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7. 9. 06:33

그런 책이 있다.
눈으로 읽다 보면 눈이 아파지는 그런 책.
그러다 마음이 아프고, 당연하다는 듯이 온 몸이 따라 아파오는 그런 책.
내게 한강의 4번째 소설이 꼭 그랬다.
자주 가슴이 먹먹해졌고 한참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다독여야했고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아지지 않던 책.
한강은 발레리의 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를 차용한 책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에 거센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고 뿌리가 뽑힐 지경이 되어도 어떻게든 나아가라,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가라는 뜻에서 붙였다"
고...
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질지게 동행하는 눈 덮인 미시령의 두 사고.
그리고 사람들, 관계들.
그 모든 걸 원했던걸까? 
어쩌면 인주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쓰는 내 손 끝이 예리하게 아파온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까지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Breath Fighing.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는 바람에
환자의 호흡과 인공호흡기의 호흡이 맞부딪치는 순간.
Breath Fighing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들숨과 날숨이 싸우듯이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 문체, 그리고 소설 자체도 들썽들썽 부딪히면서 격렬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어요"
소설의 계기에 대해 한강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찢겨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 편에는 자연과학에서 보여주는 경외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조건, 나약함, 몸부림, 욕망, 간절한 사랑이 있어요. 찢겨진 채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먹그림처럼 읽혀지는 이야기.
먹이 번지는 오랜 물길을 따라 가야 했었나?
낡고 오래된 흑백사진을 읽고 있는 것처럼 가슴 한켠이 무너진 기억으로 먹먹해온다.
그리고 때때로 시처럼 껑충껑충 텅 빈 여백을 읽어내야 했던 이야기.

고백해야만 한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내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내 진실을 믿지 않는다고.
내 기억을, 고통을 믿지 않는다고.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
끔찍하게 나약한 사람, 나약해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겠니. 나약함이 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걸.
간절함이 알 속의 죄를 깨어나게도 한다는 걸.
문밖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을.
모든 일들의 시작이 자신이었음을.
그러니 자신을 제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논리적인 길임을 확신하는 순간을.
무의미로 무의미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밀봉하려는 마지막 결단을.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는 한강은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 조각조각 박힌 살얼음이 이번엔 어쩌자고 내게로 옮겨왔다.
난 아프고 싶지 않은데...
한 번 들어온 아픔은 오래오래 자리잡고 나를 흔드는데...

Dark side of the moon
달의 뒷면.
똑 같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동일하다.

내가 아픈 것은 달의 뒷면 같은 곳,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인주는 정말 자살을 선택했을까?
아님 떠밀리듯 어쩔 수 없었던걸까?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건
통증보다 더 선명한 아픔이다.
그렇다고 남겨진 사람이 덜 아플까?
인주의 마지막 일 년을 쫒아가며 정희는 인주가 되어간다.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적막에도 형상이 있단다.
어떤 형상이 그려지든 나는 그대로 오래 침묵하고 싶다.
책 장의 마지막은 ...
끝까지 한결같이 아팠다.
느릿느릿 게으르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마지막 호흡을 또렷히 느끼면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침착하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