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5. 11. 17. 08:17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을 읽었다.

장편이지만 단편처럼 읽혀졌던건

토막토막 잘려지는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책을 출판하면서 출판사에서 내보인 광고 문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엇다.

어려울 때 되돌아보는 '희미한 옛사랑'이라고...

심지어 희미한 옛사랑이란 단어는 작은 따옴표 안에 들어가 있기까지 한다.

일흔을 넘긴 노작가의 향수인가 싶었다.

우연히 본 독자평에는 책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도 써있고

또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다고도 썼다.

그런가보다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 수록  점점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이게 삶이냐고 삿대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무엇에 위로 받고 힘을 얻었다는 뜻일까?

내 가정은 파괴되지 않아서?

나는 싸이트나 SNS로 만난 낮선 사람들과 동반자살 따위 할 이유가 없어서?

내가 죽더라도 한 참이 지난 후 부패되기 시작한 몸으로 발견될 확률이 없어서?

정말 그럴까....

오히려 나는 숨통이 조여져 오는 것처럼 절박하더라.

마치 데깔코마니를 마주하는 느낌이라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질곡의 현대사를 지나온 60대 건축가 박민우의 과거의 삶과

20대 후반의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지금의 삶이 다르지 않아 서럽고 서럽다.

교차 서술이 아니라 평행 이론이다.

아니 어쩌면  달동네 시절이 정서적으로는 훨씬 더 살기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적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꿈을 꾸고 살았으니까...

꿈이 없는 지금은

젊은이들을 삶의 끝에 도착한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잉여인간 혹은 투명인간으로 무화(無化)시킨다.

정서적인 인간은 없고, 형태론적인 인간만 남아서 

자살사이트를 기웃거리고 SNS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동반자살을 실행한다.

의지가 약해서라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나란 인간은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다. 

이유없이 무자비하게 내몰리고 있는 그들의 일부분에 내가 있다.

 그래서 그 속에 내가 없어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 없다.

내 맨탈이 그들의 맨탈에 비해 의연하고 강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잘 살아냈다고,

잘 견뎌냈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삶이라면

그 삶을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