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0. 15. 05:45
1억원 고료 제 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총 281편으로 국내 장편 소설 공모 사상 최다 응모 기록을 세웠단다.
그리고 그 중에서 최종 3작품 중에서 선택된 작품이 <컨설턴트>다.
소설을 쓴 작가 임성순은 1976년생 젊은 작가고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데뷔작으로 멋진 잿팟을 떠뜨렸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한때 실서증(글을 쓰지 못하는 증상)을 앓기도 했다는데
적어도 나는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쓰지 못하는 괴로움과 절망을...
그 절망을 이기고 <컨설턴트>를 쓴 임성순은
이 소설이 "회사"를 주제로한 3부작 중에 1부라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에 집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줄 2부 <문근영은 위험해>와
공리주의가 진정한 선(善)인가를 묻는 3부 <전락>을 통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되짚을 계획이란다.
(기대해보자. 이 두 권의 책 역시도...)
작가는 대학시절 곽경택 감독, 안권태 감독의 연출부 생활도 했단다.
역시나 책 속에서도 영화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어쩌면 어느 틈에 슬슬 영화화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와 관료제의 의사결정구조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져도 그것이 정확히 누구의 책임인지를 말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떤 이의 '정상적인' 결정 때문에 다른 이는 엄청난 고통을 겪거나 심지어 굶어 죽는 일까지 생기게 되죠. 얼핏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보이는 것들이 과연 자연스러운 죽음인가를 따져 묻고자 했습니다."
책을 출판하면서 작가 임성순은 말했다.



컨설턴트!
직업란에 기입하기에 소위 뽀대나는 직업이다.
왠지 모호하면서도 마치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요즘 세대에 이 "뽀대"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 하면 잔소리다.
PC통신 시절 추리소설 동호회에 소설을 몇 편을 썼던 주인공은
군대를 제대하고 어찌하다 이 뽀대나는 직업을 갖게 된다.
(선택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모든 인생은 음모다.) 
구조조정 컨설턴트인 그가 컨설팅하는 일은
소위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살인 청부다.
처음엔 본인도 그 사실을 잘 몰랐다.
거액의 돈을 주면서 넘겨받은 등장인물과 상황으로 주인공이 죽는 소설을 쓰는 단순한 창작(?)이었다.
그런데 그가 쓴 소설이 소위 "킬링 시나리오"가 되버린 거다.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과 똑같은 일을 기사로 확인하면서 물론 주인공은 잠시 혼란에 빠진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죽어 마땅한 이유" 한가지쯤은 있다.
당연히 주인공은 점점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물론 거기에는 점점 늘어나는 통장의 잔고 또한 한 몫을 한다.
여기에 또 당연한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원래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블러드 다이아몬드 현실에 대한 고발이자 조롱이며 동조다.
차례차례 구조조정되는 사람들의 이름에 내 이름을 옮겨본다고 해도 딱히 반론의 여지가 없는...
책 속의 주인공은 그래서 끝까지 익명이다.
따지고보면 수억명이 바글거리며 피튀기게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나란 존재 역시 익명이다.
그러니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굳이 만고의 진리인 give and take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익명의 내 행동이 익명의 누군가를 가차없이 사망시킬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모든 게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내 위에 있는 뭔가에 의해 내가 "조종"되고 있었다는 거다.
뭐 특별할 것 없는 현실의 모습이다.



세계는 다이아몬드 구조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형은 결코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뭔가 지탱해줄 삼각형들이 필요하다.
전체적으로다시 세상의 그림을 삼각형으로 만들......
그리고 그건 다양하다.
정말 다양하고 세상에 그런 존재들은 너무나 많다.
다이아몬드의 구성원들은 침묵한다.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대가로,
죽음은 자신의 죄가 아니다. 처벌받을 이유도, 책임질 일도 없다.
무엇보다 그 대가를 그들 역시 향유하고 있으니까.
피는 달다. 원래 세상이란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이 문장을 읽는데 섬득했다.
아무래도 이 소설을 나는 공포소설로 분류해야 할 것 같다.
낚시질을 당한다고 해서 맛잇는 미끼를 뭐든 덥석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러다간 정말 회로 떠질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사실 모두 공모자며
모두 종범(從犯)이고
모두 교사범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5. 06:36
무대 위엔 꼭지점을 아래로 향하는 커다란 역삼각형이 층층히 쌓여진 종이더미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균형이 잡힌 정삼각형도 아닌 불안한 모습 그대로...
그 불안함 속에 해답을 위한 힌트라도 주는 듯.
높이 달린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빛이 퍼져온다.
그러나 그 빛조차도 자세히 보면 불안한 삼각형의 형태다.
그리고 삼각 구도로 놓여 있는 의자 세 개.
그 의자마저도 정삼각형의 구조를 살짝 벗어나
시작은 분명 어느 한쪽으로 불안하게 기울어져 있다.
(물론 극이 진행하면서 정삼각형의 구조를 쟘깐씩 보여주긴 하지만)
내게 연극 <코펜하겐>의 첫인상은 그러니까
평형에 대한, 균형에 대한 일종의 불안한 도전이며 거부처럼 느껴진다.

역사 속의 세 사람,
닐스 보어(남명렬), 베르너 하이젠베르그(김태훈), 그리고 닐스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조경숙)
스스로 현실 속의 사람들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지금 하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중이다.
“왜, 1941년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방문했는가?”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제지간이자 오랜 연구 동료인 보어와 하이젠베르그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서로 적국으로 갈라서게 된다. 
하이젠베르그의 위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방문은
50년간 토론을 벌여왔으나 그닥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다.
연극은 세 번의 리플레이를 거듭한다.
그리고 매번 다시 묻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가 찾아왔을까?” 를...
이들 세 사람은 이 질문을 통해
도대체 지금 어떤 해답을 얻고자 하는걸까?



연극 <코펜하겐>은 노골적으로 말해 아주 많이 어렵다.
그리고 심각하다.
게다가 지독히 아름답기까지 하다.
핵분열, 중성자, 원자로, 원자탄의 제조,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의 원리 등
수시로 등장하는 물리학의 개념들로 머릿속은 이미 무한대의 복잡성 안에 놓여있다.
어쩌면 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선 관객들에게 지독한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그러나 연극 <코펜하겐>에서 중요한 건,
그런 과학 원리나 학자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 이론을 끌어냈던 인간들의 본성과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Dark side of the moon"
그렇다면 그건 확실히 불가능한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긴 하다.
마침내는 인간이란 객체의 유사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될테니까...
시간의 개념조차도 무력하게 만드는 핵폭발을 능가하는 인물들의 충돌과 대면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무척 재미있다.
수시로 돌출하는 날카로운 삼각형의 모서리들은
한쪽은 역사를 향해, 한쪽은 인물을 향해, 나머지 한쪽은 상황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기도 하고 일시에 후퇴하기도 하면서 극의 생명감을 예리하게 살려낸다.
입 속에서서 쏟아져나오는 숱한 이론들과 과학에 몰두한 인간의 지독한 광기.
그리고 그 광기 속에 보여지는 학문에의 순수한 열정.
"과학"으로 덧씌워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 탐구.
그 치열함이 극 속에서 제 2, 제 3의 긴장감으로 고스란히 살아난다.
폭풍같은 치열함들...
(이런 치열함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만 정신을 잃게 된다...)



<마라, 사드> 이후에 무대 위에서 만난  배우 남명렬은
역시나 늘 아름답고 섬세하고 그리고 정확하다.
그는 매번 무대 위에서 삶의 터를 개척한다.
끝없는 유목민으로서의 연극배우 남명렬의 아우라가
그래서 나는 늘 깊고 다정하고 믿음직스럽다.
연극 무대는 시간과 열정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배우 남명렬.
 “살아가는 세월만큼 무대 위에서 녹아나기 마련이에요. 그 세월은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어요.
  그러니 연극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선을 조금 길게 봤으면 해요.”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하는 관객이 여기도 이렇게 있다는 걸 그가 알까? (^^)
그는 연극 <코펜하겐>을 통해 관객과 ‘의미 있는 소통"을 희망한단다.
"우리는 현재 재미와 가벼움, 즐거움을 위해 달려가는 말 위에 있죠. 잠시 말고삐를 잡고 ‘속도를 조정해볼까’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 작품과 함께 했으면 해요. 담론 자체는 거대하지만 그 속에 인간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거든요. 유머도 있고.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말초적 세상에서 무언가를 돌아보고 싶다면 좋은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애쓰고 있고요."
속도를 조정하기...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일이 바로 그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열한 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나는 느긋한 "여유"를 느꼈다.
당연하지 않은가?
원래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늘 불확실 한거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