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4. 30. 06:00

지난 주 토요일에 아르코 소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고 나왔다.

건물 밖에서 책을 팔길래 4권을 사서 귀가했다.

그 4 권 중에 김 훈의 책이 두 권 있었다.

솔직히 50% 할인으로 김 훈의 글들을 산다는 게 좀 믿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심지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김훈의 에세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역시나 김 훈의 글들은 단정하고 짧다.

그러나 그 단정하고 짧은 글 하나 하나에 깊은 성찰과 깊은 고뇌가 보인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때론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게 된다.

함부러 읽어내릴 수 없는 글이 주는 무게는 이렇게 진중하고 깊다.

아직도 원고지에 꾹꾹 연필을 눌러가며 글을 쓴다고 했었나?

그의 글 속엔 물리적인 인간의 필력(筆力)이 육중하게 담겨 있다.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가 김훈의 <남한산성>을 보고 그랬다.

버르장머리없는 김훈의 단문을 읽으며 살이 에이는 겨울 칼바람에 실제로 몸이 아팠노라고...

김훈의 짧은 글은,

힘이 참 세다.

 

이 책은 2002년도에 출판된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의 개정판으로

그가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55편의 칼럼이 담겨있다.

재미있고 냉철하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글의 힘"이 이렇게 개인적으로 대단할 수 있다는 걸 절감하다.

결코 뜨겁게 달궈질 것 같지 않게 냉철하면서도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하게 들끓는 사유와 직관!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젠장!

나는 골백번 절망하고 좌절한다.

책 장을 열고 단숨에 후루룩 읽어내려갔다.

순차적으로 읽어도 그만이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그만이다.

아마도 이 책은 내내 내 서가를 들락날락하게 되지 않을까!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혹은 모든 것에 무심해질 때

그렇게 김훈은 나를 부른다.

김훈 때문에 나의 발은 아직 현실을 딛고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9. 06:02
 

박완서의 글은 그렇다.
오랫동안 깊고 따뜻하게 생각한 마음의 진득함,
꽁꽁 얼어있는 발을 녹여주는 포근함.
그리고 오래오래 고은 뽀얀 사골 국물에 후루룩 밥 말아 먹는 것 같은 꽉찬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그래서 그분의 책이 꽃혀있는 서점 코너만 들어서도
시골 할머니집 아랫목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할머님은 이제 더 이상 찐고구마를 소반에 담아 내올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은 가슴을 따뜻하고 뭉클하게 한다.
갑작스럽게 실감이 된다.
더 이상 그 분의 새로운 자식들을 읽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이제 아픈 배를 쓸어주고 지친 어깨를 두드려주던 정답던 손길을 마냥 그리워만 해야하는구나.
그랬다. 내게 박완서라는 소설가는,
두터운 가마솥에서 방금 긁어낸 푸짐한 누룽지같았다.
그래서 박경리의 타계 소식보다도
박완서의 타계 소식이 내겐 더 치명적이었다.


<잃어버린 여행가방>
박완서의 기행산문집.
노구의 몸을 한 발 한 발 움직여 찾았던 곳.
그 장소보다도 그 곳을 말하는 그분의 시선이 너무나 따뜻하고 정겹다.
챕터 시작 첫 페이지에 작게 담겨 있는 얼굴 사진은...
책 장을 넘기고 싶지 않을 만큼 오랜시간 다정하게 마주하게 한다.
문득 궁금하다.
누가 찍었을까?
풍요롭고 따뜻한 당신의 미소는 지금도 여전히 수줍은 소녀같다.
내게 박완서는 분명 로망이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로망...
어느날은 나도 박완서처럼 남도땅을 하나하나 밟으며 폭삭폭삭한 흙의 결을 느끼고 싶고
젖은 낙엽이 풍기는 냄새에 오랫동안 안겨있고 싶다.
비가 품은 냄새처럼 은근하고 약간은 비릿한 그 냄새...
벌써부터 이 모든것들이 당신처럼 그저 그립다.

...... 모든 것은 돌고 돈다.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 ......

박완서는 말했다.
......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

이 글귀처럼
그분은 생전에 우리나라의 남도땅 구비구비를,
바티칸을,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상해를
에티오피아와 인도네시아를
세계의 지붕 티베트를, 가트만두를 걷고 또 걸었다.
걷는 육신의 피로함은
말간 정신의 청명함으로 지금 내 눈 앞에 활자화되어 있다.
겸손하고 나직한,
그러나 선연하고 강인한 그분의 글을 나도 다리품하듯 읽고 또 읽었다..

"그립다"는 말...
참 두고두고 서럽구나......



한때 최인호의 이 에세이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읽을 생각을 안 했었는데...
책을 손에 잡은 건,
아마도 표지에 있는 사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
그리고...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내가 퓨파인더로 보던 시선 그대로다.
솔직히 책의 내용보다는 사진이 눈에 밟힌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턱없는 소리라 생각되겠지만
꼭 내가 찍은 사진들 같다. (^^::)

"인연"이라고 단어때문에
나는 이 책이 작가 최인호가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인연"이라는 게 어디 사람하고만 맺을 수 있는 건가!
사람에 대한 인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사람 아닌 것과 맺는 관계이리라.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최인호의 시선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겐 최인호의 책들이
아직은 여전히 낯설다.

* 공교롭게도 이 두 책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
   내겐 "안성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같은 게 있다.
   문화예술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따뜻하고 바른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악한 감정이 생길 수 없다는 걸 안성기를 통해 느끼게 된다.
   참 보석같은 사람이다.
   어쩔 수 없이 빛나는 사람.
   그런데 그 빛은 과하지 않고 언제나 영롱하고 깨끗하다.
   "카리스마"라는 단어조차도 왠지 주눅들게 만드는 그런 사람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24. 05:50
공지영만큼 불편하고 요상하게 맘에 안 드는 작가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요상하게도
이 여자가 책을 내면 (공지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라는 수식어를 꼭 넣어야만 할 것 강박감이 있다...)
어찌됐던 항상 손에 들어온다는 거다.
오랫만에 육덕진 고기를 본 나는
미친듯이 덥석 물어 자근자근 씹어주겠다는 탐욕스런 육식공룡이 되어 책장을 펼쳤다.
그러다 이내 에이! 이깟 것에 내가 뭐 턱까지 움직여가며 고생스럽게 씹을 필요나 있나 싶어
또 맘이 슬그머니 주저앉고 만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이 여자가 글을 겁도 안 나게 잘 써서 
내가 밀려오는 엄청난 양의 감동을 먹고 겪는 변화라면 오죽이나 좋겠냐마는,
읽는 중에 신물이 나고 넌덜머리가 나서 이도 저도 다 귀찮아지는,
소위 말하는 귀챠니즘을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은 그나마 덜한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나마" 다)
에세이는 참 읽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뭐하냐 싶게 황량하다.
공지영과 나는 왜 궁합이 안 맞을까????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씨그릿 가든>의 까도남 현빈처럼
공지영 역시도 삼신 할머니 랜덤 덕에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그렇게 보이게 자꾸 유도하는 것 같다.
MBC <일요일밤에>에서 "책, 책, 책을 읽읍시다!"란 코너에서 
<봉순이 언니>를 소개해서 열풍처럼 전국민이 읽었을 때도
<고등어>의 어설픈 운동권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사실 엄청 쎄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을 친언니로 두고 있어서 솔직히 그녀 이야기는 미안하게도 하품이 난다.)
<도가니>를 읽었을 때도 참 찜찜하고 뒤가 구린 것이 영 못마땅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주제나 될까마는....)
그전의 에세이 <수도원 기행>에서는 아주 정점을 찍어 주시더라.
어디를 봐도 당췌 수도원은 없고 기행(奇行)만 있어서....

영원히 사춘기에 머무를 여자!
공지영을 보면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그리고 그걸 즐기고 있다는 생각까지.
솔직히 피터팬 신드롬보다 이 증상이 더 심각하고 껄끄럽다.
순수로 포장된 가증을 볼 수도 있으니까.
그만큼 비위가 약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글을 (특히나 에세이) 읽으면서 특히나 불편한 것은
여자는 일단 이쁘고 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거다.
나는 왜 공지영이 여자를 비하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찬양하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그런데 솔직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참 두루두루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시다.



책의 제목만 보고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에 관한 이야기라고 착각하지는 마시라!
지리산과 섬진강변에 살고 있는 공지영과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뭐 나중에는 문화센터 같은 강좌도 실제 만들어 운영하게 되긴 하지만...
암튼 시작은 그렇다.
소풍처럼 다녀오는 지리산 지인들의 삶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 대해 맘에 들었던 부분은 딱 하나다.
스스로를 "꽁지 작가" 라고 표현한 부분!
대부분의 글들은 아주 가볍고 심지어는 억지 말장난 같은 부분도 많다.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어전히 억지스럽다고 해야 하나?
왠지 그녀가 이야기하니까
머들치 시인 박남준도, 내비도 최도사도, 낙장불입 시인과 그녀의 아내 고알피엠 여사도
다 코미디 같다. 
스님에게 채식으로 드시라고 고기를 채 썰어서 드렸다는 표현도
종교와 사람 자체를 조금 우습게 만드는 것 같아 좀 불편하다.
특히나 "증불"이라는 가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을 땐
노골적으로 이 여자가 속물 근성에, 몰염치에 기분이 극도로 나빠진다.
예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이란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게 불편하면 읽지 말라고 말한다면!
그래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게 활자 증후군의 서글픈 비애이기도 하다.
일단 손에 들어오면 뭐가 됐든 읽게 된다는 게 병패라면 병패!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건진 게 하나 있기는 하다.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의 사진들!
이것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무지 많이 섭섭해 열폭했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9. 15:05

라디오 방송 작가라고 했다.
강세형.
예전에는 한창 라디오를 벗삼았드랬는데
이제는 그것도 과거의 일이 됐다.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일요일 공개방송을 꼭 찾아 들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겠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오래된 이야기긴 하다.
요즘 아이들은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모를텐데...



꼭 그랬다.
심야의 라디오 방송은 프로그램이 끝날때 조용한 음악이 깔리고 에세이같은 걸로 마무리를 했다.
저런 건 다 누가 쓴지?
어릴 땐 궁금했었는데...
이 책의 글들도 그렇다.
딱 심야 방송에 어울리는 조금은 감상적이고 달달하면서도 공감가는 이야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말하는,
내가 네가 되기도, 네가 내가 되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
때론 복잡한 머릿속에 이런 이야기들이 쉼표가 되고 위로가 된다.
그리곤 꼭 한 마디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어디 한 번 해볼까?



에젯밤 늦은 시간,
하루에 지친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나만큼 고된 사람도 없을거라고
부유하지 못한 태생을 한탄하면서 걷다 순간 멈추섰다.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두 분의 할머니.
자세히 보니 한 분이 훨씬 더 노령이시다.
어머니와 딸이었을까?
아니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였을까?
두 분 모두 머리가 이미 새하얗게 변해서 걸음걸이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친구간의 밤마실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걸어가는 분의 팔을 꼭 잡고 천천히 걸을을 옮기는 조금 더 구부정해서 몸피. 
뒤따라가던 나는
저벅저벅 앞서지도 못하고 최대한 천천히 걷는다.
언제가  TV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내 서방보다 그 사람 어머니랑 더 오래 살게 될지 그때는 몰랐지!"
고부였다가 어느새 동기간처럼 되어버린 두 할머니의 모습이
나는 참 아름다워서 그만 샘이 나고 말았다.
문득 그 장면이 겹쳐져서였을까?
성큼성큼 앞서가지도 못했던 게...

예정되어 있는 일생 속에
내 옆을 함께 할 사람이
꼭 남편이 아니어도,
꼭 죽고못사는 사랑하는 그이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고 나면 그래지지 않을까?
주금진 얼굴, 주름진 손으로 만지며
"그래도 니 얼굴은 새색시마냥 참 곱다!"
듬성듬성 성긴 입으로 웃으며 말해주는 사람.
그 입에 말캉한 찬거리를 하나둘 넣어주긴 또 다른 한 사람.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걸음이 빨라지지 않았던 건...
하늘에 달도 보이지 않던 서운한 밤이었는데
그만 덜컥 행복해지고 말았다.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걷는
백발의 할머님 두 분 때문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2. 05:47
내가 알랭 드 보통을 좋아하는 정도는?
보통 - 조금 - 많이 - 무지 많이 ^^
이 독톡한 글쓰기 작가를 몰랐다면 무척이나 서운하지 않았을까 싶다.
"알랭 드 보통-정영목"의 조합은 묘한 흥분감과 짜릿함을 안긴다.
알앵 드 보통의 글들을 정영목이 아닌 다른 번역가에 의한 책으로 읽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그를 좋아하게 됐을까?
극도록 지적이며 탐미주의적인 완벽한 조합



현대 사회의 일에 대한 에세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그가 쓴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 독특함이 너무 신선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가 쓴 에세이들은 소설보다 그 풍미가 훨씬 더 놀랍다.
<행복의 건축> <여행의 기술>, <동물원에 가기>에 이어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까지...
처음엔 그가 무지 나이 많은 작가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고작 1969년 생이란다.
그의 재능과 박학다식함이 부럽다.
훔치고 싶은 재능.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불가능한 범죄를 꿈꾸게 된다.
지독하게 매력적인 나쁜 사람... ^^



이런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쓸 엄두를 누가 낼까?
전문적으로 쓰면 독자를 외면하고 지식 자량만 했다고 비난받을 테고
소개하듯 대강의 것들을 쓰면 새롭지 않다고 비난받기에 딱 좋은 재료들.
도저히 대중화된 소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의 향연.
10개의 글들 전부의 맛과 향이 독특하고 유별나다.
사랑에만 기쁨과 슬픔이 있는 게 아니라
일에도 분명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거...
찬찬히 오래 돌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에세이다.
나는 내 일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내 일에 대한 고백서 같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도.
어렵겠지만...



읽고 난 후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는 내게
번역가 정영목의 글의 눈에 들어온다.

알랭 드 보통은 타의에 의해 관찰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관찰자의 자리에 서게 된 경우다. 그가 스스로 그런 자리를 택하고 또 그 자리의 이점을 충실히 살려나가는 점도 훌륭하지만, 그의 장점은 일을 원경으로 포착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자재로 줌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도 초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원경, 중경, 근경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입체감을 살려가면서 일을 명상한다는 것이 그의 진짜 장점인 듯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마음의 미세한 떨림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 떨림이 놓인 크고 웅대한 맥락까지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딱 이거다.
내가 지금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이유...
그의 zoom in, zoom out에 완전히 내가 놀아난 상태.
어떻게 글 하나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를 할 수 있는 거지?
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알았다구요! 이번에도 내가 완벽히 졌다구요!'
결국 또 인정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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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선 관찰하기 :
나는 이 책의 부두에서 신전에 이르기까지, 의회에서 회계 사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18세기의 도시 풍경화와 비슷한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이 포괄적인 장면은 일이 인간의 벌집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는 자리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비스킷 공장 :
정신이 고결하고 도덕적인 야심이 있는 구성원들은 사회의 방종에 경악했다. 그들은 소비주의를 매도하면서 대신 아름다움과 자연, 예술과 우애를 찬양했다. 그러나 비스킷 회사는 초콜릿 비스킷의 효율적인 생산을 무시하고, 사회의 가장 유능한 구성원들이 혁신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기법을 기밸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을 엄하게 막는 나라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힘든 문제에 늘 직면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는 점ㅇ서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런 나라들은 가난하다. 너무 가난해서 정치적 안정을 보장할 수도 없고,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국민을 돌보지도 못한다. 그 결과 이런 나라의 국민은 기근이나 전염병에 목숨을 빼앗긴다. 고상한 나라들은 국민이 굶주리게 놔두는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 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원을 갖추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건포도와 꽃의 판매를 기반으로 건설도이ㅓㅆ다. 베네치아의 궁들은 양탄자와 향료 교역에서 생긴 이윤으로 지었다. 설탕은 브리스틀을 건설했다.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직업 상담 :
인문적 기술을 이미자신의 찬가를 부를 만큼 불렀으니, 이제 기계적 기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계적 기술은 편견 때문에 너무 오래 격하되어왔는데, 인문적 기술은 기계적 기술을 그런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항공산업 :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9. 23. 05:59
자칭 "바람의 딸" 한비야가 또 다시 책을 냈다.
9년 동안의 NGO 월드비전 응급구호팀장으로 일했던 그녀가
9년 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 보스턴 터프츠대학교에 석사과정을 위해 51세에 유학을 간단다.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기 위해서......



솔직히 말해서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비야" 그녀는 스스로도 인정하듯 엄청나게 수다스럽다.
그녀의 글들은 투박하고 그리고 정제되어 있지 않다.
솔직하다고 말해야 하나? 
가끔 생각한다.
그녀의 솔직함이 오히려 좀 포장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걸....



사실, 그녀를 만나 본 적은 없지만(앞으로도 없겠지만...)
왠지 글보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더 잘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무픞팍 도사"에서 "조조조조..."를 연발하며 조증에 대해 열변을 토했기 때문일테지만
(나는 울울울울..... 울증이라서)
두 사람이 만나면 서로 상쇄되지 않을까 하는 자가 처방적인 바램 ^^



그녀가 추천한 책들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읽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1년에 100권 읽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그녀,
나는 1년에 150권 읽기를 계획했었고 현재 3년동안 해왔다
올해 4년째150권을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 몇 년 간은 나도 한비야 그녀처럼 1년에 100권 읽기부터 시작했다)
그 책들에 전부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은 "No!"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책 읽는 건 교훈을 얻고 자기 발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냥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매번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스쳐가는 일상 속에 보석처럼 얻게 되는 기쁨만으로도 책은 충분히 내겐 많은 걸 준다.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가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가지를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이 하루 15리터인데, 그것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물 사용량은 무려 395리터, 작은 생수병으로 8백 병 가량이다.


물 부족과 어린이 사망률, 야만적이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여성 할례,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인정으로 시작되는 종교간 평화와 세계 평화, 그리고 편협되고 왜곡된 시각이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글로벌 리더의 꿈 등
아마도 한비야가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던 "화두" 들이리라.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대중"이 아닌 "나"를 향한 충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25. 06:42
 <헝그리 플래닛> - 피터 멘젤 & 페이스 달뤼시오


 헝그리 플래닛



오늘은 좀 특이하고 대단한 책을 한권 소개해 보려구요.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땐 먹거리를 소재로 한 여행집의 일종인가 하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진들도 그렇고...

궁금할 때가 있쟎아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뭘 먹고 살까?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런 걸 먹을까?

분명 이 책도 처음 출발은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진작가인 남편과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인 작가 아내(그래서인지 이 책은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짙습니다)는 전 세계 24개국을 돌면서 총 30가족을 만나 가족 구성원들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과 그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치의 먹거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가정을 보면서 어쩌면 첫 페이이지에선 저처럼 군침을 흘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페이지씩을 넘기다 보면 엄청난 먹거리 가치의 차이, 그리고 음식의 대량 유통의 폭력과 그에 수반되는 위험과 장애 요소를, 그리고 광범위한 인류와 환경의 파괴 등 먹는다는 의미 하나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어쩌면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공포나 재앙처럼 다가올지도 모르겠네요.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에서 시작된 “음식”은 <부족>의 단계를 이미 오래 전에 지나쳐 이제는 <과잉>을 너머 <폭발>의 단계에까지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사치로 여겨질 만큼 <결핍>과 <기아>로 허덕이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 또한 분명 있습니다.

누군가는 당뇨, 비만 등 과잉 섭취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받고, 누군가는 물 한방울의 허기조차도 채우지 못하고 죽어가기도 하는 엄청난 재앙의 양분화가 지금 세계에선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죠.

불을 사용하면서 인간이 진화가 됐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일 때지만, 생식 문화에서 화식문화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식생활은 발전함과 동시에 또한 엄청난 속도로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 냉장고라는 꿈의 기계 발명으로 음식 보관에 대한 형태가 바뀌면서 저장에 대한 욕구가 인류의 또 다른 소유욕을 부추기게 됐겠죠.

지금은 정크 푸드라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페스트 푸드가 기여한 식생활 개선(?)의 효과도 여기에 지대한 몫을 담당합니다. 여기에 대형 마켓 체인점에 의해 공급되는 가공 식품들의 활약을 무시하면 아마도 그들이 많이 서운해 하겠죠?

(써 놓고 보니 정말 전쟁터 아닙니까?)


호주, 영국, 미국의 일주일치 먹거리 사진과 부탄, 차드, 과테말라의 일주일치 먹거리의 사진은 과히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누군가의 일주일치 먹거리는 다른 누군가의 1년분 먹거리에 해당한다는 사실.

거기에 가족 구성원의 비율까지 계산한다면 그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누군가 하루 6캔의 코카콜라를 비울 때, 누군가는 아침마다 몇 km를 걸어 겨우 한 동이의 물을 그야말로 구해옵니다. 10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뜨거운 모랫길을 물동이의 그늘에 의지해 돌아오겠죠.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 그 아이는 돌아오는 내내 물 한번 마시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에 이고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물은 낟알의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곡물을 죽으로 끓여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한 국자씩 먹어야 하는 그 물이니까요.


이 책에선 현대인의 식생활에 대한 문제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최소한의 영양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상인들이 들여온 라면을 생으로 씹어 먹는 데서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습니다.(그것도 외부세계와 거의 단절됐다고 생각된 곳에서요....)

왜 이 같은 가공식품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는지, 이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우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한 폐해의 정도까지 이 책은 읽어갈수록 많은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일수록 가공식품과 탄산음료, 육류의 소비가 엄청나게 많고 그런 곳은 여지없이 비만과 당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다이어트 비용 또한 엄청난 경제 지출을 차지하고 있고요.

실제로 이 책에 참가한 선진국 가족은 본인들의 일주일치 먹거리 사진들을 직접 보고 식생활을 돌아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이 현재의 자신들의 식생활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버려지는 음식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남긴 음식을 포장해 가는 방법이요?

물론 다행이고 좋은 방법이죠. 그러나 그걸로 정말 끝이 날까요?

그 음식을 담았던 일회용 포장 용기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하나하나를 따져 가다보면  정말 이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인류가 끝이 나야 끝나는 이야기겠죠.


저자는 한국 독자를 위해 작성한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식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이 빠진 나쁜 식생활의 늪으로 빠지지 않았고, 전통 한식을 고수해 올 수 있어서 여러분은 행운”이라고요.

어쩌면 아직까지는 그야말로 행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 가요!!!

우리나라도 과잉 섭취로 인한 비만, 당뇨 인구가 해마다 엄청난 숫자로 증가하고 있고, 세계 온갖 페스트 푸드들이 그들의 정크 푸드들을 앞다퉈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그야말로 총공격을 다 있습니다.

음식물에 의해 야기된 3차 대전이죠.

이런 음식의 폭격 앞에 초토화 되지 않을 자신,

정말 우리는 있는 걸까요?


* 참고로 이 책에는 모두 6편의 에세이가 중간중간 들어 있습니다.

저자들 외의 사람들이 쓴 글이죠.

이 글들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들을 주는 글들이니까요.

“광우병 소”에 대한 파문으로 저 또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어쩔 수 없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식습관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게 됐구요.

고백하자면, 저는 먹는 즐거움보다는 담는 즐거움에 번번이 패배하거든요.

그래서 늘 잔반을 너무 많이 남겼습니다.

지금은 많이 고치고 있고 그리고 일단 담은 음식은 다 먹으려고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 식당에서 누군가 담는 즐거움에 이성을 잃고 있다면 여러분들께서 부디 강력한 브레이크를 걸어주시길....(가령 집게를 제 손에서 살짝 제거해 주시던지, 아니면 그 사람의 귀에다 “그만!” 이라고 단호한 일침을 가해주시던지....)

좀 창피한 고백이지만 정말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