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1. 14. 09:16

김연수가 이랬었구나!

2013년 6월 20일에 출판된,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도 전에 쓴 김연수의 초기작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의 치기와 순수가 귀여워 살며시 웃음이 났다.

"나 이렇게 파릇파릇하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작가예요~~"

어리꽝을 부르는 막내동생 같은 느낌.

김연수는 이 낯선 형용사와 동사들을 찾기 위해 또 얼마나 분주했을까?

김연수에게 작가로서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걸 읽어내는 건 아주 유쾌하고 발랄한 즐거움이었다.

그런 때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거슬러 올라가 읽을 때만 찾을 수 있는 묘미.

이거 썩 재미있다.

 

 

 

홍보문구가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김연수의 의도는 분명히 아니었을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역시나 "김연수"답다.

두어시간이면 후딱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담론같은 문장들을 수줍게 만날 수 있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서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

 

쉽고 당연한 문장이지만,

아주 정확하고 정직한 문장이라 뜨끔했다.

정말 그렇다.

처음엔 둘이 같이 빠졌다가 모든게 끝나면 혼자 힘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사랑.

김연수는 여기서 또 다시 아주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낸다.

...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고나계에서 혼자서 빠져나올 때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잃어가기 위해서, 잊혀지지 위해서, 잊기 위해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처럼 "사랑이라니... OOO!"다.

누군가에게 이 단어가 환희일 수도, 징글징글함일 수도, 무덤덤한 타인의 감각일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그게 이 모든게 다 "잊기" 위한 방법들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도

어쩌면 적자생존의 원칙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령 "알츠하이머"의 경우 그 원칙이 무참히 깨지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은 다 잊혀지고 과거만이 생생해지는 건 아닐까?

과거가 전부인 삶.

 

사랑과 기억 중에 뭐가 더 아름다울까?

어쩌면 둘 다 아름답지 않을수도...

함께 빠지는 것도,

혼자 빠져나와야 하는 것도,

다 힘겹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6. 06:02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슬프다.

이 사람도 쉽게 살아내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덜컥 덜컥 덜미를 잡히는 감정들에 휩쓸려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

마치 conjoined twin 같았다.

정여울의 글.

40대를 바라보는 여자가 20대를 위해 쓴 글은 40대를 넘긴 내가 읽는다.

20대도, 30대도, 40대로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다 똑같다.

자기의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생각이 확고해도

사람들은 늘 방황하고 절망하고 흔들린다.

20대는 20대의 방황이 있고

30대는 30대의 절망이 있고

40대는 40대의 흔들림이 있다.

그 시간대를 지나오는 거.

20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풍경이 먼저 들어왔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아, 이번에도 내 사진이 한 장도 없구나...

책읽는 사람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박물관과 박물관에 숨어있는 쉼터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본능도,

길거리 묘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는 습관도

"출구"라는 단어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미련도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시작하면 다시 되돌아오는 걸음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정여울은 첼로를 배운다고 했다.

첼로까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해금을 배우는 낯선 적응까지도 똑같다.

연주를 잘 하는 게 목적이 아닌 것까지도...

정여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도플갱어"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정여울이 지나갈 40대가 그려진다.

그래도 정여울은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알고 있으니 잘 지나갈테wl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참 힘들게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때때로 힘들고 지치는데...

몸이 아픈건 이젠 이력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육체적인 아픔에 대한 감각은 거의 무뎌졌다.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는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이젠 모르겠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내가 힘들게 지내온 그 시간을 지나는 20대에게.

참지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라고.

그게 비록 타인에게 엄살로 보인다해도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는 걸 그냥 지켜보지 말라고.

참는다고, 숨긴다고 강해지는 걸 절대 아니라고.

위로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그리고 기억하라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혹은 낯선 풍경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위로도 있다는 걸!

매번 사람이 답은 아니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떠나고 싶어졌다.

어쩌나...

나는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흔들리고 있다.

음악과 책으로 어떻게든 달래보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제대로 사고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떤 거래라도 할 수 있는가?"

멜피스토펠레스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파우스트가 되어 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4. 07:54

2013년 마지막 날.

퇴근길에 지하철 역사내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김연수의 새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란 작가는

샘을 낼 수조차 없게 만든다. 

이 사람 글은 읽을때마다 늘 그랬다.

정말 깊구나...

읽는 사람을 끝을 알 수 없는 깊이까지 끌고 들어간다.

때때로 나는 김연수의 짧은 문장 안에서도 길을 잃고 종일 헤매기도 한다.

11편의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나는 11명의 나를 만났다.

그 11명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책을 읽는 건 외롭기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김연수는 2014년 냐의 새해를 조금 더 외롭게 만든 셈이다.

하지만 괜찮다.

김연수니까...,

김연수라면 나는 더 외로워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벚꽃 새해 ‥‥‥창작과비평, 2013 여름
깊은 밤, 기린의 말 ‥‥‥문학의문학, 2010 가을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자음과모음, 2010 겨울
일기예보의 기법 ‥‥‥문학동네, 2010 겨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세계의문학, 2012 봄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문학과사회, 2012 여름
동욱 ‥‥‥실천문학, 2013 봄
우는 시늉을 하네 ‥‥‥문예중앙 2013 봄
파주로 ‥‥‥21세기문학, 2013 여름
인구가 나다 ‥‥‥현대문학, 2011 2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자음과모음, 2008 가을

 

때로는 이런 잔잔한 글이

거대한 풍랑처럼 나를 덮쳐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기꺼이 서퍼가 된다.

그리고 그 파도가 나를 데리고 가는 곳으로 아낌없이 몸을 맡긴다.

내가 도착하는 곳은

현실일 수도, 환상일 수도, 악몽일 수도, 때로는 벼랑 끝일 수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꿋꿋히 버텨낸다.

그래서 고맙다.

아직 내가 책을 통해 이곳 아닌 다른 곳으로 훌쩍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게.

버텨낼 수 있다는 게.

 

그래서 그냥 믿고 싶다.

김연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7. 17. 08:18

신간이 출판될때마다 꼭 챙겨서 읽는 편이지만

솔직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니아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우리나라에 출판된 그의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그건 어쩌면 일종의 습관같은 거일수도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하얀 양떼 가죽을 뒤집어 쓰고 우물 속에 쪼그리고 앉아

적당한 간격으로 맥주를 들이키면서 서서히 몽롱한 상태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한 가지를 취가하자면 장어덮밥 정도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맥주도, 장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 주변에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하면 막 웃는다.

어쩜 그렇게 딱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게다가 이 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두 가지가 무시무시했다.

일단 엄청나게 긴 제목이 무시무시했고

어떻게든 이 책의 판권을 차지하기 위한 출판사의 사투도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출판 하루 만에 전국의 서점가를 완저히 휩쓸어버린 것도 것도 무시무시했다.

이건 정말이지 근래에 보기 드문 쓰나미였다.

아! 그런데 민음사 너무 급했나보다.

오타가 너무 많다. ㅠ.ㅠ

적어도 다섯 개 정도 발견한 것 같다.

(양억관의 번역은 확실히 좋았고!)

 

 

레드, 블루, 화이트, 블랙 색채 가득한 네 명의 고교 동창생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나고야를 떠나 홀로 도코로 진한간 다자키는

영문도 모른 채 대학교 2학년 때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고 친밀한 이들 그룹으로부터 그야말로 가차없이 추방당힌다.

"스스로에게 물어봐!"

모호하고 잔인한 말과 함께!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36살이 된 다자키는 타의에 의한 자의(?)로 이들 한 명씩 찾아가 당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추방된 건 시로를 강간해서라고.

시로가 그 상황을 너무도 상세하게 고백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그에게 어이없는 누명(?)을 씌운 시로는 몇 년 전에 교살된 채로 삼일만에 발견됐단다.

급기야 일본을 떠나 필란드에 살고 있는 예리까지 찾아간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부터 시로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방시킨 이유는

"내가 유즈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야.

 그 애가 정신적으로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어.

 그만큼 절박한 지점까지 가 버렸어."

순간, 감이 왔다.

이들 모두가 사실은 공통체의 와해를 간절히 바랬다는 걸.

일종의 희생자가 필요했던 걱다.

......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은 빈틈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구성원 모두가 거기에서 깊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묘한 균열도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윽고 미묘한이란 말로는 처리할 수 없는 뭔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시로의 정신은 아마도 그런 다가올 미래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로는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긴밀한 인간관계를 더는 버텨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로는 쓰쿠루를 배신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자키 쓰쿠루라면 그런 입장에 처한다 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직관이 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

이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하기로 작정했다.

완벽하고 절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건 좀 위험한 발언이긴한데,

나란 인간은 가족이라는 공통체에서도 자발적으로 탈락하고픈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다자키와 나와의 차이점은,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과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차이, 거기에 있다.

 

이쯤되면 이제 말해도 되겠다.

지금껏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노라고...

책의 앞, 혹은 뒤에 작가의 변이나 작품 해설, 번역가의 소감 따위 없이

아주 냉정하고 깔끔하게 책장을 덮게 만든 것도 완벽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영 아쉽다.

그레이 하이다의 존재가 정말 어이없이 실종돼 버렸다는 거.

실종된 채로 끝났다는 거.

그러다보니 죽음의 승계를 받았다는 의문의 피아니스트 이야기조차 신비감이 희미해져버렸다.

(그레이라는 색깔이 품고 있는 희미함에서 비롯된, 완벽히 의도된 실종이었을까???)

 

읽을수록 알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굳이 어른아이의 성장소설을 쓴 의도를!

......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엔 내게 강력한 펀치를, 그것도 아주 제대로 날렸다.

젠장!

온 몸이 얼얼하다.

 

인생은 길고 때로는 가혹하다.

희생자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7. 15. 09:03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정유정의 소설을.

<7년의 밤> 이후 2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공들인 끝에 출판된 <28>

이런 참담한 이야기를 쓰느라고 그랬구나...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또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걸 생각하니 가슴 끝이 뭉클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책을 덮고 큰숨을 쉬어야만했다.

이렇게 몸을 아프게 하는 책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조차도 떨린다.

이 이야기 끝을 알아야 할까?

나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게 될까?

유기견 보호소 드림랜드에서 나는 드림을 꿈꾸게 될까?

처음에 아이디타로드(Iditarod) 경주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아! 색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구나 생각했었다.

이렇게 참담하고 아픈 이야기일줄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벌판에서 홀로 개썰매를 끌고 가는 심정이 되버렸다.

화양 28일의 엄청난 속도를 온 몸으로 감당하면서 나는 극한의 공포와 살의(殺意)를 느꼈다.

화이트아웃!

차라리 내게 어서 빨리 설맹(雪盲)이 찾아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진심으로... 

이 뜨거운 불볕 도시 "화양"이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기 전에!

무간지옥,

어떠한 구원도 머물지 못할 도시 화양.

나는 그곳에서 나를 지켜낼 수가 없었다.

 

원인체 규명도 되지 않은 '인수공통전염병'인 빨간 눈의 괴질.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은 엄청난 치사률을 보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삼킨다.

포식의 본능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야수의 그것처럼 맹렬하고 가차없이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 야수성에 조금도 뒤지지않고 자행되는 인간의 참상들.

그건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더욱 끔찍하고 포악하고 야만적이었다.

인간들 스스로의 폭력과 증오에서 비롯된 죽음들. 죽음들, 죽음들!

...... 그날의 학살은 화양시내에 남아 있던 군인들의 손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이후 화양은 콘크리트 덩어리와 시신만 우글대는 정글이 되었다. 빨간 눈은 지옥 불처럼 화양을 태웠다. 용케 불길을 피한 이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다른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 약탈, 총질, 강간, 살인, 방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일들이 매일, 매 순간, 도처에서 일어났다. 서로 죽이고 죽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공포에 떨며 고속으로 공멸해갔다. 남은 자들은 서로를 피해 가시 세계 밑에 숨어 지냈다 ......

작가 정유정이 이 이야기의 시놉을 쓴 건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당하던 돼지들의 살처분 동영상을 접하던 밤이었단다.

참담하고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웠단다.

그리고 그 뒤에 물음 하나가 남았단다.

"만약 소나 돼지가 아닌 반려동물, 이를테면 개와 인간 사이에 구제역보다 더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물음은...

결국 "울음"이 되버렸다.

 

모든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야만의 "욕망"으로 치달은 세상.

정유정의 <29> 속엔 숨겨질 수 없는 지금의 현실과 사회가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더불어 1980년대 광주의 참담함까지도 그대로 재현시킨다.

이 끝없는 오버랩.

(글 구성이 서로 오버랩되는 것도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무간지옥의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목표라면,

이 책을 덮어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모르는 게 낫다.

모르는 동안은 절망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만약 이 모든 것들과 맞설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제 거침없이 책장을 열어라.

다섯 명의 인물(서재형, 한기준, 김윤주, 노수진, 박동해)과

세 마리의 개(링고, 스타, 쿠키) 중에 당신의 모습이 있다.

찾아라!

당신의 정체를!

 

들리는가!

살육과 살육이 범람하는 그곳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목소리가!

그들의 목소리가.

당신의 목소리가.

"살...려...주...세...요...!"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5. 17. 20:16

너무나 아프고, 서럽게 읽은 책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함게 묶어서 우리 시대의 부모에게 헌정하고 싶은 책이다.

연거푸 2번을 읽었다.

읽을 때마다 죄스러웠고 아팠고 먹먹했다.

내 역시도 부모의 '빨대'였음을 감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채 발견되었다....

첫문장부터 나는 무책으로 무너졌다.

소금을 만드는 사람이, 자기 몸 속의 소금을 챙기지 못한채

과도한 노동으로 철저하게 무너지고 쪼그라들어

결국 입 속에 한웅큼의 소금과 함께 소금밭에서 일생을 마감한 염부1을 죽음을 보면서 나는 인정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그리고 그 잘못된 게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에서 말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걸 몰랐다고...

그런데 박범신의 <소금>은 내게 묻는다.

세상 끝에 혼자 버려진 아비에게 너는 언제까지 빨대를 꽂을거냐고...

염부였던 아비가 소금밭에서 죽었다!

홀로 땡볕에서 소금에 반사되는 모든 빛을 온전히 홀로 받아내서면서 버티고 버티던 그 염부를 죽인 건,

소금이 아니다. 햇빛이 아니다.

그를 죽인 건 바로 나다!

박범신의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은 내게 살인의 이유를 물어왔다.

대답할 말이... 없다.

소설의 문장처럼,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치사한 굴욕'과 '쓴맛의 어둠'을 줄기차게 견뎌온 것이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듯, 아버지 역시 처츰부터 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아버지의 푸르른 청춘!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상상도, 생각도 못했었다.

막내딸의 생일에 실종된 시우의 아비도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위해 부두 하역군으로 '치사해, 치사해"를 입에 달고 살던 명우의 아비도 모두 굴욕을 견디며 살아왔다.

아비가 정말 다 그런거라면!

모든 아비가 다 그렇게 치사하게 산는 거라면!

그 아비들이... 어쩌나...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 애비들이 치사하면 세상이 모두 치사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치사한 아버지들과 치사함을 견뎌내는 아버지들에겐 모두 '새끼'들이 딸려 있었고, 아버지들의 소망과 달리, 그 새끼들 역시 치사하게 살아가며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를 대물림받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꼭 둘로 나눠야 한단다.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농담같은 이 말이 목울대를 막는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아비에게 내미는 자식의 빈 손은 차라리 폭력이고 폭압이다.

이걸 이 책은 뼈 아프게 실감케 만든다.

마치 내 가슴 우에 수인번호가 찍히는 것 같다.

꽃을 들고 괴로운 얼굴빛으로 막 가라앉아가는 아버지.

책의 표지를 보는 게 힘겨워 나는 책장을 덮지도 못하고 활자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된 빨대는 늘 면죄부를 얻었다.

사람들은 핏줄, 핏줄이라고 말하면서 '핏줄'에서 감동받도록 교육되었다. 핏줄조차 이미 단맛의 빨대들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사랑이 빨대로 둔갑했지만 핏줄이기 때문에 그냥 사랑인 줄만 알았다. 빨대를 들고 기웃거리는 젊은이들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다. 일차적인 표적은 아버지였다. 스물이 넘은 자식들조차 핏줄이므로 늙어가는 아비에게 빨대를 꽂아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모두 그 체제가 만든 덫이었다.

더 큰 나라가 더 작은 나라를 빨고, 더 힘센 우두머리가 힘없는 졸개들을 빠는 빨대와 깔때기의 구조야말로 자본주의적 세계 구조였다.

핏줄이라고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아버지들은 근엄했지만 아무 힘이 없었다.

체제에 편입돼 과실을 따 오는 대표 선수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소비 체제에 들어 있는 한 어버지에겐 그 체제를 방어할 항거 능력이 전무했다. 핏줄에게 빠리고 핏줄의, 핏줄의, 핏줄에게도 빨렸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삼은 저들이 자신들의 깔때기를 채우기 위해 그 구조를 전적으로 허락하고 돕기 때문이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

 

세상에 가장 힘든 노동이 바로 소금밭에서 일하는 염부의 노동이란다.

그 염부의 노동으로 소금은 세상의 모든 맛을 다 갖게 된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소금의 맛은...

단지 짠맛만이 전부는 아니었구나!

소금이 가진 세상의 이 모든 맛이

힙겹고 치사한 노동에 팔리고 자식들에게 굽을 등을 빨리는 아비의 모든 것이라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아프게 아프게 깨닫았다.

이 치사한 세상을 살아내는 걸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사실은 아비들였음을 나는 몰랐다.

아니 모른척 했다.

그래서 끝내 시우에게 돌아가지 않는 아비가 나는 다행스러웠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다시 또 읽게 될거다.

읽을 때마다 나는 끝없는 참회록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이 책을 읽게 될거다.

날마다 고통스럽고 날마다 황홀하기 위해서.

(아마도 나는 황홀보다는 고통쪽에 더 많이 머무를 수밖에 없겠지만...)

 

차디찬 소금이 입 안에 가득하다.

이 소금은 어떻해야 하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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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끄적 끄적...2013. 4. 12. 08:25

일본 소설 두 권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한국에서도 엄청난 메니아층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에쿠니 가오리.

참 다른 작가인데 이 두 작품은 묘한 서정성을 갖고 있다.

물론 그 서정성이라는 건 확실히 다르다.

<비밀>과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으로도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와 미스터리에 관해서라면 확실하게 독자를 잡아끈다.

전기공학과를 좋업했다고 했나?

그래선지 그의 소설들은 꽤나 과학적이고, 전문가적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책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참신하다고 생각하진 않을테지만...)

확실한 건 스토리텔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게 글을 쓰는 미스터리 작가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선지 그의 신작이 출판되면

구입해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챙겨서 읽는 편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내가 지금껏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확실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두고 아주 서정적인 이야기였노라고 말하고 싶다.

"서정적"이라는 표현은 통상적으로 쓰는 그런 뜻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정성.

내 속의 뭔가를 아주 작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툭"하고 건드렸다.

책을 번역한 양윤옥의 말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

어딘가 "나미야 잡화점"이 정말로 있어주면 좋겠다는 환상을 품게 한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기꺼이 그곳을 찾아가 가게 주인 앞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다음날 다시 찾아가 우유 배달 상자 속의 답장을 기다리면서...

사람은 참 단순하다.

때로는 어떤 작은 사건이, 한 권의 책이 복잡한 생각들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이 책이 그랬다.

가슴 진한 감동을 준다거나 위로를 준 게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된 내 로망을 건드린 것 같다.

예전에 나는 그랬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 책은 과거의 한때(That point)를 그리고 나(It's me!)를 생각케 했다.

과거로 부터 도착한 답장!

그 안에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내가, 그리고 미래의 내가 전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코의 이번 추리는 꽤나 용의주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하느님의 보트>

나는 이 소설의 그녀의 신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03년도 이미 출판된 책이다.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읽은건가?)

에쿠니 가오리는 일본 여류 작가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모든 걸 다 이야기하지 않고 살짝살짝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도 그랬고 <도쿄 타워>도 그랬고...

하나님의 보트를 탄 엄마와 딸.

난 이 모녀가 나라를 잃고 생명을 걸고 떠도는 보트피플보다 더 안스럽고 안타깝다.

과거는 "상자 속"에 담아두고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남자의 약속을 믿으며 추억과 상상, 흔적을  안고 어느 곳에도 차마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민.

나는 요코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요코는 일종의 직무유기이고 책임회피다.

어른아이 요코와 아이어른 소우코는 둘 다 시간을 잃었다.

 

"우리한테 언제는 있을 곳이 있었나?

"있어."

"엄마가 말했을 텐데. 언젠가 아빠를 만날 거라고, 우리가 있을 곳은 아빠야."

"미쳤어."

"거긴 엄마가 있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야."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건데?"

"엄마의 세계에 계속 살아주지 못해서."

 

엄마와 딸의 대화를 읽어내면서

난 참 많이 아팠다.

'그 사람이 여기 있다며..." 

단지 상상만으로도 힘을 되는 사랑.

(적어도 나라면 그런 사랑도, 그런 사람도 믿지 않았을텐데.)

책의 결말은 이렇다.

딸은 엄마의 현실과 떨어져 자신의 현실 속을 살기 위해 기숙사로 떠나고

요코는 그를 처음 만났던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이 단어... 참 폭력적이다)

그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이건 해피엔딩일까?

 

나는 재회한 두 사람에게 결코 해피엔딩은 오지 않을거라 단언한다.

떠돔을 선택한 사람은 정착할 수 없다.

뼈마다를 녹이는 사랑이 옆에 있다고 해도

그게 선택에 대한 예의다!

요코는 아마도 남은 시간을 정말 보트피플처럼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남자도, 딸도 함께 해주지 못할거다.

 

깍지 낀 두 손을 놓을 때가 왔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3. 29. 08:21

황사로 짙은 연무가 계속되는 3월에

나는 작정한듯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안개 3부작"을 읽어나갔다.

<천사의 게임>, <바람의 그림자>, <천국의 수인>을 읽고 꽤 오래 전에 구입했던 책을

연무와 함께 탐독한 셈이다.

생각했다.

아주 딱 적당한 시간에 이 책들을 손에 집았구나...

오르한 파묵은 내게 "터키"의 환상을 꿈꾸게 만들었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내게 "스페인"의 미궁을 헤매게 만들고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의 우울과 냉소를 체화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

author는 내겐 일종의 세계지도다.

나는 기꺼이 그들이 안내하는 나라를 찾아가

그 도시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만나는 골목길에서 두려움 없이 헤맬 것이다.

낯선 길들은,

때론 공상과학이고 완벽한 환상이다.

 

동화의 세계같기도 하고, 잔혹한 현실같기도 한 "안개 3부작"을 어떻게 설명할까?

나는 그랬다.

다락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몰래 있는 금서(禁書)의 즐거움이랄까!

먼저 읽었던 책들보다 스토리텔러로서의 힘은 약하지만

몽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경향은 이 소설 속에서도 뚜렷히 드러난다.

신화의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 그 찰나를 보는 것 같다.

뭔가 확실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지만 그 안에 신비와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원을 품고 있다고 할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표현보다는

다르게 사고하는 데 익숙한 사람같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거부감 느껴지지 않게 잘 썼다.

특히나 "안개 3부작"들은 동화처럼 읽힐 수 있어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권해도 좋을 책이다.

어쨌든 계속 챙겨볼 만한 작가다.

안개 3부작을 끝으로 "한국에 번역된 루이스 사폰 첵은 다 앍었다!"라고 생각했는데

2013년 2월 27일에 <마리나>가 번역 출판됐단다.

살짝 갈증이 났었는데 다시 앤톨핀이 생성되면서 흐뭇해진다.

이번엔 내게 어떤 스페인을 꿈꾸게 할까?

그리스와 산토리니 때문에 밀려난 "스페인"이 또 다시 성큼 다가왔다.

기다려라. 마리나여!

잠깐동안이겠지만 아직은 아껴두고 그대를 그리련다.

그러나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

짙은 안개와 함께 천사의 날개를 달고

화염의 기차에 올라

비밀의 바닷속,

그 곳으로 가리라!

그곳에서 기꺼이 당신의 친구가 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3. 25. 08:26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 두겠노라 선언했다.

솔직히 너무나 반가웠다.

그가 정계은퇴를 선언해서 반가웠던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에 대해서라면 나는 잘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후반부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되게 하기 위해 돌아간다는 그의 결절이 반가웠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어쩌면 나는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일종의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지식소매상으로서의 그의 글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정치은퇴를 선언하면서 함께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조차

우리나라 현실정치의 참담함이 막막하다.

 

...... 내게 정치는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성과 감정, 둘 모두 끝없이 소모되는 가운데 나는 인간성이 마모되고 인격이 파괴되고 있음을 매일 절감했다.

나는 정치의 일상을 즐기지 못했다. 글쓰기는 지성과 영혼을 건드리는 작업이지만 정치는 국가권력을 다루는 사업이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이다.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폭력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선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저마다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정치는 글쓰기와 달리 거의 언제나 살벌한 대결과 가시 돋힌 공격, 분노, 경쟁심, 질투, 굴욕과 같은 감정의 격동을 동반한다 ......

 

그의 말대로 그는 정치가로서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힘이 너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철수를 그렇게 염려하는지도...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과 야수성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그가 굳이 현실 정치를 택했던 이유는 도대체 뭘까?

유시민은 이 질문에 대해 책으로 답한다.

"지난 10년간 정치는 내 직업이었다. 내 일이었다. 그런데 글쓰기와 달리 정치는 내게 일인 동시에 놀이일 수는 없었다. 정치활동의 일상적 과정이 내게는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원래 직업이란 안정적 수입을 가져다주는 생업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게는 정치가 생업으로서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정치를 했는가? 내게 정치는 연대의 한 방법이었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를 외치는 유시민에게 정치란,

존엄과 신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존엄과 품위는 자기 힘으로 삶을 이끌고 가야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그들의 존엄과 신뢰를 국민들에게 보여줬고, 또 앞으로 보여주게 될까?

안타깝게도 희망적인 답을 기대하기엔 아직 요원하다.

"존엄"은 "가치(value)"를 따질 수 없는 것이라는데 대한민국의 정치는 폭력을 휘두르면서까지 "가치" 하나에 목숨을 건다.

고귀하고 위엄있는 정치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제발 "조폭정치"라는 오명만이라도 씻을 수 있다면 나는 정치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겠다!

"가치"를 중시하겠다면 소속정당의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가치를 위해서

핏발을 세우고 주먹질을 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진심으로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가는 최고의 행복"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번이라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신념"을 가진 정치인이 나와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이 있다. 그런 것을 모두 합쳐서 신념이라고 하자.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의 준칙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신념의 역할은 인생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념은 때로 삶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은 신념을 위해 살기도 하고 신념을 위해서 죽기도 한다. 신념은 단지 머리에 든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 사랑, 놀이가 되고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와 참혹한 국가 범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신념은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신념에 따른 삶과 죽음이 훌륭하려면 먼저그 신념이 훌륭해야 한다. 신념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그 신념을 따르는 삶도 훌륭할 수 없다....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고결한 이상, 바위처럼 굳건한 신념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

 

정치인 유시민은 그의 고백처럼 확실히 "실패"했다.

신념을 실천하지 못했고, 신념을 지키지 못했고, 신념과 끝까지 동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대"에도 실패했다.

유시민이 현실정치에 패배했음을 나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신념을 배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붙들고 놓치 않는 것 역시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다.

굳이 인생시계의 후반부를 들먹이지 않더라고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아름답게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으면 그 길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이 글을 쓸 때 유시민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그가 새로운 "연대"를 시작했노라 믿고 싶다.

그는 다시 글을 쓰면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연대할 것이다.

그래서 반갑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귀환이!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3. 3. 13. 08:05

소위 말하는 백만년만의 월요일 휴가.

매일 5시 10분에 일어나는 나로서는 정말 오랫만에 생소한 시간이 주어졌다.

집에 있는 컴퓨터틑 장렬히 사망한지 어언 1년이 되어가고

구입하려니 집에 있는 시간이 그닥 많지 않아서 계속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백만년 만의 휴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백내장 수술을 해야 하는 엄마를 모시고 오전, 오후 안과도 다녀왔고

그 중간에 그동안 길었던 머리를 그야말로 댕강 잘랐다.

심경의 변화? 따위는 전혀 없었고 머리 감기가 귀찮다는 아주 현실적이고 지극히 단순한 이유!

목 언저리에 달랑거리는 머리가 아직은 생소하지만 가벼운 느낌이 나쁘지 않다.

어제 출근했더니 주변에서 어울린다는 말을 해줘서 그것도 참 고맙고...

엄마는 수술 날짜를 잡았고,

추석무렵에 떠날 여행 준비도 이제 초입에 들어갔다.

이스탄불 - 아테네 - 산토리니 - 아테네 - 이스탄불을 다녀오는 12일 간의 일정.

 

솔직한 마음은 혼자 가고 싶지만

이번엔 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혼자가면 여행자숙소 도미토리룸을 이용해도 되지만

가족이 움직이려니 아무래도 숙소가 제일 문제다.

"다 알아서 해!"

동생은 이 한 마디만 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이 더 무섭다.

여행 준비 때문에 앞으로 좋아하는 공연도 많이 줄어야 할 것 같고.

개인적으로 다른 계획도 생각하고 있어

무모하지만 도전해볼까 고민하는 중이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아침에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일어나느냐고,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아주 가끔은 유령같은 몰골로 하루를 버틸 때도 있지만

5시 10분에 일어나서 6시 20분쯤에 집에서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개인적으로 절대로 빼앗기거나 방해받고 싶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황금시간이다.

출근을 준비하면서 한 시간여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는 그 완벅하고 고요한 시간!

그건 내 하루가 비로소 시작됐음을 선언하는 일종의 포고(咆告)의 시간이다.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책을 읽다가 눈이 멀었으면 좋겠다"고.

혹은 "책을 읽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요즘은 덜컥 겁이 난다.

시력이 나빠지고 있는 걸 점점 실감해서...

보지 못한다면, 읽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많이 아니 치명적으로 절망하게 될 것 같다. 겁이 난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아직까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여전히 책을 손에 잡으면 맘이 설랜다는 거다.

그거면 지금은 됐다!

읽을 수 있다면 아직 살 수 있다는 거니까!  

 

사실 오늘 아침은 더 일찍, 그것도 많이 설래면서 깨어났다.

한 권의 책 때문에...

세계 최고령 발레리나 강수진이 쓴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제 저녁 9시쯤에 읽기 시작했는데 잠들기 전까지 책을 들고 정말 많이 고민했다.

다 읽고 잘 것인가 아니면 일어나서 읽을 것인가를...

(일종의 Go! Stop!의 기로였다)

왠지 조금 더 설래고 싶었다.

그래서 후자를 택했다.

오랫만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이렇게까지 설랬던 게.

이 책을 <자서전>이라고 표현하고 싶진 않다.

이 책 속에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이야기나 대단한 에피소드가 나오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5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그녀의 인텔리한 해박함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단백하고 솔직해서 오히려 너무 평범하게까지 느껴지는 글이다.

그런데 그 글들이 내 가슴이 치고 눈을 붙잡는다.

아마도 이 책을...

나는 두고두고 몇 번씩 읽게 될 것 같다.

 

 

 

마지막 책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도 이 책은 100% 나를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마흔 다섯의 최연소 발레리나 강수진 입니다!'

매일매일 연습실의 문을 들어서면서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이 말에 담긴 숱한 의미와 각오와 열정과 그리고 노력이 내 굵은 뼈에도 사무친다.

하루 18시간의 연습.

우리가 알고 있는,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강수진의 발"은 그녀가 20대 무렵이었을 때의 발이란다.

지금 그녀의 발은.

그때다 더 형편없는 모습이란다.

그걸 그녀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똑같은 발이라면 자신은 연습을 게을리했다는 의미밖에 안 되니까.

(죄책감이 느껴질만큼 뜨끔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으면

전날 연습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에 더 많이 연습한다는 그녀.

너무나 무섭고 또 무섭다.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공포다.

너무 위대하게 아름다워서 눈이 부실 정도다.

그녀...

Monday holidayd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나를

할 말 없게 만든다.

 

* 그녀의 매일매일의 시한부 하루가 내 하루을 깨운다.

   집요하게!

  그리고 아주 위엄있게! 

   wake up, LUNA!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