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1. 9. 05:53
<Heal The World> - 국제아동돕기연합(UHIC)



 

이런 책들...

의외로 손에 쥐기까지 많이 망설이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훤히 알 수 있는 책, 내용은 분명 엄청나게 교훈적일 것이고 때로는 심각한 위기의식과 생존의식에 목이 죄어오는 느낌도 들 것이고 게다가 처절한 자기반성까지도 하게 만드는 불편한 책 중 한권이죠.

같은 제목의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기억하시나요?


Heal the world. Make it a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and the entire human race.

There are people dying.

If you care enough for the living.

Make a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노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런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짧은 단상들과 사진들, 그리고 모두의 앞에 다가온 현실들.

이 책을 읽으면 나란 사람이 당연한 상식의 일부를 얼마나 모른척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모르는 척 한다는 건 참 비겁한 행동인데 말이죠.


Healing, Recovering, Joining

1장 "Healing"에서는 우리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구출되고 살아날 수 있는 작은 생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에 해당하는 말라리아 약값이 없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국민소득의 30~40배에 해당하는 에이즈 치료제의 어마어마한 가격에 약은 단지 환상에 불과할 뿐 현실에선 국민 4명당 1명꼴로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임산부가 에이즈 치료제인 “바이라문”을 한번만 복용해도 신생아 감염은 막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갓 태어난 아기가 보조제를 소량만 복용해도 에이즈로부터 무사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두 알면서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오랜 “무지”와 “빈곤”으로 인해 10살 이하의 어린이들이 15시간 이상이 되는 노동 현장으로 푼돈의 값어치로 내몰리고 있는 세상.

우리가 손쉽게 먹는 달콤한 커피와 초콜릿을 보며 그 어린 노동자들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초콜릿을 먹을 때, 당신들은 초콜릿이 아닌 우리들의 살을 먹고 있다.”라고.

아무래도 한동안은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달콤함을 탐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2장 "Recovering"에서는 우리가 파괴하고 유기한 환경에 대한 절대적인 회복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기오염,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자원 고갈, 생물의 멸종과 인간의 미식을 위한 무자비한 포획.

전부 인간들, 바로 나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이기도 합니다.

유럽연합 UN에서는 9월 12일 에디슨의 최대 발명품인 “백열전구”의 생산을 이제부터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유는 백열전구가 발생하는 열 때문이죠.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를 우려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탄소 중립”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소비와 활동으로 배출한 탄소의 양을 상쇄시키기 위해 배출한 탄소에 대한 값을 치르는 걸 말합니다.

2002년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라고 하네요. 무려 7년 전 상황이니 지금쯤은 그 순위가 아마도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가령, 중형차를 타고 시속 60km로 1시간을 달리면 20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자그만치 6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네요.

주 5일, 8시간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만 켜놓아도 한 달이면 한 사람당 17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되고 그걸 상쇄하기 위해선 1인당 한 달 동안 53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탄소 중립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결국 오염이고 환경파괴인 셈이네요.

석유의 고갈을 예고하는 자원전쟁,

산유국을 포함해서 세계 7위의 석유 소비국인 우리나라도(비산유국 중에서는 세계 2위) 친환경적인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할 때란 생각이 점점 절실해집니다.

 

3장 “Joining"

Healing과 Recovering을 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채식위주의 식사, 공정무역, 그리고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까지...

개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도 더불어 알려줍니다.

비누로 머리 감고 식초로 린스하기, 3분 샤워, 변기에 벽돌 넣기, 하루에 휴지 15칸만 쓰기, 개인용 컵과 수저 갖고 다니기, 계단 이용하기와 걷기, 채식과 남기지 않기 등.

일본에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 활용하는 방법을 실험 중이라고 합니다.

그라민 은행에서 시작된 무담보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국경 없는 의사회 (MSF), 식품이 최종 소비자에게 도착하기까지의 거리까지를 계산한 포코(poco)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에 대한 새로운 개념까지...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이 책이 저에게 “그대 몸의 BMW를 이용하라!”고 충고하네요.

B-Bus or Bike, M-Metro, W-Walking

지금껏 늘 부럽게만 생각했던 BMW가 내게도 있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자동차는 운전자가 길들이기에 따라 달라진다는데, 이제부터 저도 제 BMW를 잘 길들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연비의 BMW를 꿈꾸는 초보 운전자의 초보운전,

이제부터 좌충우돌 초보 운전기가 시작됩니다!


“If you change yourself,

 The world will be changed for you too."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4. 05:45
 <노서아 가비> - 김탁환 

 
노서아 가비: 사랑보다 지독하다


유난히 추운 날씨와 어머어마한 폭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뭐가 됐든 따뜻한 OO거리가 절실해지는 그런 날씨죠.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먹거리를 놓고 따뜻한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라면 차선책으로 따뜻한 책을 읽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 그다지 신빙성은 없으나 왠지 그럴싸하게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죠.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파리의 조선 궁녀 이야기 <리심>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신비로운 조선의 궁녀 리심을 이야기 속에서 재창조했던 팩션소설가 김탁환의 따뜻하고 재미난 책 <노서아 가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진하거나 혹은 달콤한 한 잔의 커피를 준비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 디자이너 김탁환, 그가 커피 디자이너인 조선 최초의 여자 바리스타를 <노서아 가비>에서 창조해냈습니다.

잠깐 소설가 김탁환에 대해 소개하자면 직장인처럼, 심지어는 고시공부하듯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유명하죠.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지 50매 분량의 글을 그것도 꼭 아침에 쓰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소설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죠. 스스로 소설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40여권의 책을 쓴 작가 김탁환!

그는 글씨기도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대작을 꿈꾸며 열심히 숫돌에 칼날을 가는 게 아니라면 다작을 하는 게 소설가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작의 소설 노동자 김탁환의 글들은 거기다 재미까지 상당합니다. 박진감도 넘치고 재기발랄하고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하죠.

그야말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그가 <노서아 가비>에서는 경쾌한 여자 사기꾼을 등장시켜 유괘 상쾌 통괘한 사기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노서아 가비>의 시작은 그러니까 황현의 <매천야록>에 있는 기록에서부터입니다.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시절 엄청난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가(그렇다면 그가 어느 쪽 사람인지 감은 잡히시겠죠?) 몰락한, 그 몰락을 견디지 못해 실제로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은 김홍륙이란 사내에 대한 기록.

이 실제 사건이 소설 <노서아 가비>가 태어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고종황제는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커피(노서아 가비)를 처음 접하게 됐고 그 이후로 엄청난 커피 마니아가 됐다고 합니다. 그 덕에 불면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지만 사실 그 당시에 고종에게 숙면의 희망은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긴 했을 겁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야만의 칼날을 피해 제 나라에서 이국의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고종, 그 처지를 생각하면 커피로 인해 불면이 됐노라 말해야 그나마 덜 비참하지 않았을까 혼자 처량한 상상마저도 하게 됩니다.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접 시절 그가 마실 러시아 커피를 내리던 여성 바리스타 따냐!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러시아어와 전각(篆刻) 기술에 능했던 따냐(최월향=안나).

그녀 나이 19세, 그녀의 가족은 청나라 연행길 수행 역관이었던 아비가 천자의 하사품을 가로채 달아나다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는 전갈을 듣습니다.

외동딸이 노비가 되는 걸 막기 위해 그 어미는 청나라로 딸을 피신시키죠.

이제부터 최역관의 딸 최월향이 따냐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혹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생존 방법은 “사기”였습니다.

조선인 사내 이반(=김역관=김종식=정도령)과 함께 유럽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숲을 팔아치우는 사기로 돈을 벌던 따냐는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대관식에 통역관으로 위장해 참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조선 사신들(민영환)이 러시아 귀족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걸 모면하게 해 주죠.

어쨌든 그게 인연이 되어 조선으로 되돌아온 그들은 한 명은 역관으로, 한 명은 바리스타로 러시아 공사관, 고종의 곁에 들어가게 됩니다.


혹시 “사기꾼의 철칙”을 아시나요?

“...... 사기꾼은 진실해서는 아니 되고 정직해서는 아니 되며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한다. 이것이 항상 바람처럼 가볍게 움직여야 하는 사기꾼들의 철칙이다 ......”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따냐는 이반에게서 “국상”이라는 두 글자를 들었을 때, 이미 이반과 자신의 게임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됩니다. 따냐는 뱃속에 이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하는 것이 사기꾼의 삶이기에 고종 황제의 독살함으로써 조선 전체를 러시아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이반의 마지막 대박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죠.

따냐의 이런 행동은 아비를 죽게 한 이반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도, 고종과 조선이라는 조국을 위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신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사기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그 어느 인정에도 기울지 않고 정확히 사기꾼의 논리에 따르는 것, 그것이 거대한 협잡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기꾼의 자세라며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아이는 아이고 사기는 사기죠."


고종은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경웅궁으로 환궁을 하게 되고 따냐에게 계속 자신의 커피를 준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또 유쾌하게 고종의 제안을 거절하죠.(참 쿨하기도 하시지!!)

따냐를 향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노라 말하는 이반은 결국 수레에 사지가 묶여 찢기는 거열형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조선인 최초 여자 바리스타 따냐는 다시 조선을 떠납니다.

러시아를 거쳐 뉴욕에 정착한 따냐는 “따냐의 문학까페”를 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어쩐지 전 이 부분에서 혼자 유쾌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땅, 그 광활한 러시아를 무대로 유럽 귀족들에게 30여개의 숲을 팔아치웠던 은여우 따냐가 이제야 최고경지인 무림고수들만의 사기의 세계로 발을 들어놓은 것 같아서 말이죠.

모든 문학은 일종의 “사기 행각”과 다름이 없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펼쳐질 조선 바리스타 따냐의 뉴욕 사기극이 이제 막 시작될 것 같아 왠지  어설픈 상상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책”이란 깊고 깊은 타짜의 세계, 그 세계가 매번 제게 중독과 금단현상을 반복하게 만드니 아무래도 참 고약하긴 합니다.

그래도 <노사아 가비>를 읽는 동안은 전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웠노라 고백할 수밖에는 없네요.

어떠세요?

희대의 개화기 사기극 한 편!

유쾌 상쾌 통쾌하게 시작하는 한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담고, 한 손에는 진하고 독한 러시아 커피(노서아 커피) 한 잔을 펼쳐보는 풍미.

이제 두 향기를 혼합시키는 바리스타의 마지막 브랜딩 작업은 오롯이 당신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9. 06:12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시마다 마사히코!

이 세 사람들이 바로 현재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중년 남성 작가입니다.

세 명의 작가 모두 이력이 특이하고 글 쓰는 스타일도 다르죠.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세 명 모두 얼마 전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은 이 세 명의 작가 중 가장 연장자인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오 해피데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59년 출생한 오쿠다 히데오는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일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무림의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셈이죠.

그의 매력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유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 선거>...

이 일련의 시리즈 제목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지 않나요?

환자보다 더 정신병자 같은 엽기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사계절 육감적인 핫팬츠 차림으로 비타민 주사를 엉덩이에 힘차게 내리꽃는 간호사 마유미.

이 등장인물을 가지고 3년 동안 무려 3권의 책을 쓴 작가죠.

오쿠다 히데오의 장점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뻔뻔하게 탈바꿈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거 혹시 내 이야긴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죠.

머릿속으로 급행열차가 지나가거나, 혹은 이유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땅이라도 뚫을 기세인 사람이 읽으면 기분을 UP 시키는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어쩐지 애들은 가~~ 애들은 가~~~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오 해피데이>는 일상의 묘한 부분(?)에서 특이한 행복감에 빠져 있는 6명의 남녀가 6편의 옴니버스 속에 등장합니다.

인터넷 경매 싸이트 옥션에 중독된 42살 전업 주부 노리코.

물건 구매자가 상품평에 좋은 말을 써 주면 그녀는 변비도 사라지고 눈가에 주름도 사라집니다. 젊어졌다는 주위의 찬사도 듣다 보니 없던 자신감도 마구 샘솟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다 돌아오던 학부모 간담회에서 꽤나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던져 학교 관계자들을 쩔쩔매게 만듭니다. 뒤따라 이어지는 꿀 먹은 주변 아줌마들의 선망의 시선들...

옥션 아이디처럼 그녀에게 비로소 “Sunny Day"가 찾아 온거죠.

급기야 남편이 아끼는 한정판 텐테이블을 일종의 응징(?)으로 옥션에 올리기에 이릅니다.

옥션을 통해 젊음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는 주부라...

어쩐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백은 정곡을 찌릅니다.

“ ...... 타인에게 칭찬받은 적이 없는 주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칭찬 하나에도 기뻐한다. 그리고 그런 충족감을 느끼고 싶어 매번 옥션에 참가하게 된다..... ”

좀 뜨끔한 부분 아닙니까?


14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의 도산하는 바람에 36살 유스케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다행히 아내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재취업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유스케는 아내의 자리, 전업 주부가 되기로 결정하죠.

그런데 이 남자! 여기서 유토피아 비슷한 걸 발견합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도시락을 싸고, 매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에 빨래, 다림질까지...

집안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를 느끼고 더 잘하고 싶어져 요리책도 사고 일의 노하우도 하나씩 터득하고, 매일의 식사 메뉴를 생각하는 등 주부의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죠.

한 입만 베어진 체 남겨진 아들의 도시락 속 반찬을 보면서 남자는 생각합니다.

“ ...... 자신이 만든 반찬이 맛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반찬에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견뎌 낼까? ...... ”

성실한 전업 주부가 된 남자는 사물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죠.

비록 놀이터에서 만난 노인에게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50가지 명언>이라는 책과 함께 동정의 눈길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시선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 바꾸기라면, 그리고 그 자리가 당사자에게 "happy”하다면 기꺼이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별거로 혼자 남게 된 38살 마사하루는 자신의 집을 점차 남자들의 로망인 꿈의 아지트로 만듭니다.

아내는 잘 꾸며진 남편의 집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여자를 끌어들인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고 아내는 말하네요. 함께 산 8년의 세월에 싹 무시된 기분이었다고...

남자에게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라고 책 속의 남자들은 말합니다. 번듯한 집도 있고 CD나 DVD, 오디오 세트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다는 게 서글프다는 거죠.

그런데 둥지를 짓는다는 건 또 여자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네요. 그래서 달랑 하나밖에 없는 집을 남자의 왕국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거라고, 집이란 여자들의 성역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서른을 넘긴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곰곰 생각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도 말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 집에 놀려와!”라고 말할 수 있는 아지트를 소망한다는 거.

딱 내 이야기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부업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10살 연하의 남자를 꿈속에 등장시켜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다 그야말로 헛물만 켜게 된 전업 주부가 등장하는가 하면,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사표를 낼 때마다(아내는 그런 남편을 “성실한 한탕주의자”라고 표현하더군요) 묘하게도 놀라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일러스트 아내 이야기, 젠체하면서 환경과 미래를 생각한다고 으스대는 로하스 예찬자를 삐꼬는 소설을 쓴 소설가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하스 예찬자 중엔 아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평화라는 절대절명의 생존(?)을 위해 아내의 침묵 속에서 거친 현미밥을 꼭꼭 씹어 삼기며 출판사에 전화를 합니다.

“그 원고 제발 파기해주세요~~~” 라고...


6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은근히 짠한 마음도 듭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 모두가 그대로 내 삶의 모습이고 당신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모든 주부는 언제나 혼자다!”

<오 해피데이>는 그러니까 늘 혼자인 주부를 향한 작은 위로와 다독거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따지고 보면 주부가 “오 해피데이!”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가정 역시도 절로 “오 해피데이!”스러워지는 거 아닌가요?

가정이 “happy”해지면 사회도 "happy”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happy”해지고... (정치도 “happy”해질거라는 공상만화스러운 전망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숱한 주부들에게 어쩐지 한 번 묻어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죠.


Oh! Happy한 당신의 모든 Day를 위하여~~~

Bravo~!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5. 13:17
 <공무도하> - 김 훈


공무도하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김훈의 글들은 단 한 번도 서정적이지 않았죠. 오히려 너무 사실적이었으며, 심하다 싶게 물고 늘어져 집요하다는 생각까지 갖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끔찍스럽게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던 사람, 그리고 여행과 자전거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작가가 아니라 자전거레이서라고 소개하는 61살의 김 훈.

<밥벌이의 지겨움>, <풍경과 상처> 제가 만난 김훈의 첫 책들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행 산문들 <자전거 여행 1, 2>와 <바다의 기별>.

오히려 그의 소설은 뒤늦게 찾아 읽은 셈이네요.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남한산성>, 그리고 <공무도하>까지...

여전히 연필과 원고지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그가 지난 5월 네이버를 통해 자신의 여섯 번째 소설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역시나 김훈답네요.

소설을 연재하면서 단 한 번도 댓글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말하는 그.

독자와 작가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름다운 관계라고 그는 말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고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운명이 있고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

이 책, <공무도하>

서정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결코 서정적이지 않습니다.

비굴과 굴욕, 치사와 번잡스런 인간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죠.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표지에 쓰여 있는 문장에 속지 말라는 충고 또한 함께 드립니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 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河 (당내공하) : 가신님을 어이 할꼬


기억하십니까?

술에 취해 강을 건너다 물에 휩쓸려버린 남편(백수광부)를 바라보며 애절한 노래를 불렸던 백수광부의 처.

학창시절에 이 고대가요를 배웠을 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백수광부의 처는 남편이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직접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지를...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세상엔 말릴 수 있는 것과 말릴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말이죠.

이 책 <공무도하>는 이 땅의 숱한 백수광부와 그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숱한 백수광부의 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이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장철수라는 인물의 입을 통한 발설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다수의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건넌 물보다 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부끄러움도, 죄스러움도, 비밀스러움도 그들과 함께 기꺼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건너갑니다.

동료를 배반하고 풀려남으로써 고향 창야를 등지게 된 운동권 출신 장철수, 소방서 인명구조 특공조장 박옥출은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4억 5천 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들고 나와 장물로 팔아넘깁니다, 치매기 있는 외할머니와 함께 비닐하우스에 버려지듯 살던 아들, 그 아들이 친구처럼 키우던 개에 물려 사망한 사건을 뉴스로 보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어미 오금자, 본처가 있는 줄 모르고 속아 결혼한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베트남 여성 후에. 물막이 공사 크레인에 깔려 사망한 딸의 보상금을 몰래 수령하고 사라진 아비 방천석...

숱한 백수광부들은 지금 “해망(海”望)이라는 도시에 모여 있습니다.

바다(물)를 바라본다는 뜻의 해망!

그래서 이 책의 곳곳에는 “바라봄”이라는 그 아득함과 노곤함, 그리고 무력감이 오랜 상처처럼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백수광부를 바라보는 백수광부의 처 문정수, 노목희.

일간지 사회부 기자 문정수가 노목희를 찾아오는 밤이면 그는 추적할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숱한 백수광부들의 세상을 노목희에게 말합니다.

노목희는 그를 다독이며 진심으로 답합니다.

“냅둬... 제발 좀 그냥 냅둬!”

그래요, 어쩌면 진실을 폭로할 자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백수광부의 처가 되어 그저 손끝으로만, 애타는 심정으로만 물을 건너는 남편을 말릴 수밖에 없을 테죠.

그리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게 어디 물 뿐이겠습니까!

물보다 더 한 것들을 건너고, 물보다 더 한 것들을 건너는 사람을 이편에서 그저 보고 있기만 해야 하는...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 비루하고 던적스럽고 소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적나라하게 겹쳐지는 우리네 현실과 만나야 합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매향리 미군폭격훈련장, 의정부 미순∙효선 사건, 동남아시아 여성 상대의 국제결혼, 가족의 해체와 남겨진 아이의 버려짐. 그리고 업무상 배임, 장기밀매와 투기, 정부주도의 독점사업에 이르기까지...

벌거벗겨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들여다 봐야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도 있습니다.

“증발과 해체는 숨막혔고 스산했다.”

이 문장에 저는 그만 턱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게 하찮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알까요?

그 하찮은 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런 이유로 비록 하찮을지라도 쓸데없는 일이 되버리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걸 말이죠.

작가 김훈은 고백은 그래서 차라리 속이 시원해지기까지 합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이 책 <공무도하>

강을 건너가지도 못하고 물가에 선 사람에게 재차 묻습니다.

이제 어찌 할지를 말이죠...

김 훈,

그의 글은 때로는 너무 정직해서 오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딘 칼끝을 가지고도 그는 예리한 상처를 남길 줄 아네요.

벌려진 상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백수광부의 처가 지금 여기 오도카니 남아있습니다.


* 11월부터 그가 다시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예 대놓고 공표했습니다.

  “독자들이 바라는 희망이나 위안은 아주 인색하게 주고,

   독자를 고문하고 들들볶아 극한까지 고통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고문관이 되어 돌아올 그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극한의 고통...

   그 길을 기꺼이 동참하겠노라 저 또한 대놓고 말하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1. 05:55
 <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


천만 개의 사람꽃 


사진작가 임종진.

전 이 사람을 김광석이라는, 10여년에 훌쩍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통기타 가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에 나온 <김광석 그가 그리운 날에>라는 책이 바로 그 인연이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임종진은 떠나버린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짧았지만 여운 깊었던 그와의 만남과 함께 나눴던 생각, 마음의 교감들을 이 책을 통해 고백했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고 다정했던 김광석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죠.

서른의 대표곡이 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이미 그 나이를 한참 전에 넘겨버린 저는,

20대엔 절대 공감하지 못했던 이 노래가 지금은 가끔 내 지난 모습의 반추처럼 느껴집니다.

김광석이란 가수의 목소리에 달라붙어있던 그리움과 아련함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20대의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활기찼겠죠.

사람들로부터 떠나 버린 가수 김광석,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늘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 두 사람은 공통점은 그러나 “그리움”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 여전히 구식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달팽이 사진작가”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온기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프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울고 웃고 희망을 걸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어설프지만 저 역시도 사진 속에 담기는 멈춤에 넋을 잃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에 제 카메라 앵클의 시선은 여전히 풍경입니다.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낸다는 게 아직까지는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더 오래,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가능한 일이 될까요?

6차례 방북 취재로 김정일 최고위원장에게 “남녘 사진작가”라는 별칭까지 받기도 했고,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 그 화염의 도시 속을 다니다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번번이 그를 살렸던 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죠.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엔 담겨있는 "생명“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만 개의 사람꽃>

2008년 가을에 출판된 이 포토 에세이집에는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발, 이라크,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명 품은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희망 품은 웃음이 꽃처럼 만개해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생부터 고통을 짊어진 아픈 생명들의 채 피워지지 못하고 꺾일 숱한 꽃들도 있죠.

품질 좋다는 이라크 석유의 최대 매장지 남부지역 바스라.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퍼부은 수백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으로 이 지역의 신생아 30%는 선천성 백혈병이나 치명적인 기형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기의 첫 울음으로 남자아이야 여자아이냐를 가늠하지 않고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어 버린 곳.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부족한 의약품으로 얼마간의 삶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아이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는 향기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꽃은 만개의 소원을 피워내지 못한 채 봉오리 그대로 세상 속에 삼켜집니다.

알까요?

그 봉오리가 한 귀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순결한 향기를 우리도 맡을 수 있었다는 걸...

기껏해야 평균 수명 15세.

꽃이 집니다... 꽃이 집니다...

맘껏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향기를 거둬갑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또 한 장의 책장을 서둘러 넘길 뿐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요?

사진에 담긴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러나 저는 움직임을 봅니다.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방향을 향하고 기억 또한 왜곡과 변형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생기기도 하죠. 누구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담겨지는 기억...

사진은 그러니까 그 기억 속에 일부러 던져지는 모난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섬뜩한 파문이 일죠.

이 사진 속의 너의 기억은 온전히 사실인가?

사진이 내게 물어 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강력하다는 시각.

예전에 저는 본다는 것에 대해 지독히 넌더리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눈이 멀어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흑백 사진집 한 권.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HUMAN)>이라는 책이었죠.

그 책을 보면서 저는 내가 보는 세상에 넌더리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넌더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뭉턱뭉턱 올라오던 울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던지...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애우는 아직까지도 신문을 들고 한 팔을 휘저으며 한 다리로 뛰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저 아주머니는 생선을 벌여놓고 비닐로 비를 피하며 다음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작은 나무통 속에 아기는 조각난 군밤을 작게 오물거리며 허기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아 지금도 눈 밑이 붉어집니다.

이 책, <천만 개의 사람꽃>도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탄피 더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분노에 찬 눈빛,  붉은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찬란한 미소를 보내는 천진한 눈빛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미안해지고 안스러워집니다.

사진은 권력이라고 했던가요?

매번 사진이 휘두르는 진실의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임종진만의 단상들도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프로패셔널한 사진작가의 수줍고 단정한 글들은 일부러 꾸며 쓴 것이 아니라 비록 서툰 표현들이지만 다정하기까지 하죠.

글이라는 건 꼭 잘 써야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 천사의 새치기


조금 피곤한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면서 눈을 마주치다가

적절한 때를 봐서 한 컷 건지려고 했지요.


그래, 이제 되었구나 싶어 슬쩍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뛰어들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어딜 가나 천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운을 줍니다.

때론 해맑은 소녀였다가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늙은 농부의 여유로움과 갓난아이의 천진스러움이기도 하고

때론 길바닥 걸인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골목길에서 천사는 그렇게 나타나

지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습니다.


임종진 그가 찍은 천만 개의 사람꽃과 천만 개의 단상들을 보며 저도 함께 말했습니다.

“요놈, 요놈, 요 이쁜놈!”

어쩌면 당신도 당신의 멈춰 있는 기억 속에 조용한 움직임을 주는 한 장의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아 꽃을 피웠을까요?

조용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향기를 남겼는지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16. 05:48
 <고산자> - 박범신


고산자 


1993년 문화일보에 소설을 연재하다가 돌연 절필을 선언했던 박범신이 몇 년 전부터 열혈 청년 작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1946년 생으로 올해 63세, 청년 작가 박범신!

2008년 네이버에 연재된 <촐라체>라는 소설을 아주 인상 깊게 읽은 기억때문인지 올 해 그의 생애 첫 역사소설 <고산자>가 출판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절필 선언 이후 처음 쓴 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에서 작년에 출판된 <촐라체>까지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기성찰, 구도 등 내면에 많이 붙잡혀 있었습니다. 한번 나로부터 떠난 소설을 갖고 싶었어요. <고산자> 이후에는 어떤 것에도 억압받지 않고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책을 발표한 후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박범신, 아마도 그는 작가로서의 한 세대를 끝내고 이제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려는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았던 시대는 너무 바빴고 변화가 많아서 현실을 보는 데만 급급했다고 고백하는 그가 이제 역사적 시점으로 눈을 돌리고 싶다고 말하네요.

앞으로 종종 역사소설을 쓰고 싶다는 박범신, 아무래도 <고산자>라는 작업이 그에게 또 다른 구도의 길이 됐던 건 아닌지 생각합니다. 


“평생 시대로부터 따돌림 당했으니 고산자(孤山子)요,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 뜻이 드높았으니 고산자(高山子)요,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 산을 닮고 싶어했으니, 그는 고산자(古山子)라고도 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 김정호(金正浩)!

그러나 지도의 명성에 비해 고산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이상하리만큼 미미하고 그 생애 또한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생존 시기도 단지 추정에 불과할 뿐, 고향은 물론 본관, 신분조차도 여러 설로만 전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누군가는 김정호가 자신이 만든 상세한 지도 때문에 첩자로 몰려 옥사했다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백두산에 올라 신선이 됐다고도 합니다.

김정호의 생에 대한 추적과 대동여지도와 관련된 진실.

<고산자>에서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작가적 상상과 해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겨울,

김정호의 아비 김해준과 22명의 무지렁이 백성들은 “홍경래의 난” 진압을 위해 차출되어 산을 넘다 그만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그들은 관아에서 독점하여 제작, 관리했던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체 길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엉터리 지도가 22명의 젊은 생명을 그대로 차디찬 눈 속에 생매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됐죠.

실종된 아비를 찾아달라고 탄원하다 결국 고향 땅을 등지고 도망을 가야 했던 어린 김정호는 생각합니다.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어야 한다고...

이 생각이 그의 온 생애동안 조선팔도를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정확한 축적의 지도를 만들게 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그가 홀로 지도제작에 일생을 바친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죠.

“조정과 양반이 틀어쥔 강토를 골고루 백성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이고, 조선이라는 이름의 본뜻이 그러하듯, 강토를 세세히 밝혀 그곳에서 명줄을 잇고 있는 사람살이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뿐이다. 땅의 흐름과 물의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뿐이다.”

대동여지도는 22첩의 분철절첩식으로 고안된 목판본 지도입니다.

물에 불린 피나무를 이용해 22첩의 목판본 하나하나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조각해서 만든. 그것도 산맥의 고저, 강폭의 너비, 길의 유무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미스터리에 가까운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죠.

분철한 이유는 커다란 지도를 전부 가지고 다니는 불편을 없애고 필요한 부분만 간편하게 들고 다니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대동여지도엔 “독도(우산국)”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 주장하고 내세우는 근거에 고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말하죠.

“봐라! 너희들이 가장 정확한 지도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대동여지도에도 독도가 빠져있지 않느냐?”

그러나 “독도”가 빠진 이유는 정확한 축적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표기하기 위해선 축적을 무시하고 울릉도 바로 옆에 그리던지 아니면 별도의 목판 2개를 덧대 지도의 외형을 사각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삐져나오게 하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고 하네요.

고산 김정호의 선택은 정확한 축적 표기를 위해 독도를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박범신의 지적처럼 “뛰어난 과학자이며, 섬세한 예술가”였던 김정호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고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시 벌목금지와 고가의 목판 가격도 한 몫 했을 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산자> 이 책은 상상된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도 숨겨진 역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골고루 갖춘 천상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팩션소설이긴 하지만 어쩐지 역사에 비중이 조금 더 많이 느껴지는... 그러나 실제로는 역사보다 작가 개인의 상상력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전 자꾸 역사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네요. 물론 정사(正使)는 아니고 야사(夜思)나 잠사(潛史)쯤이라고 할까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조명이며, 인연들, 그리고 신분을 넘는 지식인들과의 만남 김병연(김삿갓), 이규경, 최한기, 신위 등). 천주교 박해와 민초들의 난까지.

저에겐 조금씩 가물가물해진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 좋은 계기가 된 책이었습니다.

작가 박범신은 첫 역사소설로 고산 김정호의 이야기를 쓰면서 “현실에 어떻게 관계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고 술회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청년보다 “늙어가면서 깊어져서 향기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은 는 "감수성을 충분히 해방시키는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이라니 왠지 그 이야기도 기대가 되네요.

작가라는 세계.

참 부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역사에 개입할 수도 있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 아름다운 연애를 꿈꾸고 있노라 대중 앞에 밝힐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작가들처럼 직접 쓰는 행위로 개입을 할 수 없는 우리 민초들은 이렇게 “읽음”을 통해 살짝 그 끄트머리의 세계로 동참을 꿈꿉니다.

어쩐지 은밀한 즐거움까지도 발견하게 되네요.

겨울입니다.

열심히 읽고 더 많은 개입을 꿈 꿀 수 있는 시간 여행의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떠나는 당신의 여행 가방 안에 담겨도 좋은 한권의 책, <고산자>였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8. 05:33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작가 공지영....

참 할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할 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때 그런 말들이 있었어요.

“오죽하면 공지영이고 신경숙이겠느냐고....”

저 신경숙과 공지영의 모든 책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

위에 적은 말, 어느 부분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한때 문학계에선 이런 말이 떠돌았드랬죠.

사실 전 공지영이라는 작가에게 좀 불만이 있는 편입니다..(제가 또 뭐라고 불만씩이나...)

깊게 들어갈 것 같으면서 그 언저리만 열심히 맴도는 느낌의 불편한 망설임, 그리고 좀 살았던 어린 시절의 과거를 자꾸 내비치며 “그래, 난 늬들하고 태생부터 좀 다르게든...”하고 눈을 살짝 내리까는 약간은 공주병적인 문장들하며, 어찌 생각하면 뻔뻔하다 싶을 만큼의 당당함이 그닥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거죠.(저의 완전 찌질한 열등감의 발동임을 어찌 고백하지 않을런지.....ㅋㅋ)

저 여자는 무슨 복에 부모 잘 만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뭔 복에 당대 잘나가는 작가, 감독, 교수들만 두루두루 남편으로 만났는지....

그냥 느낌에 손에 물 안 묻히고 곱게 자란 태가 줄줄 난다고 생각했죠.

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작가는 줄담배를 달고 살고, 머리는 기름기 동동 흐르고, 뭐 한 사나흘은 족히 못 잔 것 같은 꽹한 눈에 거칠거칠한 검은 피부...한마디로 꾀죄죄함의 전형이었는데 공지영이란 작가는 비쥬얼부터 영 작가스럽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편견을...

그런데 이 작가...

어느새 “공지영스럽다”는 트렌드를 만들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적어도 사람들은 이제 거의 아는 것 같아요.

몇 문장 읽어보고도 “아~, 이게 공지영꺼구나...”하고..


오늘 소개할 책은 공지영의 그 숱한 소설들 중 하나가 아니라 산문집의 일종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공지영식 독서노트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좋아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제가 싫어하는 건 뭘까~~~~~~요???????)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우리 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고 미디어들은 말하는데 전 이 말이 참 맘에 안 듭니다.

단지 “위녕”이라는 딸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소위 싸잡아 분류하는 건 어쩐지 참 불편하네요.

엄마가 딸에게 주는 편지라는 글귀도 좀 불편합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 느낌은....

확실히 공지영은 여우같은 작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림처럼 읽혀지는 책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대략 꼽아 봤더니 20권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고 그리고 소소한 단편들이며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중간중간 나옵니다.

이런 형식의 독서노트는,

확실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간문의 형식을 빌어서 쓴 독서 노트라....

그래서 어찌 보면 따분하고 줄거리 위주로 진행될 것 같은 책들의 소개가 마치 "storytelling"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공지영이 소개하는 책들은 이곳에서 image making 되어 입체적으로 서서히 바라보게 됩니다.(마치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그림 같다고 할까요~~ 그녀가 심지어 큐레이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강렬했던 부분들, 구절들, 그리고 그녀가 느꼈던 느낌들을 1차원적인 여과과정만을 거쳐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고 과히 전문적이지도 않아 오히려 다정하기까지 하죠.

그 다정함에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라는 단서까지 붙어 있으니 그 말캉함이 win-win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나 할까요?

확실히 작가 공지영은 여우적 육감이 발달할 것 같습니다...(한없이 부러울 따름이죠.... 이럴 땐 차라리 늑대적 육감이라도 심히 갖고 싶어진다는... 아~~~우~~~~)

책을 읽으면서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해 느끼는 제 선입견마저도 그대로 포용될 정도로 온기가 있는 글이었습니다.

사실 독서 노트...

작가 입장에서는 별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으면서 판매의 부담감 또한 없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어디까지나 벤댕이 소갈딲지를 자랑하는 제 좁은 식견으로다....)

잘 쓰면 이렇게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개인적인 기록의 출판으로 남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작가들은 한번씩 “독서노트”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지영....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낯설게 하기에 확실히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 여자의 여우같은 행보가 어디까지 갈지 사뭇 궁금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30. 05:51
 <죽도록 책만 읽는> - 이권우



죽도록 책만 읽는

지난번에 소개한 간서치 이덕무와 유사한 책벌레의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분께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다방변의 주제에 대한 책들을 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도록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책을 보면서 희망도서 목록에 상당한 책들을 추가했고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저처럼 두루뭉술하게 주절주절(?)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에센스만을 짧고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솔직히 꽤나 열등감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책이죠.

그래도 평소에 책 좀 읽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이곳에 소개된 책들을 살펴보고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는 번데기 앞에 주름잡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 계기도 됐습니다.

책의 저자 이권우!

서평잡지 <출판저널>의 편집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지냈던 사람이고 현재도 책을 통해 여전히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호모 부커스”를 자처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호모 부커스”

책 읽는 인간 존재라는 뜻의 신조어죠.(사실은 꽤 오래된 단어이긴 합니다만...)

이 말 속에는 “공유”의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독서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책 읽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 또한 “공유와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과의 생각과 감정 공유를 넘어 더 많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시작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모 부커스”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며 지독히 현실적이기까지 하죠.

어설픈 독서가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혼동을 겪게 되지만 “호모 부커스”들은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스스로 최대한 편견 없이 판단하고 평가하는 공정함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박학다식”이라는 말 속에 항상 “다독”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죠.

눈이 갖는 기억력,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기억과 지식들에 대해 차별성을 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말이죠...

사람을 참 조용히 수다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죽도록 책만 읽는>도 그런 의미에선 상당히 수다스러운 책이죠.

그런데 그게 “바글바글” 떠들며 밖으로 퍼지는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소곤소곤” 다가오는 울림이라는 게 그 차이점이죠.

무려 110권이나 되는 책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문을 펼쳤을 때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보게 되는 한 컷짜리 카툰 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글 속에 필요한 것들만 쏙쏙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글 속에 촌철살인의 문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령, “고전”에 대해 말하면서,

“고전, 제목은 알아도 정작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시작하죠.

“...... 오늘, 다시 고전을 읽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토론과 논쟁의 정신이 필요하다. 세월의 담금질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정신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을 일러 고전이라 한다. 앎과 지혜의 고갱이가 가득 쌓인 곳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곳간은 좀처럼 자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이나 의무감만으로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정도로는 권위와 명성, 그리고 오해의 더께가 잔뜩 끼인 고전의 빗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나는 고전의 문을 여는 열쇠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시대의 문제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타개책을 찾기 위한 지적 분투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질문만들기’라 할 수 있다.

질문을 만든 사람이 고전을 경전처럼 여길 리 없다. 고전의 지은이와 토론과 논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막장을 뚫고나갈 지혜를 묻고, 그 답이 현재적 가치가 있는지 토론한다. 도전적인 토론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의 사상이 안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고전의 주위를 맴도는 지은이라는 ‘유령’이 가만히 당할 리 없다.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자신의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한다고 복화술로 변호하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행위는, 그러므로 묵독일 수 없다. 제대로 읽으면 그것만큼 소란스러운 책읽기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카니발적 책읽기에 몰두하게 된다..... “

고백컨대, 

저를 완벽히 KO패 시킨 문구였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앎과 함”의 일치를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위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환상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환상에 머물고픈 욕망에 늘 빠지게 됩니다. 그게 어쨌든 일반적인 힘의 논리니까 말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그 환상을 극도의 차가운 정열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카더라” 통신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시각과 주관을 갖게 만들어 주죠.

생각해보면 정말 책만큼 누구에게나 민주적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장을 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계를 그것도 비밀 없이 송두리째 보여주죠.

“다 열어보였으니 어디 한 번 맘껏 들여다봐라!”

책벌레들을 그래서 흔히 관음증 환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책장을 커튼 삼아 훔쳐보는 책벌레들...

그러나 책을 탐하는 관음의 시선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고 고요합니다.

책을 구하고, 읽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든 과정에 대한 일종의 은밀한 흥분감이죠.

그래서 책의 자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저 역시도 기꺼이 몸을 웅크려 작은 태아가 될 용의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죽도록 책만 읽어도” 다 읽혀지지 못할 책들의 세계.

그 책들의 세계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지독히 탐욕스런 관음의 시선으로 책들을 바라보자 권하고 싶습니다.

마술사의 비밀을 아는 순간 눈속임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스스로 같은 마술사가 되는 거라고 하죠.

오늘 해리포터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자 여러분께 손 내밀고 싶습니다.

깊고 고요하고 간절하고 농밀한 관음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23. 06:31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책만 보는 바보

<책만 보는 바보>

제목만 보면 어떤 책이라고 생각되나요?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집 같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간서치(看書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요?

“간서치(看書痴)”란 말 그대로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으로 “책벌레”를 가리키는 말이죠.

조선의 역사 속에서 “간서치”라 할 만한 인물을 꼽으라면, (어디까지나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취향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정조 이산,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청장관 이덕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청장관 이덕무는 아예 자기 자신을 “간서치”라고 부를 정도로 책 속에 파묻혀 지냈던 인물이죠.

이 책, <책만 보는 바보>는 그러니까 바로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이었던 이덕무(1741~1793), 그 지독한 책벌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안소영은 청장관 이덕무가 1761년 쓴 자서전 <간서치전>을 읽고 그에게 매료되어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것도 스스로 이덕무가 되어, 역사 속의 그를 버젓이 지금의 시대 안으로 불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덕무라는 역사 속 인물이 마치 내 옆에 앉아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일생을 책 속에 파묻혀 책만 읽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생활력 없고 현실적이지 못한 무책임한 한량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덕무 그 자신은 결코 책만 보는 바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진정은 세상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길 간절히 원했죠.

그런데 이 바람은 그에겐 넘지 못할 높은 산과도 같았습니다.

바로 “서자(庶子)”라는 그의 출신 성분 때문이었죠.

“......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비참한 것은 쓰일 데가 없다는 것이다. 책만 파고들면 무엇 하나? 내 말과 글로는 세상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하는 것을. 몸을 움직여 할 줄 아는 일이 무엇이던가? 어렵게 뜻을 세웠다 하더라도 세울 뜻을 펼쳐 보일 데가 없는 나의 인생은 내내 외롭고 서럽기만 했다.....”

이덕무는 왕족의 후손이었으나 적자 혈통이 아닌 서자 혈통이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돼 후손으로 이어진 서럽고 서러운 서자라는 핏줄.

이 보이지 않는 서러운 핏줄로 이덕무의 앞길은 가로막히고, 주눅들 수밖에는 없었죠. 그때마다 그는 “두려움과 무기력감”에 빠져 괴로워했다고 고백합니다.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

그 시대에 서자가 낄 자리는 도저히 없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여 먹고살 방도를 찾아보려 하여도 양반의 핏줄이라 하여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존대를 받으며 구종을 부릴 수 있는 당당한 양반의 처지 또한 아니었죠. 그럴 때마다 그는 어머니가 물려준 보잘것없는 핏줄이 아니라, 아버지가 물려준 이기적인 양반의 핏줄이 한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책만 보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서러운 핏줄에 대한 한스러움과 어쩌지 못하는 신분에 대한 벽 때문이었던 거죠.


이서구,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소위 백탑파라고 불리우는 이덕무의 깊은 벗들입니다.

명문가의 적자인 이서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서러운 핏줄인 서자 출신이죠.

이들의 사귐은... 참 다정하고 멋스럽습니다.

아끼던 일곱 권의 <맹자> 한 질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던 이덕무를 보며 자신이 아끼던 <좌씨춘추>를 팔아 술을 샀던 7살 아래의 유득공. 우수한 성적으로 무과에 합격했으나 서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해 산 속으로 들어간 2살 아래 처남 백동수,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연구에 능했으나 쓰일 곳이 없어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던 9살 아래 박제가. 명문가의 후손으로 이덕무와는 무려 13살의 나이 차이가 있던 어린 이서구까지...

그들의 사귐에는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는 깊이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이 차이가 가장 많았던 이서구와의 사귐은 “이심전심”의 마음까지도 전해집니다.

“......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벗이라 해도, 책의 향기를 코끝으로 먼저 느끼는 예민한 후각과 책을 만질 때마다 설레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시시콜콜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서구와는 굳이 이러한 느낌과 취향을 꺼내어 나눌 필요도 없었다. 그도 역시 그러하였으므로 ...... 수십 년 동안 그와 나 사이에서 오고 간 책들은, 서로의 손대가 묻어 닳아 갔다 ......”

책을 손에 잡는 그 작은 공간이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고 말하는 이덕무. 그는 책을 읽기 위해 방에 들어서는 순간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고 말합니다. 책과 눈이 마주치는, 그 책 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까지도 온전히 벗들과 나눌 수 있었던 그가 저는 참 부럽고도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책 속에는 그에게 서러운 핏줄을 잊고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스승과의 인연도 담겨져 있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길...”을 스스로 “스승이 말씀하시길...”로 고쳐 읽었을 정도로 이덕무는 공자의 사상과 이론에 심취해 있었죠.

월식과 일식으로 지구의 자전을 설명한 담헌 홍대용.

그는 이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며 우리나라 입장에서 본다면 중국도 북쪽의 큰 땅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조선 양반들의 지나친 사대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의미심장한 말이라 할 수 있죠.

선입견을 버려야만 조선이 이롭게 변할 수 있다고 말한 연암 박지원.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고 연암은 말합니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죠.

조선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의 자손인 연암은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그것도 서자 출신인 박제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의복을 정갈하게 갖추고 인사까지 합니다.

심지어 헤어지는 자리에서 박제가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하네요.

“슬기로운 젊은이여! 부디 오래오래 사시게!”

이 두 스승은 그들을 자애로 대해줌으로써 세상 보는 눈을 바르게 열어 주었습니다. 자칫 기가 꺾이거나 흔들리기 쉬운 그들의 서러운 마음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이 글을 쓰거나 문집을 낼 때마다 일일이 읽어 보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스승들의 가르침과 격려가 있었기에 이들 서러운 서자들이 드디어 규장각 검서관이 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의 추천으로 연경사신단이 되어 연행길에 오른 이들은 탕탕평평의 정책을 표방한 정조의 부름을 받아 차례차례 대궐에 입궐하게 됩니다.

그 날의 감격에 대해 이덕무는 말합니다.

“...... 버려진 물건처럼 이리저리 구르던 우리들의 삶도 이제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만 했다. 규장각 서고에 가득한 책들 속에서 좀벌레로 늙어 간다고 해도,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자리가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세상의 빛을 향해 나온 책들처럼, 벗들과 나의 시대는 그렇게 새롭게 열리고 있었다......” 라고.

한때는 자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재능을 보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영글어 갈 무렵에는 이 세상에 태어나 무슨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지 묻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고요. 철이 들어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체념한 듯 꽉 다문 입술을 보면 서글프기까지 했다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마음껏 같이 웃어 주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한 그 물음에 성의껏 대답해 줄 수 있게 되었노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릿여릿한 뼈대와 무른 살들이 차츰 강건해지고 단단해지듯이, 품은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축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이들 서얼 출신 백탑파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깁니다.

박제가의 <북학의>, 유득공의 <발해고>, 그리고 이덕무의 아들에 의해 정리되어 세상에 나온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정조의 명에 따라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에 의해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까지...

특히 <무예도보통지>는 무예 동작 기법을 세세하게 그림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글을 모르는 병사들까지도 쉽게 따라 배울 수 있게 만든 이론과 실제가 겸비된 최초의 군사 훈련서이기도 하죠.

이렇게 세상 속으로 나온 이들은 더 큰 미래의 조선을 생각하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어질 더 나은 세계를 위하여 일생을 공헌하고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업적들의 근본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 방대한 깊이의 책읽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가 책을 통해 나눴던 옛사람들과의 깊은 시간의 공유를 이제 저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흔적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속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 흔적은 그렇게 서로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면서, 시간 속에 길을 내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네요.

시간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우리의 시간을 옛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이덕무는 말합니다. 그들의 소망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때 옛사람들은 그만큼의 사간을 더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어설픈 저의 책읽기 또한 옛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간서치 이덕무의 말처럼 어쩌면 저 역시도 조금은 이덕무의 벗이 되었다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요.

“......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 하는 벗이 되리라 ......”


*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나오는 모퉁이 그림들이 너무 예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다정하고 소담스러운 그 단정한 그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요.

이 책, 아무래도 오래오래 그리고 깊게깊게 사랑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단정한 마음을 빌어 그가 밝힌 책읽기의 이로움을 옮겨 봅니다.

1.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2.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3.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4.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나의 책읽기는 나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

오래오래, 깊게깊게 생각하게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18. 06:14
 <다산1, 2> - 한승원


 다산. 1


“나는 왜 영·정조 시대에 몰입하는가?”

늘 궁금한 부분이긴 한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미친 듯이 그 시대의 인물들과 그 시대의 역사가 좋습니다.

다산 정약용만 해도 그래요.

영조, 정조, 순조, 헌종까지 모두 4대의 왕을 두루 거친 인물이고 그 4대에 걸쳐 벼슬을 했던 사람입니다.

18년간의 강진 유배시절 동안 엄청난 분량의 책을 집필했던 사람.

그리고 조선시대 진정한 의미의 지식 아카데미를 형성했던 사람이기도 한 다산 정약용.

그에 관한 책을 69세의 노구의 작가 한승원이 펴낸다고 했을 때 솔깃했습니다.(물론 저는 또 다시 살짝 흥분모드 됐겠죠!)


먼저 이 책은,

팩션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2%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다가오는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

전 개인적으로 정약용의 정보력, 박학다식함, 여러 사람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르쳤던 엄청난 지도력, 그리고 쉼 없는 활동력 등이 늘 불가사의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이뤘던 일들의 양이 참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처럼 클릭 한번에 온갖 정보가 주루룩 나왔던 시대도 아니고...

다산 정약용은 말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책이 5천권 이상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고...

5천권 이상을 읽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5천권 이상이 들어 있어야 한답니다. 그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쟎아요.

솔직히 일생동안 5천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이해는 고사하고)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말의 의미 속에는 내 삶을 부지런하게 이끌라는 또 다른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말을 한마디 더 인용해볼까요!

“이불 속의 달콤한 맛을 꿈지락거리며 즐기는 것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세상을 반만 살게 하는 악귀다.”

정말 이쯤은 돼야 500여권이 넘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겠죠.


이 책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귀양살이를 하게 된 다산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회상과 꿈의 형태로 과거의 이야기와 바램들이 여러 개의 액자소설처럼 곳곳에 끼워져 있어 재미를 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자학을 읽은 다산은, 성년이 된 다음에는 천주학에 심취했지만 나라에서 금하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천주학을 버리고 정학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시기했던 노론 벽파들은 천주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여 순교한 그의 셋째 형 정약종을 근거 삼아 둘째형 정약전과 그를 태형에 처하고 유배를 보냅니다.

노구의 몸으로 유배를 떠나는 두 사람은 그 길로 다시 만나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죠.

다산에게 둘째형은 멘토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다산은 책을 완성하면 둘째형에게 보내 감수하게 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첨삭을 전해 받기도 했을 정도니 그 둘의 애틋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그런 둘째형이 유배 중 사망하게 되고 역시 유배중이라 차마 찾아가지 못하는 정약용은 애끓는 탄식을 하게 됩니다.

형제이면서, 스승이며 아비이기도 했던 형.

그런 형을 잃은 그의 상실감과 절망이 읽는 동안 가슴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애뜻한 혈육의 정은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도 다산은 자식들에게 살뜰한 편지를 자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게으르고 나태한 자식들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했죠.

닭을 키운다는 아들의 말에 “양계”에 대한 체계적인 책을 만들어 보라며 그와 관련된 자세한 조언까지 하는 걸 보면 그의 박학다식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정약용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종교적인 표현은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길을 그야말로 지극한 경지까지 스스로 만들어 간 사람이기에 위대함 그 이상을 느끼게 되는 거죠.

제게 있어 다산 정약용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는 지도 모르겠네요.


“예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닌 말은 입에 담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이 말은 한사코 예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잠언인 것 같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임금은 배다. 임금도 잘못하면 백성들이 그를 정치하고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나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러한 나태하고 편협한 이기심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참 다정하다는 느낌입니다.

멀게만 생각되는 역사 속의 인물 정약용을 내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글이 다정할 수 있다는 거...

저처럼 또 다는 누군가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네요. ^^


* 참고로 정민의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과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권이 있습니다.

앞의 책은 분량도 꽤 되고 좀 전문서적의 느낌이라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조목조목 읽다보면 정약용의 신비감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듭니다. 심지어 읽는 이를 진정한 정약용 마니아로 환골탈태시키는 매우 위험한(?) 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에 소개한 책은 2권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덕일이라는 작가가 쓴 책들은 개인적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참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입니다. 역사의 신비감과 아련함이 내 옆의 현실감으로 바짝 다가오는 느낌이죠.
혹 관심이 가신다면 한번 읽어보심이......
(후회는 없을 것임을 확실히 보증하는 바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