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04 <모내기 블루스> - 김종광
  2. 2009.12.29 달동네 책거리 78 : <오 해피데이>
읽고 끄적 끄적...2010. 5. 4. 05:52
이권우의 서평집 <죽도록 책만 읽는>이란 책에서 소개된 책이었다.
짧은 소개만으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구나 생각했던 책이다.
1071년생.
나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사람이 쓴 농촌 이야기...
동시대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에 가까운 세계, 농촌.
나는 혹시 이 책장을 펼치면서
양촌리 전원일기의 인자한 김회장이나 수다스런 일용엄니를 만나게 될거라고 기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속엔 양촌리 "전원일기"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양촌리 김회장은 진정한 현실에서는 없는 것처럼...
모내기 블루스  / 노래를 못하면 아, 미운 사람 / 윷을 던져라 / 언론낙서백일장
서점, 네시 / 당구장 십이시 /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 열쇠가 없는 사람들 / 배신
9편의 단편들은 하나 같이 구질구질하고 그리고 심지어는 조금씩 불쾌하기까지 하다.
마치 막걸리에 불콰하게 취한 사람이 바로 옆에서 쉰내 나는 트름을 연거푸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 불쾌함은 피폐된 농촌 현실과의 적나라한 조우에서 오는 불쾌함이기도 하다.
어차피 매일 한술의 밥을 입 안에 밀어넣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건 다 마찬가진데...
"유전무죄, 무전유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이
이제는 농촌의 실정과 딱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깔깔한 쌀을 씹듯 씁쓸하다.
입 안에 쌀을 넣을 쌀을 위해 사는 사람이
그 쌀을 키우는 사람에게 이런 측은하고 가여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게
어쩐지 영 불편하고 송구스럽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냥 재미만으로 읽고 넘어가기에
묵직한 대목들이 너무 많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현실을 목격해야 하기에...
읽는 동안 박장대소를 하긴 하지만 어쩐지 뒤가 구려 자꾸 멈칫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게 만들었냐?"하며 대거리를 하고 싶어지지만
사실을 따지자면 내가 안 그런 것도 아니니까 할 말이 더 없다.
잰장!
대놓고 훈계하는 소설보다 이런 글을 읽을 때가 더 바늘방석같다.
엉덩이를 지나 온 몸이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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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도 인터넷으로 고객관리하는 21세기 세상에, 농촌은 이게 뭐래?"
"새천년의 현실이다. 이십일세기는 가는 놈들이 가는 거구, 우리 같은 놈들은 죽기 전에 십구세기를 면할라나도 물러" - 모내기 블루스

한탕주의란 어떤 사조를 가리키는가.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사상. 민주주의보다도, 마르크스주의보다도, 자본주의보다도, 그 어떤 사상보다도 위대했던 사상. 그러나 그 누구도 사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상, 엄연히 확실히 핵폭탄 급수의 장악력으로 늘 존재하면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사상, 하지만 거의 누구에게나 있는 사상, 지극히 간단히 말해서, 말 그대로 한탕해서 모든 것을 만회하거나, 혹은 이후의 모든 것을 마련하자는 사상. - 언론낙서백일장

...... 3차 과정은 지극지긋했던 '학교 다니기'였다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6년 동안 학교 다니기 훈련을 받았다네. 대학원이나 해외유학이라는 시설을 갖춘 신병 훈련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는데,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내가 있던 훈련소에는 재정이 모라자 그런 시설은 없었다네, 물론 내가 있던 훈련소보다도 재정상태가 불량한 훈련소도 있었다네. 거의 드문 경우로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설이 없는 훈련소가 있었고, 흔한 경우로는 대학교 시설이 없는 훈련소가 있었다네.
그리하여 16년에 걸친, 길고 긴 학교 다니기 훈련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군인의 자격을 얻었는가 싶었다네. 내가 배치될 부대는 어디일까, 설레기도 하면서,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면서 말이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네. 4차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네
4차 과정은 모든 훈련소가 다같이, 재정에 관계없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실시하는 훈련이라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네. 모든 훈련소는 그 훈련과정을 운영하는 데 단 일원의 경비도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네. 어느 훈련소의 경우에는 직원들조차 없었다네
살기 훈련, 그것이 4차 과정이었다네. 죽는다는 것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산다는 것은 밥을 먹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네. 4차 과정은, 살기, 다시 말해서 밥먹고 견디기였다네. - 당구장 십이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가 없어요. 김지하 선생님의 오적들만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산 놈들이 또 있습니까? 때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건, 위험합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삶이 때로는 타인에게 억압과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단 말입니다. 열심히 사는 삶보다, 옳은 방향의 삶이 더 중요하단 말입니다. 옳은 방향의 삶이 아니다 싶을 때는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는 게 낫습니다.

몇 줄의 글로써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가둬둘 수 잇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글의 오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은 숙명적으로 사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육십평생을 육체노동에 종사해왔는데, 그의 아들은 육체노동이라면 겁부터 내"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아버지처럼 농부가 되었을까? 아니다, 아버지처럼 농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자본주의 논리가 가장 안 통하는 곳, 농촌, 그곳에서 아버지처럼 살기는 싫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개겨야 돼. 그게 농촌 출신들의 숙명이야. 대학 나온 우리가 농촌에서 뭘 할 수가 있지? 어떻게서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돼. 우리가 개겨볼 데는 서울밖에 없어. 서울만이 우리에게 관대하지 - 서울, 눈 거의 내리지 않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9. 06:12
 <오 해피데이> - 오쿠다 히데오


 오 해피데이


오쿠다 히데오, 요시다 슈이치, 시마다 마사히코!

이 세 사람들이 바로 현재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중년 남성 작가입니다.

세 명의 작가 모두 이력이 특이하고 글 쓰는 스타일도 다르죠.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세 명 모두 얼마 전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오늘은 이 세 명의 작가 중 가장 연장자인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오 해피데이>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1959년 출생한 오쿠다 히데오는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구성작가 등으로 일하다가 불혹의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무림의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한 셈이죠.

그의 매력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유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그네>, <인더풀>, <면장 선거>...

이 일련의 시리즈 제목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지 않나요?

환자보다 더 정신병자 같은 엽기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사계절 육감적인 핫팬츠 차림으로 비타민 주사를 엉덩이에 힘차게 내리꽃는 간호사 마유미.

이 등장인물을 가지고 3년 동안 무려 3권의 책을 쓴 작가죠.

오쿠다 히데오의 장점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뻔뻔하게 탈바꿈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거 혹시 내 이야긴가?”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죠.

머릿속으로 급행열차가 지나가거나, 혹은 이유없이 기분이 가라앉아 땅이라도 뚫을 기세인 사람이 읽으면 기분을 UP 시키는데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어쩐지 애들은 가~~ 애들은 가~~~라고 말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


<오 해피데이>는 일상의 묘한 부분(?)에서 특이한 행복감에 빠져 있는 6명의 남녀가 6편의 옴니버스 속에 등장합니다.

인터넷 경매 싸이트 옥션에 중독된 42살 전업 주부 노리코.

물건 구매자가 상품평에 좋은 말을 써 주면 그녀는 변비도 사라지고 눈가에 주름도 사라집니다. 젊어졌다는 주위의 찬사도 듣다 보니 없던 자신감도 마구 샘솟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다 돌아오던 학부모 간담회에서 꽤나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던져 학교 관계자들을 쩔쩔매게 만듭니다. 뒤따라 이어지는 꿀 먹은 주변 아줌마들의 선망의 시선들...

옥션 아이디처럼 그녀에게 비로소 “Sunny Day"가 찾아 온거죠.

급기야 남편이 아끼는 한정판 텐테이블을 일종의 응징(?)으로 옥션에 올리기에 이릅니다.

옥션을 통해 젊음을 되찾고 자신감을 얻는 주부라...

어쩐지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고백은 정곡을 찌릅니다.

“ ...... 타인에게 칭찬받은 적이 없는 주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칭찬 하나에도 기뻐한다. 그리고 그런 충족감을 느끼고 싶어 매번 옥션에 참가하게 된다..... ”

좀 뜨끔한 부분 아닙니까?


14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의 도산하는 바람에 36살 유스케는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다행히 아내가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재취업하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유스케는 아내의 자리, 전업 주부가 되기로 결정하죠.

그런데 이 남자! 여기서 유토피아 비슷한 걸 발견합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의 도시락을 싸고, 매끼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에 빨래, 다림질까지...

집안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를 느끼고 더 잘하고 싶어져 요리책도 사고 일의 노하우도 하나씩 터득하고, 매일의 식사 메뉴를 생각하는 등 주부의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죠.

한 입만 베어진 체 남겨진 아들의 도시락 속 반찬을 보면서 남자는 생각합니다.

“ ...... 자신이 만든 반찬이 맛없다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여자들은 자신이 만든 반찬에 내려지는 심판을 어떻게 견뎌 낼까? ...... ”

성실한 전업 주부가 된 남자는 사물을 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죠.

비록 놀이터에서 만난 노인에게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50가지 명언>이라는 책과 함께 동정의 눈길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시선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 바꾸기라면, 그리고 그 자리가 당사자에게 "happy”하다면 기꺼이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별거로 혼자 남게 된 38살 마사하루는 자신의 집을 점차 남자들의 로망인 꿈의 아지트로 만듭니다.

아내는 잘 꾸며진 남편의 집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여자를 끌어들인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고 아내는 말하네요. 함께 산 8년의 세월에 싹 무시된 기분이었다고...

남자에게 진짜 자기 방이 필요한 것은 삼십 대가 지나서라고 책 속의 남자들은 말합니다. 번듯한 집도 있고 CD나 DVD, 오디오 세트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내 공간이 없다는 게 서글프다는 거죠.

그런데 둥지를 짓는다는 건 또 여자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네요. 그래서 달랑 하나밖에 없는 집을 남자의 왕국으로 만들 수는 없는 거라고, 집이란 여자들의 성역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서른을 넘긴 남자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곰곰 생각해보면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도 말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 집에 놀려와!”라고 말할 수 있는 아지트를 소망한다는 거.

딱 내 이야기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부업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10살 연하의 남자를 꿈속에 등장시켜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다 그야말로 헛물만 켜게 된 전업 주부가 등장하는가 하면,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사표를 낼 때마다(아내는 그런 남편을 “성실한 한탕주의자”라고 표현하더군요) 묘하게도 놀라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 일러스트 아내 이야기, 젠체하면서 환경과 미래를 생각한다고 으스대는 로하스 예찬자를 삐꼬는 소설을 쓴 소설가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로하스 예찬자 중엔 아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평화라는 절대절명의 생존(?)을 위해 아내의 침묵 속에서 거친 현미밥을 꼭꼭 씹어 삼기며 출판사에 전화를 합니다.

“그 원고 제발 파기해주세요~~~” 라고...


6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 읽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은근히 짠한 마음도 듭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 모두가 그대로 내 삶의 모습이고 당신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모든 주부는 언제나 혼자다!”

<오 해피데이>는 그러니까 늘 혼자인 주부를 향한 작은 위로와 다독거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따지고 보면 주부가 “오 해피데이!”라고 말 할 수 있다면 가정 역시도 절로 “오 해피데이!”스러워지는 거 아닌가요?

가정이 “happy”해지면 사회도 "happy”해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happy”해지고... (정치도 “happy”해질거라는 공상만화스러운 전망은 차마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숱한 주부들에게 어쩐지 한 번 묻어 보고 싶어집니다.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죠.


Oh! Happy한 당신의 모든 Day를 위하여~~~

Bravo~!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