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3. 17. 08:17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나라엔 <그리스인 조르바>로 잘 알려진 그에게 지금 빠져있다.

<수난1,2> 권을 폭풍처럼 읽어내면서 내내 생각부터 했다.

너무 일찍 이 책을 읽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을 읽은 상태로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게 될 것이다.

 

그리스의 작은 마을 "리코브리스"

그리스도의 수난극을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각각의 역할을 정하는 마을의 원로들.

양치기 마놀리오스에게는 "예수"의 역할이 주어진다.

베드로와 유다. 야고보, 요한그리고 마리아까지...

그러다 이 풍요로운 마을에 유랑민들이 들어온다.

터키의 침략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그들은 리코브리스에 도움을 요청한다.

자기의 것을 나눠야 하는 상황 앞에서.

인간은 아주 필사적으고 구체적으로 이기적이 된다.

소위 말하는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위선과 욕망.

그걸 이 작품은 아주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할극은 이제 더 이상 역할극이 아닌 현실이 된다.

또 다시 "예수"를 핍박하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다.

 

...... 헛되군요, 나의 예수님.

       2천년이 지났는데도 인간들은 여전히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언제쯤이면 당신은 다시 태어나 이번만큼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우리 가운데서 영원히 사실 겁니까? ......

 

조물주의 창조는 늘 반복되고

그래서 인간의 창세기도 늘 반복된다.

당연히 인간의 출애굽기도 반복되고

예수의 골고다 고난도 반복된다.

구약과 신약의 끝없는 반복.

수없이... 수없이... 몇 번씩 반복되고 있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

인간은 자기 자신이 못 박히기 전까지는 결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그게 인간의 불행이고,

인간의 역사다!

 

인간의 사악함은...

신의 창조 그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가버렸다.

그래서 이젠 신조차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수없이 못박히는 예수만 보낼 뿐...

 

그랗다면 예수는,

앞으로 몇 번을 더 못박혀야 할까?

감히 신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제 인간을 버리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11. 13:49

요즘은 자꾸 여행서에 손이 간다.

아마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이리라.

요즘의 관심사는 터키를 포함한 동유럽과 스페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프라하"를 떠올렸던 적은 없었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바람도 가져본적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이 드디어 내게 "프라하'를 꿈꾸게 만들었다.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

동유럽 여행에 필요한 역사나 흥미거리, 혹은 맛집들을 기웃거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느 평범한 여행서처럼.

그런데 이 책.

내가 생각한 그런 종류의 실용서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의미있고 깊이있는 내용이다.

여행자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와 역사와 사고를 품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처음에는 모차르트가 , 그 다음은 베토벤이

그리고 마지막은 쇼팽이 함께 했다.

그들과 함께 릴케, 조르주 상드,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도 잠깐씩 곁에 머물러줬다.

게다가 아우슈미츠와 홀로고스트, 뤼른베르크 전범재판과 대면할 때면 가슴 끝이 묵직했다.

동유럽에 대해...

나는 참 몰랐구나.

나의 편협하고 의도적인 외면과 무관심이 부끄럽고 민망했다.

어쩌면 동유럽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는 비슷하게 닮아있다.

서러움돠 서글픔.

나라를 잃고 자유를 잃은 국민이 겪어야했던 거짓말같은 결말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땐,

이국의 아름다움 풍경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대부분이엇다.

프라하와 폴란드 그리고 슬로바키아.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이곳의 의미는 적어도 내겐 완전히 달라졌다.

술렁술렁 읽겠다는 생각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오랫만에 탐독에 푹 빠졌다.

마치 귓가에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베토벤의 운명,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생생함.

체코의 고성의 비밀들이 비로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과 에피소드들을 최도성은 도대체 어떻게 수집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절친이 자기의 여행담을 두런두런 들려주는 것처럼 정겹기까지 하다.

(도저히 샘을 낼 수조차 없게 만드는 문장이다.)

관심이 있으면 찾아지고, 찾아지면 보이고, 보이면 느껴진다는 말은

정말 진심이었이구나...

 

최도성.

이 사람이 나를 부러움과 탄식 속에 잠기게 만들었다.

마지막까지 극도의 좌절감에 빠지게 만드는 고수의 글솜씨다.

"이 책과 함께하면 좋은 음악&영화"

추적자의 본능을 깨우는

14곡의 곡들과 10편의 영화들.

깔끔한 좌절이다.

 

보는 것과 볼 수 있는 것,

듣는 것돠 들을 수 있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넓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7. 07:40

맙소사!

또 다시 터키라니...

봇물터지듯 일저히 튀어오르는 터키를 향한 그리움.

또 다시 타는 듯한 갈증에 휩싸인다

이혜승의 <두 번째 터키>

동네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 꺼내든 한 권의 책,

이 책을 집어든건 어쩌면 우쭐대고 싶은 자만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두 번째 터키라고! 나도 거기 두 번 다녀왔거든!'

 

그랬는데...

무참히 깨지고 형편없이 무너졌다.

그녀의 글에, 그녀의 시선에, 그녀의 일상에...

게다가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생활 여행자가 되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녀에게 터키는 여행이 아니고 생활이다.

그게 눈물나게 나는 부럽다.

그것도 갈라타 타워를 올려다 볼 수 있는 골목. 바로 그 곳에.

 

이.혜.승

그녀가 들려주는 터키 이야기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터키인의 생활 깊숙이 쑥 들어가

그들과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독백들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하얀 눈이 내린 터키를 보고 싶다는,

아니 그 눈을 내 두 발로 직접 밟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길.

혼자임에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걸 그 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갈 생각을 했을까?

뭐가 그녀를 그곳에 발목 잡게 했을까?

그녀가 내 꿈을 훔쳤다!

비록 영원히 머무를수는 없을지라도

딱 1달 만이라도 그곳에 머물고 싶다.

관광객의 소음 속에 뒤적이며 구시렁거리고

햇빛 좋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길냥이의 오수를 부러워하면서

예정없는 걸음을 오래 오래 걷고 싶다.

그렇게 뚜벅뚜벅 그곳에서 잠시 생활하고 싶다.

나른한 오후 같은 그곳.

하지만 나를 늘 명료하게 깨어있게 하는 그곳.

 터키는 내게 그런 곳이다.

나의 안과 밖을 가차없이 털어서 햇빛에 꾸덕꾸덕 마르게 하는 그런 곳.

그곳의 주소는 눈부신 햇빛 속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6. 08:12

오랫동안 벼려왔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다는게 두려워 내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읽게 됐다.

그냥 무심히 아무렇지 않게 집어들고 책장을 넘겼다.

그동안 버텨왔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마도 이 책은 밀어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나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SBS TV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마지막 촬영을 남겨놓고 숙소에서 자살을 했단다.

스물 여덟, 꽃보다 더 아름다울 나이.

만약 그녀의 손에 이 책이 쥐어졌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살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잃은 건 "생명"이 아니다.

생명 이전에 살아야 하는 이유,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잃었다.

 

2차 세계대전.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플랭클은 이름을 잃었다.

악명높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수감자에 불과했다.

죽음은 너무나 가까웠고,

그래서 수감자들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무감해졌다.

발진티푸스로 죽은 동료의 주검 앞에 슬픈 애도의 시간은 없었고

누군가는 그 사람의 주머니를 뒤져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빵부스러기를 찾고

누군가는 이미 넝마가 되어버린 그의 옷과 신발을 벗겨냈다.

죽은 육체는 하나의 사물이 된다.

계단에 머리가 함부러 짓찧어지며 운반되 소각장으로 버려지는 쓰레기더미.

그 자리는 또 다른 번호로 채워진다.

번호와 번호는 그렇게 자리를 비우고 채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도 있지만

더 이상 잃을 이성조차도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번호에 불과한 사물에서 이름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되돌아오는 그런 사람.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견딜 수 있다.

그 "의미'라는게 거창하고 대단한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빅터 플랭클의 술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단백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평화롭고 평온했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이 책은 내 면전에서 거리낌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아마도 대답을 찾을때까지

나는 계속 빅터 플랭클을, 아우슈비츠를 대면하게 될것 같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비록 명확하게 이름 지을 순 없지만 내게도 그게 있음을 믿는다.

그걸 찾아봐야겠다!

아니 찾아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2. 19. 08:41

지금가지 내가 읽은 김중혁의 책은 모두 두 권이다.

한 권은 <펭귄뉴스>라른 단편들을 모아서 엮은 책이었다.

책서평집을 읽다가 김중혁이라는 작가를 알게됐고 그래서 일부러 찾아 읽었던 단편집이다.

괜찮았다.

명확하게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자신만의 흔적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일부러 장편을 찾아봈다.

2010년 9월에 출판된 <좀비들>

사실 좀 망설였다.

"Zombi"라는게 이미 실존과 현실의 범위를 넘어서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가령 판타지나 SF 급의 공상호러물을 읽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여기 저기 난무할 피칠갑을 읽어내는 것도 고단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결론부터 말하자.

책장을 열기 전까지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주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만큼 좋지는 않았다.

처음엔 "좀비"가 그냥 상징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좀비가 나온다.

그것도 좀비소설이 이렇게까지 평온하고 화목해도 되는건가 싶을 정도다.

 

 

자식의 시체를 팔아 보상금을 받은 부모들.

자식을 팔아버린 죄책감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곳을 떠나야만 하는데 부모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비밀 누설(漏說)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그들의 이주는 금지됐고

고리오 마을에 모여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된채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시체를 좀비로 만들어 대대적인 실험을 하는 군부대.

써놓고보니 참 황당항 SF이긴 하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좀비에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살아있는 시체.

우리는 그런 존재를 "좀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대부분은 분류상 "좀비"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속 장장군의 말처럼 세상엔 실제로 좀비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들키지 않는 이유는 일정한 개체수를 유지하면서 비밀리에 모여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읽을수록 이 황당한 SF적인 현실이 어느 순간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이 무서운건 그래서다.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처럼 여겨진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받아들여버리고 만다.

받아들였다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한채.

편맹증에 익숙해지면 입체시가 사라진 눈에 적응하며 사는 것처럼...

(편맹증의 시작이 편두통이란다. 문득 두렵다. 내 머릿속에도 한 곳만 집요하고 두드리는 딱따구리가 살고 있어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불특정 좀비들은

너무나 고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다.

그게 참 슬프고 아프다.

 

...... 나에게 삶은 일직선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이전 사건의 결과이자 다음 사건의 원인이었다.....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넘어뜨리듯 모든 사건은 연결돼 있었다. 처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이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마지막 도미노는 무었일까? 마지막 도미노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부터 죽음 이후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죽는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면,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한때는 모든게 부질없게 여겨졌다. 관계란, 사랑이란, 집착이란, 실망이란,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아무것도 시작하고 싶지 않았고 끝이 뻔히 보이는 길은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은 중요한게 아닐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이고, 지금의 이 사건이 또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의 도미노로서 이곳에 서 있을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2. 12. 08:43

개인적으로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즐겨 읽는다.

김별아 <미실>,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백영옥 <스타일>, 임성순 <건설턴트>

이 소설까지 지금껏 6권을 읽었는데 모두 다 재기발랄하면서 참신하고 또 치열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이 책은 좀 늦게 읽은 편이다.

전민식이라는 작가도 잘 몰랐지만 왠지 제목이 썩 내키지 않았다.

공연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일단 동물들이 등장하면 이상하게 손이 안 간다.

그렇다고 어릴 시절 동물한테 기암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암튼, 살짝 망설이다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무지 재미있고, 무지 심각하고, 무지 심난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명랑소설쯤으로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으수록 점점 묵직해온다.

정말 이런 현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하는 족보있고 뼈대있는 견공을 산책시키고 보수를 받는 직업.

하루 몇 시간의 산책으로 오피스텔을 얻고,

명품 옷과 구두를 신으며 사는 그런 사람.

에이. 설마...

상상도 이쯤 되면 이건 정말 거짓말을 넘어 순도 100% "구라"다!

라고 치부하기엔 씁쓸하다.

솔직히 부럽다.

귀하신 개님을 산책시키는 일만으로 대기업 연봉을 받는 임도랑이라는 인물이.

 

 

그런데 이 소설.

참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그야말로 전부 싹쓸이로 담아냈다.

삶은 유혹과 선택이다.

순간순간 부딪히는 크고 작은 모든 유혹들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만든다.

선택에 있어 옳고 그름은 사실 결정적인 역할을 못한다.

옳고 그름보다는 오히려 필요에 의한 절박함의 작용이 더 막강하다.

이 책을 잀으면서

나는 선택과 결정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럴수만 있다면,

어떤 선택도, 어떤 결정도 하지 않고 싶다.

아주 아주 진심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2. 11. 08:58

작가 황석영 1973년에 썼던 중편 <비탈진 음지>

그 소설이 38년이 지나 장편으로 개작돼서 2011년 다시 출판됐다.

<황토>와 <비탈진 음지>

비슷한 이력을 지닌 이 두편의 소설 속에는

과거보다 먼 역사의 일부가 되버린 70년이 담겨있다.

내 아버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있고 그리고 내가 태어난 그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렸던)에 다닐때만해도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결석하는 아이들이 심심치 않았다.

나 역시도 한 방에서 언니와 동생이랑 오글거리며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셨더랬다.

놀란 엄마가 우리를 깨워낸 후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하는 일이었다.

일종의 응급처치였는데 그 가물가물하던 와중에도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 국물이 그렇게 맛있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정신이 번쩍들고 감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청량함이었다.

그냥...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된 기억들, 그게 하나 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의 "가난"과 지금의 "가난"이 얼마나 다른지 까지도...

 

장편으로 개작된 조정래의 <비탈진 음지>

참 구질구질한 현실이고 비루한 일상이다.

"음지"만으로도 서러운데 거기에 비탈까지 졌다니...

시난고난한 복천의 일생에 한번쯤 빛이 반짝하길 바랬는데

그게 거짓없는 현실이기에 오히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게 비단 1970년대의 일일 뿐인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좀 더 지능적인 야반도주가 있고,

좀 더 지능적인 몰락이 있고,

좀 더 지능적인 파괴가 지능적으로 남아 있을뿐이다.

 

복천의 잘려나간 다리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절망했다.

그래도 살다보면 아주 잠깐이라도 음지에 반짝하고 빛이 들지 않을까 희망했는데... 

조정래는 끝까지 정직했다.

그 정직이 나는 너무나 무섭다.

마치 너는 지금 어디로 무작정 상경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22. 15:03

하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부러 구입하면서까지 읽는 매니아는 아니지만

손에 잡히면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얼마전에 <질풍론도>라는 새책도 출판됐다는데

참 부지런히 쓰는 작가다.

너무 과하게 부지런히 책을 들고 나오니 간혹 기계적인 작가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다.

뭐, 그래도 어쨌든 재미는 있으니까...

이 책은 2008년도에 출판됐으니 내가 좀 늦게 읽은 셈이다.

8년전 작품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요근래의 하가시노 게이고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특유의 공학도적인 세밀함과 상식과 지식을 넘나드는 지적 흥미로움은 다른 작품에 비하면 좀 떨어지더라.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직업이 작가인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 전반부부터 등장인물들이 너무 쉽게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소설은 그 속이 머무 빤히 보여서 좀 그렇다.

자백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진실을 감추기 위해 자백을 했다라는 것,

그리고 결국은 밝혀지고 만다는 이 모든 것들이 

추리소설의 뻔한 전개고 뻔한 결말이다.

겉표지의 홍보 문구에 나온 감동과 반전, 충격적인 결말은...

읽는 내내 솔직히 없었다!

히다카를 향한 노노구치의 이유없는 악의(惡意)도 적절하게 표현된 것 같지 않고...

"왜 죽었어?" 라는 물음에

"그냥요!" 라고 대답을 들은 것처럼 황당하고 어의없다.

하긴 묻지마 살인이 수시로 일어나는 시대이다보니 황당하다는 표현도 맞지는 않겠다.

 

책읽기에 살짝 지쳐갈때 하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일종의 일탈이자 쉼표다.

아무 생각 없이 "killing time" 하기엔 딱 적당한 소설.

어찌뙜든 책장 넘어가는 속도 하나는 엄청나게 빠르다.

어쩌면 이야기 전개보다 더 앞서나가는지도...

아마도 그게 내가 추리소설에 깊게 빠지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20. 10:44

2007년 7월에 출판된 정유정의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 정유정,

간호사로 현업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고,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녀는

이젠 완전히 전업작가가 됐다.

그것도 꽤 괜찮은...

아마도 직업적인 유사성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소재도, 이야기 구성도, 문체도. 표현도 참 좋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시작된 정유정읽기는

<7년의 밤>으로 그리고 작년 <28>로 이어졌다.

세 편 다 소재가 너무나 달라서 깜짝 놀랐다.

이 이야기들을 쓰기 위한 취재들을 정유정은 어떻게 했을까?

상상력과 재능도 물론 탁월하지만

그녀의 글 속엔 발로 뛰어서 알아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동감이 있다. 

정유정은 정말이지 천상 이야기꾼이구나 싶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어쩌다 순서가 역행하긴 했지만 이 책 역시도 너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내 심장을 쏴라>와 비슷한 호흡과 속도감은 두번째라고  제법 익숙해졌는지

나름대로 즐기면서 읽어나갔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

아마도 세번째 장편 <7년의 밤>도 이런류의 소설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유정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야기는 딱 "청소년"스러운 혼란과 무질서, 그러면서도 어른인척하는 아이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깊이보다는 잠깐씩 느껴지는 번득임이 아주 신선했다.

정말 그렇다.

세상에는 자기가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들은...

시간의 변두리에서 만나질 수 있는 아이들이고

우리 역시 그 시간의 변두리를 지나왔다.

그때를 우리는 과연 기억할 수 있을까?

아직 한참을 더 커야만 어른이 되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이 내게 무거운 화두를 남긴다

 

비.밀.

시간이 공간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을

나는 "비밀"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비밀의 시간에 귀기울이는 것.

그게 쓰는 이유고, 읽는 이유고, 살아내는 이유다.

정유정도, 나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17. 08:30

나는 김영하의 글들이 참 좋다.

표현히 특별하다거나, 사건이 기발하다거나, 스토리가 대단해서는 아니다.

뭐랄까, 어떤 순간을 포착해서 김영하식으로 써내려가는 방식이 너무나 좋다.

확실히 자신만의 뉘앙스를 확고히 가지고 있는 작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때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였는데

제목만 보고는 나는 그가 성석제류의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았던거지!

그러다 그의 소설을 다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잊지 않고 꼭 챙겨보게까지 됐다.

개인적으론 must read author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작가되시겠다!

 

로봇

여행

악어

밀회

명예살인

마코토

아이스크림

바다 이야기 1

바다 이야기 2

퀴즈쇼

오늘의 커피

약속

 

12편의 단편들은 거의가 다 기발하고, 섬득하고, 재미있고, 의아했다.

뭐랄까, 다양한 후식이 나열된 다과상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소설이라고 하기엔 좀 뭣한 단문은 제외하련다.)

그리고 장편 <퀴즈쇼>의 단편 초기작을 보는 재미도 솔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밀회"

어쩌면 이야기보다 카푸그라증후군이라는 용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뇌의 친밀감에 대한 정보를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돼서

그전까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인식하는데 혼란을 겪는 증상.

여기에 단란한 가족이 있다고 상상을 해보자.

가족 중 누군가 카푸그라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그 당사자는 이제 가족이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친밀감이 전혀 생기지 않으니까...

급기야는 이 사람들이 나를 속이고 가족인척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그 다음 순서는?

아마도 해체 혹은 무시...

어떻게 좋은 방법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카푸그라증후군 자체는 섬득하고 막막한 현실이겠지만

의외의 반전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나"로 살 수 있는 기회가 될수도 있으니까.

 

김영하의 책을 읽고 있으면 어쩔수 없이 이렇게 되버리고 만다.

책의 한 구절로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김영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가다.

세상에! 생각이라니!

그거 참 두루두루 위험한건데...

Posted by Book끄-Book끄