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 7. 06:21
처음엔 그렇고 그런 우스개같은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책 표지가 풍기는 느낌부터 왠지 달갑지 않았던 책.
그런데 이 책.
참 독하게도 읽으면 읽을 수록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재미 이상의 것이 그 안에 날카롭게 서있고
세상을 향한 유쾌하다 못해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독설이 있다.
이 땅에서 평생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씩씩한 작가 김현진은
현재 버려진 유기견을 4마리나 키우고 있고
책의 저자 인세 10%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조분회투쟁기급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드라인 제목만 보고
한나절 신나게 씹을 수 있는 오징어 뒷다리쯤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이 시국에 연애는 무슨 연애나" 싶었단다.
그러나 마침내 "이 시국이니까 연애지" 라고 결론을 내렸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놈의 시국은 연애까지도 이 편 가르고 저 편 갈라 줄 세워놓는다"
지독히 그리고 전적으로 동감한다.

...... 지금 이 시기, 이때밖에 쓸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A급 연애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여기 구질구질한 B급 연애만 하는 여자들도 있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자고, 나를 비롯한 B급 연애 동지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세상일에 관심 없는 골빈 숙물 여자로 속 편하게 살아가는 게 오랜 꿈이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일 년여의 세월은 골빈 속물까지는 어찌어찌 넘어가줄지언정 세상일에 관심 없는 일은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았다 ...... 

뭐지?
당돌함을 지나 당당하기까지한
선명하고도 묘한 이 통쾌함은?



이태원걸, 토이남, 유부남을 사귀는 아기씨들, 레즈비언 부치, 영계 킬러, 헤픈 여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인터뷰 같기도 하고 사적인 대화같기도 한 모든 이야기들은
적나라하고 솔직하다.
애인이면서 첩년같은 기분이 드는 연애라...
어쩌면 세상 모든 연애들의 사실은 전부 첩년같은 연애일지도 모르겠다.
손태영의 연애에 대한 부분은 혹시라도 당사자가 볼까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뭐 어떠리...
주영훈으로 시작해서 권상우로 게임을 끝낸 손태영의 탁월한 선택 능력에 딴지를 거는 게 아니라
원래 헤픈 여자가 다르다고 결론내림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다수의 찌질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니...

..... 손태영과 권상우의 결합에 어떤 이들이 천인공노하는 이유가 팜파탈, 혹은 헤픈 여자는 절대로 행복해져서는 안 된다는 이유 바로 그것이다. 사회적으로 팜파탈, 혹은 걸레에게 주어져야 하는 마땅한 결말이자 처벌은 바로 파멸이다.
그러나 손태영은 이 모든 공식을 완벽하게 배반하고, 차근차근 공식을 밟아가 최고의 남자를 차지함으로써 공분을 산다. 만약 그녀가 권상우와 첫 번째 연애를 시작해 주영훈과 결혼했더라면 사람들은 이렇게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체계적인 업 그레이드를 보는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손태영은 이것을 해냈다. 연예인치고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미모, 아주 어리지도 않는 나이, 남다를 것 없는 인기, 특별할 것 없는 연기력,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그녀는 권상우를 잡아냈다. "예쁘고 매력적이어서 그런가 보네"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원래 헤픈 여자는 달라" 하고 말하는 것이 몇 배 간편하다. 그러나 물론 이것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손태영이 헤프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간편하다. 그러나 그러나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


신년 기사에 20대의 "스펙"은 돈이라는 기사가 났었다.
제품 설명서라는 본래 뜻은 어디가고 눈에 띄는 경력을 쌓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 "스펙"
해외 자원봉사마저도 취업을 위한 스펙의 일종이란다.
이제 능숙한 외국에 따위는 스펙의 축에도 낄 수 없기에...

...... 장사라도 하듯 내 "스펙"으로 건질 수 있는 최상의 남자를 잡아서 인생을 재테크하라는 메시지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삽질"에 병신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이, 똑같이 한심한 연애를 하거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상처를 입은 아가씨에게 한치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후안무치하겠다......

그녀의 말이 어쩐지 지나가는 말로만은 도저히 들리지 않는다.
정말 A급 연애를 통한 신분상승이 대단한 스펙이 되어버린 세상.
늘 우리가 물리도록 보고 있는 현실이기에...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