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8. 11:38

돌라체 시장을 둘러본 뒤,

혼자 걸으며 조용히 크로아티아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이제 막 깨어나려는 아침은 조금씩 말갛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당히 상쾌하고,

또 정당히 화사한 모습.

아침 시장에서 산 신선한 체리를 입 속에 넣었다.

달콤한 과육이 입 안에 가득찼다.

아마도 이 맛은 오래오래 기억될것 같다.

그 선명한 빨간색과 달콤한 과육의 향이라니...

이제 다시 이 체리를 먹을 일이 없겠다 생각하니 서운하기까지 했다.

 

 

이 길 저 길 트램길도 무작정 따라가보고,

지나가는 트램을 향해 손도 흔들고,

(트램의 승객들이 아침부터 저 여잔 뭐지 했을지도...)

그러다 아이의 시선으로 눈높이를 낮춘 아빠의 미소에 멈춰섰다.

나란히 마주한 두 사람의 표정은

아침햇살속에서 빛보다 더 눈부시게 빛났다.

감사하고 고마웠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끝에서 만난 풍경이 이런 사랑스러운 부자(夫子)의 모습이라서...

머릿속에 꾹꾹 눌러 담긴 한 장면.

 

 

혼자 떠난 9일간의 여행이었다.

아무렇지 않은척 떠났지만 사실 아무렇지 않았던건 결코 아니다.

솔직히 나이를 먹을수록 낯선 것들과 대면하는게 쉽지는 않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풍경...

이 모든 것들이 눈물겹게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많이 무섭고 숨막히는 공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마지막 유럽여행이겠구나 짐작하기도 했다.

그런데...

경유지 도하에서 슬리핑 체어에 몸을 부리며 생각을 바꿨다. 

일 년에 한 번은 뭐가 됐든, 어디가 됐든 떠나자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하지도 말고

직장사람들 눈치도 보지 말고

가능하다면 무급으로라도 장기여행까지 꿈꿔보자고.

형편없는 영어실력이자만 궁하면 어떻게든 통하고

답 안나오는 길치지만 결국은 원하는 장소에 서있더라.

(물론 매번은 아니지만...)

그래서,

지금부터는 크로아티아 다음 여행지를 꿈꾸기로 했다.

다른건 몰라도 여행만큼은 꿈꾸면 이뤄지니 다행이다.

 

2012년 터키

2014년 그리스(아테네, 산토리니), 터키(이스탄불)

2015년 스페인, 이탈리아(피렌체, 로마)

2016년 크로아티아

2017년 ..............

나는 과연 어디에 가게 될까?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7. 08:33

두브로브니크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자그레브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그야말로 조~~~용하더라.

두브라카에서 아침으로 먹을 차아바타 샌드위치를 사서 트랩에 올랐다.

샌드위치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두브라카에서 샀던 빵들이 다 맛있었고

이 샌드위치도 그래보여서 샀는데 안에 하몽이 들어있었던게 함정이었다.

예전에 스페인 여행때도 절감했는데 하몽은... 내 입맛에 많이...

결국 몇 입 못 먹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잘 보고 샀어야 했는데 크로아티아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버스터미널에 있는 유료짐보관소에서 4유로에 캐리어를 맡기고 6번 트램을 탔다.

짐없이 트램에 오르니 몸이 가뿐하다.

지난번엔 정신이 없어서 레누치의 푸른 말발굽이라는 도니 그라드도 제대로 못봤었는데

오늘은 국립극장도 토미슬라브 왕 동상도 슬몃 봤다.

중간에 내려서 반옐라치치 광장까지 걸어갈까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그러다 돌라체 시장 구경하는 시간이 빠듯해까봐 참았다.

 

 

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신선한 야채들과 과일들.

그야말로 혼자 침을 꿀꺽꿀꺽 삼기면서 돌아다녔다.

마음같아서는 바리바리 잔뜩 사고 싶지만

현실은 몇 시간 뒤에 비행기를 타야만 하니 이 모든 천국을 그저 눈으로 봐야만 한다.

특히 저 커다란 하우스치즈는 유류반입 불가만 아니면 무거워도 몇 덩어리 가방에 넣었을거다.

유럽치즈 특유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

지금도 그 맛을 떠올리면 입 안에 가득 침이 고인다.

비행기가 아니라 야간버스를 탔건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활기찬 아침의 돌라체 시장을 스킵했다면 분명 두고두고 후회했을것 같다.

역시나 눈(目)은 힘이 쎄~~~~다.

 

 

지하로 내려갔더니

육류와 유류가공품들 상가가 모여있었다.

염장해서 말린 돼지뒷다리는 살짝 공포버전으로 걸려있었고

그 외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훈제육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유혹의 손길을 펼치는 치즈들의 향연.

사고 싶다, 사고 싶다...와 나름의 사투를 벌이며 지하 상점을 천천히 한바퀴 돌았다.

 

 

돌라체 시장의 화룡정점 꽃시장.

유럽을 여행하면서 내가 부러워했던것 중 하나가 꽃의 생활화였다.

우리나라는 꽃이라는게 축하를 위한 이벤트용품의 느낌이 강한데

유럽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계절이 바뀌면 집집마다 꽃을 사서 담장과 창문가를 단장하고 

아침이면 화려한 포장없이 무심하게 종이로 감싼 꽃을 산다.

많이도 아니고 한 주먹 크기의 아담한 꽃을 

그날의 식재료를 사듯 집으로, 직장으로 사서 들고 가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었다.

작고 소박한 꽃들을 보니

또 다시 사고 싶다... 사고 싶다...가 스멸스멸 올라온다.

 

멈춰서 꽃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봤다.

모두모두 들고 있는 꽃만큼 활짝 피었다.

꽃도, 사람도 다 아름답다.

꽃의 배웅, 자그레브!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4. 08:09

두브로브니크를 떠나는 날.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고민했던건 마지막 일정이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자그레브까지 가야 하는데

두브로브니크에서 자그레브까지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비행기를 탈 것인가 아니면 9시간 걸리는 야간버스를 탈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다

주위의 만류를 뒤로 하고 선택한건 밤 9시에 출발하는 야간버스였다.

이유는 딱 하나.

아침 일찍 열리는 돌라체 시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결론적으로 선택은 옳았다.

덕분에 두브로브니크이 밤을 세 번이나 지켜볼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다.

 

밤 9시 야간버스를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러본 두브로브니크.

작은 교회를 들어갔는데 의자가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봤던 긴의자가 아니라

예전 초등학교때 사용했던 나무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소박한 모습에 반에서 한동안 조용히 머물렀던 곳.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동상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카페를 기웃거리다 피아노 치는 사람과 눈도 마주치고,

(그런데 연주 실력은 영...)

성당으로 들어가는 결혼식 행렬의 뒤도 밟고

대리석 바닥에 비친 내 모습도 오래 바라보고...

 

 

그렇게 조용 조용히,

삼일 동안 숱하게 지나왔던 두브로브니크의 길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머무는동안 행복하고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다.

충분하다.

 

안녕!

두브로브니크.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10. 08:43

스폰자 궁전이 두브로브니크의 경제을 담당한 곳이었다면

크네베브 궁전은 두브로브니크의 정치, 행정을 담당했던 곳이다.

이곳을 렉터궁전(Rector's Palace)이라고도 불르는데

"최고 통치자, 지도자"라는 뜻이다.

(크네베브는 같은 뜻의 크로아티아어다.)

성벽 투어 후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도 피할 겸 두브로브니크 카드로 입장이 가능한 렉터 궁전을 찾아갔다.

과거 크레네베 궁전의 최고 지도자는

위원회를 통해 귀족들 중에서 선출했는데 재미있는건 임기가 고작 1개월이었단다.

장난하나?? 싶었는데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선출된 사람은 1개월이라는 임기 기간 동안

절대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고 오직 업무에만 집중해야 했단다.

이 제도는 나폴레옹이 두브로브니크 공화국을 정복될때까지 이어졌고

모두 1,808 명의 최고 지도자가 배출됐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서로 인수인계는 어떻게 했을까???)

 

 

렉터 궁전은 화재와 대지진으로 몇 번의 재건축이 되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건물이 됐다.

1층과 2층은 르네상스식이 주를 이루고 3층은 고딕양식을 주를 이룬다.

건물 안과 밖의 조각들은 15세기에 만들어졌는데

특히 아치를 떠받친 6개 기둥의 화려한 머리 장식이 내 눈길을 끌었다.

기둥 뒷쪽으로는 대리석 의자가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나도 여기 앉아 오가는 사람 구경하면서 두브로브니크의 첫 식사를 해결했었다.)

궁전 입구에는 라틴어로 쓴 글이 있는데

"개인은 잊고 대중을 걱정하라"라는 뜻이란다.

(아름다운 말이다. 절실하고 간절한 말이기도 하고.)

 

 

궁전 안뜰에 있는 흉상의 주인공은 미호 프라카타(Miho Pracata)라는 사람이다.

그는 해양 도시 두브로브니그의 은행가이자, 자선사업가, 선장이었는데

프란치스코회 교회 건립시 엄청난 기부금을 냈고

사후에도 전재산을 국가에 기증한 인물이다.

그래서 1607년 미호 크라카타가 사망하자 이곳 안뜰에 흉상을 세워 그를 기리게 됐다고.

그리고 이곳 안뜰은 울림이 좋아 클래식 공연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음악회때는 1층과 2층에 좌석이 설치되는데

명당 자리는 역시나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 난간석이다.

내가 있을 때도 저녁에 클래식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공연시간이 임박해오면 티켓을 반값에 판매한대서 가봤더니

이미 연주가 시작돼 입장이 불가했다.

 

 

2층으로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쪽에 마치 창을 쥐고 있는 듯한 독특한 모양의 손잡이게 눈에 띈다.

모두 3개가 있는데 전부 오른손이더라.

2층 박물관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건

시계탑의 작동원리와 모양을 전시해 놓은 작은 방이었다.

눈금판 뒤로 크고 작은  테엽들이 저렇게나 많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유럽의 도시마다 시계탑이 명소가 되는 이유를 충분히 알겠더라.

그러니까 시계탑은,

과학과 예술이 집대성된 도시의 힘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시민들을 위한 실용품으로서의 가치까지 함께 지닌다.

그래, 기술의 진보는 이래야만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쉽게... 

그리고 이게 바로 광장 높이 설치된 시계탑의 진정한 존재이유가 싶다.

 

 

크네베브 궁전 지하에는도 내전의 참상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곳의 사진은 특이하게도 전부 흑백사진들 뿐이다.

지하라는 공간과 흑백의 사진이 만나니

황폐함과 고통의 흔적이 훨씬 배가되어 다가온다.

사방에 불에 타 연기로 자욱한 건물들이 가득하다. 

빗발같이 쏟아진 총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과 거리들.

사람들은 이 모든걸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견디고, 버텨내면서 두브로브니크를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재건했다.

살을 찢는 고통을 이겨내야만 만들어지는 진주.

 

그렇게 두브로브니크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고 진주가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10. 4. 08:32

여행객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말하듯 두브로브니크는 아름답다.

그래서 크로아티아를 여행할때 자그레브 in - 두브로브니크 out의 일정보다는 그 반대를 추천한다.

두브로브니크를 보고 나면 자그레브가 너무 심심해(?) 보일 수 있어서...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겠지만

나는 두브로브니크는 두브로브니크대로,

자그레브는 자그레브 대로의 멋이 있어 좋았다.

두브로브니크는 아름답고 꿈같은 풍경이 가득한 찬란한 뷰(view)의 도시라면

자그레브는 여기저기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진한 삶의 도시다.

그런 두브로브니크에서,

삶의 냄새가 진하게 곳을 찾고 싶다면 단연코 골목길들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골목들은

또 셀 수도 없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마치 하늘로 곧장 올라갈 수 있기라도 하듯이!

 

골목의 처마를 장식하는 가로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멋스런 간판 역할을 한다.

멀리서도 저 골목에 어떤 어떤 상점들이 있는지 한 눈에 알겠더라.

솔직히 말하면...

두브로브니크에 있는 동안 저 간판등과 사랑에 빠졌다.

너무 앙증맞고 이쁘고 귀여워서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도 보고, 점심에도 부고, 저녁에도, 밤에도 보고 또 보고...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꽤나 열렬했더랬다.

 

 

부자카페 가는 골목길에 써 있는 낙서에 혼자 빵 터졌다.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노상방뇨가 문제인가보다.

특히 이렇고 한적한 골목골목은 더욱 더.

shame on you!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꼭 기억하자. ^^

(그러니까 정말 이러지들 맙시다. 제발!)

 

 

골목골목 두브로브니크 풍경.

젤리과자를 파는 가게, 앵무새, 손주 하나하나 수를 놓고 있는 아주머니와

지역화가들이 그린 크고 작은 그림들,

(하나쯤 사오면 좋았을텐데...)

거리의 악사와 온통 금박을 두르고 서있는 아저씨.

그 중에서도 골목에서 만난 이발소는 지금도 선명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들어오라며 손짓하시던 할아버지.

꼭 우리네 옛날 이발소가 떠올라 가슴 한켠이 찡했다.

포근포근하게 잘 익은 감자같은 풍경.

한상 잘 차려진포만감이 밀려왔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배부르게 참 잘 먹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22. 08:14

플라차(스트라둔) 대로는 필레 문과 플로체 문을 잇는 길로 약 300m 정도 된다. 

원래 이 길은 바닷물이 흐르는 운하였다.

그러다 성채도시가 되면서 사이의 바다를 매워 지금과 같은 대로가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진건 13세기였는데 대지진으로 훼손이 돼 1667년 재건했다.

이 길 좌우로는 구시가지의 주요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도 많아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바닥은 반질반질한 대리석이라 햇빛이 강할 때는 눈이 시릴 정도다.

그래서 선글라스는 필수.

비오는 날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줘서 꾹꾹 눌러 걸어야 하지만

운치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다.

(그 멋진 광경을 나는 자다르와 스플리트에서 두 번 목격했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빗방울 교항곡이라고 할까!

 

 

플라차 거리 끝에 커다란 종탑이 서있는데

꼭대기에 있는 종은 무게가 무려 2톤이 넘는단다.

자세히 보면 종 좌우에 망치를 든 "마로"와 "바로"가 보이는데

아마도 이 종탑에 녀석들과 관계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다.

7월이면 이곳 두브로브니크에 "자유(Libertas)"라는 여름 축제가 열리는데

그때 이 종탑과 올란도 기둥에 붉은 넥타이가 길게 내걸린다.

종탑의 아래로는 원형의 시계가 있고,

그 아래는 해와 달(혹은 낮과 밤)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제일 아래에는 전자시계가 있다.

(살짝 뜬금없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 

 

 

두브로브니크에는 두 개의 오노프리오 분수가 있는데

하나는 필레 문 쪽의 큰 오노프리드 분수로

두브로브니크의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1436년 오노프리오가 만들었다.

(그러니까 분수 이름은 만든 사람 이름을 딴 거!)

16각형으로 된 분수의 외각에는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데 지금음 보수중이라 가려져 있다.

분수의 물은 이곳에서 20km 떨어진 스르즈 산에서 끌어왔고

원래는 이보다 더 화려했는데 1667년 지진으로 무너져 현재의 모습이 됐다.

플차다 대로 끝 루자 광장쪽에 오노프리오가 만든 분수가 하나 더 있는데

구별하기 위해 작은 오노프리오 분수라고 부른다.

루사 광장은 시장이 서는 곳으로 그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 분수를 만들었다.

두 곳의 분수에서 나오는 물은 지금도 마시는게 가능하단다.

큰 분수는 보수 중이라 물론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플라차 대로를 제대로 보려면

성벽 위에 올라가는게 최고다.

거기서 내려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이 길이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

마술같기도 하고, 환상같기도 하고,

아니면,

나처럼 아득한 꿈이라고 생각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9. 1. 09:06

두브로브니크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성벽 투어.

해가 더 뜨거워지면 걸기가 힘들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1.94km의 성벽을 둘러보는데 최소 두 시간 이상이 걸린대서

(나는 분명 그 이상이 걸린테고!)

스플리트에서 산 비스켓과 말린 크렌베리를 비상식량으로 챙기고

중간중간 마실 물은 얼려서 보냉파우치에 넣었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

 

 

두브로브니크 성벽은 10세기에 처음 만들어진 후,

13~14세기에 한 번의 보완을 했고

15세기에 오스만투르크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더 견고하고 두껍게 증축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육지 쪽 성벽은 두껍고 바다 쪽 성벽은 얇게 만들어졌는데

가장 얇은 곳은 1.5m고 가장 두꺼운 곳은 무려 6m에 달한다.

입구는 필레 문과 플로체 문 두 곳이 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은 필레 문 쪽!

성벽을 걸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내려와서 시계를 보니 무려 4시간이나 있었더라.

 

풍경에 홀려서...

 

이무래도 성벽 투어 사진은 꽤 길어질 것 같다.

오늘은 보카르(Bokar) 요새 부근까지만 ^^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8. 10. 08:16

납골당을 나오니 머리 위 구름빛이 범상치 않다.

그 흔한 지나가는 소나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굵은 빗줄기가 인정사정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열주광장을 지나 황제 알현실로 뛰어들어갔다.

궁전 지하도 있었는데 굳이 천장이 뚫린 황제 알현실로 들어간건

사람이 몇 명 없어서기도 했지만

거기서 열주광장 바닥으로 쏟아지는 비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후두두둑.

호기롭게 내리는 빗줄기는 유쾌했고,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동작은 경쾌했다.

반복되는 유쾌와 경쾌의 변주곡.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기습같은 소나기는 멈출 줄 모르고 점점 굵어어더니 

급기야 기세등등한 바람까지 가세한다.

그때 깨달았다.

황제 알현실로 사람들이 피하지 않은 이유를...

머리 위 뚫려있는 천장과 앞뒤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인정사정없이 비바람이 들아치고

나는 점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간다.

그렇게 40여분이 지났을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재빨리 궁전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비를 피해 여기저기 피난민처럼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냥 위에 계속 있을걸 후회가 됐다.

마침 건너편 가계에서 일회용 비닐 우비를 팔길래 30kn에 사서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만 아니면 그냥 비 속을 걸어다녔을텐데...)

심난은 했지만 덕분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이 뻥하게 뚫렸다.

기회다 싶어 서둘러 북문(北門)인 황금의 문으로 향했다.
그레고리우스 동상을 독차지 하기 위해!  

 

 

 

예상은 적중했다!

스플리트 인증샷 장소로 유명한 그레고리우스 동상 앞이 고요하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현지인 몇 몇 뿐.)

혼자서 그 큰 동상의 앞태, 뒷태, 좌우 옆태에 손끝, 발끝까지 두루두루 꼼꼼히 봤다.

이 동상 역시 주피터 동상처럼 검은색에 손가락이 길어서 좀비기 떠올랐지만

풍성한 옷 덕분에 호러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는 닌이라는 지역의 주교였는데

바티칸 시국에 라틴어가 아닌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청원을 올린 인물이다.

(그때까지 모든 미사는 무조건 라틴어로만 할 수 있었단다)  

이 청동상은 크로아티아의 위대한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차의 작품이고

높이는 무려 4.5m에 달한다.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에 저렇게 반질반질하게 닳아버렸다.

작년까지만해도 보수중이라 발가락만 빼고 가림막으로 막아놨었는데

지금은 보수가 끝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난 왜 발가락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었던거니???)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젖은 옷때문에 몸은 점점 추워지고...

계속 버티다가는 내일 일정까지 엉망이 될 것 같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천천히 비에 젖은 골목골목을 돌아 은의 문을 나서는데

공갈빵같기만 했던 스플리트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 너 때문이로구나.

드라미틱한 감정의 변화.

아무래도 옷을 챙겨입고 다시 나오게 될 것 같다.

 

다시 시작되려는 스플리트 여행.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7. 29. 08:25

1박을 하긴 했지만 자다르에 머문건 대략 16시간 정도.

하지만 이동시간과 수면 시간을 빼면 고작 10시간 내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부지런히 다녔던 곳.

작열하는 한낮의 뙤약볕도,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도,

청록빛 고요한 밤도, 

새벽와 아침 그 중간 어디쯤도,

그 짧은 시간에 살면서 내내 그리울 순간들을 고맙게 지나오고 지켜봤다.

 

 

깊게 잠든 숙소를 빠져나온건 새벽 5시 30분.

아무도 없는 거리를 '이 구역 주인은 나야' 하는 마음으로 걸었다.

로만 포룸, 성 아나스타시아 대성당, 성 도나트 교회, 수치심의 기둥...

이 난데없는 막무가내 주인의식이 마냥 행복했다.

태양은 중천에 떠있어도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

이런 풍경을 일상에 두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매일 보면 무심해질까?

만약 그렇다면 진심으로 부럽다.

 

 

아무도 없는 바다오르간과 태양의 인사.

혼자서 듣는 바다오르간의 연주는 신비로웠다.

(소문처럼 청소 중은... 아니었던거다. 주위가 조용하니 선명히 들린다.)

그리고 완만하게 굽어지는 곡선이 아름다웠던, 

혼자라서 더 행복했던 해변의 산책길.

고동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조각상과 고요히 정박되어 있는 배.

그 둘에선 공통적으로 세월의 흔적, 바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조금씩 조금씩 깨어나는 자다르.

 

1시간을 예상했던 아침 산책이었는데

발길이 돌리는게 쉽지 않다.

이 고요함을 두고 가버리는건,

아무래도 죄 짓는 일인 것 같아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7. 28. 07:58

바다오르간에 앉아 내내 지켜본 자다르의 석양.

구름에 가려 해는 선명하지 않았지만

붉게 물드는 하늘빛과 물빛을 보는 것만으로 석양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언제나 나를 뜨겁게 만드는 석양.

언젠가 내가 찍은 석양 사진들만 쭉 모야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지는 속도와 비례해서 기온은 내려갔고

짐을 줄인다고 얇은 옷만 가져간 나는 턱을 덜덜 떨면서 몸을 한웅큼 웅크렸다..

일어나서 가버리면 그만일인데 그걸 못하고 그대로 앉아버렸다.

추위... 뭐 그까짓거!

내일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호기롭게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이 좋은 모습을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역시 아이들은 대단하다.

차가운 바다 속으로 다이빙하는 모습은 용감했고 

물 밖으로 나와 부르르 몸을 떠는 모습은 유쾌했다..

입은 옷을 벗어던진채 그대로 바다로 뛰어드는 어린 무모함이 마냥 부럽다.

나는 왜 수영이 끝끝내 배워지지 않았을까... .

예전에 큰 맘 먹고 3개월 과정을 등록하긴 했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날때까지 물 속에서 수경을 끼고도 눈을 못뜨는 내게 수영코치가 그러더라.

"태어날때부터 온 몸에 납을 감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긴 하다..."고.

첫 수업시간에 그 코치는 분명히 말했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어요!"

그때 알았다.

내가 수영코치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단 사람이 되버렸다는걸.

2개월치 강습료를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돌아나오며 생각했다.

'수영이랑 운전, 이 두 가지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못하겠구나!"

수영코치는 내가 안보여 속이 후련했을까?

아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문득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나도 날 포기하고,

수영코치도 날 포기한 그때가.

한 사람이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이렇게까지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을텐데...

 

결국 물은 나에겐 닿을 수 없는 먼 풍경이 되버렸다.

그래서 더 애닯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