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1. 9. 08:27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Carlos Ruiz Zafon)

현재 내게 엄청나게 중독과 탐독을 자극하고 있는 스페인 작가

<천국의 수인>을 계기로

몇 년 전에 읽었던 <바람의 그림자> 2권을 다시 읽게 만들었고,

뒤이어 <천사의 게임> 2권까지 찾아 읽게 만들었다.

너무나 간절히 찾아가고 싶은 그 곳.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잊혀진 책들의 묘지" 4부작.

그 중 3부작이 우리나라에 출판된 상태다.

마지막 작품은 아직 스페인에서도 출판되지 않은 모양인데(어쩌면 번역이 아직 안 됐을지도...) 정말 미치게 궁금하다.

"잊혀진 책들의 묘지"

어느날 나는 허기진 눈(目)에 핏발을 세우고 이곳을 찾기 위해 스페인 거리를 헤매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이런 짜릿하고 황홀한 느낌!

예전에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라는 알게 됐을 때와 흡사하다.

참 사람 좌절시키게 만드는 작가들.

스토리텔러는 하늘이 내는 것 같다는 절망감을 또 한 번 되새기게 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좌절! 나는 절대적으로 환영한다....

 사실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 고작 내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오르한 파묵은 내가 터키를 꿈꾸고 했고 급기야 실제로 터키로 향하게 만들었는데

루이스 사폰 역시도 내게 스페인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무자비한 폭격처럼!

궁금했다.

이렇게 매력적인 이야기가 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는 작가로서 그가 갖는 자부심에 또 한 번 놀랐다.

...... 루이스 사폰은 왜 영화 제작 러브콜을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작품들이 소설이라는 문학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형식으로 변형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영화나 TV 시리즈 등이 시각적 재미를 선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자신에게 생소하고 이질적인 미디어이며, 독서를 위한 언어로 이루어진 책이야말로 자신의 작품이 마땅히 있어야 할 세계라고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

이유있는 항변이고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 멋진 자존심이자 곤조(?)다.

때론 책에서 혼자 상상했던 장면이 화면으로 다 보여지면 왠지 까발려지는 듯한 불편감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눈 앞에서 정형화되면서 뭔가를 차단 혹은 금지시키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읽는다는 지극히 우아하고 지적인 행위는

자기 영혼을 향해 열리는 문을 탐험하는 즐거움이자,

허구와 언어의 신비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즐거움,

아름다움과 상상력에 자신을 내맡기는 즐거움이다.

 

우리나라에 출판된 순서가 좀 모호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론 천사의 게임 -> 바람의 그림자 -> 천국의 수인 순으로 읽기를 권한다.

그러면 이야기 전체가 큰 그림으로 그려지면서

그 큰 그림 속 세부묘사가 점점 눈 앞에 현실로 그려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거다.

아쉬운게 있다면,

이 책들이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번역됐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거다.

그랬다면 아마도 더 일관성있고 촘촘하게 문장을 읽을 수 있었을텐데...

(<바람의 그림자> 정동섭 번역 / <천사의 게임>  송병선 번역 / <천국의 수인> 김주원 번역)

 

"잊혀진 책들의 묘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모든 책에는 영혼이 있다.

 책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 책을 읽고 그 책과 함께 꿈을 꾼 사람들의 영혼 말이다."

이 문구는 개인적으로 영원한 헌사처럼 간직하련다.

빅토릐 위고의 <레미제라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가스통 드루의 <오페라의 유령>

"잊혀진 책들의 묘지" 를 읽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이 작품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 대가들의 위대한 작품을 이렇게 멋지게, 이렇게 새롭게 새겨넣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끝끝내 주인공에게만 밝혀지지 않고 다른 모든 사람들(심지어 독자까지도)이 알게 되는 비밀.

(나 이 비밀 정말 훌리안에게 알려주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불에 타 허물어진 얼굴로 자신이 쓴 책의 악마가 되어

한 권 한 권 책을 찾아내 불태우는 훌리안.

그야말로 소설을 불태우기 위해서 소설 바깥으로 나온 사람.

그런 훌리안의 생애를 추적하는 셈페레 책방의 아들 다니엘.

그런데 추적하면 할수록 다니엘 역시도 홀리안과 똑같은 사건 속에 휘말린다.

뫼비우스의 띠.

그리고 감옥에서 탈출하면서 작가 마르틴과의 약속대로 다니엘의 수호천사(?)가 되는 페르민.

 ...... 너와 훌리안은 서로를 찾고 잇었던 거야, 다니엘. 그는 너의 순수함이 그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원하리라는 걸 믿고 싶어했어. 그는 자기 책들을 찾아다니는 걸, 자기 삶의 흔적을 불태워 없애려는 욕망을 그만두었지. 그는 네 눈을 통해서 세상을 다시 보는 법을 배우고 있었어. 네 안에서 한때 자신의 모습이었던 소년의 모습을 되찾음으로써 말이야 ......

신비롭고 환상적이었다.

인물들이, 사건들이,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이, 그곳과 이곳이

이 다섯 권의 책 속에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이 다섯 권을 다 읽어야만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급기야 이 책들이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어 지금까지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내고 있을것만 같다.

이런 류의 책.

정말 끔찍하게 환상적이다.

뭔가 여지를 남기는 책.

 

이 매력적인 작가때문에

언젠가 나는,

잊혀진 책들의 묘지를 찾아 스페인 골목을 헤매고 다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산타 모니카의 아르코 델 테아트로, 그 좁은 골목길을 말이다.

혹시 모르지!

람블라스 거리에서 커다란 목조 대문을 보게 될지도.

그렇다면 나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노커를 두드릴 것이다.

내 인생의 단 한 권 뿐일 그 책을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잊혀진 책들이 묘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나라도 책을 한 권 골라야만 한다.

이게 이곳의 관습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면 이제 시작이다.

책을 선택한 사람은 그 책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거라 믿으며 그걸 자기 양자로 삼야야 한다.

이건 아주 중요한 약속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난 기꺼이 내 목숨을 그 책에 걸겠다.

그것도 아주 단번에!

그러니 제발 문만 열어주시길... 

 

* 루이스 사폰의 안개 3부작도 빠른 시일 안에 읽어봐야겠다.

  <9월의 빛>, <안개의 왕자>, <한 밤의 궁전>

  또 다시 탐욕. 탐독의 발동되려 한다.

  확실히 그의 글 속에 뭔가가 있다!

  (그가 쓴 책은 아니지만 <이집트 사자의 서>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