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8. 31. 05:55

<The Road> - 코맥 매카시

로드(THE ROAD)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
이런 광고와 함께 2008년 6월 우리나라를 그야말로 강타했던 소설입니다.
<The Road>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관성(?)있게 계속 길 위를 떠도는 (도저히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기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심지어는 거부감마저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왜 이 소설이 성서에 비교되고 있는 건지 납득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독특한 메시지를 준고 있다는 사실이죠.
“인류 대제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묵시론적 이야기”... 이 책에 대한 평들의 대부분을 장식하는 해드라인 문구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에게 설득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또 저의 찌질한 이해력 부족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긴 하겠지만요)
그들이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이 책엔 어떤 묵시론적인 암시나 계시 혹은 계명 같은 것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폐허와 추위의 땅 위에서 살아남는 10가지 방법쯤을 알려주는 길 위의 삶을 다룬 실용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인공인 남자와 소년은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존재입니다.
불이라… 인류의 문명이 시작이 불에서 비롯됐던가요?
그렇다면 그들을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건 다시 꽃피워야 할 새로운 문명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요? 아니면 모든 회복의 근본이어야 할 선한 인간성 회복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항상 무엇인가의 완벽한 해답인 사랑?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절망을 이겨낼 희망?
어쩌면 그 모든 것 다 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일 수도 물론 있죠)

일단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익명성에 있다 하겠습니다.
남자, 소년, 사내, 노인, 여자….
그 누구도 구체적인 이름이나 심지어는 형체조차도 소유하지 않기도 하죠.
마치 현대인처럼요…(혹시 난 이름이 있는데…. 라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불탄 거리에 꽂혀 있는 반쯤 타버린 인간 미라들과 주인공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살아남음의 이유가 어떤 목적과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 내지는 일종의 눈속임 같은 건 혹 아닐지…
실제로 이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주인공들.
그들이 실제 "부자지간"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 신을 모시고 길에 떠나는 제자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 신의 어깨 위엔 반드시 인류 구원이라는 대전제가 걸려 있어야 하겠죠!!
그런 점에선 확실히 성경의 모티브가 느껴지긴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들이 있는 지금 이 세계는 불의 재앙으로 거의 모든 인류와 세상이 멸종 상태에 있습니다.
아직 뜨거운 재앙이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이곳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음식을 구하며 방수포에 의지하여 추위를 견디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낡은 쇼핑 카트를 끌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만 떠올린다면 참 코믹하고 우수운 비주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 주인공의 선문답에 가까운 단답형의 대화.
그들의 대화는 지금 그들이 처한 환경만큼이나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생명의 숨결이 느껴져 차라리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잠시 찾았던 완벽한 환경의 은신처마저도 그들은 버려야 했고 또 다시 굶주림과 추위의 땅으로 마른 몸과 낡은 카트를 끌고 들어섭니다. 늘 그랬듯이…
이젠 슬슬 제 몸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때론 이런 환경에 영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동정심에 제가 다 화를 내면서 몇 개 남지 않은 깡통이 마치 내 것인냥 움켜쥐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의 표현처럼 순간 제가 "좀비"가 된 듯한 느낌이죠.
이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도 없다"고 말하는 그곳, 아니 이곳에서요.
지금 내 세상에서 "재앙"이란 어떤 형태일까요?
그 "재앙"을 뚫고 우리는 꼭 뭔가를 남겨야만 하는 걸까요?
소년은 어느 순간 묻습니다.
"아빠!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남자는 소년을 남기고 이제 눈을 감으려 합니다.
그는 소년에게 남쪽으로 계속 가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잠시 길 위에서 마주쳤던 작은 아이를 떠올리며 묻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누가 찾아주죠? 누가 그 아이를 찾아요?"
남자가 마지막 말을 합니다.
"선(善)이 꼬마를 찾을 거야. 언제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빠라는 남자를 잃은 소년은 또 다른 남자를 만납니다.
함께 가자고 말하는 남자에게 소년은 말합니다.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남자는 말합니다.
"알 수 없지. 그냥 운에 맡겨야지, 뭐"
길을 잃은 소년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꼬마를 찾아온 선(善)이었을까요?
만약 그 질문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 이상하게도 불편한 책들을 많이 읽고 좋아하게 됩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일게 되는 건 그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과 의미 때문일겁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또 다른 불편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됩니다.
   책 표지를 다시 살펴봤죠.
   역시나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번역했던 정영목의 번역작이네요.
   이 책의 마지막 4페이지는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이 부분도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번역가의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코맥 매카시"에 대해 어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2. 13:33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 비키 바이런, 브렛 워티  

듀이


반려 동물!

이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예전에 집동물이라고 하면 키워서 먹는다는 보양(?) 개념의 축생이었는데 지금은 동반자 관계를 넘어 부모자식으로까지 발전된(?) 관계도 아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동반의 반려관계는 마음의 독거인(獨居人)인 그네들의 외로움과 고독감을 둘만의 긴밀한 소통으로 치유할 수 있는 묘한 “미스터리”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개어머님”, “개아버님”을 보면 개념도 함께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난감한 표정을 짓게 되죠.

주먹만한 강아지도 무지 무서워하는 저로서는 쉽게 손에 들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등장하고 있는 눈 큰 고양이의 시선이라니......

예전부터 고양이는 영매(靈媒)로 쓰였다는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래봤자 뭐 책 속의 고양이일 테니까요.


1988년 1월 18일, 가장 추웠던 겨울 날 !

아이오와주 스펜서 마을 공공 도서관 사서 비키는 도서 반납함에서 동상에 걸린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은 매서운 계절보다 더 세차게 몰아치는 경제 위기의 상황이었죠.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동상 걸린 네 발을 가진 버려진 오렌지색 새끼 고양이는 그렇게 해서 "듀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Dewey Readmore Books"

도서관 고양이로는 아주 적절한 이름이 아닐까요?

우여곡절 끝에 도서관에 새로운 식구가 된 “듀이”는 오랜 경제 위기로 희망을 잃어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사랑, 위안을 안겨 주며 마을 전체의 친구가 되어 갑니다.

그런 듀이에게도 그만의 관계맺기 방식은 있습니다.

“한 번에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을 얻어간다“는.....

한 번에 단 한 사람에게만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끝내 진심으로 열고야 마는 작은 고양이 듀이.

인맥 네트워크의 대가라고 소개해드리고 싶을 정돕니다.

그렇게 마음을 얻어낸 듀이는 급기야 도서관을 찾는 사람 각자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말벗이 필요한 노인들의 무릎 위로 올라가 기꺼이 체온을 나누며, 장애우 아이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하죠.

그렇게 이 작은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갑니다.

단지 마음을 나누는 방식, 그것 하나로 말이죠.

사람을 완전히, 못 말린 정도로 믿어주는 고양이 듀이는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어줌으로써 사람들 한명 한명을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꾼이기도 합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고 그리고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죠.

사람의 가치는 이웃들에게 얼마나 존경받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듀이는 이미 고양이로써 사람의 가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 셈이네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만들어낸 큰 기적!

단지 반려 동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는 서양인의 시선이 아니더라도 누런 피부에 까만 눈을 가진 이국(異國)의 제 눈에도 이 고양이의 특별함은 인지되고도 남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상처를 숨기는 사람은 어디서든 그 티가 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듀이는,

상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주는 고양이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도 뻔히 모른 체하고 지나쳐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감한 반기를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설(漏泄)”

우리는 우연한 비밀을 알게 되면 크든 작든 폭로하고픈 누설의 욕망에 부딪칩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해 달라며 온 몸으로 힘듬을 누설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철저한 비밀보장을 맹세하며 못 본 척 고개를 돌려줍니다.

사실 그가 원한 건 그런 외면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내가 옳았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지도 모르죠.

“듀이”라는 작은 고양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도서관에 버려진, 그래서 그곳에서 사람들과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는 고양이라서가 아닙니다.

듀이의 역할이 결코 스펜서 도서관의 마스코트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면 그렇게 숱한 "미투(mee too) 듀이“가 탄생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미투 듀이”의 재생 역시 “동물 학대”의 또 다른 형태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죠.

확실히 도서관이라는 곳은,

고양이가 살 만한 적당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도서관에서의 삶을 선택한 “듀이”

어쩌면 작은 고양이에게도 그 사실은 하나의 큰 도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라. 그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라.

 인생은 물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어디에서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


2006년 위종양으로 안락사하기 전까지 19년간 듀이는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신화”라는 단어를 쓰는 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Dewey Readmore Books"는 이제 스펜서의 신화를 넘어 전 세계의 신화로 남겨졌습니다.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상처를 보게 된다면,

듀이처럼 재빠르게, 듀이처럼 적절하게, 그리고 듀이처럼 진심으로 그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리고 기꺼이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처!

참 고약한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아픈 틈이기도 합니다.

“그 틈새로 들어가세요~~!‘

황금빛 커다란 눈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도 용기 한번 내 볼까요!!!


*듀이 공식 홈페이지 : www.deweyreadmorebooks.com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 05:36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 오주석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주 위로받기 위해 찾아간 곳이 있었습니다.

“간송미술관”

5월 17일부터 어제 5월 31까지 2주 동안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있었죠.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두 번 봄, 가을에 약 2주 정도의 기간으로 이런 양질의 전시 기획을 꼭 합니다. (게다가 믿어지지 않겠지만 입장료도 없습니다)

올 봄에는 “겸재화파전”이 열린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죠.

시기적절하게도 이 책을 만나 미술관을 찾기 전에 반가운 마음으로 먼저 찾아 읽었습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

우리시대 최고의 그림 읽어주는 남자였던 사람!

재미있는 입담과 수려한 문장, 그리고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해박한 지식과 일목요연한 해석이 그림을 재미있는 소설로 읽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길라잡이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올 4월 또 한권의 유고작으로 출판된 책이 바로 오늘 제가 소개하는 책입니다.

제 생각으론 오주석이 쓴 책 중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림 1점을 가지고도 한권의 책을 집필했던 분이죠.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라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다거나 너무 개괄적일거란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 짧은 글 속에 그림 속에서 우리가 보고 느껴야 할 것들 그리고 심지어 품고 있는 내밀한 비밀까지도 모두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필력을 자랑하면서 말이죠.

이곳에 소개된 그림은 모두 27점으로 그가 생전에 신문을 통해 발표했던 원고지 10매 분량의 글들을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제일 고사하고 싶어 하는 글이 바로 원고지 10매 내외 분량의 글이라고 하네요.

내용을 깊게 들어가기에도 힘든 분량이고, 그렇다고 간단한 소개로만 글을 채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참 난해한 글쓰기가 된다고요.

그런데 이 책에 나온 글들은 참 재미집니다.

꼭 화톳불 피워놓고 두런두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다정함이죠.

결정적인 순간에 이야기가 끊기면 자꾸 할머니를 채근했던 기억,

“할머니! 그 다음은~~~~”

제겐 꼭 그런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다정한 할머니가 됐던 이 사람!

나머지가 궁금하면 이제 직접 찾아보라고 하네요.

꼭 그런 느낌입니다.

어릴 적 기대감으로 봤던 TV 만화영화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나왔던 한 마디!

“다음 이 시간에~~~”

어쩐지 양 볼에 바람을 잔뜩 넣은 심통쟁이 표정이 되긴 하지만 직접 찾아보는 솔솔한 재미도 놓치고 싶지 않긴 합니다.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 - 신윤복〉


                               〈야묘도추도(野猫盜雛圖) - 김득신〉

 

간송미술관을 찾았더니 올해가 마침 겸재 정선 서거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네요.

실제로 전시장에서 이 책에 나온 정선의 작품 3점(금강내산도, 통천문암도, 만폭동도)을 직접 보고 왔습니다.

그 짜릿함과 벅찬 기쁨이라니...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 - 정선>


특히 책에서 인상 깊게 봤던 <통천문암도>를 실물로 보니 입이 절로 벌어졌습니다.

거의 사람 키만한 그림 크기에 그 세밀함이라니.....(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저의 무식함을 부디 용서하소서~~!)

마치 천계로 가는 입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림 앞에서 절감하게 되는 엄청난 경건함이라니!



     

         <통천문암도(通川門岩圖) - 정선>                     〈만폭동도(萬瀑洞圖) - 정선〉


안타깝게도 이젠 전시기간이 끝나 찾아보라고 권해드리지 못하겠네요.

혹 안타까워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이 충분한 위로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조선시대 그림들이 아주 정겹고 가까운 듯 느껴지실 거예요.

더불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그림들이 품고 있는 은밀한 비밀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되면 서늘한 만족감도 덤으로 만나실 겁니다.

오주석의 글들을 읽으면, 그림 속을 이리저리 산책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햇살 좋은 오후의 푸른 숲으로의 산책 !

자, 신발끈 잘 묶고 이제부터 같이 산책해보는 거 어떠세요?

이해의 여부를 떠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황폐하고 무거웠던 마음을 잠시 “위로”받을 수 있을거란 사실입니다.

다독다독....

한권의 책이
오늘도 저를 품고 안아줍니다.


                               〈세한도(歲寒圖) - 김정희〉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3. 25. 22:08
책에 흥미를 잃었던 적이 있던가?
<읽음>은 때론  유일한 탈출구이자
최상의 자극제였기에...

그의 혹은 그녀의 언어가
다가와,
온 몸을 관통하는 느낌

소망했었던 기억 하나.
"책을 읽다 눈 멀었으면..."


저벅저벅
거침없이 들어오는
환상들, 현실들, 추억들...


폴 오스터!
당신의 지배를
지금은 완벽히
인...정...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네요.
나의 넬라 판타지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