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4. 13. 22:08
  <1만 시간 동안의 남미1,2,3> - 박민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봄이 되니까 자꾸 바람나려고 하지 않으세요?
이러다간 아무래도 옆구리에 날개라도 돋지 않을까 싶으신 분, 일상을 버리고 훌쩍 내가 모르는 어떤 곳으로 떠나고 싶으신 분, 여기 아닌 다른 곳이라면 어디라도 환영인 분, 급기야 누가 나를 유괴(이 나이에 꿈도 야무지게....)라도 해서 딴 곳에 데려다 준다면....을 꿈꾸고 계신 분...
봄의 신기루에 온 몸이 나른하신 분들 많으시죠?
떠나면 모든 게 다 괜찮을 것 같은 마음...
오늘은 그 마음을 한번 따라가보려구요.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여행서는,
지친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물론 어설픈 여행서는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시키기도 하죠(아시죠? “사진과 실물은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서를 보면 전 항상 이 문구가 떠오르거든요 ^^)

쌈바와 화려한 축제의 유토피아, 남미!
그 환상의 나라들을 말 그대로 찌질하고 궁상맞게 여행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운이 없을 수 있을까 싶게 가는 곳마다 속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차를 놓치고, 어찌어찌하여 싸구려 골방같은 숙소로만 그것도 겨우 전전하죠.
책을 쓴 작가 박민우.
그가 14달 동안 남미의 구석구석을 여행이 아니라 방랑하면서 겪은 살아있는 날 것들을 그대로 엮은 책입니다.
찌질한 자의 생동감이라니...
그런데 그게 아주 신선하고 그리고 진심으로 부럽기까지 하다는 겁니다.
코에 바람을 넣는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드네요.
뭐 얼마나 대단한 여행서라고 세 권씩이나?????
남미 한 번 여행한 걸로 본전 한번 제대로 뽑으시네~~
처음엔 내가 못 가 본(가 본 곳도 변변찮지만...) 나라를 여행한 운 좋은 사람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빈정상함과 부러움의 시선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시기심은 점점 사라지고 혼자 깔깔대며 박장대소하게 되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신선합니다.
remarkable!
딱 그래요.
어느 틈에 속편을 열렬히 기대하게까지 만들었으니 이 책, 물건임엔 틀림없습니다.
카피라이터, 기자, 시나리오 작가, 앵커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박민우는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해 보입니다(그러나 이 사람 “완소남” 혹은 “엄친아”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엔 확실히 80% 정도 부족하죠... 약간(?)의 하자가....^^)
이 사람, 여행의 시작부터 왜 이럴까요?
체격만큼이나 부실하다 못해 덜렁대는 성격덕분에 여권을 고이 집에 두고 출발합니다.
결국 호된 신고식이 기다리게 되죠.
그런 그가 감히 말합니다.
“아무리 좋고 좋아도 떠남의 설렘만 못하다“.
이런 상황에선 설득력이 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변종 돌연변이라 할지라도 나그네의 유전자가 발현되기를 저 역시도 간절히 갈망하고 있는데...
가끔 생각합니다.
여행을 소망하면서 쉽게 이루지 못하는 건,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금전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모든 걸 뒤로 하고 떠나는 이 남자의 맘 속 자유가 그래서 전 참 좋습니다(그래도 여권까지 뒤로 하고 떠나는 건 아무래도 좀..... ^^;;)
하지만 뭐 좀 어긋나면 어때요?
처음부터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보단 그래도 훨씬 나은 선택 아닌가요?

낮선 곳의 화려한 눈요깃거리들을 소개한다거나, 맛있고 고급스런 혹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음식을 소개한다거나 멋진 숙소를 구경하게 될 거란 기대는 이 책에선 버리세요.
대신 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까만 피부에 초롱한 눈을 가진 맑은 아이같은 사람, 푸짐한 살집에 더 푸짐한 인정을 가진 사람, 그리고 기꺼이 찌질한 여행자를 구원(?)해주는 그때그때 상황에 또 적절하게 등장해주는 멋진 흑기사들을 말이죠.
괜히 저 역시도 함께 손잡고 싶어지는 사람들...
이 사람도 고백하고 있네요.
“여행 중 최고는 사람을 향해 가는 여행이다. 거대한 산맥보다 더 장엄하고, 한낮에 퍼붓는 소나기보다 더 예측하기 힘들다”라고요...
Timing!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에도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멈칫거리면 이미 늦는다고, 생각하고 주저하는 시간은 짧지만, 늦음으로 인한 후회는 너무 길다고...
이 여행서는 재미와 함께 순간순간 이 남자의 단상들이 나올 때면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섬뜩해집니다. 그러나 그 섬뜩함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3권의 책을 전부 읽고 나면,
이 사람 왠지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왠지 사람을 낯설게 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핸드 드립 커피”
같은 커피를 가지고도 바리스타에 따라, 물의 온도, 핸드 드립의 높이, 그리고 드립 방식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 되는 커피.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작가가 꼭 이 핸드 드립 커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쩐지 나를 만나면 내게 적절한 향과 맛으로 이야기할 것 같은 사람.
이런 느낌을 주는 책이라면,
이 책으로의 여행도 꽤 괜찮은 여행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자신감이라고 하네요. 헛된 자신감으로 돌아오는 부작용보다는, 그 자신감에서 발산되는 무한한 용기와 추진력을 믿으라고.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 자신감이 과장되었을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사람을 훨씬 다부지게 만든다네요.
여행의 매력은... 그래요.
모르는 무언가에, 모르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물들어가면서 결국 “함께”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거, 그 약속할 수 없는 “함께”가 때로는 그 무엇보다도 더 견고하고 든든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거.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또 다시 길 위에서 짐을 꾸리게 되나봅니다.
거침없이 다가가기 위해서요.
길을 모르면 어떻고, 길을 잃으면 어떻겠습니까?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잃었으면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찾아가면 될테니까요.
늦어지면, 까짓것 내가 너무 치열하게 헤맸다고 고백해버리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사실,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모든 순간이 “여행”의 시작입니다.
어때요? 이젠 떠날 준비가 다 되셨나요?
그렇다면 건승하세요.
그리고 돌아와 제게 이야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든 순간  “함께”였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11. 06:25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 석 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오늘은 시 한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이 시를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

함석헌 선생님은 1901년 평안도에서 태어나서 1982년 타계하실 때까지 시인으로, 종교인으로, 사회활동가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일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의 삶이라는 거...

어쩌면 우리는 전혀 알 수 없기에 유토피아적으로 느끼는 부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

어떠세요?

처음 읽었을 때 제겐 파동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잔잔한 새벽, 고요한 수면 위에 던져지는 아주 작은 돌맹이의 파동....

맘에서 시작되서 머리가 쨍~~해질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리고 슬펐고, 그리고 사랑스럽고 희망찼습니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더불어 할 수 밖에 없었
구요...

저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꿈꾸게 했던 귀한 시여서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

 

보너스 팁 하나!

혹 대학로를 가시게 되면 보물 찾기 한 번 해 보시겠어요?

KFC 아래쪽 보도를 걷다보면 공연 포스터와 노점판매대 사이에서 이 시를 적은 비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만약 대학로에서 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하셨다면...

이 시가 적힌 비를 보시고 상대방에게 한번 웃어주세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런 미소가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사람을 가진 당신이 바로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대학로에 있는 함석헌 시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31. 06:30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지난주에 이상하게도 제가 읽은 책들 속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기억에 무려 3번씩이나...)

참 신기하죠? (아마도 제게 또 말을 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맨 처음 느꼈던 건, 올더스 헉슬리는 천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나오는 모든 미래소설과, 미래영화는 모두 이 책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이 책이요... 1932년 발표된 소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대단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게 미스터리한 미래적(?)인 글이고 그리고 그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글입니다.(적어도 저에겐)

이런 글을 1930년대 쓸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과히 평범하고 순탄하지 않게 살았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사망일조차도 존. F. 케너디의 사망일과 같은 날이라 그의 명성에 비해 사망의 기사는 묻혀 버렸다고 하네요.

이 사람은 영화, 그것도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꿈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 맨>, <에일리언>, <AI>, 심지어 <X맨>을 비롯한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온갖 “맨”들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 20여년 동안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따내기 위해 그렇게 고분분투했다고 하는데 드디어 판권을 따내 차기작으로 지금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을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영화인에게도 꿈, 그 자체의 작품이죠.

사실 저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답니다.

최고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아주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너무 앞서가는 내용이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가 몇 년이 지난 뒤 마니아들의 성원에 의해 재편집의 과정을 거쳐 재개봉하는 이변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로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헤리슨 포드”가 주연(무척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이었던 인간과 인조인간과의 사투, 그리고 사랑...(절대로 절대로 공상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과히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이 아직까지 제 기억에 살아있습니다.

전 원편과 재개봉된 두 편을 모두 봤습니다.

음.... 좋았습니다. 신기했고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죠.


올더스 헉슬리...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헉슬리는 해박한 지식(제가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인간의 모습이죠^^)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지적인 문체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현실의 다양한 가치가 혼돈 속에서 인간 존재 자체를 완전 분해, 해체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작품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천재 확실하죠?)

모든 세계가 철저히 계획되고, 삶 자체가 공장에서 찍어내듯 공산품화 되어 규격화 되어 있다면...

그 세계에서 정해진 계급 하에 배양되듯 인간이 탄생되고 길러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자신의 위치인 냥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면...


여기,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시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정신적인 고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고 원하는 모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이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까지 다섯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관 안에서 자기 계급에 맞게 배양되어 태어납니다.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교육받았고 실제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하여 학습된 그 내용 그대로요.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완벽한 유토피아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란 상스러운 단어이며 사랑이란 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행위인 이 멋진 신세계.

이곳에 세 명의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알파계급으로 태어났지만 태아과정 중 하층계급의 실수로 열등한 체형이 된 '버나드'.

알파계급에서 유난히 지적능력이 뛰어나게 된 '엘름홀츠'.

그리고 야만인 세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 곳으로 온 '존'.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에 그래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세 사람.

결국 셋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에게 맞는 지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존은 자신이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라......

그러나 그런 자유마저도 허용 받지 못한 존이 최후에 선택한 자유는 자살이라는 극단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였기에...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찾길 원했던 유일한 “인간” 존의 마지막 자유의지...

불행해질 권리마저도 거부당한 존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몸짓이 과연 그의 영혼에 평온한 자유를 안겨 줄 수 있었을까요?

그의 죽음이 무의미했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현실적인 유토피아든, 생각의 유토피아든 말이죠.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 아니 그게 아니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겠다는  그런 극단적인 이기주의 유토피아일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꿈꾸게 됩니다.

비록 유토피아가 환상과 거짓으로 버무려진 한 순간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할지라도요.

그게 다름 아닌 내가 꿈꾸는 것이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 절실하며 현실적일 수 있는 거죠.


이 소설은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낸 1908년을 기원 1년으로 하여 AF 632년 즉 AD 254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포드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마치 종말론에 복종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도 딱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윗부분을 뺀 T를 형상화하고 예배시간엔 “곧 오실 그분의 강림을 위하여” 성배를 들고, “우리가 죽으면 보다 큰 삶이 시작된다”는 영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또한 현재의 사이비 종교의 그것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1932년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거...

물론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한 단면을 예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부는 이미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그대로 적나라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열 가지 우울병을 치료한다는 소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약에 취해 쾌락으로 도망치는 현재의 모습과도 판막이죠.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은 놀라운 속도로 인간 복제 기술을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질 좋은 난자가 거액에 매매되고 복제인간 탄생도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실제로 어딘가에서 복제된 인간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그 실험이 계속 진화(?)하게 되면 언젠가 알파계급이 독점적 위치를 누리기 위해 수백만명의 일란성 쌍생아로 이루어진 보카노프스키 계급을 만들어 낼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런 세계가 만약 당신의 현실이라면....

당신은 뭐라고 이름 붙이고 싶으신가요?

혹시.... <멋진 신세계>...

우리는 이런 세계를 정말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 아니라면....

조심하세요.

돌연변이를 제거하기 위해 당신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