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2. 25. 06:42
 <헝그리 플래닛> - 피터 멘젤 & 페이스 달뤼시오


 헝그리 플래닛



오늘은 좀 특이하고 대단한 책을 한권 소개해 보려구요.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땐 먹거리를 소재로 한 여행집의 일종인가 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들도 그렇고...

궁금할 때가 있쟎아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뭘 먹고 살까?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런 걸 먹을까?

분명 이 책도 처음 출발은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진작가인 남편과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인 작가 아내(그래서인지 이 책은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짙습니다)는 전 세계 24개국을 돌면서 총 30가족을 만나 가족 구성원들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과 그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치의 먹거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가정을 보면서 어쩌면 첫 페이이지에선 저처럼 군침을 흘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페이지씩을 넘기다 보면 엄청난 먹거리 가치의 차이, 그리고 음식의 대량 유통의 폭력과 그에 수반되는 위험과 장애 요소를, 그리고 광범위한 인류와 환경의 파괴 등 먹는다는 의미 하나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어쩌면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공포나 재앙처럼 다가올지도 모르겠네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에서 시작된 “음식”은 <부족>의 단계를 이미 오래 전에 지나쳐 이제는 <과잉>을 너머 <폭발>의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치로 여겨질 만큼 <결핍>과 <기아>로 허덕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또한 분명 있습니다.

누군가는 당뇨, 비만 등 과잉 섭취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받고, 누군가는 물 한방울의 허기조차도 채우지 못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엄청난 재앙의 양분화가 지금 세계에선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죠.

불을 사용하면서 인간이 진화가 됐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 때지만, 생식 문화에서 화식문화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식생활은 발전함과 동시에 또한 엄청난 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냉장고라는 꿈의 기계 발명으로 음식 보관에 대한 형태가 바뀌면서 저장에 대한 욕구가 인류의 또 다른 소유욕을 부추기게 됐겠죠.

지금은 정크 푸드라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페스트 푸드가 기여한 식생활 개선(?)의 효과도 여기에 지대한 몫을 담당합니다. 여기에 대형 마켓 체인점에 의해 공급되는 가공 식품들의 활약을 무시하면 아마도 그들이 많이 서운해 하겠죠?

(써 놓고 보니 정말 전쟁터 아닙니까?)


호주, 영국, 미국의 일주일치 먹거리 사진과 부탄, 차드, 과테말라의 일주일치 먹거리의 사진은 과히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누군가의 일주일치 먹거리는 다른 누군가의 1년분 먹거리에 해당한다는 사실.

거기에 가족 구성원의 비율까지 계산한다면 그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누군가 하루 6캔의 코카콜라를 비울 때, 누군가는 아침마다 몇 km를 걸어 겨우 한 동이의 물을 그야말로 구해옵니다. 10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뜨거운 모랫길을 물동이의 그늘에 의지해 돌아오겠죠.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 그 아이는 돌아오는 내내 물 한번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에 이고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물은 낟알의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곡물을 죽으로 끓여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한 국자씩 먹어야 하는 그 물이니까요.


이 책에선 현대인의 식생활에 대한 문제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최소한의 영양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인들이 들여온 라면을 생으로 씹어 먹는 데서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습니다.(그것도 외부세계와 거의 단절됐다고 생각된 곳에서요....)

왜 이 같은 가공식품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는지, 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우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한 폐해의 정도까지 이 책은 읽어갈수록 많은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일수록 가공식품과 탄산음료, 육류의 소비가 엄청나게 많고 그런 곳은 여지없이 비만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다이어트 비용 또한 엄청난 경제 지출을 차지하고 있고요.

실제로 이 책에 참가한 선진국 가족은 본인들의 일주일치 먹거리 사진들을 직접 보고 식생활을 돌아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이 현재의 자신들의 식생활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남긴 음식을 포장해 가는 방법이요?

물론 다행이고 좋은 방법이죠. 그러나 그걸로 정말 끝이 날까요?

그 음식을 담았던 일회용 포장 용기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하나하나를 따져 가다보면  정말 이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인류가 끝이 나야 끝나는 이야기겠죠.


저자는 한국 독자를 위해 작성한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식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이 빠진 나쁜 식생활의 늪으로 빠지지 않았고, 전통 한식을 고수해 올 수 있어서 여러분은 행운”이라고요.

어쩌면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행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 가요!!!

우리나라도 과잉 섭취로 인한 비만, 당뇨 인구가 해마다 엄청난 숫자로 증가하고 있고, 세계 온갖 페스트 푸드들이 그들의 정크 푸드들을 앞다퉈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그야말로 총공격을 다 있습니다.

음식물에 의해 야기된 3차 대전이죠.

이런 음식의 폭격 앞에 초토화 되지 않을 자신,

정말 우리는 있는 걸까요?


* 참고로 이 책에는 모두 6편의 에세이가 중간중간 들어 있습니다.

저자들 외의 사람들이 쓴 글이죠.

이 글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들을 주는 글들이니까요.

“광우병 소”에 대한 파문으로 저 또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어쩔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식습관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게 됐구요.

고백하자면, 저는 먹는 즐거움보다는 담는 즐거움에 번번이 패배하거든요.

그래서 늘 잔반을 너무 많이 남겼습니다.

지금은 많이 고치고 있고 그리고 일단 담은 음식은 다 먹으려고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 식당에서 누군가 담는 즐거움에 이성을 잃고 있다면 여러분들께서 부디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어주시길....(가령 집게를 제 손에서 살짝 제거해 주시던지, 아니면 그 사람의 귀에다 “그만!” 이라고 단호한 일침을 가해주시던지....)

좀 창피한 고백이지만 정말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23. 05:51
 <압구정 다이어리> - 정수현


 압구정 다이어리



“한국형 칙릿 소설”이란 광고 타이틀을 한때 달고 있던 소설입니다.

한국형 칙릿이라...

대략 난감한 표현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어쩐지 모든 칙릿 소설은 “섹스 앤 더 시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야말로 몹쓸놈의 선입견이죠.)

뭐 배경이 한국이고, 주인공도 한국인이고, 그리고 주된 등장인물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3각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니 한국적이긴 합니다, 게다가 방향치와 길치를 위해 압구정과 청담동 일대의 유흥거리를 첫 장에 상세한 지도까지 그려가면서 아주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아마도 이 책을 읽고 그 곳에 찾아간 사람 있진 않을까 싶습니다....)

설마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까 걱정하는 한국적인 노파심(?)의 노출(?)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먼저, 작가 정수현...

시트콤으로는 유일무이하게 시즌5까지 만들어질 만큼 엄청나게 성공한 “논스톱”의 작가였다네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책 앞면에 있는 작가의 얼굴 보면서 혼자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네요. 물론 얼굴로 글을 쓰는 게 아님을 알지만 생김이 너무 참하고 그야말로 수줍게 보여 “어라! 정말 이 사람이 쓴 게 맞아?”하는 의문이...

방송작가 경험의 영향이겠지만 일단 대사나 상황은 통통 튑니다.

그런데 이 “튐”이 일상적인 우리네의 방향과는 좀 달라 (사실 저와는 너무 많이 달라)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동네가 정말 이래?”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4차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입니다.

이거, 은근히 SF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제겐 다가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압구정 단어들과 클럽 용어들, 그리고 수많은 명품 브랜드 이름들에 집 한 채의 가격을 호가하는 자동차들...

연예인들이 지나가도 우루루 몰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촌스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도 없고, 헬스장을 가기 위해 뷰티샾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제이로(제니퍼 로페즈)가 디지인한 30만원짜리 운동복을 걸치고 우아하게 셋팅한 머리를 날리며 런닝머쉰 위를 “S라인”으로 밟아주시는 그녀들이 사는 곳.


그녀들의 이름은,

지현, 유라, 지안...

어쩐지 그녀들의 “넬라판타지아”를 우리가 엿보고 있다는 도발적인 쾌감도 살짝 듭니다.

압구정의 문화(?)라면 이런 “엿보기의 교차와 연속”도 포함되지 않을까요?

오래전에(정말 오래전이네요...) “오렌지족”이니, “야타족”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을 때 제게 압구정이라는 지명은 넓은 의미의 관음증처럼 느껴졌더랬습니다.

언제부터 압구정동이 신상의 물결에 휩쓸려 부나비처럼 날아드는 된장녀들의 양성소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지명의 신세도 좀 안타깝긴 하네요.

그게 다 “들여다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좀 뜨끔한 구석도 있습니다.

압구정을 바라보던 시선은 급기야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럭셔리 고립지역까지 탄생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릇된 “살롱 문화”는 우리나라에 수많은 부티끄를 탄생시키고 그리고 고부가가치(?) 사업인 력서리 명품 거리를 탄생시키죠.

그 거리의 사람들은 명확히 분류됩니다.

예쁜 여자는 텐프로거나 연예인이고, 괜찮은 남자는 호스트거나 정말 청담동 도련님이거나....

이 분류 안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어찌 감히 “평범함”이 명함을 내밀 수 있겠습니까?

명품 자켓 안에 받쳐 입은 지오다노 셔츠에 기겁을 하면서 “재, 짝퉁이야!”를 외치며 배신감에 치를 떠는 사람들.

외제차들이 쭉 주차되어 있는 곳에 국산 승용차를 몰고 오는 남자를 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전력질주로 도망가는 여자들.

이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귀염성마저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 말종”에 “네가지(?)가 없다 못해 개념도 없는 인간들”이 이 책엔 풍성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읽을수록 점점 불쾌하고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죠.

만약 그렇다면 그 부분까지도 다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꼈던 건,

“시선의 횡포” 였습니다.

소설이라 왜곡된 부분도, 사실과 다른 부분들도 물론 많겠지만 결국 비난이나 불쾌감의 시작도 “시선”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치나 허영으로 대표되는 된장녀를 비난하는 시선 속엔 그녀들의 풍요와 태생에 대한 부러움 담긴 시선이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이나 될까요?

혹은 정당한 노력에 대한 보상을 싸잡에 비난하진 않았는지...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했던가요?

그러나 그 세 치 혀를 움직이게 만든 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시작이었을 테니 원죄를 물어도 눈에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 갈수록,

이 세계를 비난만 하고 있는 저를 비난하게 되더군요.

어쩐지 몰래 누군가를 살펴보는 제 모습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된통 들킨 기분입니다.

영 뒷통수가 찜찜하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16. 05:45
<미운 오리새끼의 출근> - 메트 노가드




제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 작년 12월 부산행 KTX 안에서였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브라질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마침 천정에 있는 모니터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나오더라구요.

졸음에 밀려 가물가물하던 눈이 책 이야기라고 하니까 번쩍 뜨였습니다.

책표지에 있는 그림...

가물가물한 정신에도 그게 꼭 제 모습 같았습니다.

커피 한잔조차도 여유 있게 마실 시간이 없어 김김 펄펄 나는 뜨거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출근하는 모습이네요.

반대쪽 손에 들려있는 낡은 가방 안에는 지난 밤 집에까지 끌고 온 일거리들이 아마도 다 정리되지 못한 체 급하게 구겨져 들어 있을테고,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옆구리엔 그날의 신문이 끼워져 있습니다.

옷은 또 어떻구요.

껑충하니 올라간 바지단에 구김 가득한 양복, 별로 남아 있지도 않은 얇은 구두축은 그야말로 온갖 스트레스에 눌리고 눌려 이제 곧 압사하기 일보직전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어깨는 축 늘어지고, 목은 뻐근해서 심지어 똑바로 들고 있지도 못할 정도고, 입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네요.

많이 봤던 모습 아닌가요?

어떤 날은 이게 내 모습일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내 옆의 동료의 모습일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모습일 때도 있습니다.

어쩐지 암담하고 기운이 빠지시나요?

너무 너무 낙담하진 마세요.

미운 오리새끼는 결국 백조로 변하고 말테니까요... ^^

동화 속 결말처럼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하늘을 향한 찬란한 백조의 날개짓,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다름으로 인해 자신을 따돌렸던 오리의 무리를 자신의 날개 아래에 두고 그토록 동경했던 우아한 백조의 무리 속으로 이제 구겨진 양복을 벗어버릴 때가 온 겁니다.

한동안 저 백조, 일 좀 크게 내게 되지 않을까요? ^^

이 세계도, 그리고 저 세계도 모두 알고 있는 특별한 백조니까 말입니다.


이 책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하지만 정말 잘 알고 있는 게 확실할까요????) 안데르센의 동화 6편이 실려 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쇠똥구리”, “식료품점의 니세”, “전나무”, “나이팅게일”...(솔직히 고백컨데 세 번째, 네 번째 동화는 이번에 첨 알았습니다.....)

도입부부터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를 드러내놓고 시작합니다. 이 동화에선 이런 걸 이야기 할 테니까 당신들은 이점에 중점을 두고 읽어라.

어쩐지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살짝 무시한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시작도 나름데로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야기 중간중간 작가 안데르센의 실제 이야기들도 Behind Story로 나옵니다.

가만 보니, 미운 오리새끼는 바로 안데르센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네요.

(위대한 작가가 나랑 똑같은 종류의 사람이었다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화의 내용들을 새롭게 해석한 “우리들의 직장생활 이야기” 부분은 참 흥미롭습니다.

가령,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우리가 흔히 기억하고 있는 정직성에 대한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목표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게 합니다.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드시죠?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을 낯설게 그리고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죠.

우리가 아는 “나르시시즘”이라면 지나친 자기애로 결국은 파멸의 길로 향하게 되는 걸 말하는데, 이 책에선 현대인에겐 꼭 필요한 특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과시의 유용성”이 “생산적인 나르시시스트”를 만든다는 뜻이죠.

이 사람들이 품어내는 무한한 에너지와 상상력...

그래도 일단은 지나치면 안 된다는 전제는 무시할 순 없겠지만요.


10년의 시간을 한 직장에서 터를 닦다보니 솔직히 내성이랄까 약간의 면역력 같은 게 생기는 걸 느낍니다.

내 일에 대한 편안함, 익숙함이 커졌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인데, 그만큼 치열함이나 참신함 같은 부분들은 많이 느슨해 진 것도 사실입니다.

혹시 내가 포장 잘 된 인간이 되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질문...

내가 내 안의 내용물을 홀랑 잃어버려 놓고서 열심히 겉모습만을 포장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도 슬럼프가 있나요?”

대답은...

“Yes!~~~~"

제겐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전부 슬럼프고 장애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우리 모두 위기에 처해 있거나 위기를 벗어나는 중이거나 아니면 위기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슬럼프...

많지 않다면야 좋겠지만 내 앞에 있다면 내가 치우던가 아니면 내가 그 위를 넘는 수밖에는 결국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

그런데 이놈들이 결국은 숨어있는 내 백조의 본능을 깨워주는 기특한 놈들일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하루도 저는 “파이팅!”이라고 외칠 수 밖에요...
그리고 더불어,
세상의 모든 미운 오리새끼들이여~~~
그대들도 항상 "파이팅!!!"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9. 06:05
 

<맛> - 로알드 달


 맛

오늘은 어디 저한테 맛 좀 한번 보실래요?

ㅋㅋ 오늘 소개할 책 이야깁니다(설마 혹시 긴장하신 건 아니시죠?)

로알드 달...

이름이 익숙치 않은 분들이 많겠지만 <찰리의 초콜릿 공장>, <마틸다>, <그렘린>의 작가라고 하면 다들 무릎을 칠 것 같습니다.

그 기발한 상상력과 살벌하다 못해 발랄한 반전의 묘미라니...

이 사람, 천부적인 이야기꾼에 엄청난 내기꾼이라고 하네요.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엄청난 내기를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내기에서 번번이 독자가 지게 된다고 하니 그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시겠죠?

1990년에 작가가 타계했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죠.

로알드 달은 자신의 전문분야인 이야기를 들고 급기야 하느님과 내기를 하러 이 세상을 떠났다고...

어쩐지 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아직도 그곳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혹시 알아요?

조니 뎁이 주연한 <찰리의 초콜릿 공장>을 보고 그의 팬이 되어 버렸을지...


<맛>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주는 풍미가 아주 다양합니다.

눈과 입이 즐거운 디저트가 쭉 나열되어 있는 느낌이랄까요?

왜, 디저트 앞에서 고민하게 되쟎아요.

go냐... stop이냐...

이 책도 그런 느낌입니다.

어쩐지 좀 이상하고 수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죠. 그냥 단순히 재미있다고 하면서 가볍게 읽어버리기엔 좀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며 반전의 반전을 풀어야 하는 내용들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요.

일단, 첫 느낌은...

그냥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다는 겁니다.

짧은 블랙 코메디를 보고 있는 느낌.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에 대한 비웃음을 아주 전면적으로 그것도 유쾌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블랙 코메디가 불편한 건 어쩐지 내 이야기를 빗대서 두어번 비꼰것 같은 “뜨끔함” 같은 거쟎아요, 그런데 이 책에선 그 뜨끔함조차도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벌한(?) 결말을 목격해도 웃게 되는 거죠.


어리숙한 시골사람들의 집에 방치되어 있는 골동품.

그들에게 그 골동품은 별 가치도 없는 그저 낡고 오래된 물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머리 좋은 골동품 가구상은 목사로 변장해서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흑 속의 진주를 찾아내 이미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죠.

혹시나 주민들의 의심을 살까봐 그의 커다란 스테이지 왜건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놓고 천천히 마을을 걸어 다닙니다.

번쩍! 이 골동품상의 눈에 아주 엄청난 물건(옷장)이 포착되네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그저 자신의 오래된 테이블에 어울릴만한 다리라며 촌부들과 거래 아닌 거래를 시작합니다.

“뭐 저는 그저 다리만 필요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저에게도 별로....”

드디어 거래를 성사시킨 골동품상은 벌떡거리는 가슴을 안고 경매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을 상상을 하며 물건을 실을 스테이지 왜건을 가지러 서둘러 문을 나섭니다.

그 사이, 촌부들은 이야기를 하죠.

“저 목사에게 필요한 건 다리뿐이라고 했지? 맘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빨리 도끼로 이 옷장을 쪼개 놓자고....”

골동품상 입장에서 본다면 식겁할 일이 지금 자신이 나온 문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죠.


이런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설령 결말이 훤히 눈에 보일지라도 끝가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죠.

그리고 이 부분이 작가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이기도 하구요.

살인의 도구를 찾는 경찰들에게 버젓이 그 살인도구로 식사를 만들어 증거인멸을 하는 아내, 그리고 최고의 화가가 무명시절 그린 문신을 가진 사람의 피부가 어느날 그림시장에 등장하기도 하고, 남편 몰래 8년간 바람을 피운 아내가 애인에게서 받은 이별선물(모피코트)이 남편의 애인 등에 걸쳐지는 상황...

뭐 따지고 보면 인간의 달갑지 않는 단면들에 대한 고발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파라독스!!

아마도 로알드 달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이 갖는 자기 모순에 대한 경고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지 “맛”만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네요.

달콤한 초콜릿이 공포의 도가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경고치곤 꽤 임펙트 강한 방법 아닌가요?


* 꽤나 맛갈나는 번역에 슬쩍 앞표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역시나 제가 좋아하는 세 명의 번역가 중 한 명이네요.

  "정영목"

  일단 이분의 번역한 작품이라면 저는  80% 정도는 인정하고 들어갑니다.

  이 분을 번역하면 이야기가 다시 새로워지는 느낌이거든요.

  저에겐 주제 사라마구와 거의 동일어로 생각되는 번역가이기도 하구요.

  주제 사라마구의 심각함 작품 외에도 번역의 놀라움을 음미하게 만드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번역도 작품이예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3. 22:18
 <막스 티볼리의 고백> - 앤드루 손 그리어


막스 티볼리의 고백 


오늘은 참 특별하고 슬픈 사람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시간 역행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혹 있으신가요?

70세 노인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갓난 아기의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시간의 흐름 그대로인 사람... 35살 지점에서만 자신의 몸과 생각이 유일하게 만나지는 그런 사람이요...

일생동안 “앨리스”란 여자와 세 번의 사랑에 빠졌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아들 “새미”를 키우는 그녀의 집에 양자로 입양돼 살아야만 했던 사람...


주인공 “막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신의 저주를 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조금씩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고.


이 이야기는,

1930년 4월 어느 날, 꼭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이는 막스가 쓰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때는 총을 들고 가스 마스크를 쓴 스물두 살의 멋진 청년으로 보였다. 그전에는 지진이란 재앙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나선 삼십대 남자였다. 그리고 그전에는 열심히 일한 사십대, 세상을 두려워한 오십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늙어갔다.” ......

그는 이 편지를 통해 남들과 다른 이유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날들과 평생 동안 계속됐던 앨리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 막스가 앨리스에게 반한 건 그의 나이 17살, 앨리스가 14살 때였습니다.

앨리스에게 “아저씨”란 호칭으로 불려야 했던 막스는 그녀의 어머니와의 충동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딸마저 유혹하려고 하는 파렴치한이라 생각한 앨리스의 어머니는 결국 이사를 하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스치듯 헤어지죠.

시간이 흘러 막스의 몸과 마음이 딱 일치하는 35살 무렵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알았던 아저씨라는 걸 모르는 앨리스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그때 막스는 앨리스 앞에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행복한 시간도 역시 흘러가기에 막스는 앨리스보다 점점 더 어려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피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는 정말 뭐든 했을 겁니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요...)

또 다시 떠나야 했던 막스는 이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앨리스” 옆에 있습니다.

그녀와 자신의 아이 “새미”의 친구로, 그리고 아내의 양자로...

그런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너무 짧은 인생. 슬픔만 가득한 인생.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저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최후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사랑”이라는 통속의 그러나 절실한 이유 그 하나였습니다.

겉모습은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만 지혜로운 노인의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막스의 고백은 시간이라는 상대성과 외모의 허망함, 그 교차와 어긋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딘가에 시간 역행자가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꾸며낸 사실인지,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 중 일정 부분은 시간 역행자들이 실제로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 뚜렷한 공포가 될 겁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만이 평생 끌고 가야하는 비밀스런 공포...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낸 “막스”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비록 토막난 인생일지라도 “막스”는 순간순간 분명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였음을 저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각각의 장마다 주인공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죠.

1부에서는 “티볼리”로, 2부에선 “막스”로, 3부에선 “아르가스”라는 이름으로 불려 졌던 주인공은 4부에서는 “리틀 휴이”가 되어 여전히 앨리스의 곁에 있습니다.(휴이는 그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 휴이의 아들 행사를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는 친구 휴이에게 자살을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만 아비를 잃은 그가 앨리스의 양자가 되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어 했던 주인공의 마음...

휴이에게 어린 모습을 가진 막스가 말합니다.

"난 이제 남편이 될 수 없어! 아버지도 못 된다고!" "쉬잇! 난 아들이 될 거야. 잠시 동안이라도."

분명 그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는 절실한 마음이었기에 차마 응원한다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잠시 눈길을 돌림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샛강 갈대숲 사이를 떠돌던 작은 배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리틀 휴이 “막스”.

시간을 거슬러간 남자, 티볼리이자 막스이며, 아르가스이자 리틀 휴이로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비밀을 간직한 체 죽음을 택한 그의 마지막 모습.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에게(심지어 우리에게까지) “사랑”이란 뭐였을까를 묻게 만듭니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를 비극적으로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그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그가 덜 비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꿈꿉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타임머신의 꿈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든 상상과 환상은 공포와 절망의 바탕 위에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작은 배 안에 누워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아들 새미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을요.

혹 어는 샛강 작은 배 안에 아직 그의 꿈이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희망합니다.

이제 그 꿈은 더 이상 시간 역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고요...

* 2월 12일에 드디어 영화도 개봉을 하네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브레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으로 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와 있는 작품입니다.
   <조디악>과 <패닉 룸>을 만든 데이빗 핀쳐 감독이 매가폰을 잡았습니다.
   어쩐지 기본 이상은 해 줄 것 같은 예상이네요.  지금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 홍보를 위해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그들의 숱한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좀 잠깐 여기도 들려주지 싶긴 한데...
   브레드 피트가 연기할 시간 역행자의 모습...
   일단은 매력적이긴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1. 16:18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 윌리엄 하블리첼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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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Carpe Diem)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죠.

카르페 디엠은 “enjoy the moment"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생을 즐겨라....

어떻게 생각하면 참 무책임하고 방종에 가까운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의 참된 의미는 “현재를 잡아라!”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즐기라는 건 맞긴 한데 매 순간을 마치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즐기라는 의미입니다.

참 어려운 일이죠?


이 책을 쓴 의사 윌리엄 하블리첼은 세계적인 심장 권위자 중 한 명이라고 하네요.

이 사람이 임상에서 만났던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 이 이쁜 책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아주 적절한 책을 아주 적절한 때에 만나게 되는 경험.

전 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신비주의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가령 좀 힘들거나 맘에 상처가 있을 때면 어떤 방법으로든 꼭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나게 됩니다.

제목이 주는 거부감에 그냥 다시 반납할까 생각했던 책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딱히 읽을 꺼리가 없어서 손에 쥐었던 책이예요.

다음은 또 다시 호된 뒤통수 강타... ^^

(사실 이런 종류의 강타라면 뭐 뒷통수가 밋밋한 평면이 된다고 해도 저는 즐겁습니다)


이 책에서 우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을요.

혼자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제 제발 누군가 그만 내려오라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을 때.

어쩌면 당신의 시간도 도둑맞고 있는 건지 모릅니다.

과거의 “분노”로 인해, 혹은 미래의 “계획”으로 인해 지금 내 눈 앞의 현재를 송두리째 그것도 완벽히 도둑맞고 있는 건지도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줄 것이 너무나 없는 내 존재에 대한 보잘 것 없음에 화가 나면서도 한 번도 다르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

어쩌면 정말 중요한 건, 주지 않아야 할 것들을 주지 않았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카르페 디엠” 그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았을지...


인생에서 가장 큰 적은 “분노”와 “죄책감”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지은이는 의사로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 치료의 행위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고백합니다.

“의사로서 나는 치료와 치유를 동일시해 왔다. 하지만 치료와 치유 사이에는 깊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또 말합니다.

“치유는 의학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작가는 당신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카르페 디엠”의 기적을 하나씩 경험합니다.

삶이란,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이라고요,

이 삶이 어제 속에 묻혀 상실되거나 내일을 기다리는 가운데 잘 못 쓰여진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걸 도둑맞게 된다고요.

만약 우리가 현재 속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우리는 불멸을 얻게 될거라 말합니다.

누구나 늘 내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죠.

네, 분명 내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일이 나에겐 약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긴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시한부의 인생을 선고 받고도 내일 떠날 여행꾸러미를 챙기며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 곧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을 미래를 생각하며 죽음보다 깊은 절망 속에 화석처럼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인생은 시한부 인생입니다.

그 시간을 누군가는 기적처럼 살고, 누군가는 상처 속에서 살게 되는 거죠.

혹시 당신도 “기적”을 꿈꾸고 있나요? (저는 분명히 늘, 그리고 간절히 기적만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몰랐습니다.

인생의 “기적”은 지금 바로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걸.

그래서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는 걸.

우리가 현재의 순간을 체험하기 시작하면 기적과 일상의 차이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종교적인 영생만이 영원을 말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이라는 무한의 시간을 체험하고,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고,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며 산다면 우리는 오히려 영원을 살아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제부터 저는 매 순간을 “기적” 속에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카르페 디엠!

오늘 제가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순간도 모두 하나하나 기적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9. 06:15
 

<붉은 애무> -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프랑스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작가로써도 유명하지만 2008년 1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지의 회장으로 임명돼 파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르몽드지를 구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신이 가끔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엔 (1월 5일) 이 “르몽드”지에 우리나라 보수신문 “조중동”에 대한 상당히 긴 불량의 정면비판 글이 실려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의 요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일간지가 역대 독재정권에 봉사한 댓가로 조세 면책의 특권을 보장받아 왔고 현재도 이들 일간지들이 보수진영과 재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했답니다.


<붉은 애무>... 제목 참 강렬하죠?

처음 이 책을 알게 됐을 때, 그 제목의 강렬함에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대중교통 안에서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좀 쳐다보겠구나...(그런데 실제로 정말 그러던데요~~~)

그 사람들, 어떤 내용을 상상하면서 절 바라봤을까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립스틱 브랜드명이기도 한 “붉은 애무”는 프랑스어로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불에 타 들어가는 데 잔잔하다니요......

어쩐지 꽤나 치명적일 거란 확신이 들긴 하네요.


이 소설은,

네,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사랑이죠.

이렇게 고백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홀로 된 여자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될 권리가 없다”라고...

정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이름도 모르는 아비와 아이를 짐스러워하는 어미,

그렇게 아이인 적 없이 커버린 한 남자.

어느 날, 그 남자에게 마리라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걸을 때가 되면 아이를 당신에게 주고 떠나겠다...”

실제로 그녀는 정확히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날  두 사람 곁을 떠나죠.

아이인 적이 없이 자라버린 남자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 어린 아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엄마의 부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남자...

아직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라는 건, 거의 엄마의 존재가 대부분이라는 걸 이 남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엄마 보고 싶어!”

엄마를 찾으며 떼를 쓰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남자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약속할게. 매일 저녁 엄마가 와 있을 거야”

아들을 위해, 이 남자는 그토록 혐오하던 게이샾에 들러 원피스를 사고, 금발의 가발을 사고, 포근하고 따뜻한 2개의 스펀지 공을 사고, 얼굴과 다리의 털을 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 밤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죠.

엄마, 아빠 중 누구를 원하는지...


처음엔 밤에만 엄마로 변장했던 남자는 아이의 요구에 따라 점점 낮에도 엄마의 모습이 됩니다. 그리곤 함께 외출을 하고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그리고 써커스를 보러 가죠.

잠이 깬 아들에게 “엄마 여기 있어, 푹 자!”라고 말하면서 이 남자는 느낍니다.

자신이 점점 엄마로 변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들이 3살이 되는 날, 평온하게 유지됐던 두 사람의 가정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녀... 아이의 진짜 엄마인 “마리”가요.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 아이를 위해 엄마로 살기로 했다”고... (아내의 역할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순간 그 남자는 자신이 방금 잃어버린 모든 것을 떠올립니다. 금발의 가발, 시폰 원피스, 스펀지 공, 머플러......

이제 아이는 일주일의 반은 아빠와, 일주일의 반은 엄마와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점점 진짜 엄마를 더 많이 요구하게 되죠.

마리로 변장한 남자를 보며 3살 아들은 웃어버립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수렁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걸......

아들이 마리와 보내게 되는 날이면 남자는 엄마가 되어 마치 아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엿보기가 시작되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남자는 마리 집 창문 맞은편에 주차한 체 자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엄마를 훔쳐봅니다.

그 남자의 눈길....

뭐였을까요?

엄마의 시선? 아니면 아빠의 시선?

어쩐지 참 잔인하기까지 한 시선이라 섬뜩함조차 느껴집니다.

엄마(진짜 엄마)의 손을 잡고 유아원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남자는 두 사람의 깍지 낀 손가락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울린 핸드폰을 받기 위해 엄마가 잠시 잡은 손을 놓은 사이 아이는 콩콩 거리를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돌진해오는 스포츠카에 순식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죠.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결국 이 남자는 아들을 잃고 맙니다...


이 남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 “붉은 애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고 마지막 시선은, 그리고 마지막 증거는.....

아빠여야 할까요? 엄마여야 할까요?


책을 덮으면,

마치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부드럽지만 겉잡을 수 없는 광기.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 눈길이 진짜 자신의 눈길이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1. 16:22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평전


새해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이제 낯선 이름이 되어 버린 사람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아직 살아 펄펄한 청춘으로 아들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그의 평전을 쓴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인권 변호사 조영래.

같은 꿈을 꾼 사람들, 아니 같은 세상을 희망한 사람들이라고 말할까요?

내 세상이 얼마나 풍족하고 내 세상이 얼마나 유복한지, 그리고 내 세상이 얼마나 무심하고 내 세상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한 사람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과연 지금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홍경인이라는 배우가 분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 속 픽션의 인물로만 남겨져 버린 건 아닐까요? (...비록 픽션의 인물로라도 그가 아직 남겨져 있다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자. 여기에 어떤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3세의 어린 계집아이가 있습니다.(우리 눈엔 새초롬한 표정에 인형 같은 예쁘장한 조카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정도의 그 계집아이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6시 30분경에 일어납니다.

금방 허기로 채워질 보잘 것 없는 아침을 먹고 1시간을 걸어 평화시장 피복공장 그 고된 일터로 출근이란 걸 하게 되죠.

이제부터 계집아이의 노동의 시간은 시작됩니다.

8시 출근 11시 퇴근.

한 달 3000원의 월급을 벌기 위해 15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견뎌야 하는 어린 계집아이의 몸이 이제 서서히 그러나 파괴적으로 무너집니다.

기관지염, 안질, 빈혈, 신경통, 위장병, 피부병, 영양실조, 생리불순, 폐병...

어른들이 가질 법한 각종 질병을 훈장처럼 달고 어린 그녀들은 일터에서 쫒겨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체 어둔 골방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이 이야기가 단지 과대망상이고, 비현실인 이야기라고 차라리 비난 받을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그런데 고작 70년대 우리에게 이런 세상이 있었다는 거...

단지 운 좋게 우리가 피해왔던 시간들을 우리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그들은 온 몸으로 겪어냈던 겁니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그냥 우연히 손에 들었던 책입니다.

사실 별 느낌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읽어나가게 될까봐 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먹먹한 가슴 때문에 오래 힘들었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 자체가 미안했고 아팠습니다.

1948년8월 해방 직후 태어나 1970년 11월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온 몸을 태워 세상을 향해 알리고 싶었던 전태일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단지

인간으로써 살아갈 최소한의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단지 누군가의 비료가 되어 짓밟혀버린 사람들, 새 시각을 갖게 해준 근로기준법, 그러나 그 법의 존재로 인해 노동자들의 참상은 더욱더 숨겨지고만 있는 현실.(법과 현실이 만나질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는 모양입니다.)

부스러기 인생들을 위한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최후의 결단.

그는 그 결단을 두고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 이름 짓습니다.

살면서 과연 몇 명이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란 걸 할 수 있을까요?

발목을 붙잡는 숱한 이유들과 극단에서 더 절실해지는 자기애,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송구함과 미련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옳지 않았다고, 그렇게 자기 몸을 죽이는 방법으로 해결되는 게 뭐가 있느냐고, 그전에 행동했어야 했다고...

세상에 그 만큼 거대한 산을 향해 행동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요?

22살 영양부족의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 그는 한명의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곳까지 행동했고 그리고 끝까지 믿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렇게 많은 구체적인 행동들과 믿음으로 버텼던 사람... 또 있을까요?

아들을 잃은 그 어미는 아들이 남긴 말을 또 다시 따릅니다.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온 몸이 오그라들고 뒤틀려버린 생명같던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을 어미는 끝내 거역하지 못합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정신병을 앓기도 한 그 어미는 다시 펄펄한 청춘이 되어, 당신을 앞서 간 그 아들이 되어, 아들이 남겨놓은 일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되물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소선 여사는 분신한 아들의 뜻을 이어 청계피복노조를 만드는 등 평생 노동·민주화운동에 헌신합니다. 그 탓에 180차례 ‘"범법자"라는 훈장을 달고 늙은 어미의 몸으로 3차례 옥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팔십을 넘긴 그분은 말합니다.

“주야장천 싸움하면서 얻어맞고 잡혀가고...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우리야 죽으면 뭐 어떠냐면서 싸우지. 사실 시위도중 경찰에게 많이 맞아서 지금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오늘같이 흐린 날은 온 몸이 쑤셔.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 입장을 봐서 안 갈 수가 없지. 하나하나 싸우면 안 돼. 같이 싸워야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또 한 사람...

전태일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긴 인권 변호사 조영래.

1990년 12월 12일 43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해 온 일들 역시 전태일 못지않게 고난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을 만들기도 한 그는 깨어있는 선각자 중 한명이었죠.

오랜 수배생활을 겪기도 한 그는 수배의 시간 동안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책이 나왔을 당시 책의 저자는 “김영기”라고 표시되어 있죠.

일종의 불온서적으로 찍혀 출판금지의 낙인이 찍히게 된 이 책은 지은이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체 노동자의 필독서로 확산되게 됩니다..

조영래 그 자신은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보지 못한 체 세상을 떠납니다.(1990년 12월 15일 조영래라는 저자를 밝힌 개정판이 출판됐지만, 그는 그보다 3일 앞선 12월 12일 지병이던 폐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제가 조영래라는 변호사에 대해 알게 된 건 “EBS 지식채녈”을 통해섭니다.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아무도 변호하려 하지 않은 그녀를 변호한 사람이 바로 조영래, 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패소했을 때 남긴 말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만은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오늘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기소 끝에 결국 그는 피해자 권인숙을 석방시키고 성고문의 가해자 문귀동에게 5년형을 안깁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난
깨어있음으로 깨어진 3명의 혁명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 의해 세상은 “되물림”되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
이 믿음이 언제나 옳은 것이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0. 14:55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2> - 현각

 

책 이미지

 

오늘은 좀 색다른 책을 소개해 드리려구요.

개인적으로 여러번 읽었던 책이고, 그리고 제가 즐겨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책 중 하나였는데 현재는 절판이 돼서 여러 가지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책입니다.(절판된 이 책이 우리 병원 도서관에 있답니다.^^)

1964년 태어난 현각이라는 스님이 2002년에 출판한 <만행>이라는 책입니다.

현각(폴 뮌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아직 수도자가 되기 전이니까 ^^)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엘리트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그야말로 수재 중 한 사람이죠.

독실한 카톨릭 가풍에 형제도 꽤 많습니다. 게다가 형제들 모두 엄청난  엘리트들입니다. 부모님들은 그가 한국에서 구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실망했다고 합니다. 부모는 그가 오히려 신부가 되길 바랬다고 하더군요.

참 종교라는 거...

우리가 "베리타스"라고 말하는 진리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과 고행, 그리고 절제를 향해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희생과 끔찍한 전쟁이 수반되기도 하는 종교적인 분쟁...


개인적으로 전 기독교인이지만 이 책은 거부감이 느껴지는 내용이나 불교를 강요하는 교리를 해석한 책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책, 그렇지만 그 개인적인 고백들이 누구나 고민하고 공감했던 내용들이며 그래서 혹은 어떤 이유였든 심각하고 처절하게 고민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분은 최루성 글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눈물샘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펑펑 울게 만드는 엄청난 감동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람을 울게 만드는 아니 눈물이 촉촉히 스며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때 만났던 책이었고, 그래서 저에게는 제 살점같은 느낌이 드는 너무 애뜻한 책임을 고백하게 되네요.


이 책은 현각 스님의 지나온 삶이 마치 여행기처럼 서술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주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하여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원, 다시 뉴욕, 파리, 보스턴을 경유해 중국의 남화사를 거쳐 한국의 화계사와 계룡산 신원사에 오기까지 계속되는 한 인간의 고민의 행보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죠.

책에는 그의 전생에 대한 언급도 잠깐 나옵니다.

이상하게 한국과 관련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그...

아직 스님이 되기 전에 한 노스님에게 들었다고 하네요.

그가 전생에 조선독립군이었는데 죽으면서 다음 생에는 큰나라에 태어나 조선을 위해서 일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죽었다는....

이 부분이 전 참 천진하게 들렸고 그래서 이 분이 지금 이렇게 구도자의 길을 천진하게 가는구나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구나... 많이 위로 받기도 했구요(어쩐지 저의 고백서 같네요..)


현각 스님은 자신의 삶 전체를 만행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숭산 큰스님의 강연을 듣고 스님이 되는 과정을 ''오직 진리를 찾아 떠나는'' 만행의 또 다른 행로라고 말하죠.

특히 중산층 미국인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약혼자와 헤어지면서 한국불교의 파란 눈의 승려가 될 때까지 겪었던 내용들을 서술할 때는 너무나 인간적이라 차라리 승려가 되지 말라고 말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숭산 큰스님의 삶을 읽는 것 또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4대 성불로 알려졌던 숭산 큰스님은 1927년 태어나서 1994년 11월 30일 입적한 분으로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그 분이 쓰신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은 모든 불교 수행자들이 꼭 찾아 읽는 책이라고 하네요(현각스님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답니다)

폴이 스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숭산 큰스님이 물었다고 하네요.

“형제는 있느냐?”고...

있다고 대답하자 다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외아들이라서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하지만 폴 당신에겐 형제가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냐고..

모든 것을 초월한 큰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 너무 파격적으로 들려 사실 멍해지는 느낌마저도 있었답니다.

깨달은 사람도 출가 전의 일이 가슴에 담아있구나 싶어서....


현각 스님은 만행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행은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죠.

그 분은 또 말합니다.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질주하는 차를 바라보는 것. 친구와 악수하며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고 만행(萬行) 이다."라고....
내 주위가 얼마나 만행할 것 투성인지....
비록 부족함일지라도
이제서야 알게 되
그 "앎"에 의해 평온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8. 08:15

<형제 1, 2, 3> - 위화

 

형제 1
 

중국 소설이라고 하면 <삼국지>, <소호지> 같은 대작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비단 저 뿐만은 아닐테죠?
창검을 휘두르고 계략과 묘책을 강구하고 커다란 깃발로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앞을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짙은 먼지를 일으키며 행진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군사들의 행렬...
광대한 대륙을 자랑하는 중국.
중국의 국민들이 한꺼번에 소변을 보면 지구가 물에 감질 거라는 말도 예전에 있었는데....(저는 아무래도 이 말이 사실일 것만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중국의 젊은 작가(어디까지나작가로써) "위화"의 소설을 소개하려구요.
1060년 출생의 위화는 오래전부터 주목 받고 있는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현대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마니아층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저 역시나 그 중 한 명에 포함됩낟.
2006년도에 이 사람의 새 책이 무려 10년만에 나온다고 해서 제 살짝 가슴이 설래기도 했답니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 <인생> 이라는 굵직한 소설을 통해 격변하는 중국의 현대사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 작가입니다.
특히 <인생>은 "장에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돼서 온갖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던 그 유명한 작품이죠.
점차 자본주의화가 되어 가고 있는 중국...
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대화 되고 있은 중국의 모습이 <형제>에서 아주 유머러스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지고 있죠.

<형제>는 중국의 문화혁명부터가 그 시대적 배경입니다.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형제(의형제는 아니구요...) 이강두와 송강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죠.
이광두는 친부처럼 14살에 화장실에서 (물론 수세식은 아니겠죠 ^^)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다 추락하는 엄청난 사고(?)를 당해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란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그런 이고아두를 건져서 깨끗이 씻겨 준 사람이 송강의 친부 솜범평이죠.
송강은 한마디로 착한 모범생입니다. 얼굴도 훤칠한 것이 요즘으로 말하자면 완전 완소남인 거죠
이런 저런 사연을 겪으면서 어쨌든 이 두 사람은 새로운 가정에서 형제가 됩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송범평은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홍위병에게 끌려가 모진 핍박을 받기까지 합니다. 결국 상해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아내 이란(이광두의 친모)를 퇴원시키러 가던 중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역전에서 비참하게 죽으면서 네 가족의 새로운 행복도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야기되는 "문화대혁명(문혁)" 속에서 자행된 인간의 만행과 현대 중국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을 정면에서 유러머스하면서도 노골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이 펼쳐내고 살인, 도박, 매춘, 부정부패 등을 통해 문화혁명 이후 40여 년간 진행된 중국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의 장점은 어찌보면 심각하고 재미없는 정치적인 사항들을 인물들의 극단적 성격과 행동, 주인공의 비현실적 인생역전, 자극적이고우스꽝스러운 대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물론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3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단지 "재미"만 남게 되는 그런 책 역시도 아닙니다.(어찌 아니 매력적이겠습니까~~~~~!!!)

<형제> 1권은 송범평의 죽음에 이어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이란 역시 죽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2, 3권은 한결 희극적이며 풍자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이광두의 노골적이고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임홍(동에 최고 미인)은 준수한 외모에 착한 심성을 가진 송강을 배우자로 택하고 송강의 자전거를 통해 출퇴근을 하면서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쫓는 이광두는 결국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그의 사업 수완이라는 게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죠. 이건 기발하다 못해 공상과학의 일부분처럼 환상적이기까지 합니다.
살기 위해 정직하게 발버둥치던 송강은 가짜 유방확대 크림을 팔기 위해 수술로 여자처럼 볼록한 가슴을 만들고 온 동네를 떠돌아나니며 보따리약장수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하나하나씩 피폐해지고 파괴되어 가죠.
선량하고 착한 사람의 몰락이라...(어쩐지 너무나 비중국적인 내용이 아닙니까???)

이광두에 의해 개최된 중국의 미인대회는 성상납으로 등수가 결정되고 (소설속에서 이 부분은 참...뭐랄까, 중국의 바닥을 들여다 보는 느낌입니다), 어리숙한 송강은 사기꾼에게 속아 몸과 마음 모두 철저히 망가진 끝에 저물녘 철길에서 자살을 결행하죠. 그 사이 이광두는 마침내 임홍의 육체를 골약하게 됩니다.(그래도 엄연히 형수가 되는 사람인데....)
가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이광두.... 그는 이화 2천만 달러가 해당하는 우주 여행 준비를 할 정도로 갑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 끝에서듣게 되는 형의 사망 소식....

이 소설은 친형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달리 형제라는 말 외에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가족 소설입니다.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한... 그리고 더불어 엄청난 공포이기도 하고 환상이기도 한....
현재 중극의 모습처럼 참 모호하기까지 합니다.

중국....
made in china 의 오명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한 중국인은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에서 싸고 제일 질이 나쁜 물건들만 들여오면서 중국 상품에 대한 품질을 비난한다구요.
이 말 속에서
made in china의 오명이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생각케 합니다.
중국인의 능력....
진짜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달걀을 만들고, 멜라닌을 유포시켜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그리고 햄으로 소고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만들지 못할 것은 과연 있을까요?
중국....
그제 그들에게서 공포를 느낍니다.
서서히 세계를 숨통을 죄기 시작하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