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5. 11. 16. 08:24

읽는 동안 몸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박범신의 <은교>와 <소금>이 그랬고

김현의 <남한산성>과 <내 젊은 날의 숲>이 그랬다.

입 안이 헐기 시작한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정확히 하룻밤이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였다.

사실 그때까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서둘러 읽어낼지 아니면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여 읽어나갈지를...

그 사이 입안은 점점 더 심해졌고

지금은 물을 삼키는게 힘들 정도로 헐어있고 부어있다.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누르면 찌르는 통증이 깊게 파고든다.

아마도 앞으로 며칠은 더 견뎌내야 할 듯 싶다.

염증약과 진통제를 삼키며 나는 이 이야기 속의 "당신"을 생각했다.

주호백의 유일한 당신인 윤희옥을,

윤희옥의 당신이었던 김가인과 윤희옥의 당신이 된 주호백을,

김가인의 당신이었을 윤희옥을.

그리고 그들의 부식되지 않은 기억들을...

이야기 속에서 박범신은 말한다.

기억은 지속된다고.

심지어 어떤 기억은 스스로 번식하고 확장한다고.

 

 

 

원(願)이 깊어지면 원(怨)이 된다

한 번 원(怨)을 원(願)으로 믿게되면 삶의 방향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일흔넷의 나이에 희옥은 비로소 주호백이라는 "당신"을 "공평"하게 사랑하기 시작했다지만

그건 희(喜)인지 비(悲)인지 나느 모르겠다.

 가끔 두렵다.

생명력 짱짱한 "기억"이 미래의 나를 갉아먹으면 어쩌될까 싶어서..

그렇게 미래의 기억은 다 지워지고

과거의 기억에만 붙들려 있다가 급기야 나를 놓아버리게 되는건 아닐지.

내겐 주호백처럼 매화 나무 아래 사체를 유기해 줄 "당신"도 없는데...

 

지금 내 몸이 아픈 이유는

주호백의 마지막을 거둔 윤희옥의 "공평"이,

그 "공평"의 마디마디가 전부 이해되서다.

홍매 나무 아래 놓여진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

촛점이 멈춰진 눈.

파킨슨병으로 제 멋대로 흔들리는 손과 발.

그리고 점점 꺼져가는 기억.

그 여인이 나의 과거고 현재고 미래같다.

 

공평하다는건,

얼마나 불공평한 말인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