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2. 19. 08:41

지금가지 내가 읽은 김중혁의 책은 모두 두 권이다.

한 권은 <펭귄뉴스>라른 단편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었다.

책서평집을 읽다가 김중혁이라는 작가를 알게됐고 그래서 일부러 찾아 읽었던 단편집이다.

괜찮았다.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자신만의 흔적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장편을 찾아봈다.

2010년 9월에 출판된 <좀비들>

사실 좀 망설였다.

"Zombi"라는게 이미 실존과 현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가령 판타지나 SF 급의 공상호러물을 읽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여기 저기 난무할 피칠갑을 읽어내는 것도 고단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결론부터 말하자.

책장을 열기 전까지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주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만큼 좋지는 않았다.

처음엔 "좀비"가 그냥 상징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좀비가 나온다.

그것도 좀비소설이 이렇게까지 평온하고 화목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다.

 

 

자식의 시체를 팔아 보상금을 받은 부모들.

자식을 팔아버린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곳을 떠나야만 하는데 부모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비밀 누설(漏說)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그들의 이주는 금지됐고

고리오 마을에 모여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된채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체를 좀비로 만들어 대대적인 실험을 하는 군부대.

써놓고보니 참 황당항 SF이긴 하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좀비에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살아있는 시체.

우리는 그런 존재를 "좀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은 분류상 "좀비"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장장군의 말처럼 세상엔 실제로 좀비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들키지 않는 이유는 일정한 개체수를 유지하면서 비밀리에 모여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읽을수록 이 황당한 SF적인 현실이 어느 순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이 무서운건 그래서다.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처럼 여겨진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받아들여버리고 만다.

받아들였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편맹증에 익숙해지면 입체시가 사라진 눈에 적응하며 사는 것처럼...

(편맹증의 시작이 편두통이란다. 문득 두렵다. 내 머릿속에도 한 곳만 집요하고 두드리는 딱따구리가 살고 있어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불특정 좀비들은

너무나 고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다.

그게 참 슬프고 아프다.

 

...... 나에게 삶은 일직선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처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이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 도미노는 무었일까? 마지막 도미노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부터 죽음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죽는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면,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한때는 모든게 부질없게 여겨졌다. 관계란, 사랑이란, 집착이란, 실망이란,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았고 끝이 뻔히 보이는 길은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은 중요한게 아닐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이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도미노로서 이곳에 서 있을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