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6. 3. 31. 08:26

이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요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처절하게 읽어나갔다.

도저히 한 번 쓱 읽어지지 않았고

자주 책장을 덮은채 숨으 깊게 깊게 쉬어야만 했다.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으면서도 괴로웠는데

이 책과 비교하면 <죽음의 수용소>는 서정적이고 순수문학이라 하겠다.

구소련이 무너졌을때,

나는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연히 다 찬성하고 기뻐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쪼깨젼서 분열된 나라을 바라보며 그들이 말한다.

"공산주의는 인류의 미래예요, 대체제는 없어요"

머릿속이 하얗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나쁜거라고만 배워왔는데

지금 그곳의 사람들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었던 소련을 그리워한다.

지금의 자본주의 러시아는 미친거라고, 답이 없다고.

그들이 원했던건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적인 사회주의였다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건...

도대체 뭐였던걸까?

흑백논리, 빨갱이, 제국주의, 스탈린, 피의 혁명, 고르바쵸프, 옐친...

이 모든 것들 뒤의 진짜 소련의 맨얼굴을

나는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책을 번역하는 동안 난 참 많이 울었다. 주인공들의 끔찍하고 절절한 사연에 통곡을 했고, 그걸 한국어로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었던 내 욕심과 현실적인 내 필력 간의 간극에 가슴 치며 울었다......

책을 번역하면 할수록 인간의적나라한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어느 주인공의 말처럼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는 시점이 어디부터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저 악인이 반드시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끝까지 앍을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도 책장을 덮어야 했고

그때마다 매번 숨을 한참 동안 숨을 가다듬어야만 했다.

그러다 며칠간은 아예 책을 펼칠 엄두조차 못내기도 했다.

격양된 감정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다시 읽기 시작하면

더 큰 통증과 아픔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파고 들었다.

661페이지를 읽으면서 이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렇게 토막토막 책을 읽는 내내

죽음의 냄새와 살인의 냄새가 늘 함께 했다.

(정말이지 책을 읽다 미쳐버리는 건 아닌가 무서웠다)

 

이제 조금 알겠다.

나란 인간 역시도 이런 상황 속에 놓이면

"인간이 아닌게" 되거나,

혹은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일거라고!

 

피하는게 맞는데 지금 내 손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또 다른 책이 쥐여져있다.

이번엔 떠 얼마나 오래 걸려 읽을지 알 수 없지만

또 다시 고통스러워보자 작정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제목만으로도 이미 숨통이 죄여온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