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6. 12. 05:39
1971년생이고 벌써 등단 십육년차란다,
소설집으로는 다섯번째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만도 아홉권.
그런데 나는 이 사람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 중 몇 권은 제목을 들어보긴 했다.
<장국영이 죽었다고?>, <모리슨 호텔> ,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었는가> ...
제목이 참 독특하다 생각을 하면서 솔직히 읽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이 책 <위험한 독서>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눈에 들어왔고 손에 잡게 된 책이다.
8편의 단편이 담겨있는 소설집.

위험한 독서
맥도날드 사수 대작전
천년여왕
게임의 규칙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황홀한 사춘기




뭐랄까?
각 단편들은 가장 맛있다고 하는 대표음식으로 차려진 뷔페같다.
그리고 무척 여성스럽다는 생각도...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닌 모양이다.
누군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단다.
Q> 여성이 아니면서 어떻게 여성을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느냐?
A> 나한테서 여성호르몬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작가 김경욱은 한 마디 더 했단다.
"하지만 책 속의 여성 주인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겠다"라고...



단연 돗보이는 단편은 역시나 표제작인 <위험한 독서>다.
나도 그렇다.
사람이 책으로 보이는 그런 때가 있다.
그래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정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때로는 사람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다.
"나를 읽어봐. 주저하지 말고..."
(에로틱을 상상하진 말자!!!)

<독서치료사>
당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다.
당신의 독서목록은 그 자체로 당신의 자서전이고 영혼의 연대기다.
이를테면 당신은 일러두기도 목차도 없는, 독자를 위한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난감한 책이다.
오늘날 독서에서 작가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감소한 반면 독자의 영향력은 날로 강력해지고 있다.
책의 의미는 작가의 창조적 재능이 아니라 독자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독서치료사>까지 포함해 4편의 단편들이 특히나 눈에 들어온다.
독특하고 놀랍고 그리고 흥미롭고 심각하다.
귀농 후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남자의 아내 이야기 <천년여왕>.
아내는 일종의 검열관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너그러움, 고독까지 대여가 가능한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대여 가능한 고독의 품목은 또 얼마나 다양하던지.
군중 속의 고독, 절대고독, 휴식같은 고독...
기러기 아빠였던 선배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을 대여했기에 행복하게 사라져버렸을까?
자신의 자궁을 판매한 아내의 이야기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불임부부의 대리모가 된 아내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전세로 옮겨갈 생각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내는 조금씩 변한다.
대리모에게는 절대 금기에 해당되는 아이에 대한 집착이 생기고 말았다.
이제 아내는, 아니 이 부부는 어떻게 될까?
이야기는 친절하게 결말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독자에 의해 결론이 지어질 수 있다는 뜻이리라.
"독서"라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세대에게 자발적인 결론의 여지를 남겨준다는 것.
어쩌면 이런 읽기가 바로 <위험한 독서>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김경욱은 독서란,
무방비 상태, 본래의 모습,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에 독서는 힘들고 더 나아가 위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있는 문장이 있다.
독서는 위험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가차없이 돌아보게 하니까.
어쩌면 이제 "독서"라는 건 더이상 안전한 환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의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단지 환상지인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생하게 느껴지는 환상지가 도저히 외면되지 않는다.
위험하면 어떤가?
책 장만 덮어버리면 그 세계도 끝인데...
필요한 건 나에게도 역시나 새로운 문장들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