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09. 9. 18. 06:02

단지 펄 벅이라는 이유만으로 손에 잡았던 책
나는 펄 벅, 그녀를 참 많이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그녀의 글들 역시도 너무나 좋다.
솔직하고 담백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옆자리에서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
그녀의 글은 인간적이며 정당하다.



1892년 6월 26일 출생하여 1973년 3월 6일 사망하기까지
그녀의 인생은 치열하고 아름다웠다.
두 딸의 친 딸 외에도 많은 아이들을 입양했던 그녀.
친 딸 중 한명은 극도의 정신박약 장애인이기도 했다. 
큰 딸의 이야기를 쓴 <자라지 않는 아이>를 읽으면서 그녀가 쓸어내렸을 가슴이 문득문득 떠올랐었는데...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스스로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을 지어 사용하기도 했다는 그녀.
1938년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녀는
동양인보다 더 동양적인 감성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도 혹 그녀의 영향을 받진 않았을까?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미국의 여성들에게 이야기한다.
처음 시작은 딸에게....
그리고 점점 세상 모든 딸들을 향해....
결국은 세상 모든 엄마를 향해, 여성을 향해, 인간을 향해.
나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공감한다.
그녀의 글 속에는 포근한 설득력이 있다.
언제나 나는 그 힘을 그녀의 글 속에서 만나고 깨닫는다.

글의 생기란 작가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
여러번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권태를 느끼면서 여전히 아이들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빠져 나갈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이제라도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동화 속 세상에서 빠져나와 실제 세계와 맞부딪치며 살아갈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책임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젊은이들이 책임을 나누어 가지면 기성세대도 그들을 존경하게 된다. 이렇게 존경받는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 드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변화와 파괴는 엄연히 다르다. 파괴가 아닌 변화는 성장이나 성숙함에 더 가깝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경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그 경쟁 속에서 완벽하게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패배하는 일 역시 흔치는 않다.

어느 한쪽이 사랑하지 않게 되면 다른 한쪽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깨어나는 것도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는 애정은 사그라지는 법이다.




혼자 살아가려는 삶은 인간으로서 성공적이지 못한 삶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보답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마음 또한 쉽게 시들어버립니다. 자기 생각에만 귀를 기울이고, 남의 말에서 아무런 영감도 느끼지 못한다면 지성도 위축돼버리고 말 겁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점점 더 쇠약해가는 육체까지도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전혀 같지 않다. 다만 남성이건 이성이건 어느 한편이 모르는 것을 다른 한편만 알고 지내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 모두에게 교육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가정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청결해야 한다. 정돈하기 위해서 치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치우는 것이다. 깨끗이 정돈된 곳에서는 아름다운 질서가 보인다. 지저분한 가정에는 질서가 없다. 그런 가정에서는 질서를 모르는 인간이 태어난다. 물리적인 혼란과 정신적인 산만함은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존경심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새 삶을 주어 세상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경험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영원한 진리란, 자기의 몸을 다부지게 지켜내고 남을 존중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심오한 이 원칙을 부단히 상기하는 일이다. 훈련하고 인내하면서 절제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이 육체와 두뇌와 마음의 균형을 조화롭게 이뤄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해도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인격은 훼손되게 마련이다. 남을 존중한다는 말의 의미도 타인이 유지하고 있는 이 균형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말은 책임을 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체의 모든 책임,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 미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영원한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