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4. 15. 08:28

<Love, Love, Love>

일시 : 2013.03.27. ~ 2013.04.21.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본 : 마이크 바틀렛

연출 : 이상우

출연 : 전혜진, 이선균, 김훈만, 노수산나, 노기용

 

이선균, 전혜진 부부가 연극에 출연한단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도 부부로 나온단다.

도대체 이 부부는 이런 용감한 선택한 어떻게 할 수 있엇을까?

위험을 감수할만큼 이 작품이 좋았다는 의미일텐데 도대체 이 작품이 어디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일단은 그게 궁금했다.,

워낙에 광클엔 잼뱅인지라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예상은 했지만 티켓팅이 시작되자 엄청났다.

클릭하기가 무섭게 자리가 쏙쏙 빠져나간다.

조금씩 초초해지기 시작했는데 겨우 일곱째줄에 자리 하나를 잡았다.

SoSo... 이 정도면 내 입장에선 만족이다.

사실 이 연극에서 궁금한 배우는 이선균이 아니라 전혜진이었다.

내가 아는 전혜전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의 쌍둥이 누나로 나왔던 걸 본 게 전부다.

(처음 보는 배운데 멘탈이 떨어진 연기를 아주 잘해서 누군지 궁금했었다.)

인터뷰에서 이선균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혜진씨는 집에 있기엔 아까운 배우라고 항상 생각했다. 배우 전혜진에 대해선 원래부터 팬이었다. 좋아하는 배우고 훌륭한 배우다. 녹슬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산드라 역은 대한민국에서 전혜진만큼 잘 할 배우가 있을가 싶다"

이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땐,

다분히 팔불출스런 발언이긴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3년만에 연기에 복귀하는 아내에게 이선균이 힘을 주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우 연출까지 한마디 거든다.

"작년에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산드라 역으로 전혜진 배우가 떠올랐다. 그리고 전혜진씨를 캐스팅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선균 배우가 딸려 왔다"

이상우 연출의 솔직한 발언에 혼자 박장대소했다.

알흠다운 목소리로 대한민국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배우 이선균이

졸지에 일종의 끼워팔기 옵션이 되버리는 순간이다.

그런데 어쩌나...

두 사람의 발언은 100% 진실이었다.

 

전체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세대를 통해 한 가정의 일생 전체를 보여준다.

아주 솔직하고, 아주 노골적이고, 아주 현실적으로! 

사실 이 작품 보면서 참 여러번 화가 났다.

데카당과 해방를 외치며 대마를 피워대는19살 옥스퍼드 대학생 켄과 샌디.

이 둘의 origne 없는 자유의 외침은 일종의 착각이고 환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대 위엔 세기의 그룹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가 흐른다.

참 아이러한 건 이 노래의 후렴구 "love, love, love"는 엇박자의 연속이다.

인생 뭐 있나!

기를 쓰고 박자를 맞춰놔도 어느 순간 살짝 엇박으로 흐트러지는 게 다반사인데!

특히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더욱 더.

결혼하지 않겠다는 샌디는 켄과 결혼을 했고 40대가 됐다.

부모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는 자폐증 아들,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예민하고 날카롭다.

남편과 아내는 딸의 16살 생일 날,

서로의 외도를 의심하고,부정하고 확신하다 이해하고 인정한다.

딸의 생일 케익을 자르고 샌디는 말한다.

"사랑엔 해피엔딩이 없어. 우린 그냥 동물이야. 사건은 터졌고, 그래서 결론은 이혼이야!"

아! 정말 이보다 so~~~ cool 할 수 없다! (정말?)

 

60이 된 과거(?)의 부부는 윤택한 노후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물론 각자 따로!)

아들의 자폐증은 더 심해진 듯 보이고

두 부부를 불러 모은 서른 일곱 딸은 그야말로 폭탄 선언을 한다.

자신의 인생이 개엉망진창이라고.

마흔이 다 됐는데 아무 것도 없다면서 이 모든 게 전부 다 엄마아빠 잘못이란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하면서 커리어가 쌓일때까지 기다렸노라고.

그런데 그 커리어라는 게 쌓이지를 않는다고!

딸의 결론은 그래서 부모가 집을 사줘야 한단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자신만만하게 주장한다.

딸의 발언은 확실히 황당한 억지다.

그런데 어쩌나!

딸의 이 말도 안되는 억지가 또 너무나 절실히 공감이 되버리니...

그야말로 쓰나미급 발언이긴 하지만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다.

부모도, 자식도 도저히 욕할 수 없다.

서로의 결론은 결코 일치될 수 없을테고

어쨌든 결국 각자의 삶을 지금처럼 살아가겠지만

이 상황들,

참 슬프게 코믹하다.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밑에 깔린 현실구조가 막막하고 암담하다.

이걸 대본으로 만들 생각을 한 마이클 비틀렛이란 사람도 참 대단하다!

 

배우 전혜진의 연기는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작품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너무나 멋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선균도 그녀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판!

1막에서는 아무래도 다소 과장된 모습이긴 했지만

2막과 3막은 점차 그 나이대를 아주 무난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2막 ^^)

이선균은 "ㅅ" 발음이 ㅐ매우 부정확했고 전체적으로 딕션이 별로다.

연기도 TV 브라운관에서 보는 딱 그 만큼이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 전혜진을 보는 게 너무 황홀해 이선균의 연기를 눈여겨 볼 여유가 없었다.

이선균은 점처럼 작아지고, 전혜진의 존재는 점점 커져 무대를 꽉 채우는 느낌이다.

그녀를 계속 무대에서 보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커진다.

(TV 말고 무대에서!)

딸을 연기한 노수산나는 소리지르는 장면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목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톤이라 좀 피로했다.

김훈만과 노기용의 연기는 무난했던 것 같고...

 

무대 셋팅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오랫만이다.

이렇게 근사한 연극 무대를 본 게.

막과 막 사이 영상을 이용해서 시간의 흐름과 각 시대의 이슈되는 세계적인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그 영상이 극을 이해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니 꼭 놓치지 말고 꼭 보길!

이 작품,

확실히 참 재미있다.

그러나 그 재미만 보고 웃어버리기엔 작품이 갖는 무게감이 엄청나다.

관람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장면장면을 떠올리면 어깨가 믁직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진심을 담아 진중하게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7. 9. 08:46

<콩칠팔새삼륙>

 

부제 : 봄날 경성 연애사

일시 : 2012.06.29. ~ 2012.08.05.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극작 : 이수진

작사,작곡 : 이나오

음악감독 : 신경미

연출 : 주지희

프로듀서 : 조용신

출연 : 신의정, 최미소, 조휘, 최용민, 김정연, 김준오, 김보현, 유정은

제작 : 충무아트홀, 모비딕프로덕션

 

문화체육관광부 주최하고 명동예술극장 지원하는 2011 창작팩토리  뮤지컬 부분 1위를 차지하면서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이 된 창작 뮤지컬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랫만에 조휘의 공연을 보는구나 뭐 대략 그런 정도의 감흥(?)이었다.

프리뷰 티켓이 2만원이라는 것도 관람에 한 몫을 했다.

(아무리 소극장 공연에 초연 프리뷰라지만 이런 은혜로운 가격이 정말 얼마만인지...)

부제는 봄날 경성 연애사란다.

대놓고 촌스러움을 드러내는 그 과감성이라니...

게다가 요즘 공연계에서 한창 뜨고 있는(?) 동성애란다.

솔직히 보기 전부터 살짝 식상할 기미가 다분했다.

그.랬.드.랬.는.데...

 

이 작품 꽤 괜찮다.

동성애 코드가 진한 것도 아니고 내용 자체도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다.

(사실 이게 동성애가 맞나 싶다)

모든 여학생들의 데자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도 예전 학창시절에 친한 친구와 애뜻한 감정을 가지기도 했었다.

고등학교가 다른 곳으로 배정돼서 맨날 전화하면서 울었었다.

근데 그렇게 애뜻한 친구가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전혀 모른다.

산다는 게 참, 그렇다.

이 작품은 1931년 영등포 역에서 기차선로에 뛰어든 두 여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단다.

작품의 제목 <콩칠팔새삼륙>은 홍난파가 작곡한 동요의 제목에서 따왔는데

홍난파는 자신의 조카가 쓴 동시를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조카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홍옥임이라고.

홍옥임은 조선 최초로 의사 면허를 획득했던 일곱 명 홍석후 박사의 외동딸이고

김용주는 종로에서 유명한 사업가 김동진의 장녀였단다.

뭐 두 인물을 제외하고 모두 픽션이라지만 어쩐지 있을 법한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 두 여인은 동반자살을 했다는데

극의 내용처럼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와 사회진출이 허락되지 않은 시대상황에 대한 비관이었으리라.

어쨌든 실제 사건과 인물을 끄집어내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솔직히 유치찬란할까 걱정도 됐었는데

상당히 집중력있고 개연성있게 작품을 만들었다.

제목이 낯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는데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댄다는 뜻의 우리말이란다.

그래,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다 나름으로 살아지는 건데...

 

작품은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럽고 그리고 앙증맞다.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여자의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성차별적인 발언일까?

극작, 작사(작곡), 음악감독, 연출 4인방의 우먼 파워에

시종일관 열심히 제 몫을 하던 4명의 여배우들까지...

그렇다고 남자배우들의 활약상이 빈약하다는 소리는 결단코 아니다

4인의 남성 동지들도 멋졌다. 진심으로!

그리고 8명 배우가 원캐스트로 출연한다는 점에는 정말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요즘 공연은 더블캐스팅만 해줘도 얼마나 감지덕지한지...)

무대 뒤에는 5인조 밴드가 숨어있어 직접 스윙, 재즈, 탱고를 연주한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 넘버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연주도 괜찮고, 노래도 괜찮다.

촌스럽지 않게 편곡도 잘 된 것 같다.

덕분에 자칫 악극처럼 촌스러울 수 있는 노래들이 꽤 세련되게 들린다.

특히나 아름다운 건 스텝과 배우의 열정과 노력이다,

역할에 깊게 몰입되어 있는 배우들의 눈빛을 보는 건

관객으로써 지극한 행복이고 깊은 감동이다.

게다가 젊은 배우 일색의 무대가 아니라는 것도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

연세 지긋한 배우 최용민의 활약은 그래서 더 아름답고 든든하다.

홍옥임, 김동주를 제외한 6명 배우는  전부 멀태맨이라고 하겠다..

다양한 캐릭터들을, 그것도 잠깐의 등장하는 인물조차도 전부 자기 몫을 충분히 한다.

 

한창 뜨고 있는 hot한 배우가 있는 것도,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 스타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무대가 화려해서 눈이 호사하는 것도 아닌데도 이 작품.

참 착하고 이쁘고 매력적이다.

작지만 섬세하고 성실한 창작품의 탄생이다.

그러니 부디 성실하고 섬세하게 잘 발전했으면...

어쩐지 나도 모단걸이 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6. 18. 08:32

<그을린사랑>

 

일시 : 2012.06.05. ~ 2012.07.01.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와즈디 무아와드

연출 : 김동현

대본, 드라마투르기 : 배삼식

작곡, 음악감독 : 정재일

출연 : 이연규, 배해선, 남명렬, 백익남, 이윤재, 박성연, 김주완

        전박찬, 이진희, 이다아야.

 

이 연극을 대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연극이 아니라 고통스런 역사이고, 처참한 고발의 르포이자 그리고 처절하고 사실적인 다큐다.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고귀하고 장엄하고 웅장해서 황홀했다.

연극을 보고 한동안 복기(復記)조차 엄두도 못 낼 만큼 황폐하고 황량했다.

그래, 나는 이 연극에 완벽히 압도당했고 그래서 결국 오래 침묵했다.

나는 나왈의 침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노라 감히 말하련다.

무대에 우뚝 솟은 몇 개의 구조물을 보면서 나는 아주 오래전 역사를 기록해 우뚝 세워논 오벨리스크를 떠올렸다.

그들만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만 온전히 해독할 수 있는 묵시록적 언어.

그건 일종의 금기이자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 함께 있으니 모든 게 나아질거야"

5년 동안 긴 침묵으로 일관했던 나왈의 죽기 전 내 뱉은 문장.

이 문장이 화인(火印)이 되어 작품의 모든 여정은 시작된다.

시간을 되밟는 여정,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

그리고 결국 너무나 끔직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기원,

나의 태(胎)을 찾아가는 여정.

 

나왈의 유언장이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느에게 공개되는 날,

유언집행인은 남매에게 두 장의 편지와 함께 다음과 같은 유언을 전했다.

잔느에게는 너희들의 아버지를 찾아 편지를 전할 것을,

시몽에게는 너희들의 형을 찾아 나머지 편지를 전할 것을.

그 두 장의 편지가 아버지와 형이 읽게되면 또 다른 한 장의 편지가 공개될거라는 단서와 함께...

단 한 번도 어미로써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들은 남매는 혼돈에 빠진다.

지금껏 죽은 걸로 알고 있었던 아버지와

그리고 존재 자체도 몰랐던 형을 찾으라는 유언.

 

여자는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기꺼이 전사(戰士)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족의 역사가,

그 가족의 기원이 깊고 완강한 침묵이 될 수밖에 없다면?

남겨진 사람은 이제 선택을 해야한다.

금기를 깨부수고 침묵에 정면으로 소리를 치든지

아니면 더 깊고 오랜 침묵 속으로 숨어버리든지...

 

두 장의 편지는 남매에 의해 그들의 아비와 그들의 형에게 전달된다.

두 사람은 기원을 찾는 방정식을 풀었다.

1+1=2가 아닐 수 있다는 수학의 명제.

너무나 뻔한 명제가 뒤집힌 것처럼 충격적이고 잔인한 진실과 그들 모두는 대면중이다.

그들의 아비가 바로 그들의 형(오빠)이고, 

그들의 형(오빠)이 바로 그들의 아비라는 진실.

이 모든 게 과장이라고, 단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명예살인과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같은 나라라도 부족간의 생사를 거는 싸움이 난무하는 곳.

그곳에서 지금 일어나는 있는 일들은 이 사건보다 더 충격적이고 극악무도하다.

우리는 이 재앙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 금기를 무엇으로 깨부술 수 있을까? 

나왈은 근원적인 "사랑(모성)"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사랑이 있는 곳에 증오는 있을 수 없다!"

비록 태를 끊는 순간 바로 난민촌으로 보내졌던 아이였지만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나왈은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널 언제나 사랑할거야!"

애타게 아들을 찾아다닌 나왈.

25년이 훌쩍 지나 드디어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된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 둘은 서로의 태(胎)를, 서로의 근원을 알아볼 수 없었다.

포로로 잡힌 어미 나왈은 고문기술자로 불리는 자신의 아들에게 강간당한다.

그 후에 태어난 쌍둥이 아이...

 

이다아야. 배해선, 이연규가 연기한 나왈은

처음엔 순수했고, 나중엔 강인했고, 그리고 마지막엔 비장하고 웅장했다.

특히 이연규 나왈의 법정 장면과 편지 장면은 너무나 압도적이라 보는 내내 너무 비참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극도의 공포심까지 느꼈다.

참담함. 참담함. 참담함.

그러나 드디어 개봉된 마지막 편지.

나왈은 쌍둥이 남매의 아비이자 자신의 아들에게 말한다.

"넌 사랑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네 동생들도 역시 사랑으로 태어났다 .... 사랑이 있는 곳에 증오는 있을 수 없다"

용서와 이해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선명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여기에 누가 감히 정의를 운운하며 비난의 말을 퍼부을 수 있을까?

(정의는 개나 물어가게 놔두라지!)

누구라도 그럴 순 없다!

이건 비극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니까.

 

작품 전체를 관통하던 현과 건반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했다.

(음악감독 정재일에게도 깊은 찬사를...)

격정적이고 비장한 현의 울림.

땔로는 밝은 종소리로, 때로는 웅장함으로 극의 간극을 채웠던 건반의 떨림.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는 아득한 포탄소리.

귀기(鬼氣)가 느껴지갸ㅔ 섬득하면서도 아름다웠던 구음(口音)들.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르르 떨어지던 모래와 그 모래를 적시던 물.

거대한 구조물에 투영된 의미 심장한 영상들.

보도 듣는 모든 것이 다 하나의 의미였고, 하나의 진언이었고, 하나의 진혼곡이었다.

보고난 후 오래 아팠고 힘들었다.

나는 내가 본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기록해낼 수 없을테다. 결코!

 

* 10명의 배우 모두에게 한 순간도 경의를 표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장 아름답고 위대했다.

   그러니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모두 강건하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8. 14:10

<헤다 가불러>

 

일시 : 2012.05.02. ~ 2012.05.28.

장소 : 명동예술극장

출연 : 이혜영, 강애심, 김수현, 김성미, 김정호, 호산, 임성미

극작 : 헨리크 입센

연출 : 박정희

제작 : 명동예술극장

 

<햄릿 1999> 이후 12년만에 배우 이혜영이 연극 무대에 선다!

그것도 '현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입센의 <헤다 가불러>는 세계 초연 이후 120년 만에 우리나라에 초연무대를 갖게 됐다.

그만큼 함부러 도전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란 의미일까?

세계적으로 이 작품이 공연될 때는 누가 헤다 역을 하느냐가 매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데 우리나라가 선택한 첫번째 헤다는 배우 "이혜영"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품의 카리스마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솔직히 이혜영 한 명만 봐도 손해날 것 없는 작품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예매를 했었다.

명동예술극장은 개관한 이래 나름대로 주관과 곤조(?)를 가지고 좋은 작품을 성실하게 제작해왔다.

개인적으로 처음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는데

뭐랄까 어떤 독보적인 자존감 같은 게 느껴졌다.

살짝 독립군 같다고나 할까?

 

연극은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너무나 성실하고 극적이었다.

"헤다 가불러"라는 인물이 가지는 삶에 대한 욕망과 주도권에 대한 집착이 섬득하면서도 사실적이다.

고전적이면서도 섬세한 심리묘사나 대사들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한 인간, 한 여성의 마지막 이틀!

그 이틀의 시간이 평생의 시간보다 길고 강렬하다.

이 여자의 마지막은 또 얼마나 정당하고 당당한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느니 차라리 모든 걸 던져버리겠다.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성이 아닌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고집할만큼 헤다는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었던 헤다.

그녀는 일종의 개척자였고 기획자였다.

"욕망"이라는 건 또 얼마나 치밀하고 관능적인가!

그리고 또 배우 이혜영은 얼마나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화려하던가!

솔직히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영에게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헤다야 늘 아름답지 않니!"

테스만 고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다.

아니 솔직히 "이혜영이야 늘 아름답지 않니!"가 정확한 표현이다.

대사와 동작이 너무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되거나 힘이 들어간 게 아니라 정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른다.

50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젊은 헤다 역에 완벽히 동화됐고 충실했다.

무대에 서있는 자세와 눈빛, 동작 하나하나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보는 내내 완벽히 압도당했다.

특히 커튼콜때 이혜영의 모습은 연극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뭐랄까?

무대와 관객에 대한 깊은 존경과 경외심이 담긴 인사였다.

범접할 수 없는 여신같은 신비감과 아우라에 숨이 막혔다.

 

헤다와 후반부에 심리대결을 펼치는 판사 역의 김정호의 연기도 압권이다.

서로 아닌 척 하면서 팽팽하게 당기는 그 긴강감이라니...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상대를 얕잡아보는 듯하면서 느물거리는 독특한 김정호의 목소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표정도 너무 좋았고... 

이혜영뿐만 아니라 호산, 김수현, 강애심의 열연도 훌륭했다.

특히 이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톤과 딕션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좋았다.

아! 그리고 신비감을 주던 곱추 하녀 임성미에게도 박수를...

(이층에서 고개만 내밀던 하녀때문에 극 중간중간 정말 많이 놀랐다.)

마지막 헤다의 자살 장면.

마치 헤다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확실하고 독보적인 보석이 된 것만 같다.

아주 극도로 아름다웠다노라 말한다면 내가 이상한걸까?

 

헤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배우 이혜영의 헤다는 백만 배쯤 더 아름다웠다.

그 어떤 젊은 여배우도 이햬영의 젊음과 관능을 결코 따라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두루두루 끔찍한 작품이었고 꿈같은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오래오래 황홀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