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8. 26. 13:37
<다이어트의 여왕> -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이 쉬크하고 엣지(?)한 두 번째 칙릿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미 하나는 정말 제대로 있습니다.  뻔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도 제목에 책의 내용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고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죠.

전작처럼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스타일>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이었는데 <다이어트의 여왕>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네요.


정연두!

28세 꽃다운 나이로 신장 173cm (여기까지는 참 부러운 대목입니다), 몸무게는 85kg, 조금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퍼플>의 셰프.

어느 날 그녀는 3년 동안 사귄 애인 하정민(56kg)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습니다.

뭐, 실연의 고통을 굳이 폭식으로 달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별 통보 후 그녀의 몸무게는 0.1톤에서 7kg 모자란 93kg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녀의 “요리사”라는 직업과 “허기”(어떤 의미에서 “체중”)에 대한 논리가 참 정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사는 절대로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이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친구 김인경의 강력한 권유로 <퍼플>도 그만두고 1억원 상금이 걸려있는 서바이벌 리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8주간의 합숙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만은 질병이자 전염병이다”

첫날부터 14명의 육중한 경쟁자들이 들은 첫말은 전혀 달콤하지 않은 살벌한 말이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미혼모 박순옥, “단비”라는 이름에 맞은 사람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는 182cm, 121kg의 42세 최고령 참가자 최단비 여사, 운동할 때조차도 구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악녀 캐릭터의 구두디자이너 송준희 등등....

눈물 많고, 사연 많고, 다른 무엇보다 특히나 살 많은 14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이제 A, B 두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션의 결과가 나오면 패한 팀에서 스스로 탈락자 1명씩을 선정하게 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팀원을 비난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팀원에게 설득해야만 합니다.

“언어”와 “감정”의 전쟁터인 셈이죠.

어쩐지 “입”이라는 신체 부위가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요리사의 입”과 “작가의 입”

왜 작가들이 미각과 탐식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창조하는데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발설 혹은 폭로의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신체기관이 바로 “입”일 테니까요.

입의 말을 손으로 대신 말하면서 미(美)를 탐하는 작가와 손의 감각보다 입의 감각으로  미(味)를 탐하는 요리사....

이쯤이면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로와 발설, 비방과 힐난의 긴 8주간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연두가 1억원의 여왕이 됐을까요?  8주간 총 48kg 살을 뺀 기적을 만든, 늘 모자를 쓰고 다녔던 최고령 “최단비” 여사가 최종 우승자로 뽑힙니다. 그리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진짜로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정연두는 “최고의 스타. 정연두 셰프 입성! <다이어트의 여왕>이 마련하는 최고의 만찬을 즐기세요!”라는 광고간판과 함께 레스토랑 <퍼플>의 부주방장이 되어 다시 주방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매스컴의 효력으로 레스토랑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벼락 스타가 되어버린 정연두 그녀에게서 점점 이상징후가 보이는 시작하네요.

점점 후각이 예민해지더니 급기야 야채도, 고기도, 그 무엇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내는 비명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수면제와 알약에 의지하며 요리를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이제 늘 허기에 지쳐있습니다.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던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칼을 쥔 손가락 열 개를 베어 뼈까지 와작와작 다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내 몸을 베어 먹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체중이 늘어날까?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나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써는 대신, 상상 속의 내 몸을 씹고, 분해하고, 으깨며, 요리했다. 나는 내 살을 잘라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몸속에 존재하는 지방과 살덩이들을 다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 위치는 분명 바뀌어 있었다고....


93kg -> 79kg -> 52kg -> 47kg -> 41kg

173cm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몸피는 계속 말라갑니다.

미각까지 상실한 그녀는 결국은 <퍼플>에서 쫒겨나기에 이르죠. 맛을 느낄 수 없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는 결코 진실성이 담기지 못할테니까요. “신경성 식욕부진증”, 그녀는 이제 거대한 “거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은 이제 그녀에게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녀의 “혀”는 드디어 “가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요요현상에 대한 두려움.

그녀의 텅 빈 위는 금기야 그녀의 모든 생활까지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나씩 소위 까발려지는 참가자들의 진실들.

쇼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송준희, 우승자 최단비 여사는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된 남자모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터넷에 유포되는 모델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정연두의 사진들과 무수한 댓글들....

그녀를 포함한 모든 괴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

그녀는 어느덧 뚱뚱했던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의 미덕들, 긍정성, 명랑함, 사랑과 동경같이 빛나는 것들을요. 그뿐만 아니라 처음엔 수첩을, 다음엔 핸드폰을 그리고 삼 년을 지켜보던 고양이와 직장, 몇몇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녀는 모두 다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이장애클리닉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거식으로 인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정연두씨는.....말하자면 이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모든 거식증 환자들처럼,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먹지 않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정연두씨는 기억이 돌아오는 것보다, 다시 뚱뚱해지는 게 훨씬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바보 같고, 멍청하고, 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도요.

성공적인 치료로 50kg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정연두는 말합니다.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라고....

결국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잃었던 미각을 찾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잃었던 귀를 잃었던 시선을 찾는 게 훨씬 더 필요했던 거죠.

드디어 그녀도 말하네요.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온 마음을 열고서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그녀, 정연두.

어느날 조카와 함께 찾은 서점에서 한 사람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남자, 하정민이 불과 몇 개월만에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 서점 안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정민이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한 연애를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고..... 뚱뚱해졌지만 활기차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제야 끝나지 않았던 정민과의 연애가 진짜로 끝나게 됐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됩니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삶의 “결핍”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도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허기”를 적당히 잘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 삶의 여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폭식”과 “거식”의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만찬의 자리.

모든 비밀들이 하나하나 폭로된다고 해도 이제 그녀는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훨씬 끔찍한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또 다른 진짜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네요.

그래서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 어딘가에 달린 지퍼만 찾아 쭉 열면 지금까지의 헌 몸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새 몸이 눈앞에 펼쳐질거라고....

그러나 이런 “환상” 속에는 여지없이 “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환상”은 부디 “환상”속에 남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치열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네요.

세상의 모든 결핍에 대응할 준비, 이쯤이면 당신은 되셨겠죠?

자, 이제부터 현실로 출발합니다.


"Are you ready~~?"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17. 05:49
<도가니> - 공지영 

 

도가니

 

아직도 너무나 열혈청년(?)인 이 시대의 슈퍼우먼 아줌마 작가 공지영!

(왠지 공지영이란 작가 앞에는 이런 버라이어티한 소개말이 꼭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또 한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참 많이, 그리고 쉬지 않고 각종 책을 출판하는 그녀의 저력(?)은 일단 누구라도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2008년 11월 26일부터 2009년 5월 7일까지 Daum에서 연재됐던 인터넷 소설 <도가니>는 다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출판돼 지금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때 “공지영 신드롬”이란 말이 있었더랬죠.

마초적이며 돈키호테같은 그녀의 글들을 잘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공지영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편한대로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아무렇게나 사는 걸 반성하게 만드는 착한 소설이라는 뜻이 담긴 이 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라고...


이 소설의 출발은 2005년 TV에서 방영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고발이 바로 이 소설의 시작이죠.

우리게 알게 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범한 자 혹은 평범한 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분명 흥분이나 감격 같은 게 마구 들끓는 “도가니”같은 사건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 거구요.


늘 안개에 쌓여 있는 몽환적이고 희미한 도시,

그래서 가끔 현실조차도 몽롱하게 흐려보이는 도시, 무진(霧津)!

안개 속에 농밀하게 섞여있는 비밀스러움, 숨김, 비도덕적이고 불쾌한 냄새들. 책의 표현대로 야만의 냄새를 풍기는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학교로 한 남자가 부임합니다.

아내의 인맥을 붙잡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불쾌감 가득한 무진시 자애학원에 기간제교사로 내려온 강인호.

학교발전기금으로 작은 거 5장을 당당히 요구하는 행정실장(그것도 다른 사람이면 큰 거 한 장을 받아야 하는데 당신 아내 덕에 그 반만 받겠다는 엄청난 은혜를 내리면서 말이죠), 청각장애인 위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수화를 거의 하지 못하는 33명의 교사들, 그리고 첫날부터 느껴지는 학생들의 눈에 담긴 노골적인 노기와 분노들.

불과 한달전 한 여학생이 운동장 끝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어제는 어린 남학생이 달리는 기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한 곳.

그 아이의 주머니에선 교장 이강석과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의 이름이 적힌 피묻은 쪽지가 발견됩니다.

그러나 두 사고 모두 짙은 안개로 인한 실족사로 처리되죠.

중2 담임으로 부임한 강인호와 반 아이들과의 첫 만남,

분노로 가득한 학생들 중 한 아이가 망설이다 필담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누가 그애를 죽였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퇴근길에 여자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명확하지 않은 비명소리....

학교 관계자는 강인호에게 말합니다.

“우리와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다른 민족”이라고요.

그러면서 거짓말도 그들 민족의 풍습이라고 덧붙입니다.

자, 이 학교에 뭔가가 있긴 한 것 같네요.

강인호. 이 사람은 이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거의가 다 그렇듯 그저 몇 달만 이곳에서 버텨내면 서울에 번듯한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 선택을 해야겠네요.

모로는 척 외면할 것인가, 아니라면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런데 중요한 건, 상황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분명한 “개입”의 의지를 표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했든 혹은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됐든 간에 말이죠.


자애(慈愛)학원!

학교의 이름과는 달리 이 학원의 실상은 기숙하고 있는 학생들을 철저히 자해(刺害)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것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치지 못하는 청작장애인들을 상대로 야만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이 자행되는 그런 곳이죠.

참 더럽고 추잡한 이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학원의 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두 사람은 쌍둥입니다), 그리고 생활지도교사 박보현, 이 세 사람은 학교의 학생들을 초등학생 때부터 성폭행해온 인물들입니다.

청각장애가 지적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에겐 심지어 한 번 관계할 때마다 과자를 사먹으라며 천원씩의 돈을 주기도 했죠.(완전한 형태의 매춘이죠)

심지어 어린 남자 아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인호와 무진시 인권운동센터 서유진은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을 고발하고 매스컴에 알리는 듯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합니다.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진술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구체적이며 너무나 끔찍하기만 하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 점쟎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이건 누군가의 음모라고.....”

누군가의 음모?

이 표현만큼 현실성 없고 막무가내인 말도 없을 겁니다. 이 단어 자체가 그저 “소설”이죠.

그런데 이 소설같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음로론”이라는 그럴싸한 테두리를 달고서요...

음모론까지 나왔으니 또 누군가는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의 해묽은 약점을 들춰내기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내겠군요.

“내가 널 이렇게까지 해집어 놨는데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 번 보자”

이 소설 <도가니> 속엔,

지금 자행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추잡한 일들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불쾌하고 더럽고 추잡한 인간의 모든 행태.

단순히 장애인의 성적학대, 성폭력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죠.

소유한 자의 야만성, 소유하지 못한 자의 야만성.

밟는 자의 야만성, 밟히는 자의 야만성.

숨기는 자의 야만성, 드러내려는 자의 야만성.


작가 공지영은 이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거짓말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전부 진실을 말해야 무섭지 않는 세상이 될텐데 진실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그게 몹시 게으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주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되죠.

진실을 참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결국 하나씩 지쳐서 포기하게 되고 급기야는 잊는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에게 “인권”을 외면했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습니다.

“인권”이라는 거, 어쩌면 스스로가 가진 인간의 “야만성”을 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닌지...

“학원 원장의 인권과 장애아들의 인권이 같은 줄 알았어요?”

어쩌면 우리 내면의 일부도 이 말에 분명 동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이제 어떻게 하렵니까?

모른 척 외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개입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이 책의 결말은 확실히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펄펄 끓어오르는 <도가니>가

지금 여기서 당신을 선택을 기다립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3. 06:35
 <스타일> - 백영옥


스타일
 

"Hyorish"와 “신상녀” , "Rainism"

한때 우리나라 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죠.

<스타일>이라.... 참 스타일 안 따라주는 제가 말하기엔 뭣 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잠시 쉬면서...

(사실 저의 스타일이라 함은 “럭셔리”는 꿈도 못 꾸는 “없셔리”에, 실용이라 박박 우기는 “싼티” 패션인 관계로.... 근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이러기 정말 힘듭니다...)

 

혹시 “칙릿(chick-lit) 소설”이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젊은 여성”을 뜻하는 “chick"이라는 단어와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신조어인데요, 영미 문화권에서 시작된 젊은 여성을 겨냥한 일명 “꽃띠 문학”을 지칭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칙릿 소설의 시작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그 후에 정말 물밀듯이 쏟아졌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워커홀릭>, <쇼파홀릭>...

유행에 뒤처지면 혈압 무지 올라가는 우리나라도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달의 바다>, <아내가 결혼했다>, 오늘 소개하는 <스타일>까지 칙릿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이 상당히 많이 출판되어 있답니다.

공통점을 꼽자면 일단은 무지 재미있다는 사실입니다.

내용 자체는 좀 가벼운 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문학적 흐름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네요.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여자 온달 신드롬”의  현대판 해석이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론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killing time" 소설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죽이기에 적당한 내용이라는 뜻이죠.(절대 시간 낭비의 개념은 아닙니다.... 저 역시도 기본적으로 간을 낭비하는 만드는 책은 세상에 없다는 주의거든요.)


패션지 「A 매거진」 여기자인 서른 한 살 이서정.

그녀는 직장 생활 8년차로 예금도, 보험도, 그 흔한 펀드에 애인 하나 없는, 현재 고민사항은 44 싸이즈 스키니진을 입고 그 체험담을 써야 하는 실로 엄청난 과업 성취를 주문받은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뭔 놈의 여자들은 전부 44에 환장을 했는지 본의 아니게 44 싸이즈의 강한 압박에 그녀는 괴로운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죠. (패션 잡지에 대해 너무 실감나게 그려 대단하다 했더니 실제로 작가 백영옥은 그쪽 일을 한 전과(?)가 있네요.)

거기다 전설적인 요리 평론가 “닥터 레스토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부여 받은 상황입니다.(제 발에 제가 넘어진 꼴로다.....)

음식칼럼 하나로 유명 레스토랑들을 초토화시킨 이 비밀스런 요리평론가는 매번 바뀌는 메일 주소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서정은 '닥터 레스토랑'의 이름은 커녕, 나이도, 주소도, 성별조차 모르고 있는, 일명  벽 보고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팡당한 시츄에이션에 그야말로 내던져 있습니다.(아~~ 죽일 놈의 밥벌이여~~~!!)

거기다 현대 직장 여성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인 남자도 역시 등장해 주십니다.

애매모호한 선을 오고가는 직장 선배 김민준, 그리고 오래전에 선을 보기로 한 자리에서 만나보지도 못하고 퇴짜를 맞힌 의사였던 박우진이라는 남자까지...(이 남자 은근 신비주의 풍깁니다.)


<스타일>은 한마디로 젊은 세대들의 감각과 욕망에 대한 가벼운 터치의 소설입니다.

패션, 영화, 음식, 명품, 다이어트, 사랑, 등 다양한 소재들을 숨가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쏟아내고 있죠. 그 속에 유행처럼 수시로 바뀌는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욕망들 또한 빠르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스타일>에 등장하는 이런 다양한 욕망과 욕구들은 또 다른 욕망들과 만나면서 때론 심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화해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휘둘려야만 하는 현실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의 갈등, 명품에 대한 소비 욕망과 빈곤층에 기부금을 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 44사이즈의 스키니 진을 입고 싶은 마음과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계속해서 이런 다양한 욕망들과 갈등하게 되죠.(뭐 이런 것도 갈등꺼리가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결단코 갈등꺼리가 된다고 그것도 충분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갈등의 가장 오래고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오해와 진실 사이의 갈등이 아닐까요?

근거 없는 소문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또한 근거 없는 소문에 의해 상처를 받고, 오해가 쌓여 진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갈등.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인적인 루머와 외적 욕망, 피상적 인간관계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죠. 모두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말입니다.

주인공 이서정은 그러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엔 현실 도피를 택하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녀는 결심하죠. 자신의 삶과의 화해를...

자신이 주변 상황들과 인물들에 대해 화해를 시도하자 이서정의 현실도 더 이상 그녀를 고달프게 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사람들과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 셈이죠.

진짜 관계라...

비록 stylish한 유행처럼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관계일지라도 그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면 어쩌면 유행 그 이상을 만들어 내게 되지 않을까요?

서정도 진실 된 삶이 사실은 진실이 사라졌다고 믿은 자신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겁니다. 진짜 인생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바로 그 곳에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게 일명 죽이는 요즘의 “style”이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뭐 “Hyorish"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 분명 ”stylish"한 소설임에는 맞는 것 같네요...^^


*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거 또 드라마로 만들어 지겠구나” 했는데...

  역시나 발 빠른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지난 주말부터 방송을 시작했네요 

  김혜수, 이지아, 류시원 주연...
  이들이 어떤 stylish한 드라마를 만들어갈 지 자뭇 궁금하기도 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30. 06:32


<친 구> - 스탠 톨러


친구

 


금방 읽힐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친구>라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처세나 경제 관련 부분엔 영 문외한인지라 이런 내용의 책은 손에 잘 잡지 않는 편이었답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읽기 시작했죠.

그런 책들은 단지 선택된 소수의 사람의 삶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딴 나라 이야기 같다고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한권씩 읽어가면서 분명히 깨달은 건 그 책들 역시 내게 도움을 주는 내용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책은 제겐 일단 다 재미있고 신비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요.

예전에 제 꿈은 종로서적 직원이 되는 거였습니다. 맘껏 책을 읽을 수 있을 거고, 싸게 책을 살 수 있을 거란 정말 순진한 생각을 했던 때였죠.^^
그러나 이제 그 꿈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시겠지만 제 유토피아였던 종로서적이 오래전에 없어진 관계로..... (서점이 도산될 때 마다 마치 제 일부도 떨어져나가는 것 처럼 섬뜩하게 아픕니다....)


시애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 조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인재며 하는 일마다 놀라운 성과를 이루고 있죠. 지금도 프로젝트를 거의 성공시켜 22만 달러의 성과금이 지급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호사인 사랑스런 여자친구도 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처음과 다르게 왠지 어긋나는 것 같고 동료들은 은근히 그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는 축하를 나눌 친구도, 동료도, 애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죠.

성공에 도달하면 도달할수록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조는 우연히 '맥스 플레이스'라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자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 '시애틀'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경쟁사회에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친구'의 존재란 어떤 의미일까요?

'행운의 절반은 나의 노력으로부터 오고, 행운의 다른 절반은 친구로부터 온다'

어쩌면 너무나 교과서적인 내용의 책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교과서라는 건 기본을 알려주기 위한 “지침서”라고도 할 수 있쟎아요.

이 책은 냉혈인간 조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길, 친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들 하나하나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소중한 과정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주 교과서적으로요. ^^ (이 말이 전 맘에 듭니다. 이 책에서는요...)


이 책은 친구란 커피와 같다고 말합니다.
같은 원두라 해도 어떤 비율로 브랜딩 하는 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는 것처럼 서로 어우러짐으로써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 결코 누구라도 혼자서는 충분히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해 줍니다.
내 잃어버린 멘토를 찾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들기도 하죠.


믿었던 직장에서 쫓겨난 조는 그러나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그는 과거의 모든 사람들을 True Friend로 다시 만나게 되고,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True Friend로 만나게 될 것임을 저 또한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항상 “멘토”만을 바라고 기다렸던 건 아닐까?

누구가 나를 이끌어주길... 그래서 나를 좀 발견해주고 그리고 나를 좀 만들어 주길...

한번도 내 자신이 멘토가 될 생각은 진심으로 못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럴 만한 재능이나 능력, 배려심도 아주 심하게 부족하지만 그래도 멘토를 기다리는 사람이기보다는 멘토가 되기 위해 애써보는 사람이 되보고 싶다는 소망을 조금씩 품게 됩니다.

멘토와 멘티의 계속되는 멘토링....^^

모두를 위한 괜찮은 꿈이 될 것 같아요...


문득 제 멘토이자 친구이기도 한 분이 생각나네요.

올해 벌써 50이 되신 분인데 제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입니다.(나이를 지금 따져보고 저 순간 놀랐습니다.... )

함께 차 마시면서 4~5시간 정도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분이죠.

그 분과 이야기를 하면 제 자신이 참 풍요로워 지는 걸 느낍니다.

전 그 분에게 어떤 멘티였을까요?

형편없는 수다쟁이로 기억하진 아닐 거란 확신이 드네요.

왜냐면 그분은 제 멘토이시니까요?

모든 친구의 시작은

“믿음”...
바로 거기서부터 일테니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7. 06:25
 <메신저> - 마커스 주삭


메신저


마커스 주삭!

2008년 <책도둑>이란 2권의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상당히 새파랗게 젊은 작가! (고백컨대 개인적인 시기심 엄청 심난하게 들어있습니다)

순서가 좀 많이 뒤바뀌긴 했지만 <책도둑>보다 먼저 쓴 그의 책 <메신저>가 뒤늦게 번역돼  우리나라에 소개됐네요.

<메신저>라....

제목에서부터 이미 너무 많을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문득 걱정부터 앞섭니다.

“어라! 이 사람, 도대체 메신저라는 제목을 이렇게 대놓고 정면에 내세우고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걱정은 역시나 쓸데없는 기우였습니다.(그리고 이 부분에서 한 번 더 개인적인 몹쓸 놈의 시기심 등장합니다....)

재미! 

여기서 개그콘서트 달인 김병만의 말투를 잠시 빌리렵니다.

“재미요? 그거 안 읽어 봤으면 말을 마세요~~”


에드 케네디.

19년 동안 내내 별 볼일 없이 오히려 한심의 축에 더 많이 몸을 담그고 살아온 불법 택시 운전사를 이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더불어 소위 노는 물이 같은 세 명의 절친들까지도요.

2명의 남자 친구들 리치, 마브, 그리고 1명의 여자 친구 오드리(비록 일방통행이긴 하지만 에드가 짝사랑하고 있는 오랜 친구랍니다 ^^)

우연히 은행 강도를 붙잡아 졸지에 잠시 동네 우상이 된 에드는 어느 날 우편함에서 세 개의 주소가 적힌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 한 장을 받게 됩니다.

별 볼일 없던 에드가 메신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네요.

카드에 적힌 주소로 찾아간 에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될 세 명의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게 됩니다.

밤마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는 남자와,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남편 지미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노년의 밀라, 그리고 매일 아침 맨 발로 달리기를 하는 소녀 소피까지...

어쨌든 이 세 명에게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에드. (그 과정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한다면 좀 얄미울까요? 그래도 그리 하렵니다... ^^)

왠지 모를 평온함과 행복감에 잠깁니다.

매일 밤 엄마가 아빠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딸 안젤리나가 어느날 에드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우릴 구해주러 왔나요? 노력은 해줘서 고마워요”

애드가 첫 번째로 전달한 메시지는 아마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모든 "노력",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집으로 돌아온 에드에게 또 다시 클럽 에이스 카드 한 장과 짧은 편지가 건네집니다.

“고향의 돌에게 기도하라”

에드는 이 일에 선택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소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이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점점 인정하게 되고 결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렵게 찾아낸 “고향의 돌”에 적혀 있는 세 명의 이름.

토마스 오라일리 신부의 텅 빈 성당을 사람으로 가득 찬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아이스크림 하나로 생계에 지친 어린 어머니 앤지 카루소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리고 비록 온 몸에 멍이 들긴 했지만 개빈 로즈의 금이 간 형제애를 회복시키는데도 성공합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관심"이었을까요?


세 번째 카드인 스페이드 에이스도 에드를 찾아 왔네요.

역시나 3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작가들 이름이네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에드는 책 제목과 책에 표시된 페이지를 연결해 드디어 세 개의 주소를 알아냅니다.

이 메시지 안에는 어쩌자고 에드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네요.

살짝 금이 간 부분을 애써 외면하며 지내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

“왜 날 그렇게 미워하세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널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거든. 넌 여기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이 구질구질한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죽게 될까봐 싫었던 겁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말이죠.

망연자실해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한 마디 말을 더 남깁니다.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는 거야”

세 번째 메시지는 이해를 통한 "감사"였던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힘들긴 하겠지만 에드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결국은 감사하게 될 거라는 걸 믿습니다. 다른 두 명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에드는 혼자 생각합니다.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예요.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먼저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다음에 떠날 거예요.”라고...


네 번째 카드, 에드의 손에 남겨진 하트 에이스에는 세 개의 영화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옷가방>, <캣 벌루> , <로마의 휴일>

어쩐지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 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배우의 이름이 바로 에드의 별 볼일 없는 세 명의 친구들 이름과 일치합니다.

영화 순서대로 리치, 마빈, 오드리까지...

이제 에드는 순서대로 이들의 메신저가 돼야만 합니다.

늘 함께 너저분한 방에 모여 허접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

항상 너무나 친하기에 잘 알고 있었다고 내내 착각했던 친구들에게서 고백되는 "진실"들.

그러네요. 세상 모든 사람에겐 누구나 비밀이 한 가지씩은 있다는 거.

그 비밀을 폭로가 아니라 고백해야만 비로소 진실이라는 자유와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거.

어쩐지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이제는 우정 그 이상의 울타리를 얻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에드는 이제 마지막 카드가 될 조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길 세 명의 사람은 과연 누가 될지....

그러나 전달 된 마지막 카드 조커에는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3명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주소만이 쓰여 있습니다.

“시핑 스트리트 26번지”, 바로 에드 자신의 집 주소죠.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는데 이 이야기는 이제야 진짜 시작되려는 것 같습니다.

에드는 과연 마지막까지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에드의 집,
한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준비했다며 그 남자는 에드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런 건 네가 평범함의 전형이기 때문이야.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 아냐”

에드는 묻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는 대답합니다.

“계속 살아, 에드! 책만 여기서 멈출 뿐이야”

소설에 나오는 대사 치곤 꽤 독하네요.

그러나 이 책이 환상 혹은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길 당부드립니다.

왜냐하면 에드가 받은 마지막 카드 조커는, 사실은....

에드드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도 전달된 메시지니까요.

자, 지금쯤이면 당신은 에드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준비가 되어있다면 당신이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과연 무얼 품고 있을까요?

이쯤 되면 저 역시도 당신이 받았을 그 메시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0. 06:21
 <추락> - J.M. 쿳시


 추락


지적이면서 끔찍하게 치열한 책을 만나게 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나면 정말 미칠 정도로 그 내용 속에 빠져들게 되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다시 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추락>이 바로 그런 충격을 안긴 책입니다.

오싹하다 못해 머릿속까지 서늘해지는 느낌.

J.M. 쿳시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게 도무지 억울하고 속상해서 화가 다 날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소설의 원 제목은 <치욕>입니다.(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왜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역가 왕은철이란 분이 작가와 합의해서 제목을 고쳤다고는 하는데 “치욕”이라는 원제가 더 책의 내용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J.M. 쿳시!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로 알려진 사람!

2003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96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플리처상보다 더 권위 있다고 알려진 부커상을 그것도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겠다는 전례를 깨고 세계 최초로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쿳시가 수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이후의 만찬장에서도 그의 자리가 비어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선택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네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은 아이스 피겔로 얻어맞은 느낌"이라고....

누군가는 또 말합니다.

"심오한 정치의식을 지니면서도 모든 단어들을 아름답게 조합하는 작가"라고요.

그의 글은 비록 이 책이 처음이긴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은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그 에너지는 때론 “파렴치”한 욕망의 형태로, 때론 걱정 가득한 “부성애”의 마음으로, 때론 비난과 욕설, 그리고 원망과 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살아 있기에 인정해야 하는 혹은 살아 있기에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 안에는 그런 살아 숨쉬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글의 위대함이란,

그 안에 살아온 시대가 거짓 없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균형과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품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겁니다.

J.M. 쿳시, 이 사람의 글은 그래서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50을 넘긴 “데이비드 루리”.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대학교수 루리는 스무살 제자 멜라니와 충동적인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함께 합니다. 결국 멜라니 부모의 고발로 진상위원회가 열리게 되고 루리는 추문의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죠.

사과문 발표를 강요하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 루리는 결국 대학을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농장에 잠시 머무르게 됩니다.

루리는 말합니다.

“내 사건은 욕망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어떤 동물도 본능을 따랐다는 것 때문에 벌을 받게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좀 불편하고 파렴치하기까지 합니다.

책 제목 그대로 욕망대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추락상을 보여주고 있죠.

이 루리라는 남자의 욕망은 비난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당함과 이유 있음에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욕망에 따라 살고 있음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잠시 가면을 쓰고 기다리라는 주위의 권고조차 거부할 정도로요.

딸의 농장에서 함께 지내던 루리에게,

어느 날, 3명의 흑인 남성이 딸을 집단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일로 급기야 딸 루시는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자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치욕”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단지 추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게서 생명이 시작된 딸에게 일어난 사건은 “추락”을 넘어 “치욕”으로 다가옵니다.

이 사람, 이 치욕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나갈까요?

백인 지배가 종결되고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도 지금 혼란과 변혁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흑백갈등이 단순히 정권의 교체만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겠죠.

어쩌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희생과 포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릅니다.

흑인지배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백인의 선택,

만약 당신이 그 세계를 선택했고, 선택한 그 세계에 머무르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추락도 혹은 어떤 치욕도 감당할 자신이 과연 있을까요?

살아가는 게 욕망의 문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흑인들의 땅을 떠나라는 아버지에게 딸은 자신의 선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좋은 지점일 거”라고...

딸 루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걸,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걸 배우겠다고 말합니다.

재산도, 무기도, 권리도 위엄도 그 무엇도 없는 본질에서부터 출발하겠다고요.

아비는 딸에게 묻습니다.

“넌 그 아이를 사랑하니?”

딸은 말합니다.

“아니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것에 관한 한 모성을 믿어야지요. 아버지,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작정이에요. 좋은 엄마이자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 아버지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보세요“

딸은 지금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믿음. 그들이 시작할 때 반드시 지니길 바라는 그 믿음에 대한 묵시론적 바램의 표현이죠.

불안의 시대면 여지없이 나타나 점점 커져만 가는 틈.

그 틈을 매울 수 있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 그 하나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와 한 세대 사이에는 커다란 장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장막이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해서 이미 내려진 장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장막을 내렸는가에 대한 진상규명 탁상공론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장막의 끝을 잡아야만 하겠죠.

다시 끌어 올리든, 힘껏 끌어 내리든 말입니다.

지금 스스로 추락의 시대, 치욕의 시대를 산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직하게 그 질문의 방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견딜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당신의 치욕은 결코 당신을 추락으로 이끌진 않을 거라는 걸 믿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13. 05:56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오랜만에 유쾌, 상쾌, 통쾌한 소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뒷맛은 좀 씁쓸하네요.

김별아의 <미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신경진의 <슬롯>, 백영옥의 <스타일>에 이어 제 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소설입니다.

사이코패스, 약물중독, 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 등 다양한 이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곳을 굳이 방문해주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기는 여러분의 정신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치료하는 수리 희망병원입니다.

네, 꼭 직접적으로 말해달라면 정신병원, 맞습니다.

맨 정신으로 이 미친 세상을 어떻게 제대로 살아가느냐 반문한다면 대략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 모두를 싸잡아 정신병동이라고 하면 멀쩡하다고 우기고 싶은 우리네 신세가 좀 거시기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두 남자를 소개해야겠네요.
부디 함께 건강한 친목을 도모하시길(특히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문제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25살 동갑네기 두 사람은 바로 류승민과 이수명 되시겠습니다.

일단 6년의 정신분열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 분야에는 그래도 나름 베테랑에 해당되는 이수명, 18살에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가위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이발조차 거부하는 일명 장발의 “미쓰리”, 재벌가의 숨겨진 아들로 유산문제에 얽혀 이복형제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 수용된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페러글라이딩 조종사 류승민.

뭐 그닥 정이 가는 커플 조합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문제적 인간 둘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입니다.

이수명은 그런데로 수리병원의 환경에 적응하며 소위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에 속합니다. 그런데 501호 동거인 중 한명인 승민이 입원 첫날부터 탈출을 시도합니다.

매번 그렇게 실패를 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자꾸 사고를 치네요.

게다가 급기야 수명까지 자꾸 얽혀 경고만 늘어갑니다.

경고 네 번이면,
그 다음은 바로 OUT!  (젠장! 저 인간 미친 거 아냐????)

거듭되는 탈출의 시도, 그 끝은 보호실에서 갇혀 반인반수가 되어 돌아오는 약물폭격입니다. 초점 잃은 눈동자, 부글거리는 하얀 침,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는 두 다리와 함께...

승민은 궁금합니다.

저 또라이는 왜 저렇게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건지....

그러다 알게 되죠.

승민이 원하는 건 단지 살고 싶다는 소망 그 한가지뿐이라는 걸.

그리고 그에게 산다는 건 자신의 인생에서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요.

승민은 망막세포 변성증으로 조만간 눈이 멀 운명입니다. 그는 자신의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마지막으로 페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다는 소망만 있을 뿐입니다.

볼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다시는 날 수 없다는데 대한 분노가 더 컸던 승민.

자신이 좋아하는 그 하늘에서 눈이 멀고 싶다는 단 하나의 소망!

그것은 승민의 본능이자 의지였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운명을 상대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가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조용히 적응하며 살려고 하는 수명은 결국 결심을 합니다.

저 또라이를 탈출시켜야 겠다고....

승민을 탈출시키면 자신은 보호실에서 입에 개거품을 물고 깨어나겠지만 그래도 시도하기로 작정합니다.

치밀한 계획까지 세웁니다. 열화와 같은 동료 및 일부 직원의 도움으로....

원래 계획과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승민 뿐만 아니라 수명까지도 수리 희망병원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병원에 들어온 지 딱 100일째 되는 날에 말이죠.

탈출에 성공한 두 사람.

승민은 감춰둔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날기 위해 수리산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 헤어집니다.

다음날 승민의 행방은 묘연하고 수명은 수리산 아래에서 그대로 붙잡힙니다.(딱히 도망칠 생각도 없었지만....)

자살방조죄에 폭행감금(탈취한 차의 운전수)의 죄명을 추가로 달고요...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합니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갇혀서 미쳐가는 자가 미쳐서 갇힌 자에게 말합니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라고...

어쩐지 이 질문, 참 섬뜩합니다.

그 질문을 들은 미쳐서 갇힌 자가 생각합니다.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저 자식이 ‘존재의 징표’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나는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오래전 “여기”와 “거기”의 경계를 놓아버린 유령!

꿈을 꾸는 게 무서운 사람도, 현실을 사는 게 무서운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꿈속의 유령이든, 현실 속의 유령이든,

모든 건 “도망침”의 한가지일 뿐이라고 이 두 사람이 말해주고 있는 셈이네요.

그러니까 요는,
어쨌든 삶은 살아내야 하는 거란 사실입니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

비록 그 결말이 뻔하더라도, 부딪치고 신나게 깨지고 맞서고 치열하게 살아내라고요.

한 사람에 의해 다른 또 한 사람이 이제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을 사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서 더더욱 도망치지 않게 될 한 사람.

이 사람... 아무래도 우리가 응원 좀 해줘야겠죠?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서 소설 <내 심장을 쏴라>가 시작됐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작가 정유정!

어떻게 정신병동에 대해 이렇게 리얼하게 쓸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전직 간호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있네요. 여러 차례의 정신병동 취재와 자료 조사, 그리고 일주일간 폐쇄병동에서 환자들과 함께 생활한 체험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이제 글은 머릿속뿐만 아니라 발끝에서도 만들어진다는 게 실감됩니다.

늘 그렇듯 괜찮은 책은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

이 소설도 <식객>, <미인도>를 만든 전윤수 감독에 의해 지금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네요. 캐스팅이 완료되는 연말쯤부터 촬영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두 명의 문제적 인간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범상치 않는 숱한 환자들을 과연 누가 연기하게 될지 개인적으로 무지 궁금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열심히 캐스팅 섭외하고 있습니다.....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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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7. 6. 06:25
<혀> - 조경란

혀
 

탐욕적인 소설. 그리고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소설.

조경란의 소설 <혀>는 식욕이라는 본능의 식탁 위에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의 재료를 푸짐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차려놓습니다.

화들짝!

너무 정직하고, 그리고 적나라해서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음직한 구미가 솔솔 당깁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떠나는 사랑과 시작되는 사랑, 이 모든 관계들....

누군가에게겐 세상의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 있듯이 어떤 사람으로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3년 경력의 33살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WON'S KITCHEN'이라는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던, 꽤나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요리사였죠.

그런 지원과 7년 간 사귀던 건축가 석주가 그녀를 떠납니다.

그것도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모델 출신 이세연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서 말이죠.

네, 이야기 자체는 참 진부한 치정관련 연예소설이죠.

그런데 그 표현이라는 게...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함께 같은 꿈을 꿨던 그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예전에 일했던 “노베”로 돌아가 다시 요리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요리 속에는 그녀 자신의 모든 심리상태가 함께 녹아들어갑니다.

그녀는 식욕에 대한 욕구마저 점점 사라지죠.

먹는 것에 대한 거부,

그것은 곧 관계에 대한 거부이며 더 심각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식욕을 가진 자는 적어도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입으로 향하는 욕망을 스스로 거세시켜버린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녀의 혀를 잘라(이것도 일종의 거세) 요리를 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말.

심지어 그렇게 요리된 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옛 연인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 그의 입 속에 한점한점 집어 삼켜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맛을 남기면서요...


일류 요리사에겐 그들만의 묵시론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고객의 식욕을 채워주고 미각을 즐겁게 해주되 결코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묵시록.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원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다음에 대한 기대를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100% 만족이 찾아온다면 결국은 금이 간 창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남은 한 사람은 비참하고 함구적이고 잔인해지게 되죠.

그리고 남는 건 허기처럼 찾아오는 “분노” 뿐이죠.

그럴 때 입은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폭식 혹은 거식

사람에게 사랑과 굶주림,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게 되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방법!

한쪽은 입 안에 몰아넣음으로 인해 속을 채워 마침내 터뜨리겠다는 폭발의 자기 파괴.

한쪽은 입을 닫음으로 인해 내부를 태우겠다는 발화의 자기 파괴.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건 주인공 지원처럼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쩌면 누구와도 사랑을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이 바로 “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맛은 “쓴맛”이구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입 속으로 쓴맛의 기억을 자꾸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갖는 사회성과 책임감!

어쩐지 좀 입이 천근 무게로 다가오네요.

온순해보여도 입 속엔 칼과 맞먹는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치아와 혀.

당신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맛은 무엇입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

 

* 이 책의 내용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만큼 문단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다름 아닌 “표절” 시비로요.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논란의 핵은 주이란이란 신인 작가가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동명의  단편소설 <혀>
  를 표절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소설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작가 조경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소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모든 소설을 다 심사하는 건 아니라
  면서요....)

  왠지 주이란의 단편소설 <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표절논란에 시비를 논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쩐지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궁금증이죠.

  어설픈 활자증후군, 호모 북커스의 호기심 발동이긴 합니다만...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9. 06:3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사람에게는 그 사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고통만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생각하게 되죠.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냐?”

때론 신조차도 그 공평성에서 살짝 벗어나신 게 아닌가 하며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도 분명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보기엔 참 힘든 삶을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의 자유를 잃은 1급 장애인.

2001년 유방암 판정, 방사선 치료로 완치.

그러나 다시 2004년 척추암으로 전이, 2년간의 투병 생활.

1년 만에 다시 간으로의 암 전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투병 생활 중에 그녀는 이 책을 씁니다.

결국 책의 출판을 하루 앞 둔 5월 9일 57세의 일기로 타계를 한 문학 전도사.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잘 알려진 서강대 영문학 교수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렇게 그녀의 유고작이 되어 이 세상에 출판됐습니다.

그녀는 “천형(天刑)의 삶”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주눅듬 없이 자신의 삶이 “천혜(天惠)의 삶”이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며 오히려 그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입니다.

어쩌면 병상에서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정말로 “살아온 기적”들을 되짚어 보면서 “살아갈 기적”을 간절히 꿈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매 순간이 당신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

그녀는 계속되는 장애와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의 삶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온 몸으로 느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세 번째 암 판정 이후 그녀는 말합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녀가 찾아낸 방법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냄으로써 아름다운 기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엔 스스럼없이 장애와 투병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고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요.

이야기가 끝날까봐 조마조마하며 “그래서~~~”로 되묻던 그 어린 기억...

60을 바라보는 여자가 도대체 이렇게 귀엽고 순수해도 되는가 싶은 만큼 깨끗하고, 밝고 그리고 심지어 장하기까지 합니다.

장영희! 이 여자!

급기야 깰 수 없는 내공으로 집을 짓고 말았네요.

가끔 우리는 저울질을 합니다.

마음의 장애와 신체의 장애 둘 중에 어느 게 더 치명적인가를...

그딴 저울질이나 하고 있는 제게 “날 좀 봐라! 나는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다 가지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내 “배부름의 옹졸함”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 얼굴 화끈거리기도 했더랬죠.

문학 전도사, 희망 바이러스, Positive thinking 의 실천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이 단어들이 제게는 문학박사, 교수, 영미문학사의 간판보다 더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타계했다고 했을 때,

저는 그녀의 어머니가 걱정됐습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둘째 딸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일 업어서 등하교시켰던 어머니. 비가 오면 부서진 우산살이 딸에게 향할까봐 그 우산살의 방향을 매번 자신에게 향하게 해 옴 몸을 적셨던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행여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주게 될까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놓았던 그 어머니.

역시 그녀도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임종 직전 노트북 컴퓨터로 어머니 이길자(82) 여사에게 남긴 짧은 편지에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이 몇 줄의 글을 그녀는 혼미한 정신과 싸워가며 3일간 아주 힘겹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 !...”

이 두 글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옴 몸의 힘이 빠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딸은 모든 어머니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데......

저 역시도 어머니의 두 손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기에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면 허세일까요?

그녀는 짧지만 참 긴 삶을 성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흔적이 남는 사람”

저는 장영희라는 사람을 그렇게 기억하렵니다.

지치고 힘들어 혼자 징징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제게 말합니다.

"......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먼저 간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그래서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또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인생을 내내 살금살금 걷듯이 살아간다면 좋은 운명 또한 평생을 살아도 깨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아내라고 평생을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살았던 한 여자가 말합니다.

두 발의 자유를 잃고 신체의 구석구석을 원치 않았던 동반자에게 차례차례 내주면서도 매 순간을 세상 누구보다 큰 걸음으로 걸었던 한 사람...

그녀가 “살아온 기적”을 보면서

저 또한 “살아갈 기적”을 부지런히 탐하게 됩니다.

이제 넘어져 또 다시 뼈가 부서진다고 해도 더 이상 징징대지 않으렵니다.

그 시간에 오히려 더 열심히 뼈를 추려야겠죠.

하나라도 더 잘, 더 제대로 추려내야 잘 맞춰질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이

전부 온전한 “기적”임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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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