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1. 5. 16. 06:25

리모델링을 했는지 몇 년 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공간 구성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조명이나 전체적인 색감이 예뻐졌다.
약간 비릿했던 냄새도 전혀 없고...
해저터널은 처음 봤을때만큼 신비롭진 않았지만
역시 다른 생명들이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건
여전히 놀라운 신비이고 경이다.
움직임이 주는 아름다움!
생명은 그렇게 진화되고 그렇게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 움직임의 동선을 연결하면 물고기들의 나이테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식인물고기 피라냐가 빛깔이 이렇게 예뼜던가!
그 황금빛 움직임이 오랫동안 눈길을 잡아 끈다.
빵빵하게 부풀어른 작고 노란 복어를 보면서
그 모습을 따라하는 조카들의 웃음이 꼭 하늘처럼 푸르고 맑다.
몽유같은, 혹은 유령같은 눈을 가진 작은 물고기들은
어쩌면 24시간 꿈을 꾸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길조라는 쌍두거북의 모습은 어쩐지 섬득하고 측은하다.
두 개의 생각을 한 몸에 담고 산다는 건
결코 당사자에겐 길조가 아닌 혼돈일텐데...
길게 목을 늘리고 물 속을 헤엄치는 거북을 보면서
길조의 위대함보다 자유의 소박함이 백 배쯤은 더 황홀해보이더라. 
이것도 다 이기적인 내 생각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아이들의 움직임과 물고기들의 움직임은 공통점이 많다.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묘하게 질서가 있다는 거,
그런 모습이 천진한 웃음소리처럼 깨끗하고 청량하다는 거.
그렇겠지!
하나하나 계산하면서 동선을 그리진 않을테지.
그 자유로움을 보는 건 한없는 부러움이고 찬사였다.
그게 전부 진실은 아닐지라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유연한 움직임이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어쩔 수 없다.



거대한 수족관은 보는 사람을 몽유상태로 이끈다.
혹은 아름다운 최면이라고 해두자!
꿈꾸는 자유를 나는 이 작은 생물들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면서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그게 또 진심으로 부러웠다.
그들의 한때는 정말 좋았으리라...
그 기억이 아마도 지금 저들의 물길을 만들고 있는지도.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기다리고 있나.
어떤 기억으로 나는 내 길을 꿈꾸고 있나.
무겁고 거추장스런 물길만 끌고 있는 나는
그래서 늘 고단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4. 18. 06:22
폴 오스터의 소설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폴 오스터의 세계는 항상 몇 가지의 세계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연결되어 있기도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의 소설 제목처럼 그건 보이는 세계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상과 공상이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적인 스토리텔러 폴 오스터를 거쳐가면
그 세계는 현실보다 더 생생해서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공상화한다.
그을 읽고 있으면 내가 화자가 되고 서술자가 되어 주도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파고든다.
이건 일종의 마력이고 중독이다.
때론 진심으로 궁금하다.
내가 지금 몹쓸 흑마술에 걸린건 아닌지가...


각 장마다 시점과 서술자가 달라지고
믿어지지 않는 새로운 사실의 등장과 폭로는
읽는 사람을 불연듯 섬득하게 만든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 워커의 말처럼 좀 혐오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읽기를 그만둔다면,
보른의 말처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보이는 세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혹은 지금 보이는 세상이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책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를 내몬다.
나는 이 모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폭로같은 진실들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진짜 진실이라는 게 이 중에 있기는 한걸까?
오스터의 글은 점점 재미와 함께 무거운 중압감을 남긴다.
그의 앞으로의 글들이 그래서 나는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세계가 내겐 moon hill 이다.

이 소설에서 오스터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 속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기억이든 환상이든 우연이든) 그 사건이 존재한다. 이렇게 볼 때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해 내는 이야기가 먼저 있고 그 이야기 속의 나는 얼마든지 <그>로 대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 꾸며낸 것이든 혹은 꾸며내지 않은 것이든 - 일관된 이야기가 그 사람의 자아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들은 모두 호모 파블라토르(Homo fabulator,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다 

작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invisible>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된 문장을 이러하다.
....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나>는 <그>가 되었다.
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를 <그>나 <너>라고 보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였다.
문단계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그의 작품을 그래도 몇 편 찾아 읽었고,
읽고 나서 혀를 내눌렀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책은 매번 놓였었다.
드디어... 드디어.. 읽어버렸다.
김연수.
그는 아무래도 신내림을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의 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참 볼품없는 억지스런 엉김이지만 내 또래의 나이다.
고작 그정도의 나이테밖에 갖지 못한  그가
조선 시대를 이야기하고, 신민지 시대를 이야기하고
만주 지역을 이야기하고, 혜초의 왕오천국국전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기록된 역사를 철저히 불신하면서 완벽하게 고립의 언어로 말이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희극적으로 들릴만큼 비의적이다.
이미 늙어버린 그의 언어는 세상 그 어떤 생물보다 생명력있게 펄덕인다.
그 펄덕임이 문득 무섭다.
마치 그게 유일한 생명력 같아서...
꼭 태고의 눈으로 뒤덮인 낭가파르파트 꼭대기에서 홀로 조난당한 느낌이다.
참. 비.극.적.이.다.
인간도, 인간이 만든 모든 역사도 신기루가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만둘까?
그만둘 용기도, 허세도 없는 인간은
신기루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신기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간다.
별 수 있나!
인간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고,
역사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인데...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3. 21:35


처음엔 분명히 그랬다.
이젠 별 놈의 책들이 다 나오는구나...
그런데 놀랐다.
이 책이 그들이 직접 쓴 글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이돌이라고.



난 이들의 머릿속엔
연예인에 대한 환상과 인기에 대한 욕망 밖엔 없다고 단정했다.
스포트라이트의 화려함에 목숨을 건 겉멋든 아이돌 그룹이라고...
그런데 그들이 목숨 걸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연예인"에 목숨을 걸었던 게 아니라
자신들의 꿈과 목표에 목숨 전부를 걸었던 거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 희망은
너무도 명확하고 확실하기에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들을 두고 YG 엔터테이먼트 대표 양현석은 말한다.
"어리다고 치부하기엔 그들은 너무나 뜨겁다.
 마치 주변의 에너지를 모수 흡수하며 자라나는 괴기한 생물처럼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라고...
BIGBANG은 지금 촉각의 세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어 있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뛰어들어 하나씩 부딪치며 경험해야 직성이 풀리는 "촉각의 세대"
기성세대가 그들을 보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단정짓는 건
어쩌면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과 꿈은
누구에게라도 확실한 두려움으로 다가가기에 
너.무.도.충.분.하.다.
 



이 책을 읽으면
빅뱅이라는 아이돌 그룹이 단지 "운"이 좋은 그룹도
그렇다고 철저하게 완벽한 "실력"으로 뭉친 그룹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의 말처럼 빅뱅은 확실히 "노력파"에 가깝다.
본인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자가발전형 아이돌"
참 적절한 표현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라고 말하는 빅뱅!
이런 말을 고작 20대의 초입에 서 있는 그들이 한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은 자신들의 경쟁력과 단점을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득 무섭다.
확고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빅뱅의 세계가...
그리고 앞으로 이뤄질 그들의 남은 꿈들까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5. 18. 06:30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 윤대녕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은어낚시통신>으로 유명한 작가 윤대녕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원래 1995년에 발표됐었는데 작년에 몇 군데 손을 본 후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판했습니다.

좀 무서운 내용이죠.

왜냐하면 외면하고 싶은 그래서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들춰내는 이야기이니까요.

어느 한 때의 시간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다는 소망!

그런 소망을 품었던 사람에겐 이 책이 참 아프고 힘든 책이 될 지도 혹 모르겠네요.

<기억>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일 겁니다.

나는 끝장이 나도 결코 끝장나지 않을 <시간>!

이 소설의 시작도 이렇게 시간에서 비롯됩니다.

되새떼... 

겨울이 되어 찾아온 이놈들은 이듬해 봄이면 다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겨울이면 찾아오죠. 어찌 보면 새라는 건 반복되고 순환되는 시간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네요.


한 남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번역 에이전시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번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이 사람에겐 세 개의 시간이 있네요.

현실, 그리고 과거,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더 먼 과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나이테 같은 성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멈춰 서면 곧장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고요....

기억나지 않는 시간을 가진 사람의 삶이란 그렇다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순 없을 듯 하네요.

내가 날마다 남이 되는 삶...

이 사람, 그래도 잘 살아가는 듯 합니다.

머릿속 퓨즈가 끊어지기 전까진 말이죠.

어느 날, 에이전시를 통해 그에게 3개월의 기한을 준 번역이 의뢰됩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E"라는 이니셜의 인물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게 되죠.

E는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오는 벌레 구멍을 찾게....."

이제 그는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기이한 일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잊어 버렸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고백하죠.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내게 다가오고 있어. 누군가 밧줄을 이용해서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 같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의 조용한 완력으로”

이 남자가 기억을 찾아내는 일은 참 더디고 그리고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순간순간 남자는 데자뷰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지독한 혼돈이고 그리고 더 지독한 고통이죠.

그러다 “꽝!” 하는 정오의 대포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곧 그가 잊었던 먼 과거는 어느새 “현실”로 성큼 다가와 버리게 되죠.


우리 몸속에는 누구에게나 시계가 하나씩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면 과거의 나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단지 누구도 더 이상 돌리고 싶어 하지 않을 뿐.

그 기억이란 게 나를 움켜쥐고 할퀴고 상하게 한 기억이라면 차라리 시계바늘을 뽑아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정삼각형의 균형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테지만요.

(이런 생각들, 저는 참 공포스럽습니다....)

시간은 곡선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둥그렇게 말리면서 원을 형성한다고요. 그래서 그 시작과 끝이 서로 이어지면서 무한히 되풀이 된다고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분명 찾을 수 있지만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거지도요.

하지만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소유에 대한 책임까지도 함께 잃어버려지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

영화를 보러 가기 전과 후의 세계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옛날 영화가 끝이 나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회복된 새로운 공간 안에 서 있게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옛날”과 “오래된”의 차이.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둘 다 과거의 시점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이란 단어가 왠지 더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이란 말 속엔 망각 혹은 잊음에 대한 일말의 허용이 보였기 때문이죠.

어쩌면 “옛날”을 “오래된”으로 교묘하게 바뀌고 싶은 제 내면의 고백인지도 모르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 “옛날”을 추궁하는 것 같아 맘이 많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제 과거에 대해서 아직 전 관대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우리 또한 모두 그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평등”을 믿는 거라고 하네요.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 다짐하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네요.

“살아가야지! 살아가야지!”

이 책은 그렇게 나를 다독거리며 응원합니다.

그렇다면,

응원 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당신이 대답할 차례가

이제 온 것 같습니다.


부디 산 자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