방 ^^)
그가 연산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붓는 독설들....
"상감인지, 영감인지, 탱감인지...."
"저 대가리로 왕을 해도 될라나 몰라...."
(누군가 뜨끔하겠다.... ^^)
그리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벌이는 한판 놀이판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산송장처럼 살고 있는 내가
마치 연산이 된 것 같아 뜨끔하다.



"저 놈이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난 이 대사에서 "사과하십시오!"가 생각났다.....)
연산을 향해 내뺏는 공길의 말!
왜 나를 버리느냐고 묻는 연산에게
"내가 임금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라 답하는 공길!
처음으로, 다시 자유로,
물같은 자유로 돌아가는 공길의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눈물을 쏟게 된다.



"현실! 그런 게 있었나!"
공길을 끌어앉고 혼자 앉아 있는 연산은 공길의 손에서 빨간 천을 풀어낸다.
(장생의 눈을 가렸던 바로 그 천)
주위는 이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고...
홀로 남아 유언같은 말을 남기는 연산.
"인생 한바탕 꿈!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연기처럼 사라질 불길....
다.... 탔구나....

인생이 정말 한바탕 꿈인 건가?
그 꿈 속에 나 또한  내 놀이판을 잃어버린지 오래.
남는 건,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건가?
다 사라져 재만 남아
마침내 그것도
후~~ 불어 날아가면 그 흔적도 없어질텐데...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나를 향하는 대명사,
너 爾!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