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0. 4. 30. 06:30
매주 목요일마다 양화진 문화원에서 강좌가 있다.
어제는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의 강좌였다.
다른 강좌와 겹쳐져서 이제 5월, 6월 두 달 동안은 아쉽지만 이곳을 올 수 없게 됐다.
어제는 많이 일찍 도착해서 문화원 뒤에 있는 외국인선교사 묘역을 찾았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조선말기(1860년경)에 한국에 들어와 
선교 및 사회 활동을 하다 사망한 외국인 570인(선교사 413. 가족 143인)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다수는 선교사들은 종교, 언론, 교육, 외교, 의료분야에 큰 기여를 했던 인물들이다.
최초의 피장자는 언더우드와 함께 의사로 활동한  "J.W 헤론"이란 분으로 1890년 7월 28일 피장됐다.


       J.W. 헤론               E.T. 베델               J.P. 캠벨          W.M. 베어드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들고 온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비롯해
헤이그에 가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헐버트, 평양의 의료
선교사 홀,
양반과 천민의 신분제도 철폐를 주장한 무어 등 조선을 개화시키는 데 헌신한 분들이 묻혀 있다.
하루에 마지막 햇살을 받고 있는 조그만 무덤을 보고 있으니
경건함 이상이 감돈다.
타국의 땅까지 그들이 와서 희생과 봉사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신에 대한 "믿음"이 전부였을까?
찬찬히 걷는 걸음 속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함께 섞인다.



짧막하게 적힌 묘비명을 살피는 것 역시나
고요하고 조심스럽다.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 의료 선교사 켄드릭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  의료선교와 성경 번역에 헌신한 헤론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 선교사 헐버트 
(그는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칭송받는 선교사이기도 하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선교사 언더우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 선교사 아펜젤러




이제 두 달 동안은 이곳의 좋은 경험들과 잠시 안녕이다.
괜히 마음이 쓸쓸해진다.
편안했으며 고요했으며 충만한 시간이었노라고...
되집어 돌아보며 홀로 감사했다.
아마도 변방의 작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 생명까지 헌신한 분들의 마음이
나를 감싸고 있었던건 아닐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