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비가 내린 후에 집 앞 가로수 벗꽃잎이 벙글어졌다.
아마도 조만간에 팝콘 떠지듯 황홀한 분홍 꽃잎을 떠트릴 것 같다.
진해는 군항제가 시작됐다는 것도 같고.
출퇴근 할 때마다 관찰일기를 쓰는 사람처럼 벗나무 아래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이제 며칠 후면 이 곳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아주 많이 느려지겠구나...
언제나 그 길은,
차라리 꿈 같았다.
나는 10시 넘은 퇴근길에도 차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꿈길을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그건 일종의 몽유이고 촌곤이고 나른이고 생동감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그 길 위를 느리게 걷고 있으면서도
항상 그 길은 끝없는 아쉬움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마음과 발걸음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남겨둔다.
심정적인 그러나 너무나 완벽한 육체이탈.
몸은 이곳에 있지만 동시에 내 진심은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반갑게 해후할 것을 기대하면서...
어제 처음으로 퇴근길에 한기(寒期)를 못느꼈다.
오는구나!
그렇게 너는...
시간들이 아깝다.
일부러라도 잠을 더 줄어야 하나 혼자 고민중이다.
주변에서 미쳤단다.
지금도 결코 많이 자는 게 아니라고...
긍정을 하면서도 시간이 너무 아깝다.
김난도 교수의 "인생시계" 초침에도 무감했는데 이상하다.
게다가 이건 분명 나이듬에 대한 집착이나 불안감 때문도 아니다.
좋았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건 답이 아닐테니까.
춘곤같은 생각들 때문인지 요며칠은 유난히 정성들여 운동을 했다.
살을 빼겠다거나 몸매를 근사하게 만들겠다는 희망이 솟은 건 아니다.
그냥 좀 단단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돌탑을 쌓듯 조금씩 단단해지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차곡차곡 쌓이는 우울과 조울의 견고함이 때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만큼 나는 덤덤해졌다.
그래선가?
덤덤이 단단으로 바뀔 수 있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은...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요즘 마음에 담겨있는 시다.
짧지만 절실하고 간절하고 정직한 시.
때론 나는 머리만 있고 몸이 없는 ghost 처럼 살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보고 있으면,
정직하게 흔들리고 아주 깨끗하게 상처받고 싶다.
비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면 위를 걷어야만 한데도...
침몰하는 동안은, 추락하는 동안은 아무렇지 않다.
언제나 그 다음이 문제다.
바닥에 닿은 그 순간이!
난데없이 하얀 눈길이 끝없는 사막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걷고 있는 내가 보인다.
발.자.국.들.
유일한 동반자가 남긴 자국을 지켜본다.
조금만 더.
덤덤하게 단단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