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1. 4. 23. 06:19
봄이 올 때쯤이면 한상 다짐하는 일 하나.
꽃을 보리라...
더 정확히 말하면
꽃이 터지는 순간을 목격하리라.
어느 날 난데없이 활짝 핀 꽃들을 보면서 난감했던 기억이 몇 번이던지.
언제나 꽃은 나란 존재를 피해서
늘 은밀하고 조용히 핀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면 묘한 배신감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번에도 꽃은 여지없이 나를 등지고 피어났다.
그리고 도무지 따뜻한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는 축축하고 찬 비...
오래 앓은 사람처럼 감기로 허덕이다 반쯤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벗꽃은 이미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사람들의 거친 발걸음에 눈물자욱 흥건하고
팝콘처럼 터진 목련의 목은 절단이라도 날 듯 금방이라도 위태롭다.
화단엔 작은 생명들이 색은
그래서 오히려 이국적이다.
아, 꽃의 세상에도 늙음과 신생이 한 뿌리 속에 나란히 공존하는구나...
목격되지 않는 것에 불안했고
확인할 수 없는 것에 가슴이 섬뜩하다.

 

누군가의 과거를 보는 건,
꽃의 과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안스럽고 강팍한 일.
시간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누가 눈 앞에 있는 걸 다 볼 수 있다고 말할까?
볼 수 있다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을 버린 사람이다.
뚝뚝 떨어져내린 꽃처럼...
꽃은 생명을 다 버릴 때,
그 때가 되야 진짜 피어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6. 06:26
시인 박노해.
<노동의 새벽> 얼굴없는 시인,
그가 <참된 시작> 이후 12년 만에 시집을 출판했다.
1985년 결성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 활동,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결성 주도.
1991년 3월 체포되어 24일간의 불법고문 끝에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 구형,
그 후 무기징역형으로 감형.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그 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지금은 반전평화운동도 하고 있고
"생명, 평화,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단체 "나눔문화(nanum.com)"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20대들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노동 해방'을 운운하면서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건,
기행에 가까운 행동이 되어버렸다.
박.기.평.
그는 희망이었다가 전설이었다가 이제는 무엇이 되었는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시들...
아름답고, 가혹하고, 적나라하고, 통쾌하고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해서...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뭉클뭉클 떨어져나갔다.



한계선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


들어라 스무 살에

반항아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탐험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시인이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너는 지금 인류가 부러워하는
스무 살 청춘이다

스무 살 폐부 속에 투지도 없다면
스무 술 심장 속에 정의도 없다면
스무 살 눈동자에 분노도 없다며
알아채라, 네 젊음은 이미지나가 버렸음을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거대한 착각

나만은 다르다

이번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


후지면 지는 거다

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저들은 총제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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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편의 시들이 어찌 그리 다 진심이던지...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말하는 부모를 앞에 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과
거대기업을 삼성을 향해 
스스로 착해지지 말고
네 주둥이를 묶은 안전망과 목줄로만 착해지란 외침이
지금까지도 부끄러워 참을 수 없다.
최선이 타락하면 죄악이 되고
멈출 때를 모르는 성장은 죽음이란다.
참된 성장은 그래서 성숙이라고...
그러니 정직하게 흔들리고 깨끗하게 상처받으라고 박노해가 말한다.
책을 열심히 보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고,
말을 많이 하느라 대화할 시간이 없고
머리를 많이 쓰느라 생각할 틈이 없고
인터넷과 트위터 하느라 소통할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그가 말한다.
참담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그 참담함 속에서도 나는 조금 안도하고 안심했다.
참담한 자신의 모습 앞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꿇어보지 않은 자는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없다고 그가 위로하며
초라한 어깨를 다독였다.
어쩌면 나는 이 참담함을 이겨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대여!
우리도 아직은 사라지지 말자.
작은 불빛 아직 깜박이고 있으니
우리는 아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3. 05:49
 
<염쟁이 유씨>

극 본 : 김인경
연 출 : 위성신, 박정석
출 연 : 유순웅, 임형택, 정석용
일 시 : 2010.11.10 ~ open run
장 소 : 대학로 이랑씨어터


2004년 청주에서 초연돼서 연극계에 무명의 유순웅을 알린 작품이다.
3년 전쯤인가 대학로에 봤던 연극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관람했다.
1인 모노극.
원만한 내공과 집중력이 없다면 90분의 시간을 꽉 채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다.
7년 동안 "유순웅"이란 배우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이
이번엔 임형택, 정석용까지 가세해 1년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캐스팅 공지가 안 돼서 공연장을 찾아가면서도 누굴까 궁금했는데
초반부는 아무래도 유순웅 배우가 이끄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다행이었다.
유순웅 배우의 염쟁애 유씨를 꼭 다시 보고 싶었던지라...



망자를 염하고 입관하는 그 모든 과정들,
엄숙하고 낯설고 그리고 조금은 두렵고 아득한 절차들이
이 연극 속에서는 일상처럼 그대로 녹아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가깝다지만 산 자들에겐 여전히 멀게만 여겨지는 죽음.
그래서 엄숙하고 안타깝다.
낯선 장례 용어들.
시신의 팔다리를 주물러 펴주는 "수시"부터
시신을 누위는 "시상판"과 숨물을 빼내는 "칠성판",
시신을 몸을 씻기는 "향탕수", 시신의 입에 구슬이나 불린 쌀을 넣는 "반합"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소렴"과 소렴이 끝난 시신을 대렴포에 감싸서 입관을 하는 "대렴",
이 모든 습염(염습)의 장의절차은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보다 오히려 더 생경하다.
과장되고, 부장되고 사장되고 회장되도 결국은 송장으로 마감하는 게 세상이라고 말하는 염쟁이.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다 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냐고.
다 잘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7년 내공의 유순웅 배우는 능수능란한 광대가 되어
걸판진 모노극 한판을 90분 동안
때론 장엄하게, 때론 절절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놀아난다.
배우에 의한 일방적인 모노극이 아니라
관객 전체를 아울려 문상객으로 만드는 한판 어울림이기도 하다.
전국을 유랑한 7년의 시간동안
대본 수정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 극의 탄탄함을 알게 한다.
그리고 배우의 손놀림 하나까지도 정성스럽다. 
특히나 소렴이 끝난 망자의 몸을 대렴포로 감싸는 모습은
흡사 종교의례를 보는 듯 성스럽기까지 하다.
1인 15역의 변화무쌍함은
동일인이면서 타인을 보기에 충분했으며
그 모든 모습 속에 하나의 인간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연극이 보여주는 건,
살고 죽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였음을 거듭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조폭이자 귀신이자 장사꾼 염장이자 치매 아비의 관을 앞에 둔 자식들.
이 모든 아귀다툼스러운 모습이 다 나였으며, 내 삶의 축소판이었다.
문득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그만 창피해져버렸다.



...... 죽어서 땅에만 묻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묻히지 못하면, 그건 헛 죽는 거여.
또 살아남은 사람들도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거야
가슴 속에 안아 담느냐, 그냥 구경거리로 흘리느냐,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구경꾼처럼 보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기 죽음도 구경거리가 되고 마는 거네 ......
염쟁이 유씨는 말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좀 더 의미있고 뜻깊게 살겠다는 다른 표현이라고.
아비의 시신을 첫 염으로 시작해서
아들의 시신을 마지막 염으로 마무리하는 염쟁이 유씨. 
깨끗이 씻겨 입관을 마친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죽는 다는 건 말이다.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거든"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거란다.
그러니 죽는 것 무서워들 하지 말라고.
죽는 것 보다 잘 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운 법이라고...

"편히들 가시게~~~"
아들의 입관에 함께 해준 문상객에게 남긴 유씨의 마지막 말이
꼭 이 다음에 생을 마감할 때 그렇게들 하라는 당부같아 가슴이 뻐근해진다.
편안히 갈 수 있게 잘 살라고...

나는 지금 무엇에 정성을 쏟고 있는가?
내가 내게 묻는다.
진심으로 편안하게 가고 싶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9. 29. 05:55
큰 일이다.
또 가을이다.
무덤해도 이제 될 것 같은데...
탄다, 탄다. 또 탄다.



풍경이 서늘해지고
차가는 바람은 애써 몸 속에 길을 만든다.
바람이 지르는 불
소리없이 다 타고 나면 없어져 주려나?
기다림은...
노동보다 힘이 들다.



짧아지는 계절 앞에
어쩌자고 또 다시 속수무책일까?
이제 또 어디에 파묻혀 벼텨낼까?
바람이 차면
냉정해지라고, 차가워지라고
손끝이 먼저 섬뜩해진다.



온기도 생명이라면,
또 한 생명 잃을지도...

큰일이다.
또 가을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1. 06:31
일  시 : 2010. 04. 17. ~ 2010. 04.25.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  본 : 노시노부 코죠우
연  출 : 류주연
출  연 : 남명렬, 예수정, 김정영, 오일영, 장용철, 권지숙, 김원진, 신용진, 신용숙,




"잠들지 못하는 아빠와 일어나지 못하는 나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불행해?"
어느날 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어떤 대답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딸이 이미 3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딸이라면?
연극 <기묘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자신의 베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빠와
꼭 그 자명종 소리여야만 잠에서 깰 수 있는 딸의 실랑이는
차라리 마음이 들뜨게 만들고 심지어 다정한 모습에 귀엽성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하는  아빠의 가방 속에
청테이프, 로프, 염산, 드릴, 전기톱이 하나씩 등장하면
극은 분위기는 묘한 반전을 이룬다.
그래, 정말 이 여행은 <기묘여행>이 되겠구나...

 

연극 <기묘여행>의 원작은 2004년 일본의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남명렬, 예수정)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오일영,김정영)가 만나서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살인자의 면회를 위해 함께 교도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극에선 묘하게도 살인의 동기나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도적인듯...)
그러니까 딸의 아버지는.
지금 여행가방을 싸면서 혹시 있을 기회를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무거운 가방은 그래서 이제 의미가 부여된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니까,
그 짧은 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 중 한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성공시켜야 하니까...
반대로 가해자의 부모는 지금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항소를 포기한 아들에게 "살아야만 속죄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가능하다면 피해자 부모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것도 여러번...)

이들의 1박 2일의 여정은
지금 방금 이렇게 시작됐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동행...
  

 

우리나라 무대 배경은 일본의 배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대 뒤를 따라 둥그렇게 나 있던 길과 분위기 따라 달라지던 스크린 배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섬득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살인과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왠지 이질감과 동감을 동시에 주는 코믹한 설정들과 대사들.
교도관이었을때 사형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한 코디네이터 "테라하라"의 한 마디가 귀에 선하다.
"인권이 도대체 뭡니까?"
연극은 피를 토하듯 섬득하면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들을 감싸는 묘한 기운에 나는 평온함마저도 느낀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눈 뜰 수 없는 난 너무 불행해!"
극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살해된 가오루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의 마음은 살의로 가득하지만 죽일순 없다고 말하는 아빠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다
살해자와의 면회에서 가오루를 돌려달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엄마 역시도
결국 눈 뜰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이들을 눈 뜨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오루라는 자명종 하나 뿐인지도...



이상하지?
난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의 시작은 딸이 아빠에게 들려주는 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이야기할 때부터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워져서 소리가 났어!
 칼이 밀리는 소리, 피가 막 흘러나오는 소리.
 몸안으로부터 직접 들리는 우물거리는 이상한 소리
 어떤 악기로도 낼 수 없는 소리. 잊자마!, 아빠!"

혼(魂)인 딸의 대사가 끝나고
무대 스크린이 피가 튀듯 검묽게 변해가는 장면에선 "번쩍!"
휴즈가 끊겨버린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뭔가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는 느낌이다.
그래, 이제 이 말(馬) 위에서 도저히 유턴할 수는 없겠구나....

 <연출가 류주연>

살해된 딸 가오루의 아버지역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갔던
배우 남명렬 역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살의로 가득하지만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원혼(怨魂)인 딸 앞에선 복수하겠다 말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결국 사형수 앞에선 무방비상태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오는 아버지.
인형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노라 그는 말한다.
더불어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배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전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머릿속에 있는 풍경 중 어떤 게 진짜일까?”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연극 <기묘연극>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폭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1. 05:55
 <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


천만 개의 사람꽃 


사진작가 임종진.

전 이 사람을 김광석이라는, 10여년에 훌쩍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통기타 가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에 나온 <김광석 그가 그리운 날에>라는 책이 바로 그 인연이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임종진은 떠나버린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짧았지만 여운 깊었던 그와의 만남과 함께 나눴던 생각, 마음의 교감들을 이 책을 통해 고백했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고 다정했던 김광석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죠.

서른의 대표곡이 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이미 그 나이를 한참 전에 넘겨버린 저는,

20대엔 절대 공감하지 못했던 이 노래가 지금은 가끔 내 지난 모습의 반추처럼 느껴집니다.

김광석이란 가수의 목소리에 달라붙어있던 그리움과 아련함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20대의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활기찼겠죠.

사람들로부터 떠나 버린 가수 김광석,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늘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 두 사람은 공통점은 그러나 “그리움”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 여전히 구식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달팽이 사진작가”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온기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프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울고 웃고 희망을 걸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어설프지만 저 역시도 사진 속에 담기는 멈춤에 넋을 잃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에 제 카메라 앵클의 시선은 여전히 풍경입니다.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낸다는 게 아직까지는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더 오래,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가능한 일이 될까요?

6차례 방북 취재로 김정일 최고위원장에게 “남녘 사진작가”라는 별칭까지 받기도 했고,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 그 화염의 도시 속을 다니다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번번이 그를 살렸던 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죠.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엔 담겨있는 "생명“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만 개의 사람꽃>

2008년 가을에 출판된 이 포토 에세이집에는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발, 이라크,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명 품은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희망 품은 웃음이 꽃처럼 만개해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생부터 고통을 짊어진 아픈 생명들의 채 피워지지 못하고 꺾일 숱한 꽃들도 있죠.

품질 좋다는 이라크 석유의 최대 매장지 남부지역 바스라.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퍼부은 수백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으로 이 지역의 신생아 30%는 선천성 백혈병이나 치명적인 기형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기의 첫 울음으로 남자아이야 여자아이냐를 가늠하지 않고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어 버린 곳.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부족한 의약품으로 얼마간의 삶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아이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는 향기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꽃은 만개의 소원을 피워내지 못한 채 봉오리 그대로 세상 속에 삼켜집니다.

알까요?

그 봉오리가 한 귀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순결한 향기를 우리도 맡을 수 있었다는 걸...

기껏해야 평균 수명 15세.

꽃이 집니다... 꽃이 집니다...

맘껏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향기를 거둬갑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또 한 장의 책장을 서둘러 넘길 뿐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요?

사진에 담긴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러나 저는 움직임을 봅니다.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방향을 향하고 기억 또한 왜곡과 변형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생기기도 하죠. 누구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담겨지는 기억...

사진은 그러니까 그 기억 속에 일부러 던져지는 모난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섬뜩한 파문이 일죠.

이 사진 속의 너의 기억은 온전히 사실인가?

사진이 내게 물어 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강력하다는 시각.

예전에 저는 본다는 것에 대해 지독히 넌더리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눈이 멀어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흑백 사진집 한 권.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HUMAN)>이라는 책이었죠.

그 책을 보면서 저는 내가 보는 세상에 넌더리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넌더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뭉턱뭉턱 올라오던 울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던지...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애우는 아직까지도 신문을 들고 한 팔을 휘저으며 한 다리로 뛰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저 아주머니는 생선을 벌여놓고 비닐로 비를 피하며 다음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작은 나무통 속에 아기는 조각난 군밤을 작게 오물거리며 허기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아 지금도 눈 밑이 붉어집니다.

이 책, <천만 개의 사람꽃>도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탄피 더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분노에 찬 눈빛,  붉은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찬란한 미소를 보내는 천진한 눈빛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미안해지고 안스러워집니다.

사진은 권력이라고 했던가요?

매번 사진이 휘두르는 진실의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임종진만의 단상들도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프로패셔널한 사진작가의 수줍고 단정한 글들은 일부러 꾸며 쓴 것이 아니라 비록 서툰 표현들이지만 다정하기까지 하죠.

글이라는 건 꼭 잘 써야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 천사의 새치기


조금 피곤한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면서 눈을 마주치다가

적절한 때를 봐서 한 컷 건지려고 했지요.


그래, 이제 되었구나 싶어 슬쩍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뛰어들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어딜 가나 천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운을 줍니다.

때론 해맑은 소녀였다가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늙은 농부의 여유로움과 갓난아이의 천진스러움이기도 하고

때론 길바닥 걸인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골목길에서 천사는 그렇게 나타나

지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습니다.


임종진 그가 찍은 천만 개의 사람꽃과 천만 개의 단상들을 보며 저도 함께 말했습니다.

“요놈, 요놈, 요 이쁜놈!”

어쩌면 당신도 당신의 멈춰 있는 기억 속에 조용한 움직임을 주는 한 장의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아 꽃을 피웠을까요?

조용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향기를 남겼는지를......



Posted by Book끄-Book끄
한 생명이 한 생명을 품는 것도
위대함 그 이상인데
한 생명이
두 생명을 품는 건
세상 말로 감히 이야기하지 못할 경건함.



엄마 배 안,
두 개의 작은 공간 속에
사이좋게 함께 있는 두 생명.



함께 포개지고 엮어지면서
그 마음 역시나
더 애뜻하게 포개지고 엮어지겠지!
한 아이의 웃음을 한 아이가 따라 웃어주며,
한 아이의 눈물을 한 아이가 위로해 주면서
그렇게 두 몸
한결같이 서로 키워내겠지.



서로 다퉈 등 돌려 모른 척 하고픈 날도 있겠지만
늘 그랬듯 서로 마주보며
서로를 자신인 듯 다시 바라볼테지.
그러다 같은 날 세상 나오면
내것, 네것 나누지 않고
그저 같은 한마음 그 기억을 떠올리며
두 배, 세 배의 사랑을 키워낼테지.

두 아가야 !
너희 두 몸 속엔 세상 그 무엇으로도 감히 끊어내지 못할
크고 단단한 연결끈 하나 있단다.
비록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 연결된 너희 둘은
세상을 두 배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러니
언제나
누구보다
힘차게
힘내렴 ! ^^


Posted by Book끄-Book끄
세상 모든 기운을 담고
모든 세상을 향해 부지런히 항해하는
태아들의 심장



작은 심장 안에서
더 작은 판막들이
열심히 열리고 닫히는 모습을 보면
그 뛰는 속도만큼 기특한 마음도 함께 뜁니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혼자 알아 길을 열고
길을 찾아가는 신비한 생명의 고동



이 길 안에
태아는 바른 마음, 선한 마음.
그리고 옳은 마음을 새깁니다.



당신 생명에게 말해주세요.
네 길이 세상 모든 길의 시작이라고.
당신의 목소리가
또 다른 길이 되어
당신 생명과 함께 항해할 수 있도록...
Posted by Book끄-Book끄
모든 생명은 축복이며
기쁨입니다.
열심히 힘차게 뛰고 있는
태아의 심장을 보고 있으면
그 작은 몸 안에 숨어있는 힘의 비밀이
궁금해집니다.



그 작은 심장 안을
꽉꽉 채우고 있는
부지런한 생명의 움직임
어느 한 곳도 비워두지 않고
구석구석
힘찬 박동을 보냅니다.



심장 안의 피는
잠시도 힘참을 잃지 않고
대동맥을 통해 온 몸으로 그 푸른 생명을 전합니다.
길고 긴 피의 길...
막힘없는 생명의 길을 향해
태아는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순환합니다.



머리로 향하는 세 갈래 혈관길
태아의 머리는
그래서
항상 따스함을 느끼고 사랑을 배웁니다.
기억하고 있겠죠?
매 순간순간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모든 태아의 작은 숨결
모든 태아의 작은 박동
모든 태아의 작은 움직임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기적이고 전설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아가야!
세상엔 상처가 많단다.
그렇지만 믿는 건
그 상처를 이기고 네가 힘차게 걸어갈거란 희망이야.
저벅저벅!
네 발걸음이 세상의 길을 내 줄 것을
엄마는 내내
너를 품으며 소망한단다.



생명이
또 한 생명을 품는
위대한 신비 앞에
어쩌면 세상 모두 너를 응원할지도....



네 두 발의 힘은,
아가야!
세상을 전부 책임질 힘이란다.
옳은 길을 향해,
그리고 선한 길을 향해,
네 두 발의 방향이 항상 바르게 뻗을 수 있도록
늘 현명하고 조심하라고
엄마는 오늘도 꿈을 품고 소망한단다.

힘내라 !
우리 아가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