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6. 2. 25. 08:26

융통성이라는 눈꼽만큼도 없는 앞뒤 꽉 막힌 까칠한 남자 오베.

그에게 세상은 오로지 흑백이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식사를 하고,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남자라면 "사브" 외에는 다른 차를 몰아서는 안되고,

정해진 규칙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꼭 지켜아만 하고...

첫 챕터를 읽으면서 이런 사람과 이웃이면 참 피곤하겠구나 싶었다.

작은 실수에도 당장 우리집 벨을 누를 것 같아서...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이 괴상하게 까칠한 남자에게

어느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세상의 모든 색깔이 되버린다.

그녀를 보고 오베는 생각한다.

'누군가 맨발로 가슴 속을 뛰어다니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는게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어진다.

그 장면을 읽는 순간,

나는 이 까칠한 노인네를 사랑하겠노라 결심했다.

 

흑백의 세상을 칼라로 바꾼 여자와 결혼을 하고,

여자는 오베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는 자동차 사고로 태어나지 못하고,

오베의 모든 색깔이었던 그녀는 휠체어를 타게 되고...

하지만 끝날 때까지 정말 끝난게 아니다.

연이어 들이닥친 사고에도 불구하고 오베의 색깔은

여진히 밝고 따뜻하고 현명하게 오베 곁에 남아 있다..

 

그리고...

오베의 색이... 사라졌다.

그래서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옆집에 이사온 부부(그것들) 때문에 오베의 계획에 자꾸 자질이 생긴다.

어느 틈에 주인없는 망할 놈의 고양이까지 은근쓸쩍 오베의 집으로 들어온다.

죽기로 결심한 오베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더 삶쪽으로 나아간다.

 

이 이야기...

정말 눈물나게 재미있고, 눈물나게 아름답고, 눈물나게 감동적이다.

오베처럼 흑백의 세계를 살아가는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온갖 찬란하고 따뜻한 색깔에 둘러쌓여 있었다.

무심하게 시작했다가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걸 못마땅하게

삶은, 생은, 사랑은, 죽음은 이래야 한다고 일깨워준 책.

 

정말 그렇더라.

누군가는 사느라 바쁠 수 있고,

누군가는 죽느라 바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사악해지는 사람이 있고,

안 그래도 되는데 사악해지는 사람도 있다.

해답은...

내가 뭘 선택하느냐에 있다.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게 존재하지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죽음은 종종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때로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죽음에 너무나 사로잡힌 나머지 죽음이 자기의 도착을 알리기 훨씬 전부터 대기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엇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