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1.16 경복궁 + NEX-5
  2. 2009.08.11 북촌
  3. 2009.06.16 만해 한용운 유택, 만해선사 <심우장>
찍고 끄적 끄적...2010. 11. 16. 06:24
어제에 이어 NEX-5 와의 첫 만남 사진.
포커스가 정확이 안 맞는 느낌인데(내 느낌인가?)
뭐가 잘못된거지?
어쩌면 서툴러서 완전 초보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DSLR과는 여러가지도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하는 카메라다.
세로 사진의 느낌은...



서툰 사진이지만 보고 있으니까
북촌의 골목들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궁궐과 한옥은
하늘을 배경으로 처마나 벽이 서로 맛대고 있을 때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특히나 저렇게 청명한 하늘과 함께 할 때는...
그림같은 풍경을 그대로 사진에 담지 못하는 게
참 멋적을 뿐.



옛 사람을은...
돌과 나무에 생명을 담는 법을 확실히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눈은 돌길과 돌담, 처마밑 단청 색을 보느라 바쁘고 황홀하다.
물론 그게 완전한 옛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그 과거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어 다행스럽고 고맙다.
저 돌들과 나무들...
내 손으로 하나하나 쓸어보고 싶다.
오랜 시간을 지나온 따뜻한 체온이 차가운 손을 녹여줄 것 같아서...
내 맘에 꼭 들었던 수줍은 낮달까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8. 11. 13:14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
조선 왕조 600년 양반 주거 지역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곳
지금은 개량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직 이국의 눈엔 신비롭게 다가오는 곳.



정겨운 한옥의 처마 밑으로
안방, 사랑방 그리고 건넛방
소곤소곤 작은 이야기가 들리는 소담한 정원들
댓돌 위에 찍힌 그 이야기의 발자국들



걸었던 골목골목 하나하나
그 마디결을 쓰다듬고 싶었던
결 고운 나무 문들
오래 묵은 세월같은 사람의 흔적들.



그 흔적은
세월과 친구하며 다정해지는구나...
그 숨결에 가만가만 눈이 감기기도 하는
햇살 좋은 날의 북촌
꾸벅꾸벽 졸음처럼 밀려오는
이겨지지 않던 그리움들.



꽃과 함께
화사하게 만개했던 하늘.
그 어질한 기억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16. 13:09

간송미술관에서 "정선화파전" 보고
잠시 들렀던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유택 <심우장>
한용운 선생이 마지막 눈을 감은 곳.
그 한 켠에는 사람이 여전히 살고 있다.
(예전엔 후손이 직접 살았는데 바라다보이는 일본대사관이 도저히 보기 싫어 관리인을 두고 이사를 갔다고...)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신비하게도 지붕을 피해 뻗어나간 소나무
마치 소나무 한 그루가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호위하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숙연한 느낌마저 든다.



사람의 발걸음을 거부하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 맞이하는 고택의 다정함.
처마밑에 앉아 있는 느낌이 따뜻했다.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는 이국(異國 )의 가족
그 모습까지도 낯설지 않게 품는 마음.



만해 한용운의 절개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곳의 흔적들.
액자에 곱게 담겨져 있던 그의 친필들,
그리고
나를 향하는 그의 얼굴은 단호히 묻는 것 같다.
"바르게 살고 있는가!"를....



두런두런,
아이와 함께 무릎걸음으로 앉은 어머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살짝 엿듣고 싶은 욕심도...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골목길들, 대문들, 시멘트 담벼락들.
어릴 적 깨복쟁이 시절을 생각나게 해
눈을 뗄 수가 없었던 추억들.



"성북동 아름다운 나무"라는 푯말이 붙어 있던,
밑둥 부분이 붙은 연리지.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가득.

성북동!
골목 골목마다 비밀을 품고 있는 동네.
운이 좋다면 걸음 속에서
우연히 지나간 시간을 만날 수도 있는 곳.



"심우장"의 편액은 위창 오세창이 쓴 것이란다. 
‘심우(尋牛)’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선종(禪宗)의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로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일제시대에 호적도 올리지 않고 배급도 받지 않은 채
이곳 심우장에서 영양실조로 66세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일대 20만평의 땅으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온 청년은
뺨을 맞고 돌아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지금 이 시대에 아직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