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6. 20. 09:06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쁜 자그레브 골목길.

솔직히 말하면

이 골목들이 너무 예뻐서 길 잃은 사람처럼 몇 시간을 걸어다녔다.

도로정비를 하는지 길이 심하게 파헤쳐져서 귀퉁이 귀퉁이로만 디디고 다녀야 했지만

그 또한 마냥 신이 났다.

여행책자도, 관광지도도 없이 무작정 나선 길.

책에서 봤던 곳이 나올때마다

가물가물한 기억들과 줄다리기 하느라 나름 치열했다.

그 처음이 바로 크라바타(Kravata)라는 넥타이 가게.

남자들이 하는 넥타이가 바로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됐다는데

군인들의 목에 감았던 스카프가 그 시초다.

아빠한테 드릴 선물을 살까 싶어서 오후 늦게 다시 갔더니 문을 닫았어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가봤더니 역시나...)

 

 

그리고 이어지는 트칼치차 거리.

지금은 거리 양쪽으로 카페와 음식점이 쭉 펼쳐져 있지만

과거에 이곳은 화려한 홍등가였단다.

여유롭게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기에 아주 좋은 곳이고

풍경 구경, 사람 구경, 햇살 구경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

그런데 나는 정작 이곳을 그렇게 여러 번 왕복을 햇음에도 불구하고

커피 한 잔 마실 생각을 전혀 못했다.

또 다시 눈이 입을 삼켜버려서...

 

 

트칼치차 거리 끝에는 양산을 들고 있는 여자 동상이 있는데

크로아티아 최초의 여성 작가 마리아 유리츠 자고르카의 동상이다.

개인적으론 동상보다 동상 뒤에 있는 건물 벽에 눈길이 갔다.

처음엔 해시계라고 생각했는데

숫자가 씌여진게 시간개념이 아닌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하지만 결론은 모르겟다는거!  

물어볼 사람도 마땅히 없었지만

대답을 듣는들 온전히 이해할것 같지도 않아 소소한 미스테리로 남겨두기로 했다.

트칼치차 거리에서 돌라치 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또 다른 동상.

세 명의 남자가 엉켜있는 모습인데 한 사람은 기타를 치고 있다.

"거리의 악사"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얼굴 표정과 묶여 있는 모습이 참혹하다.

숙소에 돌아와서 동상에 대해 찾아봤더니

구유고슬라비아 시절 자유롭지 못했던 크로아티아인을 상징하는 동상이었다.

어쩐지...

사진을 다시 보니 꺾여있는 사내들의 몸이 참 절절하고 가혹하다.

동상이 세워진 바로 이 곳이 돌라치 시장의 꽃파는 광장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매일 아침마다 꽃이 바쳐지는 헌화(獻花)의 장소.

혹 그런 의미는 아닐까...

 

 

늦은 오후 텅 빈 돌라치 시장과 시장의 상징인 동상.

날은 점점 흐려져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만 같았다.

회색 하늘을 보면서 6시간 내내 쉬지 않고 걸었던 산책을 이젠 정리해야 겠구나 생각했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후후둑 비가 쏟아졌다.

어쩜 이렇게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절묘한 타이밍을 난 또 혼자서 마냥 좋아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도 나쁘지 않을걸 예감했다.

단지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아쉬움뿐.

내일은 첫차를 타고 요정의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되지 말고 그냥 "길"이 되자 다짐했다.

 

오래 걸어 노곤한 하루였다.

하지만 물과 젤라토 하나로도 충분히 배부른 하루였다.

그날 하루 나는 온통 "길"이었고 "걸음'이었다.

덕분에 아주 오랫만에 달고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잠 속에서 나는 내내 건강했다.

 

Journey is Step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