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6. 24. 06:29
영조 시대가 배경인 팩션 소설을 읽다.
저자 마르크 함싱크(Marc Hampsink )는 1973년 부산에서 출생,
7살에 벨기에로 입양돼 유럽에서 완벽하게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모국에인 네덜란드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한문 등
총 13개 국어를 그것도 능통하게 구사할 줄 아는 멀티링구어란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어는 없다...쩝!)
이 책은 한 가지 언어로 쓰여진 게 아니라
마르크 함싱크가 구사할 수 있는 온갖 언어로 쓰여졌다고 한다.
(아마도 표현의 묘미에 더 적합한 언어를 선택했겠지만)
그래서 원고가 번역가의 손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경악을 했다고...



글의 서두에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이 글은 영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저자의 일,
즉 보험 조사에서 시작됐단다.
보험 의뢰기 들어오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란다.
극동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대략 18세기 경에 쓰인 <진암집(晉菴集>이라는 책 역시
그런 절차를 밟기 위해 작가의 손에 들어왔다.
책의 저자는 조선의 21대 왕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진암 이천보였다.
그런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시기 조선에서 벌어진 비밀스런운 사건이
이 책 속에 도사리고 있었던 거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천보가 67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조용히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외의 다른 기록들은 모두 끔찍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기록되어 있단다.
그리고 이천보뿐만 아니라 당시 좌의정 이후, 우의정 민백상도 그 자살 행렬에 합류했고...
250년 전 삼정승의 잇따른 자살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러니까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다.



어느 늦여름 밤.
조정의 최고 권력인 영중추부사, 좌의정, 우의정이 비밀스런 회동을 한다.
깊어진 세자의 병과 증세에 대한 의논을 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어느날, 어의 한 명이 집에서 죽은 체로 발견된다.
죽은 어의는 바로 세자의 병이 무엇인지 단서를 가지고 있던 유일한 목격자였다.
총명하고 어진 세자를 고통과 광기로 내몰게 한 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었이었을까?
급기야 아비의 노여움까지 받아 좁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운명까지 이르게 한 병의 정체는?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이 책에는 세자의 지병이 성병, 즉 매독이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배경엔 다름 아닌 화완옹주의 사가에서 출입한 한 여승이 연계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권력에 욕심을 낸 화완옹주가 자신의 동생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사가의 여자를 끌어들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이쯤 되면 좀 독하지 않는가?
권력의 향기라는 게...

이야기는 아주 참신하다거나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를 이국의 이방인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작가는 한국어도 모를 만큼 한국에 대해 무지한 완벽한 외국인으로 성장한 사람이다.
이국의 눈엔 동양의 역사는 어느 정도 신비로 보이겠겠지만
우리의 옛 역사와 관련된 명칭과 단어들을 찾느라 여러 날 고심했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수고를 생각하고 읽으면 
이야기 구성도 꽤나 치밀하고 꽉 차있다.
다만 인물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한 약점이 있긴 하지만
한 번 손에 잡고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작가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오히려 놀라움을 느끼게 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